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1. 히어로즈 I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1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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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운의 계획은 인류연합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당위성이 충분했다. 섹터장들의 사병들이 통제에서 벗어나거나 저들끼리의 싸움이 격해지면 민간인에게는 자칫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만일 그 배후 세력이 인류연합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정부를 향한 불만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불만이 있어도 반항할 방법은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민심을 안정적으로 달래는 편이 편리하지 않겠는가.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라도.
그러나 더 중요한 의의들은 따로 있었다.
“자경단은 면역 제어 시스템과 동일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해설해봐.”
이미 다 예측했음에도 카이젤은 뻔뻔스럽게 모르는 척 굴었다.
“섹터장들의 사병은 인체로 비유하면 면역 체계와 같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상호 제어를 통해 지구라는 몸의 자율적인 방어 능력과 적응 능력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채찍질해주는 장치이죠. 하지만 면역 체계는 때때로 과도해지면 몸의 정상 세포 또한 공격할 수 있습니다.”
“민간 세계의 문명이 그 정상 신체 조직이겠군.”
“네, 인체에서도 면역 세포들의 과도함을 제어해줄 체계가 면역 체계 내부에 따로 마련되어 역할을 하듯, 괴물 같은 사병들을 견제하여 민간의 수호자 즉 영웅을 자처할 수 있는 ‘헌터’들이 필요합니다.”
인위적인 영웅 조직 창립. 현재 진행되는 냉전 탓에 게이트에서 사출되는 중인 신수, 마물, 괴수, 요정, 자율병기 등이 일부 불시착하여 민간 권역에 떨어졌을 때 그것들을 막아내고 일반인들을 지켜내는 시나리오. 이것이 성운이 그린 그림이었다. 물론 인류연합 스스로가 괴물들을 조종하고 경쟁시키는 장본인이면서 그런 괴물을 견제하는 영웅도 만들다겠다는 발상은 눈 가리고 아웅인 격. 하지만 어쨌건 일반인들은 영웅들을 보면서 심리적 위안과 대리 만족을 얻을 것이다. 아울러 불안감도 잠재울 수 있겠지.
“나름 흥미로운 제안이긴 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카이젤은 성운을 떠보며 시험했다.
“지금의 제어 시스템으로도 충분할 텐데.”
“몇 가지 추가 이득이 있습니다.”
성운은 기다렸다는 듯 본 의도를 나타냈다.
“첫 번째, 영웅주의를 이용해 이미지 쇄신을 꾀할 수 있죠.”
이는 예부터 영상 매체를 통해서 자주 사용되던 고전적인 아이디어였다. 국가를 수호하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의 존재와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란 민간인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는 법이다. 더불어 영웅 시스템을 인류연합과 결부시킨다면 그 이미지의 가치를 독점함으로써 얻은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번째, 견제 세력의 확립.”
물론 로스트엠페러를 포함한 섹터장들 모두의 힘을 전부 합쳐봐야 카이젤에게는 발톱의 때만큼도 못 미친다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지구 위에서 마냥 힘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썩 편치는 않았다. 보스의 그 근질거리는 심정을 이해한 성운. 이번 제안은 자신이 대신 나서서 그들을 견제하는 귀찮은 일을 맡아주겠노라고 자처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이득이야말로 아마 진정한 핵심이 될 겁니다. 앞의 두 가지와는 달리 보스께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부분은 이것이겠죠.”
“말해봐.”
“바로 ‘예비 실험’으로서의 가치입니다.”
카이젤은 자기 예상과 한 치도 다름없이 정확하게 똑같이 말하는 성운을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생각하는 바가 뻔히 읽히긴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유능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었다. 최적의 효율을 끌어낼 가장 기발한 발상을 거침없이 꺼낼 수 있는, 이심전심을 할 수 있는 인재. 대체 불가능한 인재까지는 아니어도 오래오래 곁에 두고픈 사람이었다.
“정규군과 비정규군의 대립 구도를 미리 실험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은하계들을 아우르는 인류연합의 군대 시스템에는 두 축이 존재한다.
먼저 정규군. 인류연합의 주력으로 기계 군단, 식민지들에서 선발한 휴먼 솔져, 그리고 개조 인간인 바이오닉 솔져 세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대한 영토, 기하급수적인 생산력, 초월적인 기술을 기반 삼아 지어진지라 무적의 군대였다. 이들은 전부 카이젤 본인의 철저한 지배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는 않으나 비정규군도 있었다. 비록 전자에는 못 미치나 다양성 측면에서는 뒤처지지 않았다. 나쁜 말로 표현하면 오합지졸이지만 좋게 표현하면 적응력과 응용 가능성에 있어서 뛰어났다. 비정규군은 주로 기계가 아닌 이종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역시 최종통제권은 카이젤에게 있으나 표면상으로는 인류연합의 부대표인 에녹 아담즈가 비정규군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 중이었다.
