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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9. 히어로즈 II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06 | 회차평점 0 0

 

 

 

 

 

 

 

Chapter 19. 히어로즈 Ⅱ

 

 

 

 

 

 

   거대한 지하실의 어두운 곳에 밝은 조명이 비췄다. 사방으로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게 공간이 뻗어있었다. 수백 명이 모여서인지 웅성웅성했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전부 다 탄탄하게 단련된 전사다운 육체의 소유자. 짧은 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는 자잘한 흉터가 가득했다.

   조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조만간 다가올 시험을 마음속으로 대비하였다. 연단된 프로라서 그런지 어수룩함이나 미숙함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1차 지원자인가?”

   별안간 기척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여있던 인원 모두가 긴장하였다. 그들은 방비 태세를 갖췄다. 곧 탐지 불능 투명화 상태로 은폐되어 있었던 한 인간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잘 막아봐.”

   그는 다짜고짜 맥락도 없이 제일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을 체술로 공격했다. 공격받은 자는 현란한 체술로 대응해보았으나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가 영 좋지 못했다.

   이어서 다른 인원들도 대응을 위해 협동 태세를 이루었다. 한 번도 서로의 팀워크를 연습해본 적 없는 인원 조합이었지만 누가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손발이 딱딱 맞아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한 명 한 명이 강력한 실력자였고 힘을 합치니 몇 배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분명히 모여있던 이들은 막강했다. 그러나 기습자와의 실력 차이가 너무도 컸다. 잠시 간을 보며 기세를 늦추던 습격자는 이내 대기자들의 기술과 실력을 익히더니 순식간에 맞대응할 전략을 창출해냈다. 점차 일대 다수의 싸움은 다수 쪽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그만.”

   대강 모인 인원을 다 제압했다고 판단한 습격자는 비로소 가면을 벗었다. 사내답게 선이 굵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날렵한 눈매, 약간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 분위기도 제법 근사하나 그보다는 무쇠 같은 몸에 품은 기세가 상당했다. 수천 년 이상을 싸워온 베테랑과 같이 포스가 넘쳤다. 정작 경험이 풍부한 프로들은 쓰러진 대기자들 쪽인데 경험 한번조차 없는 습격자가 더 전문가 같아 보였다.

   “소문대로 베테랑은 맞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쉽게 간파당하잖아?”

   그는 실망감을 은연중에 표출하였다.

   “그토록 쌓아온 경험의 성과가 그것밖에 안 되나?”

   크리슈나 칼라만트라, 그는 무협지 속 스승이 제자들을 훈계하는 듯한 엄숙한 목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각자 나름 유명한 전쟁 영웅으로 활약하며 공로를 세웠던 전직 휴먼 솔져들이 고작 한 명에게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다니, 자와 타를 막론하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다.

   “당신은 설마!”

   낯선 사내 앞에서 전직 솔져들은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런 재능은 솔져들 기준으로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전설급일터인데. 보통 인간이라면 저러한 재주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나?”

   “초인 맞아. 그것도 더블 스페셜(SS). 왜? 긴장돼?”

   더블 스페셜이라는 언급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였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솔져들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런 높은 클래스의 거물급 초인과 마주해본 적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사실 C 클래스 초인만 되어도 일개 솔져 나부랭이는 고개를 숙이고 복종해야 할 고위직이었다. 퇴직 전 현역 시절에 솔져들이 개인적으로 거래 맺은 초인도 대부분은 A 클래스 미만이었다. 하물며 평생 볼까 말까 한 준 최상위권의 초인이라.

   ‘어디서 갑자기 저런 자가 나타났지?’

   초인과 우주 출신 휴먼 솔져들의 밀월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통상 그들은 사적으로 만나 거래나 계약을 체결하고 도움이나 대가를 주고받곤 해왔다. 인류연합도 그런 관례를 으레 암묵적으로 허락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휴먼 솔져들은 대개 일정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웬만한 초인들에 대해서는 얼추 알게 마련이었다. 더욱이 인류연합에 소속돼 활동하는 초인은 데이터베이스에 족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공인(公人)의 입장. 그래서 일단 얼굴만 노출되면 해당 초인의 신분과 정체를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가면을 애용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매우 낯설었다.

