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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1. 히어로즈 I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13 | 회차평점 0 0

 

 

 

 

 

 

 

*

 

 

 

  아들이 먼 곳으로 떠난 후, 성한 부부는 마음의 허전함을 경험했다.

  “한 달도 아직 안 지났잖아요.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연약할 것 같았던 유진이 오히려 더 의연하게 굴었다. 그녀도 아들이 보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약한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새 근심 탓인지 부쩍 표정이 가라앉은 남편을 달랬다.

  “하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곳인데.”

  성한도 윤혁이 떠나기 전까지는 든든한 위로자를 자처했지만, 막상 보낸 후에는 여러 가지가 걱정되었는지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초인이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난 위험 요소인지를 잘 아는 그로서는 염려가 들 수밖에 없었다. 큰아들은 그래도 동생에 대한 애정 때문에 봐주었지만 다른 초인들은 어림도 없겠지. 만일 윤혁이 그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결코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낯선 존재의 위협도 문제지만 인간들의 시스템이 더 문제야. 그들이 윤혁이를 사사건건 방해할 텐데.’

  지금 부부에게 맡겨진 역할은 기도뿐이었다. 아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했다. 혹자는 큰 사명을 받았으면 처음부터 목숨을 잃고 고생을 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리라. 실제로 윤혁 자신도 그런 각오를 품고 떠났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부모 마음이 받아들이는 바는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위기를 달가워하겠는가.

  성한은 당분간은 큰아들과 접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에드레이라는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 카이젤이 더 어긋나지 않도록 붙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자신도 그 말에 동의했으나 이는 말처럼 쉬운 각오는 아니었다. 지금 만나면 오히려 아들과의 관계가 망가질 것만 같은 느낌에 불안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이젤 측에서도 따로 연락은 없었다.

  두 아들의 일로 인한 고뇌에 겹쳐 최근에는 꿈까지 성한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웠던 감옥에서의 나날이 기억 너머로 무의식중에 재현되었다. 그 통증은 악몽에서 깨어난 직후에도 환상통처럼 일어나 육신을 괴롭혔다. 아무리 강한 남자라고는 하나 그에게도 무자비했던 그 시절의 형벌은 만만히 감당할 것이 아니었다. 한동안 잠잠하였던 기억이었건만 왜 이 시점에 또 나타났을까? 내면의 나약함을 철저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

  “반갑습니다, 강성한 씨.”

  나긋나긋한 선량한 미소를 짓는 다정한 인상의 미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라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성한은 예의를 갖춰서 인사를 하였다.

  “높으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상대가 도리어 손을 저었다.

  “왜 자세를 낮추십니까?”

  “하지만 회장님.”

  “도리어 존대를 해야 한다면 제 쪽에서 해야죠. 당신은 제가 모시는 분의 친부시니까요. 저는 그분의 일개 수하이니 아들을 대하듯 하대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성한도 이 상황과 상대의 정체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

  “그 말씀인즉 유 회장님께서는…….”

  “얼추 예상은 하셨겠지만, 네, 저도 3세대 초인입니다.”

  유성운 회장, 그가 왜 돌연 강성한을 방문했을까?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강성한이라는 인간 자체에는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 비록 과거 2세대 초인과 얽혔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아무런 권력도 없는 중산층 집안의 가장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연관 요소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성한은 현 인류 지배자의 생물학적 부친이었다. 그 아들과 나름의 유대감도 있었다. 무엄하게도 성운은 보스를 나름대로 제어해보려는 생각으로 그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만약 보스가 이번에 자신이 제안한 계획에 대해 마음을 변경할 경우를 대비해 안전장치는 하나쯤 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제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충정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의 참 목적은 다른 한 이유쪽에 더 가까웠다.

  “아버님은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늘 똑같습니다만.”

  부드러운 눈매의 갈색 눈동자와 수수한 느낌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성한은 주춤했다. 과연 최상위 초인 특유의 위압감이 선명히 전달되었다. 부친에 대한 정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상냥하게 대해줬던 아들에 비해 오히려 마주하기는 성운 쪽이 더 버거웠다. 이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 것일까?

