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2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0. 다양한 성(性)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13 | 회차평점 0 |
Chapter 20. 다양한 성(性)
그 후로 선교팀은 네 번의 하늘도시 순회를 더 거쳤다. 네 순례자는 주님의 인도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앞길을 모른 채 섭리를 믿고 움직였다. 다음 목적지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지도 못한 채 세계들을 거듭 방문하였다.
한 세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하늘도시의 ‘개방기간’에 해당하는 한 달 남짓, 그 내부에서의 타임필드 가동률을 고려하면 실제 체감 시간으로는 두 달 남짓이었다. 그러므로 일행이 처음 출발한 시점부터 세보면 총 여섯 달, 체감 시간은 1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셈이었다.
그 세월은 고스란히 선교사들의 연륜으로 축적되었다. 루디아와 리온의 몸이 지구에서 반년을 겪는 동안 윤혁은 그사이 친구들의 두 배인 한살이라는 나이를 더 얻었다. 연대기적인 나이 곧 우주 표준 시간대를 기준으로 태어난 해로부터 계산된 나이와 존재론적 나이 곧 실제로 경험한 인생의 양을 따로 구분하다 보니 어느새 나이 계산이 복잡하게 꼬이고 말았다.
물론 자신의 기원도 모르는 스테판은 애초에 원래 나이를 세는 것조차 잊어버렸기에 나이 먹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늘도시 주민 출신이어서인지 노화 속도가 일반적인 상태와는 다르기도 했고, 노화를 억제하거나 차단하거나 역행시키는 기술에 더해 시간 압축이나 신체 동면 기술까지 존재하는 마당에 나이 계산이라는 개념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한편 카뮈네라를 떠난 이후 방문한 네 하늘도시는 제각각 독특한 개성의 문화를 지닌 곳이었다. 그곳 문화에는 지구의 여러 지역의 문화권과 유사한 형태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었다. 또한 어디에서도 좀처럼 구경해보지 못한 새로운 요소들도 녹아있었다.
외부 관리자의 간섭으로 투입된 다양한 신기술도 각 하늘도시의 문명 형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인지 반드시 마법이나 이교도 신들 같은 식은 아니더라도, 그것과 유사한 양상으로 발전한 이능력이나 초월적 요소 등이 종종 출현했다. 당연히 그것들은 현지 주민들의 세계관이나 지식만으로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들이었다.
“역시나 아직 영적, 지식적 해방을 누리기란 어렵겠지.”
씁쓸한 탄식이 나오긴 했으나 이제 리온도 이러한 컬트 문명에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깨달았다. 무작정 문화적 현상 하나하나를 뜯어고치기보다는 영적 전쟁의 정공법을 내세우자. 일일이 거짓되고 패역한 문명을 지적하고 공격하기보다는 진리의 맞불을 붙여서 의연히 대응하자. 동료들도 그 의견에 동감하였다. 그들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지구와는 전혀 다른 문명권에서도 태연히 순전한 복음만을 전파하는 요령을 체득하였다.
‘그나저나 점점 배후 간섭 기술력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여행지를 옮기며 각 세계의 문명 패턴을 차분히 분석한 결과 윤혁은 이러한 경향성을 찾아냈다. 식민지 자체의 문명 수준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외부의 간섭이 식민지의 권세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것인지 어떤 영역에서는 퇴보하는 듯한 경향도 보였다. 다만, 세계 문명의 주축을 이루는 이능력의 성질을 주의해서 보니 유용성, 범용성, 효율, 다양성이 점차 고차원적으로 높아진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식민지가 아닌, 인류연합 자체의 발전인가?’
인류의 발전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간 하늘도시 선교지 안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외부 상황에 대한 실감을 잊었을 뿐, 바깥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변화가 거듭되는 중일 것임은 자명했다. 윤혁은 팀원들과 열심히 선교하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이러한 배후 변화의 경향성을 동료들에게 언질 주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요?”
스테판이 되물었다. 이제 막 전도자 견습생이 된 스테판은 바깥 인류의 주축과 직접적인 접촉을 해보지 못했기에 이런 류의 문제에는 민감하지 못했다.
“기술력의 발전이 인류에게 위해가 된단 말이오?”
“음, 그 자체가 악이라기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 만능주의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위를 무시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능력이 영영 무력화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 세대의 믿음의 진을 쇠약하게 하는 치명성은 충분하죠.”
“그렇소?”
지구와 인류 전체의 역사에 비춰보면 윤혁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성 만능주의와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하나님을 배척 내지는 무시하게 된 중대한 계기 중 하나였다. 카뮈네라나 칼티엔뉴르처럼 비이성적, 미신적 현혹 탓이 핵심이라면 미신의 부작용만 깨우쳐주면 복음의 길을 열 수 있지만, 지구 인류의 경우처럼 인간의 힘만으로도 만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교만이 팽배해 있으면 복음의 약효가 들지 않는다.
