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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9. 히어로즈 II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08 | 회차평점 0 0

 

 

 

 

 

*

 

 

 

   계절에 맞게 한국 쪽 지역도 막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 시기쯤이었다. 성한은 그날도 성실히 하루를 살아내던 중이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식당에서 일하던 도중 문이 열리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저 왔어요.”

   “신해구나?”

   “반가워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청년은 씩씩했다. 떠난 지 거의 반년이 되어가던 참이라 내심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데 다행히도 생각보다 재회가 빠르게 다가왔다. 전보다 짧게 깎은 주황 머리가 단정하고 깔끔해 보였다.

   “성한 아저씨는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몸도 건강해 보이시고요.”

   “잘 지내니? 건강은 잘 챙기고 있고?”

   “저야 뭐 똑같죠.”

   “요리 공부는 잘되어가고? 지금쯤이면 프로가 되었을 것 같은데.”

   “하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때 성한은 왠지 신해가 뭔가 깊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어딘가 모르게 그의 강인했던 얼굴이 약간 수척해 보이고 근심도 짙어 보였다. 왜일까? 혈연은 아니어도 사실상 친아들처럼 아끼던 청년이었기에 조금은 염려되었다.

   “식사라도 하고 갈래? 너처럼 잘하지는 않지만 나름 우리 실력도 괜찮단다.”

   “준비하시는 것 같이 도울게요.”

   둘은 조리부터 시작해서 테이블에 음식을 펼쳐놓기까지 두런두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시콜콜하고 평범한 이야기부터 조금 비범한 주제까지. 간만에 서로의 속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니 약간의 해소감이 들었다.

   한참 근황을 알리며 나누며 웃고 떠든 후 신해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잠시 닫았다. 그러더니 그는 화제를 돌렸다. 자신이 오늘 털어놓고 싶은 고민 쪽으로. 성한은 공기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오늘 찾아온 것은……, 아저씨께 진실도 말씀드리고……, 그리고 제 고민에 대해서도 진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진심 서린 걱정이 담긴 질문에 신해는 생각에 잠겼다. 지난 몇 달 간 성한네 가족과 이별한 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는 부쩍 인간의 존재의의, 정부의 행동, 영웅의 의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 고뇌하며 힘들어했었다. 답답한 마음에 좋아하던 요리도 손에 잘 안 잡혔다.

   그때 문득 손에 잡혔던 것이 아저씨에게거 선물 받은 성경책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 금단의 상자를 열었던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막상 펼쳐본 후에는 별생각 없이 여기저기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럴수록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더욱더 많은 의문점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는 문득 모든 인간들의 삶 속에 그려진 참상이 너무도 슬프고 허무하다고 느꼈다. 비록 탁월한 편리성의 시스템이 확립되었다지만, 인간의 탐욕과 경쟁, 성장을 향한 끝없는 욕구는 여전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는 솔져로 일하던 시절 체험했던 그 고뇌와 아픔을 성경의 증언 위에 비춰보았다.

   ‘인간에게는 정말로 희망이 없는 걸까?’

   성경이라는 책의 증언은 인간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슬픔의 근원지를 ‘인간이 하나님을 저버리기로 택한 그날의 결정’에서 찾아주었다. 신해는 전에도 성한을 따라 무심코 교회를 몇 번 나가긴 했었지만, 아직 신이 누구인지,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마음속에 확신을 갖지는 못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냉전을 계기로 자신의 현역 시절을 되새겨보니 이 심오한 질문이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과거의 신해는 사지를 넘나들며 위험을 무릅쓰고 싸웠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치열하게 싸웠을까? 신념인가, 아니면 아집인가. 그러다가 만약 죽어버렸다면 그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 길의 결말을 자신 말고 누가 책임주었을까? 그것도 모른채 자신의 자유의지를 낭비해온 지난날이 허무했다.

   ‘알고 싶어.’

   올바른 해답에 갈급히 목 말랐다.

   그렇게 그의 영혼을 부르는 초청이 어딘가에서 울릴 무렵, 때마침 그에게 또 다른 초청장도 찾아왔다. 새로운 형태로 개편된 전쟁 무대로 부르는 초대장. 과거의 전쟁 전문가들을 영웅으로 탈바꿈시켜 재활용하려는 프로젝트의 속삭임이었다. 그는 고민했다. 냉전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무력하게 농락당하는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이대로 나는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신해를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을 질책하였다. 겁쟁이 같으니! 그러면서도 그는 끝없는 싸움의 허무함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지금 대체 뭘 위해 싸우려는 걸까? 소중한 사람? 가치관? 결국, 쳇바퀴를 돌고 돌아서 질문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회상을 마친 신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예전에는 그가 이 이야기를 되도록 피하도록 텔레파시 형태의 은근한 세뇌력이 뇌리에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고뇌를 한 뒤에는 그 세뇌의 힘이 약해져 버렸다. 그 영향인지 진실을 솔직히 말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고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저는……, 무자비한 전쟁꾼입니다. 지구 바깥에서 태어났죠. 제 가족은 오래전에 역사 속에 파묻혔어요. 저는 그들을 뒤에 놔두고 잊은 채 홀로 군인이 되었죠. 자유를 얻고 싶어서요. 시민이 되고 싶었거든요.”