  “저는 아버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늙은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외모의 사내가 꺼내기 적합한 말은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 같이 만나러 가실 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과 함께 찾아봬야 조금 더 설득하기 쉬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할 말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아버님께서는 그저 저를 거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성운은 이어서 보상은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드리겠노라 약속했다. 물론 성한은 보상에 대해서는 즉각 거절했다. 그러나 마냥 부탁을 거절하면 상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도 알았다. 허튼일은 하지 않겠지만 어떤 책략을 쓸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괜히 더 피곤해질 것이다. 누구를 찾는지는 몰라도 잠시 찾아가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듯했다. 일단은 부탁을 승낙했다.

  “의외로 빠르게 동의해주시는군요.”

  “어떻게든 강요하실 생각 아니었습니까? 인류연합에는 사람의 뇌를 강제로 조종하는 기술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기술력을 소유한 분들을 상대로 부질없이 힘을 빼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저를 그렇게 무례한 자로 보셨다니 아쉽군요.”

  성운은 눈웃음치며 장난스레 손사래를 쳤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바보도 아니고, 그 무서운 분의 가족을 함부로 대할 리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성한도 비록 육체뿐인 반쪽짜리라지만 엄연히 2세대 초인 출신이니 정신 간섭이 쉽게 먹혀들지는 않을 것이다.

  성한의 입장에서는 아직 의심을 전부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뗐다. 그는 잠시 집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별다른 일 없을 것이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 후 그는 성운을 따라나섰다.

  “자, 그럼 가봅시다.”

  “네.”

 

 

 

 

 

 

*

 

 

 

  그들이 향한 행선지는 의외의 장소, 단출한 느낌의 바였다. 지나치게 퇴폐적이지도 않고 금욕적이지도 않은 그곳은 제각기 다양한 고민을 안고 찾아온 손님들을 포용할만한 넓은 품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성한에게는 그리 탐탁지 않은 곳이기는 했다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세부 사항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자, 도착했군요.”

  “이런 곳에는 도대체 왜?”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의문을 품는 성한을 이끌고 성운은 깊은 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탄탄한 근육질의 두 미남의 느닷없는 등장에 여성들의 시선이 몰렸으나 성운은 귀찮은 것들을 대하는 양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윽고 성운과 성한은 어느 테이블 앞에까지 이르렀고 그때서야 비로소 멈춰 섰다. 구(舊) 미국 서부풍의 카우보이모자를 얼굴까지 깊게 눌러 쓴 한 남자가 위스키를 홀짝이면서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범상하지 않은 기색의 사내였다.

  “오랜만입니다.”

  성운의 인사에 의문의 사내는 하던 사색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입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낯선 사내가 말했다.

  “웬 거물을 보내셨군?”

  “당신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싫은데?”

  “바로 그런 면 때문에 당신보다 적격이 없습니다.”

  이에 잠자코 들어만주던 남자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꼿꼿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성운을 응시했다. 눈높이는 대략 성한과 성운과 비슷했다. 어깨너비가 장대하고 팔이 억센 사내였다. 강한 수컷들의 대치에 불꽃이 튀었다. 바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렸다. 성운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내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듯 시선을 돌려 멍하니 서 있었다. 성한은 당황하였다.

낯선 사내가 모자를 벗었다. 제법 남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근사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으나 반항적인 표정에 승냥이 같은 눈매에 거리에서 한 싸움 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보스께서 당신을 고용하셨습니다.”

  “오호, 그 괴물 같은 자가 왜 이 몸을?”

  성한은 이 대목에 조금 움찔하였다. 아무래도 대놓고 자식욕을 하는 사람이 달갑게 느껴질 리는 없지 않은가? 대체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군간데 제 아들을 아는 것인가 궁금해서인지 뚫어지라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왠지 성한에게도 몹시 낯이 익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왜 기억이 안 나지?’

  복잡한 데자뷔가 아른거렸다.

  ‘어디에선가 본 얼굴인데?’

