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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0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4. 객관적인 증거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02 | 회차평점 0 0

 

 

 

 

 

 

Chapter 14. 객관적인 증거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이사야 41~42장 中)

 

 

 

 

 

 

*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섬. 그것은 섬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인조 축조물에 가까워 보였다. 제작자가 이 세계의 주민일 리는 만무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 공중섬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수백 년 전의 어느 시점이라고 막연히 추측은 하는데 그마저도 서로 일치하는 증거가 없었다.

  아이코사헤드런, 송곳 마천루, 공중섬, 이 셋은 카뮈네라의 중앙 대륙에 자리한 세 개의 위대한 신성 구조물로 그 세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들이었다. 이곳들은 신들이 거하는 터전으로 알려진 곳들이었다. 그것도 무려 토속 잡신들과는 완전히 급수가 다른 콧대 높은 신들이. 사람들은 지역별 토속 신과 차별화하는 의미로 이들을 속칭 ‘대륙신’이라고 불러왔다. 지금 리온과 스테판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섬도 그 대륙신들의 터전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소.”

  “로봇들의 운송능력이 편리하긴 하죠.”

  두 사람이 아이코사헤드런에서 공중섬의 영역까지 그 먼 거리를 빠르게 횡단해올 수 있었던 것은 로봇 스크류의 덕택이었다. 과연 경이로운 편리성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상황의 배경은 이러했다. 결의를 마친 선교팀 일행은 주어진 시간을 쪼개어 기간별 일정을 세운 뒤 각기 한 명씩 스테판에게 집중적인 가르침을 베풀기로 계획했다. 한 명이 스테판을 집중적으로 담당하는 동안, 나머지 둘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전도 여행을 계속하는 식으로 개략적 계획이 잡혔다. 지금은 리온이 새 제자를 담당할 차례였다.

  “혹시 공중섬에 대해서 아시는 정보가 있으신지요?”

  “대강은 이러하오.”

  먼저 스테판은 공중섬이 작동하는 원리와 그 주변 권역이 다스림을 받는 방식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스크류 속에 탑재된 홀로그램 장치를 프리젠테이션 도구로 빌려 공중섬 소속의 권역과 그곳의 행동 기전, 그리고 이에 내포된 정치적인 원리에 대해서 알려줬다.

  “공중섬에는 위대한 신들, 아니, 신들을 자처하는 자들이 살고 있소. 그들은 주기적으로 한 명씩 내지는 한 팀씩 강림하여 그들 주변의 도시 중 하나를 방문하오. 방문자는 매번 달라지며 그 방문주기도 일정하지는 않소. 다만 시간표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느 때에 어떤 신이 강림할지에 대한 대략의 예언이 주어지오.”

  비유하자면 이는 학내 식당의 주간 일정 공지와 비슷했다. 보통의 식당은 월요일에 어떤 메뉴가 나오며 금요일에는 어떤 메뉴가 나오는지를 게시판을 통해 통보한다. 마찬가지로 공중섬은 신전을 매개체로 사제들에게 예언을 전해주되 특정 기간에 어떤 신이 어느 순서로 내려올지를 미리 공지해주었다.

  “무슨 이유로 강림하는 거죠?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

  “아니오, ‘거인’과 ‘마물’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오.”

  공중섬이 관할하는 드넓은 대지에는 종종 땅의 문이 개방되며 마물과 거인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없었다. 이는 신이 미리 강림해서 마물들이나 거인들을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신의 강림 순서에 대한 예언뿐 아니라 거인과 마물의 강림 과정에 대한 신탁도 내려왔기에 사람들로서는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신들과 거인들은 대략 세력이 비등비등했기에 그들 간의 싸움의 승패는 상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항상 신 측이 승리해왔다. 정확한 예언 덕분이었다. 신전을 통해 내려온 신탁 예언은 어떤 종류의 거인과 마물이 어떤 시점에 몇 마리나 깨어날지, 그 장소와 깨어나는 순서가 어떠할지를 포함해서 온갖 정보를 정확하게 반영하였다.

  공중섬 당국도 그 정확도 높은 예언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그들은 항상 예언된 내용을 기반으로 발 빠르게 적의 패턴을 예측한 뒤 최적격인 상성을 지닌 신들을 내려보내 거인들과 마물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신들에게도 그랬으니 주민들이 누린 유익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미리 천기누설을 내려받음으로 말미암아 민간 피해를 크게 줄인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로 인해 주민들은 신들을 거의 광신적으로 신봉하고 있소.”

