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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2. 거짓 신들의 세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18 | 회차평점 0 0

 

 

 

 

 

 

 

Chapter 12. 거짓 신들의 세계

 

 

  선교팀은 두 번째 하늘도시에 착륙했다. 그 거대 인조 콜로니 선체 내부에는 현지 주민들의 언어로 ‘카뮈네라’, 공용어로 번역하면 ‘장엄한 신들의 보금자리’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가 구성되어 있었다.

  구형의 지구와는 달리 카뮈네라는 평평한 유한 원반형 땅의 구조를 지녔다. 원형 고리형 대륙이 그 원반의 가장자리를 둘러쌌으며 그 안쪽에는 해자처럼 하나로 연결된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바다의 중앙부에는 꽃잎 형태의 중간 대륙이 놓여있었다.

  바깥쪽의 가장자리 땅에는 세 군데의 틈새가 있었는데 그 틈들을 수로 삼아 바닷물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카뮈네라 주민들은 그 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순환 행로를 알지 못했다. 증발을 통해 바다에서 올라와 비를 통해 산 위로 떨어지는 자연적인 순환 질서가 아닌, 인공적인 시설로 조성된 수분 순환 경로였기에 우물 안 개구리들은 원리를 깨달을 턱이 없었다.

  만약 지구 시민들이 카뮈네라의 지형지물을 보았더라면 물의 순환보다는 ‘어째서 원반형 대륙에서 지구와 동일한 방식의 중력이 생성되는가’에 대해 더 의문을 품었으리라. 현 과학 기술이 중력마저 자유자재로 조종할 경지에 이르렀음을 아는 자라면 별로 신기해하지 않겠지만.

  {이것이 상공에서 드론이 관측해 작성한 지도입니다.}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쿠앤크’가 윤혁과 리온과 루디아 앞에서 홀로그램 지도를 펼쳐 보였다. 한눈에 세계 전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던 이전 텀과 달리 지리적인 혼선은 줄일 수 있을 듯했다.

  “수고했어, 쿠앤크.”

  아쉽게도 이전 하늘도시에서 썼던 덱스트로와 레보는 마법 피격으로 인한 손상이 심각한 탓에 우주선에 놔둔 채 수리를 맡긴 상태였다. 현대 로봇답게 자동 재생 기능이 기본 탑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쉬이 고쳐지지 않았는데 아마 마도 기술 자체에 특수한 구조 왜곡 기능이 담긴 것으로 추측되었다.

  덱스트로와 레보를 대신하여 이번에는 진이 손수 로봇 세 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주었다. 여자아이 모양의 ‘쿠앤크’, 남자아이 모양의 ‘스크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형견의 형상을 띤 ‘비빅’. 건성으로 작명한 이름이긴 해도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진의 입장에서는 몇 세대 뒤처진 싸구려 폐품을 주워 던져준 셈이지만 윤혁 일행에게는 강력한 지원군이었다.

  ‘안전 문제가 있으니 도움은 받아야겠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로봇들의 동행은 편리함과 동시에 약간의 껄끄러움도 주었다. 아무리 구식이라도 율법의 제어를 받는 존재들이니까. 특히 윤혁은 작년에 기계들로부터 공격당했던 경험도 있었던지라 경계심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계 율법이란 것의 존재는 비단 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본연적 불편감 그 자체였다. 당장 동료들의 인형 몸체에도 간섭이 침투할 수 있다는 뜻이니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외부 세력이 언제든 선교 활동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 어쩌면 기계 율법까지 갈 것도 없이 상위의 프로그램이나 기계만 나서도 손쉽게 인형 몸체의 주도권을 해킹으로 빼앗을 수 있으리라. 권력과 기술력의 격차라는 장벽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졌다.

  ‘정말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의 본체를 데려올 방도를 찾아야 하나?’

  안전 문제 때문에 내키지는 않아도 그게 최선의 방도인 것 같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문호 개방이나 통신 개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네트워크를 역이용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우주 전역에 온라인 선교를 할 수 있으니 효율이 극대화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내 윤혁은 편리성에 의존하려는 안일한 마음을 부인했다. 인류연합이 전 우주의 통신 체계를 마음대로 조작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할 때까지 기다릴까?’

