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2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2. 티아라 로페즈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2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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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점 -
세 일행은 정원에 놓인 탁자에 앉은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사제 간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이미 리온에게서 과거 이야기를 대강 들었던 루디아와 윤혁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사부’라는 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단순히 뛰어난 인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려 저런 거물이었을 줄이야.’
윤혁의 부모님 같은 이전 세대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세대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성녀’는 위인전에나 나올법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다만, 현재의 티아라를 보고 성녀인 줄 알아차리는 이는 적었다. 당장 오늘 윤혁도 못 알아봤듯. 일단 티아라 로페즈라는 본명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 컸다. 또한 그녀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은 십대 초반이었기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외양과 지금의 완숙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은 차이가 제법 컸다.
‘미디어에 기록된 예전 모습은 순결하고 순수해 보이는 미소녀 같다면 지금은 찬란한 여신 같달까?’
첫인상으로 느낀 바는 그러했다.
한편 루디아도 이 뜻밖의 대면에 적잖이 긴장했다. 그녀의 민족인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성녀는 제법 존재감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루디아가 일곱 살일 무렵, 이스라엘 본국에서는 예슈아를 믿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대거 추방되어 난민 신세가 되었는데 이때 그들이 성녀의 선행으로 인한 혜택을 자주 입었던 바가 있었다. 루디아 본인이야 티아라와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지만, 어른들에게 간간이 그 이름을 들어보긴 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느낌이 기억나오.”
처음 보는 데도 스테판은 성녀를 이렇게 평가했다.
“동감.”
“저도 그래요.”
윤혁과 루디아가 동시에 대답하였고 셋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티아라가 내뿜는 비범한 기운과 현자다운 우아함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우러러보도록 만드는 만유인력이 있었다. 신화 속 날개 달린 자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그 뜨거운 불에 흔적도 없이 타 없어졌듯, 보통 사람이었다면 티아라의 지혜와 아름다움과 매력에 이끌려 마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자리에 모인 셋은 전부 티아라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존재감을 마주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혹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리온과 그의 사부는 테이블에 앉은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리온은 온전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티아라는 몹시 여유롭고 우아한 자태였다. 티아라가 뭔가 수작이나 기술력을 사용했는지 투명한 보호막이 둘을 감싸고 있었다. 소리조차 전혀 새어 나가지 않았다. 입을 움직이는 패턴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낸 모양이에요.”
“질문이 있습니다, 사부.”
“말해보세요.”
리온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용기를 끄집어냈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시죠.”
적잖은 용기와 결단력을 요구하는 직면. 티아라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도 그날의 충격이 리온의 뇌리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중이었다. 이것이 그녀에 관련된 모든 추억들이 무거운 고통과 불길함으로 점철된 이유였다.
과거의 그 시절, 티아라는 마라크의 집을 찾아가기 한 달도 더 이전에 암묵적으로 방문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에 한 달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리온과 마라크와 연락을 끊었다. 그런 연락 두절의 상황에서 그녀가 찾아가기로 했던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났으니 리온으로서는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그 일에 대해서는 나도 깊은 유감이에요.”
그녀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조의를 표했으나 리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부가 그때 그 일과 관련이 있었습니까?”
“흠,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정직하게 말씀해주시죠.”
티아라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동행 중인 한국인 친구도 같이 듣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윤혁에게 손짓해서 그를 안쪽으로 불러들였다.
“반가워요.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티아라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윤혁은 묵묵하고 정중하게 성녀에게 인사하였다.
“강윤혁 씨라고 하셨죠. 이복형제와는 잘 지내시는지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뜨끔한 질문이었다.
“호호, 귀여워라. 형을 대하기가 좀 어렵나 보네요?”
“……그건 그렇습니다.”
윤혁은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친구가 원래 좀 그래요. 동생분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줘요.”
“저를 불러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옆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리온을 의식한 윤혁은 티아라에게 은연중 경계심을 드러내며 대화의 방향을 본론으로 직행시켰다. 이에 티아라의 웃음기가 서서히 옅어졌다. 그녀는 조금 진중히, 그러나 온화하게 담화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그러니까 지구의 우주 표준 시간을 기준으로 9년 전 시점에 중대한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강윤혁 씨 형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긴 한데, 저 역시도 그 일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었죠.”
두 청년은 숨을 죽인 채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당시의 그는 인류연합의 대표로 군림하였죠. 이미 세계 전체를 자기 발밑에 통합시킨 지 몇 년이었어요. 나아가 온 은하계를 정복하는 사업에 한창 집중하던 차였죠. 그렇게 자기 제국을 넓혀나가던 그를 질투했던 옛 친구들이……, 그를 해칠 궁리를 했어요. 매우 기발한 발상을 펼쳤죠. 나름 성공까지 갔고요.”
순간적으로 윤혁은 형의 몸에 남아 있었던 흉측한 상처를 떠올렸다. 그때 형의 얼굴에는 깊은 좌절감과 뿌리 깊은 수치심이 잔뜩 묻어있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 굉장한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었으리라. 그날의 정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윤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다섯 중 두 친구가 그 일의 주동자였어요.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책략을 둘이서 긴 시간 비밀리에 꾸며왔죠. 그때 연루되었던 수단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예요.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나머지 둘도 교묘하게 그들에게 속는 바람에 그 음모에 연루되고 말았죠.”
