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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3. 스테판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23 | 회차평점 0 0

 

 

 

 

 

 

Chapter 13. 스테판

 

 

  그 이후의 흐름은 급박하고 정신없었다. 잠깐 의문의 사내가 광신도 일당의 광기 어린 시선을 끄는 사이에 선교팀 일행은 스크류의 엄호하에 바깥으로 몰래 달아났고 쿠앤크와 비빅은 불가시 모드 상태로 사내를 배후에서 도왔다. 어찌어찌 폭력배들을 따돌린 이후, 윤혁 일행은 으슥하고 그늘진 곳에 멈췄다. 이후 로봇들의 조력으로 싸움에서 빼내진 그 사내도 같은 곳에 합류했다.

  “혼자서 다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말이오.”

  사내는 조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이젠 상관없겠소.”

  주황색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안대를 한 그 사내는 인상이 몹시 진했다. 좋게 표현하면 사막의 늑대처럼 패기가 느껴지는 나그네였고 나쁘게 표현하면 다소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정당방위라고는 해도 첫인상부터 싸우는 모습을 보았으니 마냥 좋게 보아주기는 어려웠다. 체격도 윤혁만큼은 아니어도 보통 이상은 되는 수준이었기에 어찌 보면 낯선 이에게는 위협을 줄 만도 했다. 리온과 루디아로서는 인형 몸체를 입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적어도 건성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팀원들은 첫인상은 그저 선입견일 뿐인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그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내 손을 내밀고 다가왔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스테판.”

  “네?”

  “내 이름은 그렇게 불러주시오. 전부터 그렇게 불려왔소.”

  “아, 네! 라스트네임은요?”

  “그게 무엇이오? 잘 모르오.”

  애써 친근감을 형성해보려는 의도의 윤혁의 질문에 역시나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셋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들이 개인적으로 만난 하늘도시 주민들은 하나같이 성씨가 없었다. 통제자들이 가문과 씨족 같은 개념을 없애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식으로 조작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지구와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대들도 바깥에서 왔소?”

  “네?”

  화들짝 놀란 세 선교사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카뮈네라에 와서는 달리 출신지를 밝힌 적이 없었거늘, 어찌 알아차렸을까? 사내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사내는 어깨만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요.”

  “당신, 아니 스테판 씨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잠시 당황한 기색을 누르고 윤혁이 되물었다.

  “글쎄, 난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소. 나도 정확히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소. 혼잡한 기억들이 여럿 겹쳐져 뒤죽박죽되어 있소.”

  온통 모호한 답변 중 한 가지만은 선명히 이해되었다.

  “설마 당신도 바깥 세계에서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리온의 지적에 스테판은 불확실한 태도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행은 일제히 의혹에 휩싸였다. 그가 카뮈네라 외부 세계의 존재를 인지하는 이유는 그 자신 또한 외부에서 넘어왔기 때문인가? 달리 해석할 길은 없어 보였다. 만약 그가 바깥에서 온 것이라면, 그는 지구인인가 다른 하늘도시에서 온 사람인가? 만약에 후자라면 식민지끼리 거주민을 교환하는 모종의 방법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선교팀의 경우처럼 누군가가 모종의 방법으로 옮긴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맴돌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게 그리 궁금하오?”

  “그거야 당연히…….”

  “거듭 말하지만 사실 나부터가 명확히 알고 싶어 안달이나 기억이 온통 엉켜있기에 별다른 수가 없소. 다른 여러 세계에서 살아온 기억들은 희미하게 있는데 세계에서 세계로 옮겨진 과정에 대해서는 단서가 없소.”

  스테판은 독특한 어투의 존댓말 섞인 공용어를 사용했는데 상당히 독특한 개성이 느껴졌다. 조금은 투박해 보였으나 듣는 이로써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참고로 현존 공용어는 영어를 기반으로 지구의 거의 모든 언어의 장점과 특색을 흡수해 만든 걸작으로 존댓말을 비롯한 풍성한 표현도 가능했다. 지구 출신이 아닌 인간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영 기묘하긴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일행은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편을 택했다.

  “그나저나 왜 저희를 만나고 싶으신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리온이 스테판의 접근 의도를 캐물었다.

  “음, 인형 몸체라……. 저 숙녀분도 그렇고 말이오. 인간 정신 활동의 고유 특색이 감지되는 것을 보아 원격 조종 중이겠구려. 뒤에 따라오는 세 기는 로봇? 이 공간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은 나를 제외하고 한 명뿐, 맞소?”