  그러나 이 역시 최선은 아닌 듯했다. 전면 개방이라. 기약도 없고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를뿐더러, 마지막 시대가 가까운 지금은 여유 부릴만한 틈이 없다. 게다가 문호가 개방될 즈음이면 우주 인류는 이미 과도하게 불어나 있으리라. 그렇게 거대화된 종족을 일일이 물리적으로 찾아가 전도하는 일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하늘도시들에 타임필드가 가동되는 지금이야말로 복음 전하기에는 최고의 기회야.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오지 않을지도.’

  시간이 압축된 타임필드는 분명 현 식민지 주민에게 있어서는 외부 세계와 교류할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 중 하나였다.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이란 곧 세계들끼리의 분절을 의미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역으로 선교팀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복음이 진격할 시간을 벌 역설적 기회이기도 했다. 그 확장된 시간 안에 소수의 회심자가 다른 이웃들에게 전도를 한다면 예상 밖의 부흥의 물결이 연쇄적으로 유발될 수도 있으리라. 어디까지나 선교지에서 회심자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소박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현지에서 관측된 시간 속도를 우주선에서 전송되는 신호를 기반으로 측정한 우주 표준 시간과 동기화해보니 카뮈네라의 시간은 지구보다 두 배 정도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개방기간의 타임필드 압축률이 약 2~3 정도라더니 과연 정확히 일치했다.

  자연히 현지에서는 윤혁이 보기에 친구들의 생체 주기가 이틀인 것처럼 느껴졌다. 수면, 식사, 배변 등의 생리 활동은 인형 몸체가 아닌 원래 몸으로 시행해야 하는 법.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활동은 잠이었다. 다른 활동은 인형 접속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지만 수면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는 곧 인력 공백의 주기적 발생을 의미했다.

  약 48시간을 주기로 리온과 루디아의 인형 몸체는 번갈아 가며 한 명씩 휴면 모드에 들어갔다. 잠들 때마다 선교사의 정신은 인형 몸체를 떠나 지구에 거하는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둘은 되도록 잠드는 시간을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다. 적어도 한 명은 윤혁의 곁을 지키며 동행해야 했으니까. 로봇들이 물리적인 조력은 커버해준다고 해도 정신적인 조력은 대신할 공급원이 없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두 명에게는 버거운 일정이었다. 인형 접속 시에는 두뇌 활동 요구량이 두 배가 되었기에 피로가 상당히 축적되곤 했다. 또 스트레스 탓에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지다 보니 정해진 시간표를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수시로 현장에 대응하느라 수면 패턴이 깨어졌고 시차 적응이라는 고역이 뒤따랐다. 그나마 세 로봇의 도움 덕에 윤혁의 안전 문제는 걱정은 덜었다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리온과 루디아는 이 온갖 고생을 불평이나 불만 없이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런 마음의 흔들림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우주의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사랑하는 친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도록 주어진 지금의 기회가 귀중한 은혜로 느껴졌다. 그런 그들에게 윤혁은 매일 깊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초반 현지 적응을 마칠 즘, 꿀 같은 달콤한 잠깐의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캠프파이어를 앞에 두고 앉은 윤혁과 리온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디아는 현재 접속을 끊고 잠든 상태였다. 그녀의 인형 몸체는 휴대용 숙소 안에 있었고 쿠앤크와 비빅이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룻은 많이 피곤했나 보네.”

  “아무래도 평균 다섯 시간 미만으로 자니까.”

  “하기야 너도 그렇고 너무 시차가 불규칙해졌지.”

  “윤혁 너만 하겠어? 너는 매일 현장에서 직접 뛰잖아.”

  담화를 나누는 김에 리온은 지구 근황도 들려주었다. 마침 선교팀 본진에 점차 많은 믿음의 청년들이 합류하는 중이라는 고무적인 소식도 있었다. 그들은 아침저녁마다 본부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를 나누며 장차 임할 선교 계획에 미리부터 철저히 대비하는 중이었다. 또한 그들은 각기 다양한 방면의 공부와 일에 전념함으로써 더욱더 쓸모 있는 일꾼이 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이는 중이었다. 윤혁에게는 희망적인 징조이자 큰 도전을 주는 소식이었다.

  “감사 인사를 좀 전해줘. 안부도 같이.”