물론 티아라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그녀는 음모 주동자의 진짜 꿍꿍이를 파악하지는 못했었다. 단지 그 계획을 카이젤의 독재와 폭주를 적당히 견제하려는 계획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그녀와 다른 한 명의 조력자는 간접적으로 주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야 말았다. 속았다고 표현해야 옳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세계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무모한 음모를 꾸몄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그 진상을 깨닫자마자 저와 제 친구는 즉각 음모에서 손을 떼고 일을 수습하려 시도했죠.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진 상태였죠.”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주동자들이 당장 카이젤을 처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를 살려둔 상태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 했던 것 같았다. 그 진정한 의도는 티아라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현실의 전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은 주동자들의 뜻과는 다소 괴리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때 당시의 저는 이미 타의에 의해 음모에 얽매인 상태였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던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오래된 시대의 조율자께서 저와 제 친구의 처지를 생각해 외교를 통해 정황을 조절해주셨죠.”
티아라는 윤혁에게 힐긋 눈짓하였다. 이에 윤혁은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분이 에드레이 테일란드 씨입니까?”
윤혁이 대화에 참견하자 리온도 그 이름을 듣고 움찔하였다.
“맞아요. א(알레프) 노인은 2세대 시절부터 무대 뒤쪽에서 초인 세계를 감시해왔죠. 고맙게도 노인께서는 곤경에 빠진 저와 제 친구에게 선뜻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구조라면?”
“당시 당신의 형님을 대신해 연합을 지휘하던 인류연합 부대표와 주요 간부들, 그들과 제가 평화적으로 거래하도록 간접적 기회를 터주셨죠. 그분은 기꺼이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하여 위험한 외교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셨어요.”
대체 어르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업을 맡으셨던 것일까? 몹시 궁금하긴 했으나 티아라는 자세한 설은 풀지 않았다. 아마 정치적, 전략적 정황이 극도로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일테니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건 윤혁은 다시금 발견한 어르신의 또다른 공로에 깊은 경의를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위험 가운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죠. 주동자 둘이 아직 활보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들은 작전이 처음 계략과 많이 어긋난 전개로 흐르자 ‘늦기 전에 인류연합을 붕괴시키자’라는 작정 하에 행동했어요. 결국 언제든 물밑 전투가 전면전으로 터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고야 말았죠.”
‘하마터면 그때 인류가 사라질 뻔했네.’
윤혁의 목 뒤로 식은땀이 맺혔다.
“두 주동자는 이 일에 연루되었던 저를 죽이려고 시도했어요. 당시 정황이 너무 복잡한지라 이유를 일일이 설명해 드리기는 어려워요. 다만, 저를 붙잡거나 제거하는 일이 양쪽 진영 모두의 전략적 포인트였다는 점은 확실해요.”
그러나 그렇게 당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태가 벌어진 그 당시 티아라가 죽임당하거나 납치당하는 일은 곧장 대전쟁의 발발로까지 이어지고도 남을 큰 전략적 불확정성 요소였다. 그녀로서는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공공복리의 이유 때문에라도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반란자들에게 당신을 해할 수단이 있었습니까?”
“인류연합의 비밀 무기 중 하나가 두 주동자의 손에 탈취되었거든요. 자율적으로 암살 대상의 위치를 추적해 공간적 경로를 무시하고 해당 위치에 즉각 피격을 시행할 수 있는 병기였죠.”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네, 물론 인류연합 측에는 그 무기에 대한 방비책과 방어 수단이 있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들에게 몸을 위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거듭 말하지만, 전략상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었거든요.”
연합과 반역 주동자들은 기약 없는 치킨 게임을 벌이는 중이었다. 티아라는 그 일촉즉발의 상황 한가운데 끼인 난처한 신세였다. 납치된 카이젤을 구해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열쇠가 그녀의 본신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죄 주동자들이 그녀를 찾아낸다면 연합 측은 십중팔구 무력을 동반해 대응했을 것이다.
반대로 연합 측이 그녀를 발견하는 시나리오에도 위험성은 있었다. 범죄 주동자들이 탈취한 그 비밀 무기에는 표적의 존재 확률을 관측하여 해당 위치를 정밀 피격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물론 연합 측에는 그 무기의 작동을 무력화하는 광역 방어 장비가 있었으나, 문제는 티아라가 연합에 노출되는 타이밍이었다. 그 위기의 순간을 넘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공격 병기와 방어 장비, 둘의 기동 원리는 제가 잘 알아요. 설계 과정에서 관여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둘 다 비슷한 방식, 그러니까 확률 관측을 활용하죠. 그런데 미묘하게 기동 순서와 메커니즘에서 차이를 보이죠.”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었으나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티아라가 만약 자신의 위치를 인류연합 측에 미리 직접 노출하면 바로 그 짧은 최초 노출의 순간이 ‘무한한 리스크’의 지점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방어 장비의 가동이 공격 장비의 가동보다 앞설 가능성이 없었다.
