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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2. 거짓 신들의 세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20 | 회차평점 0 0

 

 

 

 

 

*

 

 

 

  주요 도시들이 위치한 중앙 대륙은 지리적인 장애물이 거의 없는 푸른 초목지대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교통이 매우 편리했다. 게다가 대륙 중앙의 푸른 호수에서는 크고 작은 강들이 뻗어나가 대지를 비옥하게 적셔주었으며 적절한 고도의 고지대들이 흩어져 있었기에 목축과 농업에도 유리했다.

  “보통 이런 구조의 지리에는 중앙집권체계가 자리 잡기 쉽거늘.”

  의뭉스러운 점이 떠오른 리온이 중얼거렸다. 과연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보았을 때, 하나로 뭉치기에는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카뮈네라는 여러 제후국과 도시 국가로 쪼개어져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한 점은 따로 있어.”

  윤혁도 부자연스러움을 피부로 느꼈다.

  “산맥 같은 교류의 장벽이 없는데도 문명의 형태가 모자이크 양식을 이루고 있어. 자연적인 흐름대로라면 모든 문화가 섞였어야 마땅한데 말이지. 보통 모자이크 양식의 문명 패턴은 지리적 분절이 있는 세계에서만 나타나잖아?”

  이 모든 것이 인류연합의 개입 탓일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모호했다. 그들이 무슨 유익을 얻으려고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겠는가. 인공적인 간섭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몇몇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니며 전도를 해본 결과 며칠 만에 의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토착 문화 고착화의 원인은 신들에게 있었다. 지역마다 섬기는 신들이 따로 있었는데 이 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배가 지역 간의 자유로운 교류를 차단하는 원인이었다.

  각 고을의 사람들은 외부인이 전하는 새로운 신, 낯선 신을 섬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선교팀이 전하는 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에 관해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매번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도.

  “그가 무슨 신인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 고을과는 상관없소이다.”

  “우리의 수호신들이 버젓이 살아계신 데 무슨 소리요.”

  거절이 계속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선교팀은 주의 명령대로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신발 먼지를 털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같은 패턴만 반복되었다. 그나마 정중한 거절은 양반 축에 들었다. 어떤 도시는 자신의 신을 버린다는 개념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방인의 ‘배타적 선언’을 용납하지 못했다. 돌을 던지기도 했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로봇 비빅의 다중 실드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윤혁은 다칠 뻔했다.

  몇 번의 실패를 통해서 팀원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신들’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몽상적, 미신적, 공상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재적이고 가시적인 존재였다. 대륙에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신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을 섬기기 위한 신전과 궁전과 거대 구조물들도 장엄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신들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사제나 프리스트가 계시나 기적을 보여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마법에 이어서 이번에는 우상숭배인가?’

  하지만 카뮈네라의 신들에게는 고대 지구의 이교도 신들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었다. 그 특징은 한 마디로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카뮈네라의 사람들은 절실한 신앙 같은 것 없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신들을 보고 들을 특혜를 누렸다. 또한 언제든지 신들의 능력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식사하거나 배변 보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심지어 사제들은 기적을 베푸는 일에 있어서 사소한 실수를 보이는 경우조차 없었다.

  신전 건물의 형태나 양식은 제각기 달랐으나 신전마다 하는 일은 대개 비슷했다. 주로 치유의 기적을 공급하거나 예언과 신탁을 주거나 복수에 대한 신원을 받거나 사제가 신에게서 빌린 힘을 일반인들을 위해 행사하는 것 따위의 일들이었다. 어찌 보면 고대 지구의 구루 사제들과 비슷했으나 차이가 있다면 그 정확도와 편리성과 정밀도와 일상 친화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하지만 그런 신들은 미신인걸요.”

  루디아는 주민들에게 조심스레 알려주었다. 참 신은 저런 신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 여호와’이심을. 그러나 매번 코웃음만 돌아왔다. 주민들은 역으로 증언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은 직접 모습까지 드러냈었노라고. 그 증언에 따르면 신들은 때로는 물리적 분신인 아바타로, 때로는 시각적인 현현으로, 때로는 사제에게 빙의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요점은 항상 그 신들이 눈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그분들께서는 아주 명확한 육성으로 시민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기도 했다오. 당신들의 신은 그런 것을 보여준 적 있으시오? 혹시 주관적인 착각 아니었소?”