정규군과 비정규군의 동시 운용에 있어 적용되는 핵심 원리는 상호 견제의 원리. 당장 인간이 상대할 외부의 적이 없기에 호전성을 해소할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한 목적이 짙었다.
이런 원리는 정규군 내부에도 적용되었다. 휴먼 솔져와 기계 군단 사에는 암묵적인 경쟁 구도가 존재했고 그 경쟁을 제어할 룰도 더불어 존재했다. 인간이든 기계든 미연의 반란 가능성은 있기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 견제가 필요했다. 한쪽이 통제에서 벗어나면 나머지 한쪽이 응징하는 방식으로.
하물며 기계들보다 제어가 더 어려운 이종족들 곧 비정규군 소속이 기계와 솔져 양방의 잠정적 처분 대상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솔져들은 이유조차 신경 쓰지 않고 머나먼 우주 너머 미지의 괴물들과 맞서는 전쟁의 여정을 무수히 반복해왔고 기계들과 생체들 사이에서도 우주 규모의 냉전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심지어 이종족과 이종족 사이에도 경쟁 구도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장차 인류의 영토가 은하를 넘어 우주 규모로 확장될 때 이러한 경쟁식 훈련 체제가 맞닥트리게 될 것으로 예견되는 딜레마가 하나 있었다. 바로 생산력의 차이. 기계와 이종족의 생산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증폭되는 반면, 휴먼 솔져를 구성할 원재료인 인간은 인구수 성장 속도에 제한이 있었다. 물론 타임필드를 통해 인구를 불리는 일이 가능하긴 하나 이는 기계나 이종족도 동일하게 입을 수 있는 혜택이었다. 개체 재생산 효율성 측면에서는 인간이 기계나 이종족을 따라갈 수 없었다.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인공적으로 휴먼 솔져를 대체할 기술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대립 균형은 깨어질 것은 자명했다. 그렇다고 인류 운영 대원칙 중 하나인 ‘인간 생명을 침범하는 생체실험 금지’를 위반해서도 안 됐다.
기계와 이종족을 완벽하게 제어할 지배 시스템을 완성하면 되겠지만 그 경우 구태여 휴먼 솔져를 창설한 설립의의가 없어진다. 또한 인간이 방위 의무를 인외(人外)의 존재에게만 맡기다 보면 점점 나태해져서 종국에는 잠정적 위기에 대응할 종족적 역량을 잃게 될 것이다.
성운은 이 딜레마에 대응할 묘책을 제시했다.
“지구에서 펼쳐지는 ‘로스트엠페러들의 사병들’과 보스의 명을 받들어 제가 임명할 ‘히어로 체계’의 대립 관계는 더 큰 무대인 우주에서 작동하는 이종족과 기계와 솔져의 대립 관계를 고치고 재정립하고 피드백해 줄 초소형 표본 축소판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로스트엠페러들이 사용하는 사병 종족의 대부분은 조만간 비정규군에 합류시킬 새 모델의 유닛을 구성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겸 시범작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냉전 때도 많은 사병 종족과 사병 유닛이 주최 측의 주목을 받아 발탁되었고 현재는 우주 전역에 보편화되어 대량 생산을 거쳐 비정규군을 구성하는 중이었다. 냉전에서의 사병들과 우주에서의 비정규군이 상호 영향을 주는 대응 관계에 있다면, 휴먼 솔져 체제에도 비슷한 식의 피드백용 축소판을 둘 수 있지 않겠는가.
“극소수의 히어로가 다수의 사병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음을 지상에서 증명해 보이죠. 나아가 그 히어로의 특색과 장단점을 끝없이 보완하고 개선하겠습니다. 그러면 솔져와 비정규군의 대립 구도에도, 솔져 체제 자체의 특성에도 이 축소형 데이터를 반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리 있는 주장이야. 역시 너답군.”
카이젤이 흥미를 내보였다.
“그렇다면 히어로로 발탁할 인원은 어디에서 모집할 생각이지?”
그 질문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성운이 즉석에서 대답했다.
“이미 지구에 거주하는 중이잖습니까? 전직 휴먼 솔져 은퇴자들 말입니다. 공로를 세움으로써 시민권을 얻은 뒤에 이 행성 각지에 은둔하는 자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전직 솔져들을 재활용하겠다?”
“안될 이유는 없죠. 보스께서만 허락하신다면.”
