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2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0. 다양한 성(性)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2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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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알즈바툴에도 회심한 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전도 여행 도중에 루디아가 한 친절한 여인과 만나 친해졌는데, 덕분에 윤혁과 루디아는 그 여인의 집에 며칠 머물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그녀의 처소 곁에 임시 숙박 거처를 마련했다. 그 여인은 영리한 사회 운동가였는데 불의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성별을 초월한 자유로움을 지향했다.
서로를 헐뜯는 소모적이고 맹렬한 논쟁을 원치 않았던 윤혁은 그 여인, 리베라에게 성경만을 선물로 남겼다. 공격적인 전도나 미혹에 대한 지적은 따로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리베라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가르침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녀는 그녀가 믿던 ‘자유’라는 도덕관과는 조금 다른 관점의 ‘자유’를 성경이 제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그녀는 일행과 더불어 공부하기를 원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당신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루디아와 윤혁에게 정중히 요청했다.
“어머, 물론이에요.”
“힘에 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처음에는 리베라도 성경을 인정하기보다는 꺾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다. 그녀는 강압적이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선입견 가득한 이 종교 서적보다는 자신의 철학이 훨씬 더 올바르다는 믿음이 굳건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안고 성경을 정식 탐구하기 시작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자신만만함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특별히 로마서를 접하면서부터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온 가치관이 어쩌면 모래 위에 쌓은 허점투성이 탑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였다.
그녀는 내면의 양심이 주는 그 지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반론을 추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다 보니 더욱 성경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잣대를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정작 성경은 그녀가 지닌 죄의 본성과 그릇된 사고방식, 그리고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허술한 도덕관을 고발했다. 깊게 상고할수록 이는 더욱 명명백백해졌다.
그래서 참다못한 그녀는 방문자들에게 토론을 요청했다. 윤혁과 루디아는 리베라의 부탁을 친히 들어주었다. 그녀가 묻는 질문에 친절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질문자가 스스로 고민해서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롭게 답해주었다. 이러한 배려 어린 태도와 뚜렷한 신념은 리베라를 더욱 고민에 빠트렸다.
‘저분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본능적으로 느껴져. 하지만 아직은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정신적 기틀을 송두리째 깨트리는 과정이란 참으로 거대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가치와 이상적인 자아상을 모조리 무너뜨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가루가 되도록 깨부수는 작업이었다.
윤혁 팀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촉박한 시간 탓에 그들은 리베라가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을 듣지는 못했다. 다른 지역에도 서둘러 복음을 전파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들을 여유롭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리베라는 그들이 떠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의 우상과 성경의 가르침을 두고 저울질을 하였다.
좀 더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하늘도시 내부 기준 2년이 더 지난 뒤에서야 그 치열한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그날 리베라는 절대자 앞에 항복했다. 알즈바툴이라는 작은 세계가 믿어온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자유의 권리’가 실상은 허상 위에 세워진 거짓 미혹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단지 ‘성 문화’라는 이슈 하나만이 그녀가 깨트린 장벽의 전부는 아니었다. 리베라는 지금껏 그녀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향하는 여정을 방해했던 수많은 방해물을 부수었다. 그녀는 그 탓에 많은 친구와 결별해야 했다. 그녀는 즐기던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해야 했다. 피눈물을 동반하는 절제 수술이었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재산과 보화를 모두 팔아서라도 꼭 얻어야 할 값진 보화가 묻힌 밭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없이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이 자기 삶의 본질. 그 현실이 명백하게 보였다.
그 후, 그녀는 핍박과 모욕과 조롱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하였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해 전파하는 소명을 맡게 되었다. 윤혁 일행은 이 기쁜 일을 전혀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 한켠에서는 명확하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망의 징조가 물에 젖듯 스며들었다. 여행이 다 종료된 이후로도 그들은 리베라라는 이름의 멋진 여인과의 짧은 만남을 떠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평안과 희망에 젖었다. 어쩌면 그 감각은 성령께서 주신 기쁨의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
한편 리온은 알즈바툴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과 진리만을 전했다. 물론 그도 영혼 구원이 일개 도덕적 죄악의 뉘우침보다 우선시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죄에 대한 깨우침은 분명히 주어야 했다.
“무슨 말이든 겁내지 말고 전하시오. 내가 곁에서 굳게 지켜주겠소.”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디 무력 충돌 없이 끝내길 바랍니다.”
“알겠소.”
스테판이 설교하는 리온 곁에서 그를 지켜주겠다고 선언했다. 문화권의 색깔이 색깔인 만큼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온도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색채의 설교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죄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참 진리를 깨우쳐주는 일을 게을리하거나 방만히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발맞춰 사람들의 도덕관을 수정해야 했다.
“지금부터 조금 두려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에게 이 일이 닥치지 않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당신들이 구원을 받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는 많은 이들이 듣는 가운데 당당히 선언을 시작했다. 일부러 대중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드넓은 광장 한복판에 서서 외쳤다. 시작은 성경 속 인물이자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러분들의 조상인 고대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고향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옛날,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 중동 지방에 한 족장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 그는 절대자의 명령을 받아 고향 땅의 우상 숭배를 버리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절대자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매우 소중한 약속’을 하셨거든요.”