  “우리 고을의 신들은 권능을 행사하시기도 했죠. 지진과 불과 섬광과 뇌전을 손수 일으켜 보이셨습니다. 바깥에서도 그런 일들을 자주 보여주셨지만, 특히 신전에서는 수없이 많은 기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순간 정말 저들의 말이 맞는 말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반론해보고픈 심정에 신전에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도 들었다. 그러나 왠지 우상숭배에 얽히는 기분이라서 그 일은 찝찝하고 꺼려졌다. 귀신들을 잡겠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점집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편 다른 도시에서는 쑤셔진 벌집의 벌들처럼 자극 받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사태도 벌어졌다. 대쪽처럼 올곧은 리온이 십계명의 첫 계명을 타협 없이 그대로 전하는 바람에 일행은 환영은커녕 역으로 크나큰 곤욕을 겪어야 했다. 카뮈네라에서 토속 신을 거역하도록 권유한다는 것은 곧 주민들에게 자치 정부에 대한 반란을 권유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지극히 분노하였고 급기야는 폭력까지 동원했다. 세 친구는 로봇들의 보호를 받아 가면서 겨우 폭동의 수렁에서 도망쳐 나왔다. 억울할 노릇이었다. 폭동을 종용한 것도, 물질적 손해를 입힌 것도, 폭력으로 개종을 강요한 것도 아니거늘.

  “차라리 부드럽게 접근할 걸 그랬나?”

  팀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후회감에 리온이 자책했다.

  “긍휼의 측면을 좀 더 강조했으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니, 어차피 죄로부터의 구원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면 반드시 지적할 수밖에 없던 부분이야. 사랑의 하나님만을 전하고 공의의 하나님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반쪽 복음에 불과해. 차라리 복음을 전하지 않느니만 못하겠지.”

  도리어 윤혁은 잘했노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통렬하게 죄와 심판을 지적하는 친구의 화염 설교법이 청중에게는 몹시 거슬리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가 떳떳하지 못한 일은 조금도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의 진리를 전하더라도 어떠한 설교자는 온유하게, 어떠한 설교자는 직설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법. 하나님의 나라에는 그 두 부류의 악기가 모두 필요하지 않겠는가? 진리를 전한 이상 책임 소지는 전적으로 믿거나 믿지 않을 청중에게만 놓이리라. 윤혁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려는 마음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어. 그분과 다른 잡신들을 겸해 섬기려는 태도는 그분에 대한 모욕이야. 차라리 아무 신도 믿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한 것인지도 몰라.”

  상냥한 루디아도 리온의 방식에 동감했다. 물론 그들도 종종 나약한 본성 때문에 재물이나 명예나 인정이나 가족 같은 우상의 유혹에 넘어진 적은 엄연히 있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이후로는 마음 중심의 자리에서 그분을 내쫓고 다시 자신 스스로 주인이 되어버린 적은 없었다. 정말로 참 신앙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유혹에는 수시로 넘어질지언정 신성모독적인 우상숭배에 고의로 자기 자신을 넘어뜨리지는 않으리라. 루디아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저들을 설득하지?’

  핵심은 현지 토속 신들의 거짓됨을 만방에 드러내는 것. 처음에는 그도 내심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주민들이 신들이라고 믿는 작자들이 사실상 인위적으로 제작된 인공물이라는 가설을 믿고 증거를 탐색한 뒤 효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법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수법이 먹혔으니 이번에도 같은 전술이 어느 정도 통할 것이라 판단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쓰라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선교팀은 칼티엔뉴르와 카뮈네라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간과했다. 거짓 신들의 세계에는 마법의 세계와 달리 강압적인 종교 재판과 체제화된 종교 권력이란 것이 존재했다. 마법이야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의지 아래 사용된 편리한 수단이었지만 신들은 달랐다. 주민들 처지에서는 선택의 여지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려 시도하는 자들은 훼방자요 이단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일행은 거듭해서 줄행랑의 연속을 감당해야 했다. 그들은 로봇들의 보호에 의존하여 광신도들로부터 안위를 지켰다.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이 도시 저 도시를 방황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어느새 ‘외부의 종교 침략자’라는 오명과 ‘혐오자’라는 주홍글씨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루디아는 반발이나 멸시보다도 오히려 주민들의 상태를 안타까워했다.

  “이곳 사람들의 맹신은 너무나도 확고해.”

  하지만 잘 따져보면 마냥 카뮈네라 주민들의 성향이 맹목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것은 사람의 본성. 신을 배척하던 무신론자 중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증거를 베푼다면 믿겠다’라고 하지 않겠던가. 카뮈네라의 족쇄는 맹신보다는 도리어 이성 만능주의였다.

  인간의 ‘눈을 좇는 본성’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인지 카뮈네라의 종교들과 신앙관들은 하나 같이 너무나도 확고한 이성적 근거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었다. 신전들이 단 한 치의 실패도 없이 치유, 기적, 권능, 현신, 현현, 빙의, 계시를 공급하고 보여주는 마당에 그 누가 의심을 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신들이 평안과 사회질서의 유지까지 제공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믿는 세 일행이 특이한 경우로 비쳤다.

  “신들은 무슨.”

  호되게 당한 탓에 정신적으로 지친 윤혁이 툴툴거렸다.