영 헛된 발상은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영락없는 백수 생활을 영위하는 그들이지만, 분명 전쟁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호전적인 전직 솔져들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냉전에 참가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창의력도 재주도 탁월한 자들이니 쓸만할 것이다. 각자의 개성과 정의 관념을 존중해주는 선에서 새로운 의미의 영웅으로 치켜세워준다면 분명 유용한 성과를 낳으리라.
‘게다가 표식도 이미 Off 상태이니 속박해둘 이유도 없지.’
적절히 활개를 치도록 풀어줘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그들의 지원은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아머와 슈트 관련 기술력에서는 제가 동료들보다도 우위에 있으니까요. 휴먼 솔져 현역 때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강력한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안전성까지 확보해서 말이죠.”
“뭐, 그건 좋지만, 그들끼리만 모인다면 오합지졸에 불과할걸? 그들은 더는 정식 군인들이 아니잖아. 나나 무인 시스템이나 에르샤도 없이 어떻게 하나로 묶어 제어할 생각이지? 설마 네가 나설 것은 아닐 테고?”
“그 부분 역시 따로 생각해둔 적격의 카드가 있습니다.”
카이젤은 성운이 이어서 내미는 프로젝트 제안서를 샅샅이 읽었다. 짧은 찰나에 그는 모든 시나리오를 낱낱이 시뮬레이션하면서 고민하였다. 이득이 실보다 더 클 것이라는 계산이 충분히 서자 망설이지 않고 허락을 내렸다.
“승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에 성운은 본격적으로 구체화하였다. 그는 심복들 및 동료들과 히어로즈를 운영할 방안을 토의하고자 회의를 몇 차례 열었다. 회의 참가자들은 S 내지는 SS 클래스의 초인들로 지구나 여러 자원용 항성계의 경제를 제어하는 역할을 맡은 거물들이었다.
“의견들 좀 부탁하지.”
이들은 성운을 지지하는 이사회의 일원. 실질적인 성운의 권력은 이곳 이사회 조직에 있었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권세인 초거대기업 Another World는 실상 그가 보유한 무수한 힘들 중 극히 일부분,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네가 알아서 해. 언제나 그렇듯 네 말을 따를 테니까.”
녹색 머리의 남성, 레이놀즈 튜런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그나저나 지금 맡은 은하계 자원 배분 문제만 해도 복잡한데 뭐하러 일을 추가로 벌였나? 냉전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아이들 장난이잖아. 우리는 그냥 그런 일에 놀아나지 않고 이득이나 챙기는 편이 나은 데.”
옅은 단발머리의 여성, 라미아 엘텐츠가 대꾸했다.
“정말로 이 새 프로젝트란 것이 영리 추구라는 우리의 원칙적 공동 약속에 부합하는 전략인가? 냉정하게 재평가했으면 좋겠군. 우리는 유성운 너를 신뢰하고 따르지만 그렇다고 숭배하지는 않아.”
그을린 피부를 한 거구의 남성, 울란자르가 덧붙였다.
“이거 다들 너무하는군.”
성운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했다.
“내가 언제 너희들을 실망하게 했던 적이 있었지? 너무 단기안적인 시각으로만 보지는 말자고. 안목이 얕으면 안 되지. 우리는 지배층인 초인이지 인공지능이 아니잖아. 인간만의 존재의의를 잃어버리면 곤란해.”
성운은 자애로우나 강단 있는 표정으로 여섯 명의 친구들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화려하고도 간결한 언변으로 설득하였다. 이어서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청사진과 그 목적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모든 꿍꿍이를 다 밝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상위 초인답게 성운은 자신보다 낮은 초인들을 능숙하게 구워삶았다.
그 후 몇 차례 기나긴 이사회 회의를 거쳐 히어로즈 플랜이 구체적 형태로 재가공되었다. 이사회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부가적으로 얻게 될 수확을 계산하며 열심히 주판을 두드렸다. 그렇게 물질주의의 거장들은 또 하나의 커다란 변수를 궤도 위로 쏘아 올렸다.
그렇게 지난 며칠 간의 쏜살같았던 일정이 정신없이 휘몰아 지나갔다. 번갯불에 콩을 튀겨먹듯 많은 계획이 성립되었다. 신속하게, 그러나 정밀하게.
일련의 회상을 마친 성운은 투덜거리며 샤워를 마친 몸 위로 옷을 걸쳤다. 한시라도 바쁘게 행동하고 싶거늘, 보스의 명령도 명령이니 어길 수는 없고.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지금의 자신과 교활한 책략을 운용하는 진짜 자신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서인지 어쩐지 어색함이 느껴졌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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