  윤혁은 새삼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뭘 새삼스럽게. 이미 항상 그러고 있는걸.”

  리온이 태연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나저나……, 이곳은 칼티엔뉴르와는 몹시 다르네.”

  화제가 다시 먼 고향에서 눈앞의 현실로 돌아왔다.

  “응, 사실상 이세계(異世界)나 다름없네.”

  두 번째 방문지인 카뮈네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대칭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지닌 땅이었다. 일행은 지난 며칠간 그 기묘한 땅을 거닐며 근방의 도시들을 살펴보았었다. 이곳이 영적 옥토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카뮈네라의 문명 수준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었다. 보통은 지구 기준으로 근현대 이상의 수준은 되었지만, 종종 중세 혹은 고대 풍에 가까운 곳도 있었다. 여러 시대상을 섞어놓은 듯한 모자이크 패턴도 곳곳에서 보였다. 참고로 고대 풍 혹 중세풍 세계라고 해도 위생을 비롯한 기본 생활 수준은 현대 지구와 비교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카뮈네라 위에서 인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 다양한 문화가 소멸 없이 섞인 채 보존된 것도 그들의 간섭으로 인한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인류연합 측 관리자들이 가져다준 일부 편리한 도움 때문인지 이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의 문명 발달 패턴은 자발성, 독자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개 문명의 특정 부문에서는 뒤떨어져 있으면서도 또 다른 부문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발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 스스로 모든 기술력을 만들어냈다면 이런 패턴은 불가능했으리라. 외부에서 몰래 문명의 한 축을 거들어주었다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다만 칼티엔뉴르와 달리 카뮈네라에는 마법과 같은 ‘비상식적인’ 미지의 기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지역별 문화와 문명들은 모자이크 패턴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면을 보일지언정, 사람들은 스스로의 이성으로 이해가 가능한 기술들만 운용하였다.

  “리온,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게 있어.”

  “뭔데?”

  윤혁은 홀로그램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먼 쪽으로 돌렸다. 저 너머에 부자연스러운 형태의 그림자들이 있었다. 리온은 친구의 시선을 따라갔다. 혹시 무슨 이상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아무래도 지도상에 없는 구조물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

  “응?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 이 홀로그램 지도는 무려 로봇들이 직접 관측한 내용이잖아. 나름 최신형 관측 장비를 갖춘 녀석들인데?”

  쿠앤크의 서브 드론과 자동 운행 패널은 최신 사향의 관측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들은 광학 신호, 확률 파동, 심지어 중력파까지도 측정할 수 있었다. 그것도 시차를 보정한 측정으로. 그런 쿠앤크가 고작 행성보다도 작은 이 땅에 위치한 구조물을 아예 무시하듯 간과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곳에 있는 거대한 안개와 그림자들, 이상하지 않아?”

  과연 잘 관찰해보니 윤혁의 말대로 동서남북 사방 머나먼 곳에 아주 희뿌옇게 어떤 물체의 흔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난 환각이나 신기루인 줄 알았는데.”

  “나도 그런 줄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느낌이 이상해.”

  여기서도 보일 정도면 산보다도 훨씬 더 커야 하건만 해당 좌표를 지도에서 아무리 검색해보아도 별다른 특수 구조물은 표시되지 않았다. 리온이 간과한 것처럼 단순한 환각이나 기분 탓에 불과할까? 아니면 모종의 실체가 존재하는 걸까? 직접 탐험해보기 전에는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모양도 각기 달라.”

  대륙 중앙에서 뻗어나가는 큰 강을 12시 방향 기준으로 삼을 때, 1시 방향에는 하늘 높이 솟은 기둥 모양의 구조물이, 5시 방향에는 구형 혹은 다면체 형태로 보이는 산보다 더 큰 그림자가, 9시 방향에는 땅과 분리되어 동떨어진 커다란 섬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채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저것들이 뭔지는 몰라도 상당히 불길하네.”

  리온에게도 불안감이 작게 엄습했다.

  “로봇들도 관측할 수 없다면……, 역시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나?”

  부디 그렇게 해서라도 단서를 찾아낸다면 좋으련만. 이번 여행의 성패가 어쩐지 저 미지의 것들을 향한 탐험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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