  “음, 뭔가 이상하네요.”

  이미 사전정보를 지닌 리온은 금세 내막의 그림을 파악하였다.

  “짜고 치는 조작극 같아요.”

  “내 예상도 그렇소. 공중섬과 지하 던전, 신들과 거인들이 같은 팀인지까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을 만들어낸 기원은 같은 세력일 것이오. 당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의 인류 세력이 용의자겠지.”

  “아마도요.”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지진이 벌어졌다. 스테판은 이미 여러 번 보아서 익숙한 것인지 태연했으나 리온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이상하게도 소리는 엄청나게 컸는데 땅은 흔들리지 않았다. 미루어보건대 진동의 근원은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하,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구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마물들이오.”

  스테판은 저 언덕 너머에 있는 넓은 땅을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그곳에서 검은색 기운이 스멀스멀 솟구치고 있었다. 그때 돌연히 중력의 패턴이 기묘하게 바뀌더니 저 멀리 있는 대지 위에 공간의 갈라짐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공간 자체가 퍼즐처럼 쪼개진 뒤 재배치되는 것만 같았다.

  “저건 뭐죠? 통상의 공간 조작이나 아공간 기술 같지는 않은데요?”

  “원리는 나도 모르겠지만……, 저것은 지하 던전이 열리는 광경이오.”

  과연 갈라짐과 동시에 틈새 안에서부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샘솟았다. 이내 큰 괴수들이 하나둘씩 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며 용솟음쳤다. 예고했던 대로 마물들이 출현하였다. 그런데 낌새가 영 이상했다. 스테판도 위화감을 느꼈는지 표정이 굳었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리온이 어딘가로 대피할 것을 권유하며 스테판의 팔을 잡았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구려.”

  괴물들이 이상하리만큼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나왔다.

  “왜 그러시죠? 뭐가 잘못되었길래?”

  “출현 패턴이 예고된 바에서 변경되었소. 내가 조사한 최신 내려진 신탁과는 내용이 다르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서로 완전히 다른 부류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소.”

  “네?”

  콰아아아앙.

  당황하던 중 거인의 날갯짓으로 인한 후폭풍이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을 휩쓸었다. 스크류는 재빨리 특수 에너지 실드와 공간 차폐 배리어를 발동해서 스테판과 리온을 감싸 보호했다.

 

 

 

 

 

 

*

 

 

 

  리온 일행과 헤어진 윤혁과 루디아는 비빅과 쿠앤크를 데리고 근방 여러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하였다. 실패를 겪으며 경험이 쌓인 둘은 이제 어느 정도 요령과 눈치가 생겼다. 주민들의 문화 배경을 뒤흔들 충격적인 선언을 큰길과 노방에서 대놓고 쏟아놓으면 즉시 당국 광신도들의 표적이 될 위험성이 컸다. 이 점을 고려한 둘은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개인적인 대면을 통해서 천천히 전도하는 길을 택했다.

  루디아는 솔선수범의 자세로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일손이 되어 주었다. 거리에 나 앉은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에게는 손이 닿는 한 필요한 물자를 풍성히 베풀었다. 다행히 윤혁이 보유한 생명에 유착된 자본 포인트는 하늘도시 내에서도 어느 정도 환전 통용이 가능했기에 루디아의 구제에 필요한 자원을 충원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베풂을 받다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루디아와 윤혁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물론 막무가내로 전하지는 않았다. 청자의 성향을 민첩하게 눈치챈 뒤 그 성향에 합당한 방향으로 대화의 접근 경로를 조절하였다.

  말문을 터서 심도 있는 담화를 나눌 기회를 얻으면 정직하게 복음의 진리를 본질 그대로 전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많은 이가 거절했으나 간혹 귀를 기울이는 이가 나타났는데, 그렇게 복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더 깊은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책을 선물로 전해주었다.