   “아, 나는 인류연합이나 U-Society 소속은 아니야. 민간인이지. 지금은 높으신 나리의 스카우트를 받아서 너희를 잠시 맡아주기로 했지만 말이야.”

   “우리를 맡는다고?”

   “그래. 알아서 납작 엎드려라. 너희 스승이자 리더가 되실 몸이다.”

   영웅들의 왕(King of Heroes).

   그것이 크리슈나에게 맡겨진 새로운 직책.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감투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능의 성질 덕이 컸다. 카이젤만큼의 전천후 재능은 아니지만, 크리슈나에게도 상대의 무술과 전투 경험을 손쉽게 흡수하는 재능이 있었다. 이를 실제로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번 대련 한 번만에 크리슈나는 기나긴 세월 가상 현실 훈련과 실전 체험을 통해 연마되어 온 휴먼 솔져 수백 명의 경험과 능력들을 모조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다.

   ‘뭐, 그 괴물처럼 재능의 근원 자체를 복제하고 한계를 깨트려 몇십 단계 이상 끌어올린 뒤 자신 위에 제곱하지는 못하지만, 그놈은 원래 논외의 존재지.’

   크리스는 미리 기록해놓은 전직 솔져 개개인의 프로파일을 머릿속으로 점검하였다. 동시에 자신이 실전 대련으로 얻은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합산 결과를 도출하였다. 평가를 끝마친 크리스는 뇌파 연결을 통해 각자에게 필요한 피드백을 전송했다. 이에 본능적으로 전직 솔져들은 기겁했다. 뇌파 연결은 종종 솔져들도 임무 수행 시 사용해본 기술이라 익숙했지만, 지금의 크리스처럼 한꺼번에 방대한 정보를 전송하는 것은 그들은 상식 밖이었다. 그들은 선명한 상하 관계를 명백히 깨달았다.

   “벌써 움츠러들 거 없어.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크리스는 성운에게 받은 사이버 열쇠를 가동하여 그 자리에 모인 인원 전원을 모조리 가상 현실 세계에 접속시켰다. 이 역시 이들에게는 제법 익숙했다. 이러한 유의 방법을 통해서 지금껏 모든 유형의 전쟁, 전투, 임무를 체험해왔으니까. 이는 솔져들을 향한 저평가에서 비롯된 배려였다.

   “보아하니 시뮬레이션 우주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없는 듯하네.”

   낯선 낱말에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충 유사한 가상 공간에서 대신 시행하도록 할게.”

   크리스의 선언에 여전히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했다.

   “자, 훈련 시작이다. 정신들 똑바로 매라.”

   이내 쉴 새도 없이 지옥 훈련이 재개되었다. 초능력전, 기계 반란 진압전, 가상 문명대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바이오하자드 대응전, 외계 침략 대응 매뉴얼, 내전 진압, 진화된 차기 인류에 대한 대응전 등등, 갖가지 다양한 세계관을 담은 가상 세계가 무수히 가동되었다. 그것들 속에 강제로 삽입된 그들은 크리스의 지도하에 기나긴 코스의 혹독한 수련을 받았다.

 

 

 

 

 

 

*

 

 

 

   “요새는 영웅들 이슈가 뜨겁네요.”

   뉴스를 보던 유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성한은 뜨끔거리며 움찔하였다. 과거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달인이었던 냉정한 사나이 성한도 평안한 소시민 가정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이토록 물러졌다. 아내와 함께 수십 년을 지내다 보니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 셈. 덕분에 그녀는 손쉽게 낌새를 눈치챘다.

   “여보,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음? 하하, 수, 숨기는 일은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수수하고 자애로운 인상의 여인이 남편의 당황한 모습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덩치는 북극곰처럼 건장해서는 저렇게 허술하다니까. 저 잘생긴 얼굴 위로 다 드러나 빤히 보이는 당혹감. 더 캐묻고는 싶었으나 모른 척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는 솔직히 털어놓겠지.

   “괴물이라니……. 하여간 세상 흉흉한 건 여전하네요.”

   그녀는 전혀 걱정이 섞이지 않은 평안한 어투로 말했다.