앞으로 문호가 개방되어 우주 식민지들도 인류연합처럼 월등한 기술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면 그들도 끝내는 마음이 완악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지구의 궤적을 따르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어쩌면 정말로 우리의 소명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구나.”
현 세상의 복잡다단한 사정을 들은 루디아는 진지하게 각오하는 자세로 스스로를 향해 말했다. 처음에는 이방 세계로의 선교 여행을 망설였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이번 선택이야말로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최고의 부르심이자 결정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니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지.”
이렇게 말하는 리온의 머릿속에도 아쉬움이 맴돌았다. 윤혁 일행은 맡은 임무의 특성상 한 지역에서는 오로지 짧은 기간만 머무를 수 있다. 복음을 전한 다음에는 지체 없이 다음 세계로 옮겨야만 하는 처지이다. 물론 그렇게 빠른 순회를 감당할 일꾼도 필요하겠지만, 하나의 작은 세상에 온 힘을 쏟아 정을 붙여줄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옛적에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으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기 인생 전체를 한 지역을 위해 쏟았거늘.’
자신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지역에 진득한 기다림으로 오래 남아서 평생 주민들을 섬기며 교회를 세워주고 사역자의 직분을 물려주고 예배와 찬양을 가르쳐줄 일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남아있는 동료들과 신실한 목회자분들도 물리적으로 우리와 함께했으면 좋았으련만. 역시 무리한 바람일까?’
가용 인력의 제한은 심적인 큰 부담이었다. 추수할 곡식은 지나치게 많으나 일에 투입 가능한 농부는 지극히 적은 현실. 그러나 그 문제는 추후에 고민할 사항이었다. 일단은 눈앞의 임무에 충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을 세워 이루시려고 작정한 일의 성패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굳게 믿었기에, 일행은 마음을 금세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일꾼은 그분의 때에 보내주시겠지.’
기도하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용감히 발걸음을 뗐다.
*
선교팀의 일곱 번째 선교지가 될 하늘도시, 그곳은 두 개의 별이 쌍성을 이루는 천체 권역의 외곽부에 자리해있었다. 우주선은 하늘도시 근방에 정박 후, 곧 일행을 진입시킬 준비를 마쳤다. 순간이동을 시행하기 전에 윤혁은 따로 진에게 텔레파시를 받았다.
“몸조심하시죠. 이젠 많이 해봐서 익숙하시겠지만요.”
진의 성격상 부드러운 위로의 말이나 격려의 뉘앙스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경고에 가까웠다. 첫째로 이레귤러를 소실하거나 들키지 말 것, 둘째로 초인들이나 그 세력과 시비 붙지 않게 조심하라는 암묵적 주의였다. 약속을 나눈 윤혁으로서는 그저 그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진은 선교를 계속 진행할지 말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갑(甲)의 입장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민폐 없이 오로지 맡은 일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도 있지만…….”
진의 목소리가 조금 가늘어졌다. 그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
“이번 일곱 번째 방문은 주의하시죠. 막내 녀석의 입김이 닿아있습니다.”
“네?”
깜짝 놀란 나머지 텔레파시 도중 소리를 내어 말 할 뻔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윤혁은 조심스레 목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네, 불법적인 실험의 산물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째서…….”
이에 약간 불만스러운 뉘앙스로 윤혁이 진에게 따져 물었다. 왜 소위 그 ‘막내’라고 불리는 철인왕이 범법 행위를 수시로 일삼는데도 카이젤은 그를 방치하는 것인지, 왜 합당한 처벌을 가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은 안 되겠지만, 먼저 막내의 실력은 저와 동등한 수준입니다. 트리플 스페셜 클래스죠. 버리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인재입니다. 그리고 그는 비록 사고는 칠지언정 충성심으로 아버지께 복속되어 있습니다. 또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종종 그가 벌이는 말썽들이 인류연합 입장에서는 의외의 유익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윤리라는 제약 때문에 쉽게 시행 못 하는 일들을 대신해주는, 그럼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터주는 더러운 역할이란다. 대충 어떤 맥락인지는 이해가 갔다. 세상의 발전을 위한 세계의 뒤처리 담당 같은 것이리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여전히 윤혁은 몹시 기분이 불쾌했다.
“아무튼, 조심하시죠.”
진은 거듭 경고를 암시했다.
“그자는 거물이니 직접 마주치지는 않겠지만 그의 사소한 장난조차도 한 하늘도시 처지에서는 명운을 뒤흔드는 거대한 풍파가 되니까요. 당신들도 쉬이 그 여파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비장한 각오를 다진 윤혁. 그와 세 친구는 믿음을 품어 두려움을 내버리고 용감히 다음 세계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이전 여섯 번처럼 단거리 순간이동이 순탄히 작동하였다. 넷의 몸체와 화물은 세계 내부에 안착했다.
