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0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5. 주관적인 증거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12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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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루디아는 이렇게 고백했다.
“글쎄요? 누구든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란 어려워요. 저 역시 전에는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했는걸요. 당연히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고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니까요.”
스테판도 루디아의 말을 듣고 깊이 공감하였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이기적인 사람이나 이타적인 사람이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말하는 이타심 깊은 사람도 이기심이 비교적 건설적이고 도덕적인 방향으로 발현된 사람일 뿐, 이기심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타인을 사랑한다 해도 그 속내와 동기를 잘 파헤쳐보면 결국은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진정한 사랑의 실존을 믿는 이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인간이란 마치 칠흑의 블랙홀과도 같소. 블랙홀은 자기의 영향권에 닿는 물질은 모조리 끌어당기는 괴물이오. 인간의 마음 역시 똑같지 않소?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세상을 이해하는 게,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오. 심지어 도덕적이고 친절하고 선한 이들마저도 그러하지.”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심과 자기애란 끝이 없는 법. 개개인의 현실적 능력과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기에 욕심을 제한받을 뿐, 만약 무한한 가능성과 역량이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자신 속에서 끝없는 이기심이 자라나도록 기꺼이 내버려 둘 것이다. 추구하는 대상이 물질이건, 명예이건, 철학의 실현이건, 타인을 향한 지배력이건 그 지독한 탐은 독버섯처럼 무한정 뻗을 것이다. 어쩌면 도덕적인 충족감이 그 탐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블랙홀은 질량이 증가할수록 사건의 지평선의 지름이 커진다고 하오.”
“사건의 지평선요?”
“한 번 넘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경계선 말이오.”
“아아.”
스테판은 의외로 상식의 폭이 넓은 듯했다.
“인간도 그 블랙홀과 똑같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탐하게 마련이오. 그런 이들은 주변의 비판을 받게 되지만, 정작 비판하는 자들도 그와 같은 부한 처지에 놓인다면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전락하오.”
“저도 스테판 씨의 말에 동감해요.”
루디아는 어린 시절에 어른들에게서 배웠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나님을 자신의 중심에 영접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공통점이 있단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 종류의 신이 그들의 심령 속에 자리한단다. 하나는 자기 자신, 다른 하나는 세상 물질,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만들어낸 ‘허상 속의 하나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세 가지는 결국 하나인 것 같아.’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죄에 찌든 인간이 원하는 ‘허상 속의 신’도 삼위일체인 걸까? 자아와 물질과 허상, 그 셋 모두 스스로를 위해 만든 것임은 똑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배 속을 채우고 머릿속을 채우기를 원한다. 배를 채우려는 갈망으로 인한 것이 끝없는 물욕이요, 머릿속을 채우려는 욕망으로 인한 것이 자아중심적 철학적 사고체계이다. 인간은 정신적 요소든 물질적 요소든 자신의 눈에 닿는 것들은 어떻게든 자기 안에 욱여넣으려고 기를 쓴다. 그 작태야말로 블랙홀의 본질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이 세상 어떤 신들도 인간의 그런 본성을 바꿔주지는 못할 거에요.”
“흐음.”
“사실 어떤 종교든 토속 신앙이든 기도하는 내용은 비슷하잖아요. 더 좋은 것을 주세요. 더 많은 편리함을 주세요. 이런 식으로요. 본질적인 기도 내용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더 좋은 것을 제공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찾아갈 수 있겠죠.”
성경에서 예수께서는 그런 행태의 사람들을 두고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요 6:27, i)’이라고 꾸짖으셨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허다했던 것이다. 루디아가 보기에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 그래서 그토록 공허했던 것이오? 우리가 블랙홀이기 때문에?”
스테판도 공허한 표정으로 한탄하였다. 탄식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감정의 토로를 통한 환기가 아니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해결책으로 목말랐다.
“그건 우리가 진정한 신을 내면에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루디아가 복음과 관련하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본디 자신을 창조하신 분과 교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을 저버렸죠. 그 바람에 마음이 텅 빈 것처럼 아픈 거예요. 그래서 그 갈급함을 잊어보려고 온갖 잡다한 것들을 텅 빈 구멍 속에 집어넣지만 무슨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죠.”
“그렇다면 그 창조주를 다시 모시는 것만이 해결책이오?”
“네, 아마 아직은 그 말을 이해하시기 어려울 거예요.”
근본적이지만 막막한 대답. 문득 스테판은 리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루디아라는 이름의 이 아가씨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유대 민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그 민족은 오래 전 자기들의 땅에 왕으로 찾아온 메시아를 거절하고서는 무려 2천 년 이상을 고생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심령의 변화를 받아 하나둘 예수를 영접하기 시작했다고 했지.
“당신들의 동포들은 예수라는 분을 미워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토록 미워했던 메시아를 향하여 어떻게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소?”
“그것은 저희의 힘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속에 찾아오셔서 변화를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 이전에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거든요.”