  대답 대신 불쑥 찔러오는 간파. 다들 멈칫하며 당황하였다. 겉보기로 구분하기는 어려울 텐데 도대체 어떻게 파악한 것일까? 게다가 인형이나 로봇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을 보아 고대인 수준의 견문은 아니었다. 스테판이라는 사람은 현대문물에 대해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은 있는 듯했다.

  “혹시 당신은 지구 출신이십니까?”

  이번에는 윤혁이 질문을 던졌다.

  “지구라니?”

  “인류의 고향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지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다는 눈치였다. 기억을 잃어버렸다니 조금 두고 보긴 해야 하겠지만 지구 시민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어느 식민지 주민 출신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려나? 하지만 그러기에도 약간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면이 있었다. 비록 기껏해야 이번이 두 번째 식민지이긴 하지만 지금껏 본 하늘도시의 주민들은 스테판과는 달리 외부 세계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정체가 무엇이길래?’

  일행은 뜻밖의 난감한 흐름에 몹시 의아해했다.

 

 

 

 

 

 

*

 

 

 

  소문에 솔깃한 것인지 스테판은 나누고픈 이야기가 많다며 대화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다. 그는 아예 당분간 선교사 일행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임시로나마 새 동료가 일행으로 추가되었다.

  윤혁은 내심 합류를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으로는 늘 함께했으나 리온이나 루디아의 몸은 엄연히 물리적으로는 머나먼 지구에 놓인 셈이었으니 지금까지는 은근 허전한 감이 있었다. 이루 설명하긴 어렵지만 언제든 홀로 오지에 남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랬던 차에 본체 몸을 지닌 동료가 하나 추가되니 그것만으로도 소외에 대한 불안이 많이 줄어들었다.

  스테판은 우회 없이 곧장 본론으로 직진했다.

  “신에 관해서 묻고 싶소.”

  “신이라면…….”

  돌이켜보면 스테판은 첫 만남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가짜 신에게 농락당하는 자’들을 목전에서 통렬히 비난하였었다. 예의범절은 차치하더라도 스테판이 ‘진정한 신’이라는 신학적 주제에 관하여 관심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선교팀으로서는 주목해야 할 기회였다.

  “아, 이곳의 가짜 신들을 말하는 건 아니오. 눈에 보이는 놈들을 말하는 게 아니오. 그리고 바깥 세계를 관리하는 놈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오.”

  또다시 주의를 끄는 발언이 스쳤다.

  “바깥 세계? 인류연합에 대해서 아세요?”

  “인류연합? 그게 그들의 정체인가? 그 부분까지는 모르겠소.”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스테판은 하늘도시라는 인조 세계들의 정체가 상위 시스템에 사육당하는 일종의 콜로니라는 사실도 대강은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누구에게 정보를 들었길래 저런 정보까지 아는 것인지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기억의 상실 탓인지 지닌 정보는 군데군데 공백으로 비어 있었다. 그가 신에 대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알고자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선교사들 눈에는 수상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인류연합이니 뭐니, 아무래도 상관없소. 내가 궁금해하는 바는 유한한 능력을 갖춘 필멸자들이 아니오. 내가 알고자 하는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궁극의 존재, 곧 존재하는 만물과 존재하지 않은 모든 것까지 창조하고 주관하고 심판하는 절대자이오.”

  다시금 그는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를 찾고자 하는 열의가 투철함을 고백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카뮈네라의 인간들은 오로지 가시적인 신들만을 섬긴다. 그것도 지역별로 고유의 신들만을 모신다. 마치 지구의 고대인들이 제각기 민족별로 지역별로 다스리는 수호신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던 것과 비슷하되 이성적이고 가시적이라는 성질만 추가된 식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이지 않는 유일신의 존재’라는 개념을 흐릿하게나마 인식하는 스테판은 이질적인 존재로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당신들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구려?”

  예리하게 낌새를 포착한 스테판이 캐묻듯 찔러왔다. 이 질문에 일행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를 두고 잠깐 망설였다. 과연 이 사내는 믿을만한 사람일까? 심정 같아서는 당장 성경을 펼친 뒤 공격적으로 전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보는 것이 순서상 먼저일 듯했다. 전도도 중요하나 사람과의 교감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스테판 씨는 왜 유일자의 존재를 믿으시나요?”

  루디아가 먼저 상냥한 어투로 여쭤보았다.

  “좋은 질문이오, 아가씨.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소.”

  그는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았는지 일단은 천천히 대화하고 싶다며 먼 길을 동행해줄 것을 제안했다. 셋도 흔쾌히 승낙했다. 지금까지는 워낙 전도할 세계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고 시간은 제한된 탓에 세 로봇의 운송 능력을 빌려 도시 사이를 이동해 왔었지만, 이왕 진중한 토론을 나누려면 여유를 두고 걷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때로는 여유롭게 한 영혼과 깊은 교류를 나누는 대화가 여러 사람을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일보다 귀중한 법이다.