연합 측에 의해 그녀의 신변이 강제로 노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 99% 이상의 필연적 확률로 그녀의 피살이 예측되었다. 그 뒤로는 곧장 예측 불허의 난전이 이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연합 간부 중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하는 ‘확률왕(確律王)’과 원격 접촉해 가까스로 비밀리에 거래를 성사시켰죠. 그 사람은 인류연합 소속이었지만 그때는 공공과는 별도로 개인행동도 병행하고 있었죠. 그는 융통성을 크게 발휘해서 연합의 뜻과는 별개로 나를 숨겨줄 방법을 마련해주었어요.”
그 도움을 통해 그녀가 세운 대응책이란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양자적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기술 전략이었다. 그녀는 여러 분야의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흡사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수많은 확률이 중첩된 ‘기현상적 양자 실체’로 화하게끔 했다.
“한 마디로 양자 차원, 양자적 세계의 그늘 속에 몸을 숨겼죠.”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 활동 기록, 행적, 자취에 대해서까지도 양자적 불확실성을 덧입혔다. 별의 머나먼 과거 시점 모습이 현재 눈에 닿는 오래된 별빛 속에 녹아있듯, 그녀의 과거 자취도 정보화되어 엄연히 현세를 떠도는 법. 별의 옛 모습을 담은 별빛과 현재의 별이 존재적으로 연속성을 이루듯, 그녀의 옛 자취와 현 존재 역시 존재적 연속체다. 광속과 시공 한계를 초월해 확률 자체를 피격하는 그 공격 병기라면 언제든 티아라의 과거 자취를 실마리로 삼아 표적 자체인 현재의 그녀를 공격할 힘이 있었다.
“철저히 은신하기 위해 해당 시점으로부터 몇 달 이내의 제 정보 흔적마저 은폐했죠. 사실 그 수법은 당시의 저로서도 엄청난 도박이었어요. 그 당시의 미약한 인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성공 확률이 낮았거든요. 강윤혁 군의 형님이라면 쉽게 해냈겠지만, 알다시피 그때의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죠.”
모든 설명을 들은 윤혁은 몹시 당황했다.
“그,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겁니까?”
무려 9년 전에 그런 위업이 가능했다고?
“어머, 오늘날 확률 실체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생각해보시면 금방 감이 올 거에요. 당시에도 그 시초 기술 정도는 있었답니다. 물론 제가 쓰려던 전략을 현실화하려면 극도의 연산 능력과 별도의 기발한 지혜가 필요했죠. 기술적 자원의 존재와는 별개의 문제였죠.”
어쨌건 그녀가 살아남아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우여곡절 끝에 성공시키긴 했다는 뜻 아닌가? 아무리 비밀리에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대단한 일임은 분명했다. 두 청년은 티아라가 보유한 초지능의 두려운 위세를 실감하였다.
“그래서였어.”
대답 없이 듣고만 있던 리온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당신이 자취를 잃었던 거였어.”
티아라는 살며시 눈을 감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미안해요, 리온.”
“확률 피격…, 그 무기의 영향으로 마라크의 집이 불탄 겁니까?”
“결론만 말하면, 그 무기의 여파는 맞아요.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리온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구겨졌다.
“확률 피격 병기의 뇌수(腦髓)는 끝내 저의 존재를 감지하는 데 실패했어요. 그래서 병기는 차선책으로 제 과거 기록과 신호를 기반으로 저의 현재 위치를 역산하여 탐지하려 했죠. 하지만 그 또한 제가 미리 제 과거 기록을 양자역학적으로 조작했기에 불가능했어요.”
확률 피격 병기의 능력의 폭을 고려할 때 대략 한 달 이내의 흔적만 온전히 지우는 데 성공했다면 이론적으로 티아라의 추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걸린 실수가 몇 있었으니, 이것이 불행의 단초가 되었다.
“아무리 저라도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정보 자취를 완벽히 감추기란 불가능. 확률 병기는 끝내 단서 몇몇을 찾아냈어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저와 마라크의 가족이 세웠던 식사 약속이었죠.”
성녀의 처지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발각된 정보 자취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정보였기에 양자역학적인 추적 효과가 미미했다. 실상 그녀를 향한 정확한 핀포인트 공격으로 나아가기에는 무리였다. 가뜩이나 스스로를 안전하게 확률 세계 속에 백업해둔 그녀는 손쉽게 자신을 향한 위협을 흘려낼 수 있었다.
결국, 몇 차례의 피격은 모두 불발탄으로 끝났고 그 위력은 원래의 성능에 전혀 미치지 못한 미약한 폭발에서 멈췄다. 그나마도 폭발 에너지 대부분은 숨겨진 차원으로 흡수되어 현세에서의 파괴는 최소화되었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도 가난하고 낙후된 가정집이 일순간 화재에 삼켜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티아라를 치지 못한 불발탄의 작은 불씨는 그녀의 정보 자취와 맞닿았던 억울한 희생자들을 집어삼켰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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