스테판은 리온에게서 배운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성령이라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네, 그분께서는 우리를 감동케 하는 분이에요. 죄에 찌든 완악한 마음에 변화를 주셔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죠. 만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거예요.”
“사랑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말하는 거요?”
“예슈아께서 우리의 죄와 그 대가를 처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희생의 사랑요.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함이었어요.”
“그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오?”
“네, 인간의 완악한 본성은 자신이 구제할 길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요. 예슈아께서 기껏 희생을 치르셔도 사람들은 그 희생의 의미를 외면하려 하죠. 십자가의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추악하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니까요.”
스테판은 잠잠히 고민하였다. 루디아의 말을 듣고 보니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란 단순히 인간적인 온정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와는 원리가 다른 듯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도 성령이 없이는 각 사람의 마음에 그 사랑이 심기지 않는다니. 참으로 오묘했다. 사실 당장 스테판 자신만 해도 기껏 십자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이성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밖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인간들에게 자신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인간이 되어 물질계에 강림했던 신, 그가 이제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도 일일이 강림해야 한다는 뜻이구려. 물질계에 올 때는 그리스도로서, 각 사람의 마음에 올 때는 성령으로서 말이오.”
“얼추 맞아요.”
이어서 루디아는 선언했다.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진정한 우주의 창조주이자 절대자이자 유일자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혹자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뜬구름 같은 요소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루디아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발견하게 해주었던 가장 강력한 연결 고리요, 그분의 실존의 명백한 근거였다. 누가 부인한다 해도 그녀는 그 진리를 절대 의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스스로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바꿀 수 있겠어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거요.”
“네, 하지만 사랑의 왕이신 하나님이라면 가능하세요. 그분의 사랑이 한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여 뿌리를 내리면, 비로소 공허함이 메워져 사라지게 돼요. 그때부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죠.”
순간적으로 스테판은 블랙홀이었던 천체가 물리적으로 반전되어 화이트홀로 변질하는 장면을 연상했다. 오로지 만물을 잡아당기기만 했던 검은 구멍이 변화함을 받음으로써 힘차게 선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빛의 통로로 화하는 기적적인 모습. 과연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 바뀌게 되오?”
“더는 자기 욕심과 고집에 집착하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해지죠. 그래서 가슴이 공허하지 않아요. 내가 아닌 주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죠. 나를 위해 그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의 뜻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하게 돼요.”
“흐음, 이해하기 힘들지만 멋진 이야기 같소.”
“또 온전한 영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고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리라는 확신 덕분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들, 곧 모든 선한 것들과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하게 돼요. 그렇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죠.”
“신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오?”
“네, 특별히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들을 깊이 사랑하시죠.”
“그러면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심긴다면 나도 그분처럼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단 말이오? 신이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마음에 힘입어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품을 수 있소?”
루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스테판은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째서 다른 신들과는 근본이 다른지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신은 인간에게 이용당하거나 인간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참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는 인간을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을 먼저 바치는 존재. 그리고 그러한 신이라면 능히 인간의 훼손된 마음도 변화시켜 진정한 삶의 의의를 되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이런 묵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거듭된 탐색 끝에 윤혁과 리온은 마침내 열네 번째 대권능의 성지 심장부에 당도했다. 나머지 성지들의 수색은 임무 완료 상태. 이제 단서를 뽑아낼 수사 대상은 하나뿐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네.”
“그래도 긴장을 끈을 놓지는 마.”
현재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비빅도 줄곧 충실하게 데이터를 수집해왔다. 비록 매번 해킹을 개시하자마자 곧바로 방어 시스템의 발동으로 역풍을 맞는 바람에 아주 잠깐의 데이터 수집만 가능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티끌 같은 데이터도 거듭 쌓으면 태산의 가치를 창출하는 법.
‘이 반지가 정말 대단한 물건이긴 하네.’
예전에 만났던 유성운 회장이 이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카이젤이 창작해놓은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인간은 오로지 카이젤 자신뿐이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가 그때는 확연히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윤혁도 조금은 체감이 되었다. 형의 선물인 반지, 최첨단 기술들이 응집된 그의 작품의 위력은 가공할 만했다. 하위의 시스템들이 속수무책으로 훼파되는 것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반칙적인 방법이 아니었더라면 어림도 없었겠지.
‘무리한 이용은 지양해야겠어.’
경각심이 들었다. 과도하게 의지했다가는 저도 모르게 힘에 취해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혹시라도 반지에 내포되어 있을지 모를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 확률함수 조정, 시공간의 조정 같은 위험한 능력을 멋모르고 사용했다가 지난번 외은하에서처럼 초자연적 간섭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데이터 수집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비빅이 보고하였다.
“수고했어.”
윤혁과 리온이 한숨을 돌리려던 차였다.
{경보! 경보!}
갑작스럽게 비빅이 찌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안정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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