  “비록 내가 거쳐 간 유일한 세계는 아니지만, 이곳 카뮈네라는 참 특이해서인지 인상이 깊소. 이곳의 신들은 기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소. 지역마다 하나 이상씩, 눈에 분명히 드러나는 기적을 행사하는 신들이 존재하오.”

  걷던 중 스테판이 말문을 열었다.

  “그 신들은 군대와 권속, 신전과 요새, 종교 집단과 사제와 성기사들을 거느리고 있소. 한 마디로 가시적인 존재요. ‘눈에 안 보이는 대상’을 믿는 믿음 따위 없어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신들이오.”

  확실히 이러한 카뮈네라의 종교 체계는 지구의 종교들과는 차별화된 부분이었다. 지구의 종교들이 믿는 신들은 대개는 눈에 드러나지도 않고 간구에 잘 응답해주지도 않다 보니 섬기는 이의 굳센 믿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무신론자들은 역으로 그런 이유로 인해 종교라는 개념 자체를 집단적 망상 내지는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카뮈네라의 신들은 종교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의 일부에 더 가까웠다.

  “이곳 신들은 인간이 요구하는 것들을 거의 무엇이든 다 들어주오. 농경지 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해 잘 자라게 해주고, 신비한 권능을 전수해주며, 다른 차원에서 자원들을 소환해 가져다주기도 하오. 형법은 예외 없이 신들이 직접 내리며 상 역시 신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내려지오. 신적 존재를 칭하지만, 실상은 인간 왕에 가까운 이들이오.”

  스테판은 그 외에도 카뮈네라의 여러 주요 지역과 그곳이 섬기는 신들, 그리고 그 권속들의 체제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현지 분석에 중요한 정보인지라 하나라도 놓치기 아까웠다. 윤혁은 스테판이 일러주는 정보를 홀로그램 지도 위에 빠짐없이 기록하여 분석 시 쓸 참고자료로 삼았다.

  “하지만 그런 걸 과연 신이라 부를 수 있겠소? 인간이 요하는 바를 아무 때나 무조건 구현해주는 존재들이 신들이겠소? 오히려 그런 존재는 내가 보기에는 인간들이 탐하는 도깨비방망이에 지나지 않소.”

  그러고 보니 어째서인지 스테판의 언어에는 지구인의 문화와 직결된 관용어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공용어야 식민지 주민들에게도 보편화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관용 표현은 어찌 알았단 말인가? 지구의 문화 자체도 일부 식민지 내부에 주입되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았다. 스테판 본인도 기억이 뒤죽박죽 섞인 탓에 혼란스러운 마당에 괜히 실례를 추가하고 싶진 않았다.

  “인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은 실상 신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십분 동의하는 심정으로 리온이 되물었다. 이해하고 있는 바가 정확하다면 스테판은 적어도 어떤 존재가 참 신인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 곧 신이라 불리기 합당한 유일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도는 올바르게 첫 단추를 깨운 듯했다. 고무적이었다. 대화를 이어나갈 동기 부여가 들었다.

  “그렇소. 만약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신적 존재가 살아계신다면, 그는 결코 인간의 뜻, 설득, 간청에 일방적으로 휘둘려서는 안 되오. 그러나 그렇다고 아예 인간을 무시한다면 인간과 무관한 존재이니 믿을 필요도 없을 것이오. 아니 그런 경우에는 인격신이 아닌 그저 자연법칙 덩어리에 불과할 테니 신이 없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소. 나는 신이 그러한 비인격적 존재라고 믿지 않소.”

  들으면 들을수록 제법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게 되셨죠?”

  배경이나 문화권의 특성상 깨닫기 힘든 진실이거늘.

  “스스로를 성찰하다 보니 알게 되었소. 내가 보유한 인격도 나라는 존재의 존재성을 결정하는 고유 속성이오. 이런 나의 인격이 엄연히 실존한다면 그 인격을 창조한 존재 역시 인격을 지녀야만 하오. 혹자는 인격이란 개념 자체를 허깨비라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견해는 이렇소.”

  스테판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그는 인격을 지닌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 인격신은 마땅히 만물을 주관해야 한다. 만약 인간이 손쉽게 조종 가능한 신이라면 그것은 신이라 칭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인간이 신에게서 무엇이든 뜯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도구이지 신이 아니다.

  “도깨비방망이 역할은 과학 기술도 어느 정도 해줄 수 있소. 과학 기술은 인간의 발명품, 정확히는 그 인간에게 지성을 선물한 신의 발명품이지 전능한 신 그 자체는 아니잖소.”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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