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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3. 내기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01 | 회차평점 0 0

 

 

 

 

Chapter 23. 내기

 

 

 

 

 

   리온의 염려는 적중했다. 윤혁 일행은 티아라의 마수에서 결코 쉬이 벗어날 수 없었다. 단신으로 최상위 초인 여럿을 현혹해 원하는 것을 얻어냈었던 위인인 티아라에게 애당초 평범한 일반인 넷 정도는 가찮은 상대였다. 그녀는 원격으로 텔레파시를 통해 선교사들의 머릿속에 끝없이 속삭였다. 그 침범에는 모든 회피책이 무용지물이었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의식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었다. 끝내 윤혁과 리온은 참다못해 그녀에게 반 항복 식으로 대답했다.

   “동행하는 것을 허락할 테니 적당히 하시죠.”

   어차피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 마당에 체념이 들었다.

   “어머, 진작 그러실 것이지.”

   티아라는 다시금 오프라인으로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여러분과 나누고픈 이야기가 정말로 많답니다.”

   ‘몹시 피곤한 상대다.’

   일행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같은 생각이었다.

   “몹시 피곤한 상대라는 생각을 품고 계시는군요.” 

   진에게 호되게 독심술로 당했던 윤혁은 불쾌한 추억이 들었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역시나 저 여자도 비슷한 능력 내지는 기술력을 소유한 것인가. 가뜩이나 영악한 여인인데 기술력까지, 한층 더 골치가 아파졌다.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싱긋싱긋 웃는 예쁜 미소가 저렇게까지 거슬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처음 깨달았다.

   “그래도 무서워하지는 마세요. 제게는 ‘현자의 눈’과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혜택은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졌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인류연합 측에서 주시하는 인물이라 활동 범위와 능력에 큰 제약이 걸려 있답니다.”

   솔직히 그게 더 두렵게 느껴졌다. 생명공학이나 통신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순전히 심리학적 통찰력과 관찰력만으로 저런 경악스러운 수준의 독심술을 보인다는 뜻이 아닌가.

   윤혁이 긴장하건 말건 성녀는 자연스레 탐정 놀음에 들어갔다.

   “그나저나 리온이 굳이 우주 식민지 국경선을 넘어서 이곳까지 올 줄이야. 게다가 저기 저 어린 아가씨는 시민권을 잃은 야곱 족속 출신이군요. 거기다 저분은 식민지 출신인데 표식의 힘을 깨트렸군요. 이레귤러이려나요? 참으로 특이하기 그지없는 조합이네요.”

   성녀가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없이 술술 선교팀의 신상을 파악하자 이제 루디아와 스테판마저도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흡사 헐벗겨진 상태로 외계인들의 실험대 위에 놓여 해부당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윤혁 씨는 아마도 특별대우를 받은 모양이군요. 무리도 아니에요. 형이 최고 권력자이니까요.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손에 허락되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열정적인 태도는 칭찬해드릴게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겁니까?”

   윤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호호, 까칠하셔라. 나도 우리 귀여운 강윤혁 씨와 비슷한 경우에요. 인류가 건설한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영토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권한을 받았죠.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그의 입장에서는 꽤 유용한 존재이거든요.”

   “그러면 왜 인류연합에 복종하지 않고 단독으로 활동하는 거죠?”

   “음, 그들에 대한 충성은 나의 아름다운 철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서요. 난 무정부주의자들도 싫어하고 전제 정권도 싫어해요. 독립투쟁도 질색이죠. 게다가 나는 정치인이 아니에요. 소유물이 많아지면 욕망에 휘말리기 마련인걸요.”

   입에 발린 부드러운 소리가 몹시도 달콤했다. 리온은 어제 말한 주의점을 상기시키고자 윤혁에게 경고의 눈빛을 던지며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애초에 리온에게 있어서 티아라는 경계의 대상. ‘사부’라고 부르는 것도 존경의 표시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반어법에 가까웠다. 게다가 땅에 있는 자를 랍비로 모시지 말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 않은가. 윤혁은 리온이 티아라라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언어적 표현만으로도 대강 눈치챘다.

   그러든 말든 티아라는 윤혁에게 말 걸기를 쉬지 않았다.