  루디아와 윤혁은 단짝처럼 꼭 맞는 파트너였다. 루디아가 사람들의 마음 문을 조심조심 열어주면 윤혁은 그 사람의 관심사와 성향을 예리하게 포착한 뒤 복음에 대한 진지한 담화로 분위기와 화제를 이끌었다. 덕분에 둘은 수많은 도시를 거치며 온갖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고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채 성경을 전해줄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기분이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카뮈네라에 처음 왔을 때는 대중에게 돌을 맞으며 도망 다녔건만. 그 섬뜩한 기억이 어찌나 생생한지 엊그제 일 같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이제 전도자들은 상대방의 인격을 배려하는 선에서 올바른 진리를 전달하는 기술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네사르 여신’의 신전이 위치한 어느 고지대 도시에 당도했다. 그곳 사람들의 종교심은 투철했다. 여신 숭배 문화의 영향력이 주민들의 생활 영역 각 부분에 구석구석 녹아들어 있었다.

  “왠지 바티칸 느낌이 드는걸.”

  당장 교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문화권이었다. 만일 이곳에서 우상숭배 문화를 정죄하고 개종을 요구했다간 에베소 지역에서 전도하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추종자들에게 공격받은 사도 바울처럼(행 19장) 곤경에 처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렇다고 전도의 의무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신중해서 나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더욱 스스로의 언사를 가다듬으면서 경계했다.

  ‘여신이라. 위세가 대단한걸?’

  카뮈네라의 다른 토속신들은 자기 지역 근방에서만 위세를 떨쳤지만 유독 대륙 전역에 걸쳐 보편적 숭배를 받는 열네 명의 신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통칭 ‘대권능’이라고 불렀고 여신 일곱과 남신 일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대권능은 자신만의 성지를 하나씩 소유했는데 그 성지가 세워진 좌표는 대륙 곳곳에서 몰려드는 순례객의 성지순례 대상이 되었다. 그 덕에 성지 주변 도시들은 관광으로 수익을 톡톡히 보았다.

  네사르 여신도 열네 명의 대권능 중 하나였다.

  ‘자칫하면 정말로 종교 전쟁이라도 치르겠어.’

  윤혁과 루디아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선교 활동을 이어나가며 사람들에게 성경과 전도지를 전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더 과감하게 활동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된 전도도 못 해보고 쫓겨날 수는 없었기에 인내하는 마음으로 견뎠다.

  도시 중앙부로 진격해 들어갈수록 네사르 여신의 성지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아름다운 성지 건물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지점까지 다다르자 윤혁은 잠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리온이 곁에 있었으면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룻, 정말 미안하지만 잠시 어딜 좀 다녀올게.”

  “어? 어디로?”

  “조사할 사항이 있어서 말이야.”

  “그. 그럼 나도 함께 갈게!”

  루디아는 윤혁이 어디로 튈지 몰라 걱정하였다.

  “아니야, 한 명이면 충분해. 이곳 근방 사람들을 부탁할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남은 주민들에게도 계속 성경책과 복음을 전달해줘. 금방 다시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만류하는 루디아를 가까스로 설득한 윤혁은 도시 중앙부에 놓인 성지 안쪽으로 몰래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쿠앤크더러 루디아를 경호하도록 단호히 명령을 내린 뒤 비빅을 데리고 성지로 진격했다. 그가 그곳을 찾아간 목적은 성지순례가 아니었다. 여신 신전을 찾아온 순례자들의 방문 목적과는 정반대의 의도였다. 스테판이 참 신과 그분의 진리를 배우는 동안 나 또한 거짓 신의 실체에 관해 탐구하리라. 그 어둠들을 폭로하기 위해 내부 구조를 해부하리라.

  ‘그리고 인류연합과 어떻게 연루되었는지도 단서를 찾아야 해.’

  가뜩이나 원래도 많은 순례객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기에 성지 관리 측에서는 윤혁도 그런 무리 중 하나이리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진입하는 데 별 제지는 받지 않았다. 특수 요원처럼 잠입을 할 필요도 없이 걸어서 당당히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네사르 성지의 가장 깊은 방까지 들어간 윤혁은 마침내 빛덩어리로 이루어진 여성 형상의 거인들이 지키는 막힌 벽에 당도했다.

  - 이방인이여, 이곳에는 무슨 일입니까.

  - 이곳은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 당신은 무슨 자격을 우리 앞에 증명해 보일 것입니까?

  거대한 여성 형체들이 차례로 말했다. 여러 음성이 합성된 듯한 웅장한 효과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윤혁은 조금도 위압 당하지 않은 채 식상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네사르니 그녀의 권속이니 그의 관심사 밖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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