   신해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분명하게 전달했다.

   “그래서 수련해서 강해졌죠. 공로를 세워 명예와 인정을 받았죠. 그 와중에 음지에서 초인들과 온갖 거래도 맡았었고요. 우주 곳곳에서 사지를 넘나들며 괴물, 아니 이종족들과 싸워왔어요. 폭주하는 기계들을 제압하기도 했고요.”

   성한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그랬었구나.”

   그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거창한 이야기일 줄은 몰랐지만 어쨌건 그도 비범한 세계들에 익숙해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눈앞의 사내가 무슨 충격적인 일을 말하더라도 묵묵히 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혼자서 힘들었겠네.”

   “동료들은 있었어요. 저와 함께했던 녀석 중에서 지금 지구에 당도한 사람은 저까지 셋뿐이지만요. 아무튼,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힘겹게나마 쟁취했건만, 여전히 제 인생은 쳇바퀴와 틀 속에 갇혀 있었어요. 정식으로 시민이 되면 그 굴레가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구나.”

   “……네.”

   이어서 신해는 자신이 윤혁과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던 것인지 그 계기도 고백했다. 그가 윤혁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윤혁에게 미지의 후원자를 연결해 준 당사자도 자신임을 솔직히 밝혔다.

   “화내셔도 돼요.”

   “무슨 소리. 너는 오히려 내 아들의 생명을 구해줬잖니.”

   “…….”

   실망이 섞이지 않은, 고마움을 머금은 대답.

   “나는 하나님께서 네게 기꺼이 보답해주시기를 기도했단다.”

   “사실은 그분의 문제 때문에 고뇌하다가 마지못해 찾아왔어요.”

   신해는 이제껏 품고 있던 오랜 세월의 고찰이 서린 괴로움들을 숨김없이 상담자 앞에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했는지,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어찌나 나약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참으로 겁쟁이였구나.’

   그런 내면의 탄식을 읽기라도 했을까?

   “누구나 다 연약하단다. 강한 척하고 있을 뿐이야.”

   성한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강하시잖아요.”

   “아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헛되이 살며 실수했는지 넌 모를 거다.”

   성한은 조용히 수치스러운 옛 모습, 그 탐욕스러웠던 과거의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 차가운 눈의 여왕에 현혹되어 정욕에 만취했었던 자신, 상냥한 그리스도인 청년을 맹렬히 핍박하고 괴롭혔던 불의한 검사. 이런 마당에 누가 누구를 판단하겠는가.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앞의 일부터가 너무도 막막해요.”

   “무슨 일을 말이니?”

   신해는 머뭇거린 끝에 정직히 털어놓았다.

   “그렇게 싸우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또 전장에 발을 들이기로 했어요.”

   “설마!”

   번개처럼 크리스와 유 회장이 했던 말이 스쳤다.

   “영웅의 군단이라 했던가?”

   “맞아요.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의미와 해답을 못 찾을 것 같았어요.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험 속에 내버려 두자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 보기에도 제가 참 이상하죠?”

   “아니, 넌 정말로 사려 깊은 아이란다.”

   “그럴 리가요. 전 모순적인 사람이에요.”

   쓰라린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그렇게 막상 싸움에 발을 담그려 나서자니 죽음이 무서워지는 것 있죠. 예전에 현역에 있을 때는 그저 공포감을 마취시키고 시체가 된 것마냥 무덤덤하게 싸웠어요. 그런데 한번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니 죽음이 더 실감 나요. 이런 결말이 정말 제가 찾던 가치인가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해요.”

   두서없이 복잡한 심경을 기나긴 말로 표현하던 신해는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성한은 그를 폭 껴안고는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한참을 그렇게 울음을 게워냈을까? 어느 정도 감정을 분출시켜 해소한 신해는 진정을 되찾았다. 성한은 그 모습을 쭉 보며 마음이 짠했다. 눈앞의 남자에게는 근본부터 치유와 대답을 공급해줄 필요가 있었다.

   성한은 그 자리에서 신해와 함께 편안하고 여유롭게 성경을 읽어나갔다. 동시에 그는 신해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인생의 비밀을 풀어주었다. 전에도 대강 알려주었던 내용이었지만,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던 신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낱말 하나하나가 가슴 속에 선명히 박혔다. 그 가르침은 가슴속에 새겨진 오랜 상처 안으로 들어가 빠지지 않는 유리 조각처럼 스며들었다. 상처를 덧내기 위해서가 아닌, 봉합하기 위해서.

   ‘그 사랑이 내 죄 모두 씻었네.’

   우연히 오래된 찬송가가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고마워요.”

   “괜찮니?”

   한참을 울고 난 청년의 모습은 이제 한결 자유로워 보였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해방감의 기쁨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고뇌하던 사내는 과연 간절하게 찾던 해답을 발견했을까?

   “이제 다시 전장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어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 줄도 알 것 같아요.”

   방황이 마침내 멈춘 것인지 흔들리던 그의 눈은 고요한 평온함에 젖어 있었다. 그가 내린 대답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으로 표현될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알겠지만 적어도 기대를 걸어볼 만은 해 보였다.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구나.”

   성한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하나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짠했다. 혼돈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앞날에 새로운 축복이 얹히기를. 기쁨과 아련함이 뒤섞인 심정으로 어른은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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