   “나는 평화의 사도랍니다. 내 임무는 인간이나 인간에 준하는 급수의 지성체들이 서로 분쟁하지 않고 화합하도록 이끄는 일이에요. 인간은 유사 이래로 종교, 철학, 정치, 사상 등 여러 이유를 내세워 늘 서로를 헐뜯어왔죠. 그 어리석음을 잠재우는 것이 위대한 인간, 곧 초인들이 맡아야 할 참된 사명이랍니다.”

   “잘도 평화 같은 헛소리를…….”

   불평스레 리온이 내뱉었으나 그녀는 싹 무시한 채 윤혁만을 바라보았다.

   “당신인가요, 강윤혁 군?”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들을 이런 타지까지 이끌고 온 선동자 말이에요. 하기야 형의 권한을 빌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모험이었을 테죠. 아마 그 목적은…….”

   티아라는 살짝 뜸 들이는 척하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당신들의 신념을 전파하는 일이겠죠? 복음주의자들의 선교 활동, 오래전에 종식되었던 그 실패된 일을 이곳에서 다시 도전해보려는 건가요.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버린 지구에서는 이미 도무지 설득을 먹혀들게 만들 능력도 자신도 없으니까 조금 만만해 보이는 곳, 기독교가 전혀 전파되지 않은 탓에 면역이 없는 블루오션을 노려본 거죠?”

   “말조심하세요, 사부. 윤혁 너도 저 여자 말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

   리온이 재차 만류하였다.

   “후후, 귀엽게 구는군요. 사랑하는 제자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당신들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의 매로써 꾸짖어줄 필요가 있겠어요.”

   티아라의 뼈 실린 발언에 윤혁과 리온은 물론 루디아와 스테판까지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는 온유했으나 흡사 위협의 태도로 다가왔다. 스테판이 친구들을 자신 뒤에 세운 채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나, 이레귤러?”

   “도를 넘었소, 여인이여.”

   그러나 체격 차이에도 티아라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음, 제가 지금 당장 인류연합 간부들에게 이레귤러 관련 소식을 흘린다면 어떻게 되려나요? 특별히 강윤혁 씨네 형에게는 지금이라도 당장 말할 수 있는데. 다행히 나는 인류연합 편은 아니라서 못 본 척 봐줄 수도 있긴 해요. 뭐, 당신들 하기에 나름이겠지만요.”

   성녀는 여유롭게 받아치며 스테판을 은근히 협박하였다. 윤혁은 사태가 곤란하고 복잡하게 흐르자 이를 악물었다. 진과 굴욕적인 거래까지 해서 겨우 스테판이 자유롭게 선교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이 시점에 성녀가 끼어들어 판을 흔들어놓으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으리라.

   “스테판 씨, 감사하지만 이번만큼은 몸을 아껴주세요.”

   “미안하오.”

   스테판은 윤혁의 뜻에 잠잠히 수긍했다. 이제 리온과 윤혁은 꼼짝없이 티아라와의 대결을 감당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애당초 그녀는 그 둘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든 전개가 그녀가 바라는 방향으로 흐르는 중이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대체 왜 우리의 선교 활동을 훼방하시는 거죠?”

   “호호, 방해라뇨. 오해에요. 제가 왜 당신들의 하찮은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겠어요. 리온도 제 방식을 알잖아요. 저는 체벌을 할 때 결코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답니다. 실력 격차를 인지시켜줌으로써 제자들 스스로 겸손해지도록 만들 뿐이죠.”

   실제로 그 지독한 수법에 자주 당해왔던 리온은 어린 시절의 불쾌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는지 표정이 뻣뻣해졌다. 그녀에게 당하는 감각이란 세상의 핍박이나 괴롭힘을 감당하는 것보다도 더 버거운 짐이었다.

   “우선 찻집에서 앉아서 조용히 담화나 나누도록 해요.”

   제안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 어서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네 일행은 그녀에게 이끌려갔다.

 

 

 

 

 

 

*

 

 

 

   먼저 티아라는 종교에 관한 토론을 꺼냈다. 복음주의자들을 일거에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시작은 가벼운 주제였으나 차츰 깊이 있는 신학적 논제들이 하나하나 튀어나왔다. 불행히도 넷이서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맞상대할 수 없을 만큼 티아라의 지식과 지혜와 언변은 탁월했다.