   “물론 우리가 젊었을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그렇긴 하지. 우리 어렸을 때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잖아.”

   부부가 회상하는 혼돈의 시대처럼 ‘진정한 실질 위협’이 범람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도 평범함을 흔들어놓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다. 성한이 유 회장과 크리스를 만나고 온 뒤 정확히 한 달 뒤, 지구촌 곳곳에서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이변이 터졌다. 사실 계약 이후로 한 달간 그 두 명은 성한에게 전혀 접촉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일도 없을 줄 알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성한은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을 느꼈다.

   그 사태란 소위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들의 출현이었다. 물론 각 도시와 건물은 철저한 방어 시스템으로 보호되었기에 민간의 피해는 없었다. 게다가 괴물들은 인간을 공격하지는 않고 저들끼리만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그들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은 공포에 질렸다.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감당 불가의 자연재해적인 존재들의 대립으로 인해 야기되는 공포. 그런 코스믹 호러들이 범람했던 혼돈의 시대를 기억하던 기성세대는 다시금 이 시대에 재난이 재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긴장했다.

   그런 두려움을 잠식시키며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히어로’라 불리는 ‘영웅’들이었다. 지금껏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슈퍼히어로가 실제 세상에 출현한 셈이었다. 물론 그들은 싸구려 코스튬을 입지도 않았고 삼류 대사를 떠벌이며 폼을 잡지도 않았다. 유치하고 해괴망측한 능력을 휘두르거나 이상한 컨셉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강력했다.

   영웅들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대개는 얼굴을 가린 채 생체 파츠와 나노 파츠가 융화된 강화형 장비를 입고서 등장했다. 그들은 기이한 이능력과 특수 무기의 도움을 받아 화려한 무술과 전략 전술을 선보였다. 한 명 한 명의 능력치는 몬스터들보다 약했으나 허를 찌르는 탁월한 전략과 무기를 자기 몸처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재능 덕택에 힘의 균형은 적절했다. 실제로 영웅들은 아슬아슬한 역전의 승리를 숱하게 거두었다.

   또한 영웅들은 개성이 뚜렷했다. 어느 한 명도 남과 똑같은 기술이나 똑같은 무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독창성으로 똘똘 뭉친 특수 유닛이었다. 다양성은 그들의 승률을 높여주는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온갖 몬스터들을 대적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유연하게 적응하고자 노력한 데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특징이었다.

   영웅들은 고정된 전략이나 능력 구현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거듭 발전시키고 성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제한 구역 밖으로 나온 몬스터가 민간에 손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제압한 뒤 그 몬스터의 사체를 해부하여 자신의 능력을 향상할 자원을 획득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영웅들을 사냥꾼(Hunter)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연 저런 독창적인 무기나 능력은 누가 제공하는 것일까요?”

   유진은 뉴스를 보며 궁금증에 중얼거렸다.

   “행동하는 것을 보면 딱히 정부 요원 같지는 않던데요.”

   “음, 그러게나 말이야.”

   사실 성한은 정답을 얼추 추측하고 있었다. 아마도 유성운 회장이 뒤에서 지원했겠지. 그는 지구상에서 손에 꼽히는 탁월한 경제인 중 하나인 동시에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엔지니어이니까. 최근에 맏아들과 연락을 했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이러한 평가를 들었었다.

   “아, 유성운은 꽤 쓸만한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꽤 유용하게 활용하는, 신뢰할만한 수족입니다.”

   아들에게서 들은 말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실력은 그렇고……, 인성이나 신뢰성은 어떻니?”

   “뭐, 우리 중에서는 그나마 양호한 편입니다. 다른 부하들이었으면 아버지께 접근하지도 못 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 꿍꿍이 깊어 보이는 사람이 그나마 나은 축이었다니. 역시 초인이란 믿을 게 못 되는 족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과거에는 그 무리 중 하나와 얽혀 있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그나저나 신해는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으려나?” 

   영웅들에 대한 뉴스를 듣다 보니 문득 그 아이에 관한 생각에까지 이르며 감상이 깊어졌다. 성한은 보름 전에 있었던 일을 잠잠히 떠올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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