  “인류연합이나 초인들이 만든 작품이겠지. 이미 저것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휘황찬란한 기술들도 봐왔어. 뻔한 레퍼토리야.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대중을 교묘히 속이다니, 그 악질 습관은 변함이 없다니까.”

  불평하는 태도나 비판하는 태도가 썩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으나 친구들도 그의 심정이 이해되었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고생을 했는데 봉변과 낭패만 당한 셈이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푸념이나 한탄을 통해서라도 응어리를 털기를 바랄 뿐이었다.

  “미안해. 괜히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툴툴거리다가도 윤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했다. 괴로워하는 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그 위에 무거움을 더 얹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여전히 자신의 연약함은 선명했다. 그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노라고 다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흔들리다니. 부끄러웠다.

  “네 마음 이해해.”

  선교라는 임무의 막중함을 가볍게 혹은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걸까?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믿음을 올바르게 세워주는 일이란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감당하기 벅찬 임무임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체감했다.

 

 

 

 

 

 

*

 

 

 

  그렇게 한동안 논란의 폭풍을 몰고 다니던 선교팀은 심신을 고르고자 몸을 피해 어느 한적한 마을 주막집에 머물렀다. 식사하는 동안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당당히 전해야 하건만 교활한 현지 시스템이 걸림돌이 되어 가로막고 있었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당시의 순교자들은 그 극심한 외압을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깊은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쉬던 그때 한 무리의 광신도 끄나풀들이 실내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토속신의 이름을 내세워 주인장을 협박하는 등 갖가지 행패를 부렸다. 그 꼴을 보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으나 경솔하게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요하면 무력 제압 시퀀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쿠앤크. 잠시만 잠자코 있자.”

  나서려는 쿠앤크를 리온이 만류했다. 쿠앤크와 스크류는 임시 주인인 선교사들의 인형 몸체와 미약하게나마 전자 공명이 가능했기에 주인이 느끼는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기능은 위험 요소로부터 주인을 보호하는 데 유용했으나 종종 그 공감이 지나쳐 이런 식으로 과잉행동을 시도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선교지를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여어, 이 녀석들이 그 소문의 괴한들인가?”

  한 불량배가 시선을 일행 쪽으로 던졌다.

  “그렇군. 이 근방 모든 지역의 신들이 죄다 가짜들이고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야말로 진짜라고 주장하는 그 이단놈들이야. 미치광이가 따로 없군.”

  “잘도 이단 심판관의 마수를 벗어났구먼.”

  운이 좋지 못했다. 하필 일행의 차림새와 악명이 이 근방 방방곡곡에 알려지는 바람에 광신도들에게 들킬 단서를 주고 말았다. 사실은 그 부분을 염려하여 옷차림은 인형의 변신 기능을 써서 주기적으로 바꾸긴 했으나 키, 체형, 외모 같은 부분은 인형 내부의 상숫값으로 고정해두었기에 기능 사용에 제한이 있는 선교팀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윤혁은 본체 몸인데다 체격 때문에 눈에 잘 띄었기에 위장에 더욱 취약했다.

  “피하자.”

  윤혁은 쿠앤크, 스크류, 비빅에 신호를 준 뒤 동료들을 데리고 후방으로 물러섰다. 여차하면 다퉈서라도 빠져나와야 할 판이었다. 되도록 충돌을 일으키면 안 되거늘. 사람들에게 덕을 보이지 않으면 애쓴 수고가 수포가 될 텐데. 그래도 본신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까? 심각히 고민되었다.

  ‘괜히 더 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됐소.”

  불량배들의 소리도, 일행의 음성도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신에 대해서 나도 물을 게 있는데 말이지.”

  광신도들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떤 두건과 로브를 눌러쓴 사람이 주점 한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하관밖에 보이지 않는 그 사내의 입가는 왠지 여유롭게 웃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마치 광신도 무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마냥.

  “뭐냐, 네 놈은?”

  “네 녀석도 같은 일행인가?”

  이에 그 사람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80cm가량의 신장에 제법 날렵하게 단련된 체형의 남자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윤혁은 어딘가 모르게 기계들이 자신을 기습 공격했던 그 날과 비슷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건 아니지만, 이제부터 진지하게 고려해볼 예정이오.”

  사내는 한술 더 떠서 덧붙였다.

  “그럼 볼 일이 다 끝났으면 비켜주겠소?”

  중저음의 목소리는 대단히 진중했다.

  “가짜 신들에게 놀아나는 한심한 자들에겐 썩 관심이 없어서 말이오.”

  마지막 도발이 광신도들의 역린의 점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몽둥이와 도끼를 들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놀란 윤혁은 신중하려던 것도 잊고 쿠앤크에게 신호를 보낼 뻔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짧은 찰나에 퍽 소리가 나면서 광신도 여럿이 사내 손에 쓰러졌다. 눈에 안 보일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정교한, 숙련된 솜씨가 보이는 동작이었다.

  “비키시오. 방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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