한편 머나먼 곳에서 데이터를 점검하며 연구를 하던 진은 조금 전에 넷을 내보낸 하늘도시로부터 특이 사항 하나를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멈칫했다. 그는 마시던 음료를 내려놓았다. 늘 여유로웠던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세상에, 이걸 방심했다니. 아니,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나?
“곤란하네. 하필 ‘그분’이 저곳에 와 계시다니.”
아버지께서 몇 번이나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던 요주 인물 중 하나.
“하필 그녀의 속성은 저 넷과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인데 말이지.”
드디어 그 건방진 강윤혁도 제대로 된 강적을 만나겠구나. 이것을 통쾌해해야 할지 곤란해해야 할지 진으로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부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 않기를, 그리하여 나비 효과로 인해 화근이나 곤경이 자신에게 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일행이 당도한 하늘도시 속 세계는 그 지역 토속 언어로는 ‘다이버스트’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다이버스트에는 두 대륙이 있었는데 하나는 크기가 작았고 하나는 컸다. 모종의 이유로 두 대륙 사이에는 소통이 없었다.
선교팀이 먼저 착륙한 곳은 작은 대륙 쪽으로 ‘알즈바툴’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곳의 진보 수준은 지구 역사에 대응하면 21세기 초반과 대강 맞먹는 수준이었다. 대륙을 에워 감싸는 결계 때문에 안쪽에서 우주를 관측하거나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 이외의 방면에서는 높은 경지의 발전을 이룩한 문명이었다. 계몽 상태 또한 나쁘지 않았다. 외부에서 온 ‘기이한 기술’ 요소가 아예 없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미신적으로 신봉하는 것도 아니었다.
“증조할아버지 시절의 한국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윤혁의 중얼거림에 리온이 되물었다.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시절은 또 어떻게 기억하는데?”
“박물관도 있고, 옛 향수와 흔적을 머금은 지역들도 있거든.”
“그래?”
‘옛 흔적이 남아있는 국가라, 참 좋은 곳이구나.’
리온은 은근 부러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참고로 이스라엘이나 리온의 고향인 이집트를 포함한 근동 최 중앙 영역은 인류연합조차 잘 돌아보지 않는 문명 낙후 지역으로 섹터 배정조차 되지 않은 처지였다. 과거 혼돈의 시대 때는 실상 폐허가 되었었고 이번 세기 초까지도 거듭 분쟁에 휘말린 곳이다 보니 보존 상태가 가장 형편없었던 탓이었다.
여하튼 선교팀은 알즈바툴의 도시 번화가를 위주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근현대 지구에 가까운 문명 형태여서 그런지 전에 다니던 곳들보다는 이성적인 사고능력이 발달한 문화권이었는데, 덕분에 ‘세계 바깥’이나 인류의 고향 ‘지구’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하기는 더 쉬웠다. 혹시나 도처에 깔려있을지 모를 인류연합의 감시 때문에 노골적인 폭로는 불가능했지만, 대강 지구와 그곳의 역사,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인류 구원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일련의 과정 정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팀원의 수가 하나 늘어났기에 이번에는 둘씩 짝을 지어 움직이는 식으로 행동강령을 정했다. 본체로서의 몸을 지닌 사람 하나에 인형 몸체로 움직이는 한 명이 2인 1조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팀 조합은 주기적으로 바꿨다. 인원 넷 모두가 골고루 신뢰를 쌓기 위함이었다.
여행하면서 차차 깨닫게 된 바이지만 다이버스트라는 세계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었다. 어느 의미에서 그 두 특징은 서로 연결된 것이기도 했으나 하나는 장점으로, 다른 하나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장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그 지역 사람들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포용하려는 성향이 무척이나 강했다. 해당 세계에서는 들려진 바가 없어 사뭇 이질적일 가능성이 큰 교훈인 성경과 복음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무작정 염증을 일으키거나 배척하기보다는 대개 흥미를 갖고 경청해주었다.
그러나 흥미를 드러낸다는 것이 진리를 믿고 회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이계인이 설파하는 낯선 교훈에 귀를 기울였지만, 결국 대다수는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둥 돌아섰다. 무관심이나 핍박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씁쓸하긴 했다.
“느낌이 좀 이상하지?”
리온은 이러한 패턴의 태도 속에서 위화감을 발견했다.
“그래.”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감이 좋지 않아.”
그 낌새의 정체, 곧 다이버스트의 다른 하나의 특징인 ‘치명적인 단점’의 정확한 정체와 본질을 깨닫고 밝혀내는 데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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