   “인류 역사상 벌어졌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궁극적 진리로 향하는 통로를 오직 하나의 길로만 규정하려 했던 배타적이고 옹졸한 시도랍니다.”

   그 발언에 발끈하려는 친구들을 리온은 손짓으로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되도록 말려들지 말아라. 논쟁으로 무참히 짓밟히는 일은 자기 혼자서만 감당해도 된다. 어차피 승리하지 못할 싸움이라면 친구들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아무리 토론해도 평행선만 그릴 것이 뻔하지.’

   과연 예상대로 피곤한 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난 당신들의 종교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겉으로는 각기 달라 보이는 사상들도 구도(求道)의 자세로 꾸준히 정진한다면, 종국에는 하나의 위대한 진리 안에서 온전히 화합을 이룰 수 있음을 알려줄 따름이랍니다.”

   리온은 그 교활한 궤변에 대항했다. 그는 성경이 선언하는 ‘진리의 절대 유일성’을 내세워 반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녀는 성경에 대해서마저 통달해있었다. 그녀는 교묘하게 성경과 타 종교 경전의 가르침을 병렬식으로 설명하면서 아주 그럴듯하게 리온의 논리를 묵살해내는 결론을 도출했다. 연설과 논박이 길게 이어질수록 리온은 마땅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버벅거렸다.

   “당신들은 참 모순적이에요. ‘세 위격과 하나의 존재’, ‘신격과 인격의 상존’과 같은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조화되기 어려운 명제의 동시 성립성을 인정하죠. 신의 신비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는 ‘극도로 편리한 논리’를 앞세워서 말이에요.” 

   청산유수의 꿀 발린 달변.

   “그런데 그러면서도 정작 각기 다른 진리들이 궁극적인 경지에서 하나로 융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부정하죠. 자신들도 상충하는 명제를 주장하면서 말이죠. 참으로 졸렬한 이중잣대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

   “양자역학은 여러 결과적 상태의 확률적 공존을 설명해냈죠. 그것은 더 큰 영적 본질에 대한 그림자랍니다. 진리란 겉으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어요. 그 모든 표현은 같은 본질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결국, 다양한 깨달음은 하나로 통하게 되죠.”

   신학, 철학, 과학까지 동원한 그녀의 현란한 수사와 논리는 좀처럼 흠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다못해 티아라의 발끝만큼의 수준의 지식이라도 있었다면 허점이라도 발굴할 수 있었으련만, 역대 최고의 지성 중 하나인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선교사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보통 기독교를 부정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은 아무리 뛰어나도 잘 뒤져보면 약점이 하나쯤은 발견되기 마련인데 티아라의 논리는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어.’

   ‘속수무책인가.’

   여리고 연약한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아마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한 채 순식간에 넘어졌으리라. 나름 자신의 신학적 뿌리를 자신했던 윤혁도 대화를 엿들으면서 휘말리지 않도록 가까스로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사부가 이긴 것으로 치죠.”

   긴 토론이 무익하다고 판단한 리온은 아예 대화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혼자서 마음껏 즐거워하세요. 제 친구들을 현혹하려 들지 마시고요.”

   사실 이미 지금까지 겨룬 것만으로도 일행 모두에게 가해진 정신적 충격과 피해는 상당했다. 더 이어나가서는 신앙 성장에 해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티아라는 여기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나는 풋내기 어린아이들과 이런 무의미한 말싸움을 나누겠다고, 내 정신 승리를 추구하겠다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했던 게 아니에요.”

   “관심 없습니다.”

   냉정히 돌아서는 리온에게 티아라가 상냥하게 속삭였다.

   “들으면 관심이 꽤 생길 텐데요?”

   “…….”

   “하이테로, 이 넓은 대륙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족……, 일일이 인간 비인간 여부를 구분해서 선교 전략을 세우는 건 매우 어렵겠죠. 저와 내기를 한다면 도움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일행은 일시에 동작을 멈췄다.

   “자, 이제 구미가 당기시나요?”

   그것은 처음부터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덫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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