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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1. 히어로즈 I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09 | 회차평점 0 0

 

 

 

 

 

 

 

*****

 

 

 

  테라스에는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는 수풀과 초목이 우거진 근사한 경관의 벤치에 앉아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소설 속 엘프들의 황금 정원을 재현해낸 듯한 풍경이었다.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유명한 관광지들과도 비길 만한 곳이었다.

  책을 읽던 청년은 휴식 삼아 고개를 들었다. 꽃잎이 흩날리는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인조적인 구조체가 보편화된 세상에 보기 드문 순수 자연 경관. 구경하면서 인간의 솜씨와는 다른 위대한 설계자의 솜씨를 묵상하였다. 꽃잎이 청년이 손에 든 작은 책 위에 내려앉았다. 그 소박한 광경에 이유 모르게 가슴 안에 약간의 뭉클함이 전해졌다. 평범한 일상의 기적, 그리고 경이로운 세계까지, 그 모든 것을 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마음 속으로 감사 기도를 드린 그는 다시 책을 펼쳐 들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묵상을 이어나갔다.

  “유지현.”

  바로 그때 이지적인 음성과 함께 불쑥 커다란 그림자가 햇빛을 덮었다. 지현의 시선이 즉각적으로 위를 향했다. 순간적으로 두려움과 긴장감이 그의 표정을 살짝 덮었다. 무서움보다는 위계 질서에 대한 복종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형님?”

  “요새 힘든 일은 없니?”

  조금 전과 동일한 위엄 서린 음성, 그러나 은은한 자상함이 서린 어투. 무덤덤한 표정을 머금어 냉정해 보이는, 그러나 위대한 조각가가 깎아낸 듯한 정교한 얼굴을 소유한 미남이 높은 시선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별 탈 없는지 궁금하구나.”

  그 미남은 막 운동을 마친 모양인지 운동복 바지만 걸친 상태로 땀 흐르는 상체 위에 수건을 얹고 있었다. 떡 벌어진 넓은 어깨, 큰 키, 그리고 잘 새겨진 흉근과 복근이 저절로 위압감을 자아내었다. 맹수와 같은 남성성을 자랑하기보다는 신사다움과 지성미가 두드러지는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강하게 연마된 육체의 연유인지 강인한 위세는 숨길 수 없었다. 으레 남성미를 뽐내기를 좋아하는 부류와는 달리 아무런 과시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데도 그저 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격의 차이가 전해졌다.

  “네, 저는 괜찮게 지내고 있어요, 형님은요?”

  “나야 늘 동일하지.”

  성운은 자상해 보이는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책을 읽고 있구나.”

  평소에도 큰형을 늘 어려워했던 막내는 주춤했다.

  “잠깐 구경해 봐도 될까?”

  겉표지 자체는 아무런 장식이나 글도 쓰이지 않은 주황색 배경이었다. 얼마 전에 이 책의 깊이를 알게 되면서 깊은 내적인 변화를 누리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를 쑥스러워하는 지현이었다.

  가족들 앞에서는 믿음을 고백하기가 왠지 모르게 더 부끄러웠다. 나름 붙임성이 좋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소심한 면모가 자신 속에 있는 줄은 몰랐다. 이것은 소심함일까 아니면 담대함의 부족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피할 고민을 할 여유 자체도 주어지지 않았다. 성운의 눈은 이미 그 커버 너머를 관통하여 투시하고 있었다. 그는 정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굴며 동생을 몰아넣었다. 잠시 멈칫하던 지현은 마지못해 읽던 중인 책을 형에게 건네었다.

  “흠.”

  “형님.”

  조금 긴장감이 서려왔다. 자신이 일생일대의 중요 결정을 내린 뒤로 가족들이 썩 반가워하지 않을 줄은 미리 알고 있었다. 특별히 큰형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가 제일 걱정되었던 차였기에 지금의 돌발 상황은 썩 달갑지 않았다.

  “의외구나. 이런 데도 흥미가 생긴 모양이네.”

  “저기, 사실은요.”