  그때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역시도 동일한 감각을 느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성운만을 노려보던 그 무뢰한은 그 옆에 조용히 껴있는 성한을 흘깃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눈빛이 변하였다. 의아함과 반가움이 반반씩 섞인 듯한 이채. 그자는 민첩하게 성한의 바로 앞으로 불쑥 다가오더니 얼굴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마치 뭔가를 감별하는 분석가처럼.

  “음, 당신…….”

  성한은 그 거침 없는 기세에 조금 긴장했다.

  “형씨 맞지?”

  그 말투를 듣자 성한도 번쩍 기억이 떠올랐다.

  “봉남 씨?”

  성한이 나름 진지하게 옛 기억 속 정보를 더듬어 내뱉었건만 살벌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유해졌다.

  “이런, 이런! 그 이름은 가명이야, 형씨.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잠깐 임의로 만들어서 썼을 뿐이라고. 내 진짜 이름은 사실…….”

  “본명 크리슈나 칼라만트라. 줄여서 크리스라고도 하죠. 강성한 씨, 이분은 인도 출신의 3세대 초인입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초인 중 유일하게 U-society에 가입하지 않고 별도로 행동하는 분이시죠.”

  성운이 가로채듯이 대답해주었다.

  ‘생각났다!’

  그제야 성한은 봉남, 아니 크리스와의 짧은 인연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 바로 알아보지를 못했을까? 느낌이 조금 바뀌어서? 확실히 지금 보니 얼굴도, 기운도, 아우라도 약간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머리가 나쁘지 않던 자신이 그런 굵직한 내용을 잊다니. 그 어두웠던 인생 최대 암흑기의 순간이 여간 독했던 지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를 갈망했나 보다.

 

  때는 성한이 국가반역에 준하는 죄목에 더해 기타 죄목을 고발당한 뒤 수감되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시절이었다. 원래라면 종신형이라는 큰 형벌을 받았어야 했으나 신의 은총 섞인 섭리가 작동한 것인지 때마침 그 시기에 출현한 3세대 초인들이 세계정세를 뒤흔들고 권력 체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켜준 바람에 어부지리로 성한은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어영부영 출소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5년간의 세월은 그에게 있어 깊은 상흔으로 남았다.

  단축의 은혜를 입었다지만 그 5년은 분명 일생 최악의 가시밭길이었다. 그 당시는 무려 혼돈의 시대 최후반부. 온갖 가혹한 형벌들이 부활했던 시기였다. 워낙에 세상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던 탓에 혹독한 체벌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었고 민중의 합의도 이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서 인권 부각 시대 이래로 없어졌었던 많은 엄벌이 부활했고 실제로 이는 많은 효력을 발휘했다.

  성한은 정치범에 가까운 자였기에 특히 고초를 겪었다. 교도관들에게는 형벌을 명목으로 구타를 수시로 당했으며 모멸적인 일도 서슴없이 당했고 존엄성을 잃을 법한 험난한 학대로 트라우마도 얻었다. 이루 일일이 말로 표현하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야망과 욕망이 넘쳤던 젊은 검사는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반강제로 겸손함과 비굴함을 배웠다.

  혹독한 채찍질과 태형은 수시로 당했다. 주기적으로 헐벗겨진 상태로 공터에 묶여 수욕을 당하며 전신을 두들겨 맞기도 했다. 비밀스러운 밀실에서는 고문관들에게 말하기도 치욕스러운 학대를 당했다. 만일 초인의 육체 내에 높은 재생력이 담기지 않았다면 재생조차 힘든 흉터가 남았을 것이다.

  하루는 일과 시간 형벌을 다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상태로 쓰러져있던 그에게 복역자가 한 명 다가왔다. 그 동료도 제법 험한 대우를 당하던 모양이었으나 의외로 성한과는 달리 거뜬해 보였다. 남을 신경 쓰지 않던 자였는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성한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소 건방지고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쪽에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에게서도 친절은 흘러나왔다. 비록 따뜻한 위로나 보듬어줌 대신 야박한 타박의 말이 곁들여지긴 했지만, 어쨌건 그는 성한의 매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약을 발라주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척 봐도 인도 사람 느낌이 드는 준수한 청년으로 당시의 성한보다는 조금 어렸던 것 같다. 지금과는 인상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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