그 약속이란 바로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되리라] 라는 선언이었다. 리온은 그 천하만민 중에 지금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도 역시 포함된다고 선언했다. 원래 복 받는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리온에게 몰렸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 곁에서는 아내와 종들, 그리고 조카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행과 조카 롯의 일행은 종들끼리의 영역 다툼 때문에 서로 갈리게 되었죠.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나그네로 머물렀지만, 롯은 ‘소돔’이라는 풍요로운 지방에 내려갔죠.”
슬프게도 이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소돔 땅은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온갖 다양한 죄가 성행했다. 절대자께서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두 명의 천사를 파견하였다. 조카를 걱정한 아브라함의 간곡한 간구 덕분에 의인이 열 명만 있었어도 파멸까지는 면했으련만, 그 열 명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던 죄악의 도시. 심지어 천사가 재앙을 내리러 찾아왔을 때 소돔 사람들은 천사를 강간하려고까지 시도했다. 그들은 이미 성적 범죄에 심각히 물들어 있었기에 돌이키거나 회개할 방도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강간이기에 죄인 것 아니오?”
혹자가 반문했다.
“강제적인 범함만이 성범죄의 전부가 아닙니다. 상호 합의 하에 성적으로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 역시도 심각한 죄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인간 남자와 인간 여자만을 창조했건만, 소돔 사람들은 그분의 법을 우습게 판단하고 자기 잣대로 도덕관을 바꾸었습니다.”
성적인 죄만이 그들의 죄목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그 죄목이 심각한 결정타를 입혔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소돔을 포함한 몇몇 도시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과 유황으로 완전히 파멸했다.
“아니, 무슨 그런 잔인한 학살자 신이 어디 있소!”
“신이라는 자가 어찌 그리 무자비하단 말이오?”
곳곳에서 파문이 쏟아져나왔으나 리온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학살자가 아닙니다. 공의로운 판결이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를 향해서는 늘 지극히 올바르고 정당한 대가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가혹해 보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죄에 찌든 우리의 이성과 죄로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일 뿐입니다.”
리온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철저한 죄인임을 선포했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소돔 사람만이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섭고 불편한 진실이건만 그는 밝히기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소돔의 심판은 육체적 파멸로 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심판의 끝이 아닙니다. 장차 모든 인간은 하나하나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삶을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고작 그 정도 형벌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불편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괴로운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명 때문에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아주 분명하게 선고했다. 인간이 이 끔찍한 죄에서 구원받고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그 죄를 대신 기꺼이 짊어진 창조주의 희생을 믿는 것임을. 그 이외에는 어떤 고상하고 선량해 보이는 방법도 인간의 무한한 죄를 씻을 길이 될 수 없음을 선언했다.
즉시 술렁이는 소리와 비난의 시선, 두려움과 비웃음이 교차하는 광경이 임했다. 이미 그런 반응에는 익숙했다. 이미 지구와 여섯 하늘도시를 순회하며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파해왔고 그때마다 반발하는 반응은 지겹게 겪어왔다. 숱한 고난을 극복해왔기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괜찮소?”
지쳐 보이는 리온을 옆에서 스테판이 부축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폭동의 위기에 처할 것 같소.”
“인형 몸체라서 제 몸은 괜찮아요. 스테판 씨야말로 조심하셔요.”
“난 탈출 경험이 많으니 괜찮소. 당신이야말로 힘들어 보이오. 정신력을 꽤 소모한 것 같소. 아마도 그만큼 애타는 심정이었겠지. 이제는 나머지 부분은 그만 나에게 맡기시오.”
곳곳에 선포된 당당한 설교는 끝내 나비 효과를 유발했다.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이 인내심을 잃고 리온을 때려죽이려 광장에 몰려왔다. 그중에는 수문장 출신도 있었고 강력한 이능력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 리온이 쓰는 신체는 실제 몸이 아닌 인형 몸이었고 스테판에게는 여러 세계를 교차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있었다.
“잠시 무기 좀 빌리겠소.”
리온이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내자 스테판은 리온의 인형 팔 일부를 나노 단위로 해체하여 자신의 팔에 감았다. 그는 그 장비로 실드를 발동시켜 폭력의 손길이 설교자를 해하지 못하도록 군중을 제어하였다.
“진리의 수호자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소. 만약 정 싸우고 싶다면 정정당당하게 토론과 논리를 통해서 다가오도록 하시오. 대화는 얼마든지 받겠소. 당신들이 설득되든 않든 상관없소.”
백전노장 같은 스테판의 노련함에 사람들의 기세가 죽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진지한 마음으로 토론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스스로 결론을 내린 채 그것만을 붙들었기에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갈 틈새는 전무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스테판의 경호는 리온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둘은 좋은 팀이 되어 죄의 회개를 촉구하며 돌아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두 파수꾼의 영혼은 날마다 빛을 누리며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있었다.
이렇듯 외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사람들로부터 그리 좋은 열매를 수확하지 못했지만, 네 사람은 알즈바툴에서 다양한 고난을 통해 단련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이를 위안으로 삼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받긴 했으나 어쨌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는 제대로 마쳤다.
‘전화위복으로 생각하자.’
그들은 그렇게 다짐했다. 아마 이다음부터는 그 어떤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세태를 마주해도 지금보다는 충격이 덜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렇게 믿으며 소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장 조만간 찾아갈 인근의 큰 대륙에만 해도 훨씬 더 강력하고 위협적인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또한 그들은 곧 마주하게 될 역사적이고 경이로운 거대한 위협에 관해서는 아예 그 존재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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