  용기를 내봐야 하지 않을까? 내면의 목소리가 울렸다. 양심의 목소리 같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은밀하고 짙었다. 지금껏 일로써, 배움으로써만 타인과 의도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 개인 대 개인의 친밀한 교제를 다루는 데 서툴렀던 지현에게는 곤혹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을 넘어야 한다고, 특별히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이 울렸다. 하필 그 첫 도전의 상대가 그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대하고 두려운 태산인 큰형일 줄은 몰랐지만.

  “몇 주 전에 제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그래요.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배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분을 제 마음과 삶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영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고백.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아요.”

  엎질러진 물을 주섬주섬 변명하듯 두서없이 담아보았다.

  “부모님이나 형 누나도 그리 반가워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저는…….”

  “알겠다.”

  그런데 생각 외로 담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현은 깜짝 놀랐다. 혹시라도 큰형이 불호령을 떨어뜨릴까 봐 얼마나 걱정했던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긴장감은 늦추지 않았다. 혹시라도 상대의 반응이 돌변할까봐.

  “기독교인이라……. 요새 세상에 희귀하기는 하다만, 네가 원한다면야 뭐. 마침 내가 아는 분도 비슷하구나. 그분의 아우도 세상 어느 누구보다 신실한 신자라지 아마. 그분께서 나에게도 내 동생들과 편안히 지내보라고 권유하시더니 이런 세세한 면에서까지 비슷했군.”

  정작 시작은 지현에 대한 평가였는데 어느 새 지현이 알아 듣지 못할 이야기만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 아무튼 성운은 지현의 결정에 토를 달거나 질책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성운의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터라 지현도 아주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법학도로서도 나름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네, 성운 형님.”

  “이왕 하려면 열심히 하렴.”

  성운은 느긋하게 웃으며 동생의 성경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친애의 표시로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토닥였다. 그는 지현에게 저녁 식사 자리에 늦지만 말라고 당부하며 얌전히 자리를 떴다. 떠나는 발걸음 내내 머리를 맴도는 잡념이 성운을 귀찮게 했다.

  ‘장난으로 하신 명령인 줄 알았는데, 통찰에서 비롯됐나?’

  이에 그는 허탄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아무리 그라도 이런 부분까지 무슨 수로 예측하겠는가.

 

 

 

 

 

 

*****

 

 

 

  잠시 성운은 회상은 며칠 전 시점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는 원래 공적인 계획을 보고하기 위한 자리였었다. 그런데 그때 보스는 뜬금없이 이런 엉뚱한 권유를 던졌었다. 일에 열중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들, 특히 형제들에게 친근감을 품고 대해보라나 뭐라나. 더불어 이번 기회에 가정으로 내려가 그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나누며 평범하게 지내보라는 권고도 들었다. 보스에게 단 한 번도 반항해본 적이 없었기에 수락은 했으나 여러모로 느닷없었다.

  ‘게다가 이유에 대한 설명도 이상했었지.’

  다시 돌아보니 보스의 해설은 참 가관이었다.

  “나는 초인이 자신의 일반인 이웃과 감정 교류가 섞인 순수한 우정을 허락했을 때 어떠한 변화가 유발될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아직 초인들은 이 사안의 중대함을 잘 모르지. 하지만 너라면 이 문제의 만만찮음을 이해하겠지. 당장 내게도 넘어서야 할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 엉뚱하리만큼 평범한 명령을 내리는 와중에도 분석적인 목적을 투영시키다니. 참으로 그다웠다. 사실 그런 면 때문에 성운 자신과 잘 맞는 보스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당황스러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잘 알겠습니다만, 왜 저를 실험체로 쓰시는지?”

  “하하, 실험체라니. 나를 너무 야박하게 봤군. 어디까지나 너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주는 부탁인데 말이야. 부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

  보스는 능청스럽고 호쾌하게 웃으며 반응했다.

  “알다시피 내 부하들에게는 딱히 유대감을 나눌만한 일반인이 없어. 다들 가족이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조종해야 할 장기말이나 짐으로 여길 뿐이지.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쪽이라면 가족을 제대로 봉양하는 너뿐이야.”

  “그런 이유가 정말 전부입니까?”

  성운은 어투에 의문심이 드러나는 걸 억누르며 되물었다.

  “그래, 전부다. 강요는 아니니 부담은 느끼지 마라.”

  비강제라고는 했으나 제왕의 부탁이 진짜 부탁이 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설령 진정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허락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쪽 처지에서는 어찌 표현하기 어려운 강제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딱딱하긴. 아무튼 네 귀여운 아우들을 한번 잘 돌봐봐.”

  “다 큰 아이들인지라 딱히 귀엽지는 않습니다만.”

  성운의 소심한 투덜거림에도 보스는 듣는 둥 마는 둥 웃으며 자기 할 말만 계속 이어나갔다. 성운은 잠잠히 상상했다. 모든 목적에 분석을 두는 점은 보스다웠으나 느닷없는 평범한 인간관계 추구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라도 분 것일까?

  “아하, 이왕이면 구체적인 숙제도 필요하겠군.”

  신이 났는지 2절, 3절까지 더하는 보스의 호쾌함에 성운은 ‘피곤해지겠군.’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미련을 말끔히 비웠다.

  “감상문도 한편씩 써오도록 해. 보고서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동생들과 돌려 쓰는 일기장도 나쁘지 않겠지. 이왕이면 다양한 추억도 좀 쌓고. 운동 경기는 어떤가? 아, 신체 능력 차이가 너무 나서 시시하려나? 아니면 보통의 일반인들이 즐기는 공동체적 체험도 나쁘지 않겠지. 영화관, 낚시, 해수욕, 산책, 등산, 사우나, 관광 여행 등 뭐든 괜찮아.”

  ‘저분께 저렇게 엉뚱한 면이 있었던가?’

  성운은 잠시 헷갈렸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하는 걸 봐서 휴가도 좀 주지.”

  “제게 휴가는 필요 없습니다.”

  “훌륭한 인재라도 가끔은 쉼이 필요해.”

  성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보다 일 중독인 본인이 할 이야기는 아닐 텐데. 차라리 화제를 돌리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성운이 제로원까지 제 발로 찾아온 진짜 본론을 꺼낼 차례가 되었다.

  “저도 냉전에 개입하겠습니다.”

  느긋하게 미소를 짓던 사내, 카이젤 라흐블뤼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미약하게 이채를 띠며 흥분감을 머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지? 넌 항상 중립을 유지하던 쪽 아니던가. 경제를 전문적으로 제어하는 네가 냉전에 개입하는 것은 모양새가 썩 좋지 않을 텐데.”

  “중립은 유지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노리는 것은 조금 다른 것입니다.”

  “계속 설명해보지.”

  이에 성운은 자신 있게 준비한 바를 꺼냈다. 그는 손가락을 휘저어 허공에 홀로그램을 소환하였다. 카이젤의 눈은 그 본질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기묘한 즐거움의 미소가 걸렸다.

  “호오, 재미있군.”

  “새로운 개념의 자경단을 창설하겠습니다.”

  이미 시작된 이번 텀의 냉전은 현재 한창 격화되는 중이었다. 지구 민간 지역의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상공과 해저, 그리고 지구권 근방에서는 치열한 접전과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실황이었다. 섹터장들은 이 경쟁 행사를 통해 건설적인 유익을 얻고 있었다. 세력을 성장시키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개량하고 이론을 증명하는 등의 유익을. 하지만 정작 그 밑의 민간 세계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 놓여 언제 평화가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있었다.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로.

  성운은 이 점을 역이용해 민간인들의 편을 자처할 명분을 갖춘 세력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섹터장들이 부리는 사병(私兵)들을 악역으로 설정함으로써. 보통 그런 사병들은 허공에서 게이트가 열리면서 튀어나오는 식으로 출현했는데 민간인의 시선에서는 영락없이 정체불명의 괴수 출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경단을 세울 명분으로써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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