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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3. 내기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02 | 회차평점 0 0

 

 

 

 

 

*

 

 

 

   밤이 되었다. 상공에서는 열 개의 달이 각기 다른 색채를 발하고 있었다. 아마 허상체나 인공위성인 듯했다. 달마다 모양도 무늬도 다양한 것이 흡사 이종족들의 샐러드인 하이테로 대륙의 현실을 빼다 닮았다. 선교팀 일행은 정신적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임시 천막을 펼쳤다. 낯선 종족의 거처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동료들끼리 모여있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괜찮을까요?”

   “잘 모르겠소.”

   루디아와 스테판은 천막 앞 캠프파이어에 나란히 앉아 저녁 식사를 요리하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목소리에는 조금씩 염려가 묻어나왔다. 둘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리온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는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게 팀을 잘 이끌어왔는데……, 이번에는 왠지 심적으로 격렬히 흔들리는 게 선히 보여서 그런지 걱정이에요.”

   “확실히 그답지 않긴 했소. 틀림없이 스스로를 성녀라고 자칭하는 그 여인으로 인한 영향 같소이다만……, 내가 따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아쉽소.”

   그들은 천막 안에서 잠들어 있는, 정확히는 본체와 접속이 일시 중지된 리온의 인형 몸체 쪽을 나직이 보았다. 낮에의 대면 때 리온은 유독 티아라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역력히 드러냈다. 겉으로는 당당히 맞섰으나 그의 눈빛에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짊어진 쇠약자의 기색이 깃들어있었다. 흡사 바다를 향하여 부질없는 도전장을 내밀려는 늙은 낚시꾼의 모습처럼.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그녀에게 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보면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물론 그렇기에 더더욱 자랑스러운 동료이지만, 그 자신의 한계를 돌아볼 필요도 있어요.”

   “좀 더 우리가 보탬이 되었다면 좋았으련만. 내가 너무 무력했소.”

   스테판은 한탄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그녀에게 협박거리를 제공한 꼴이 되었으니 면목이 없소.”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들은 궁금해했다. 지금까지는 그토록 동료와의 협력과 공동체의 화합을 강조했던 리온이 왜 이번에는 혼자서 앓으며 힘든 짐을 짊어지려고 할까? 혹 그에게 타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심적 부담감이나 책임감이라도 있는 걸까? 그 부담이 그로 하여금 무리한 길을 걷게 하는 것일까?

   “거래 내용도 그래요. 왜 굳이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도 모르는 거래를 기꺼이 받아들였을까요. 누구보다 상대의 능력을 잘 알면서.”

   “리온은 윤혁을 지키기 위해, 그가 끝까지 임무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을지도 모르오. 리온은 패배가 무서워 도망칠 사람이 결코 아니오. 자신의 하차 위험까지 고려하면서까지 윤혁을 남기려 한 것은, 그만큼 어느 쪽이 대의에 적합한 길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하였기 때문일 것이오. 그리고 그는.”

   스테판은 잠시 머뭇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와 당신도 그만큼 믿는 거요. 혹시 리온 자신이 여행을 멈추게 되더라도 우리가 끝까지 일을 이어나가 주리라고 믿은 것이오.”

   이에 루디아는 여전히 아쉬워하는 얼굴로 모닥불을 응시했다. 정말 그랬을까? 만약 그런 무거운 심정이었더라면 조금은 마음을 놓고 동역자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좋을 텐데. 그만큼 티아라라는 그 버거운 짐을 친구들이 나눠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찌 되었건 우리가 그를 도와서 내기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바로 그때 윤혁이 돌아왔다. 그는 근방 마을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비해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그는 거의 다 돌아왔을 즘 발걸음을 멈추고 루디아와 스테판이 나누는 대화를 뒤에서 묵묵히 엿들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그는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리온은 좀 괜찮아?”

   윤혁의 질문에 루디아는 고개를 조용히 가로저었다. 리온은 낮에 티아라와의 내기를 승낙한 이후 심신이 지친 탓인지 내내 축 늘어지더니 정신적 피로의 축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쓰러졌다. 윤혁은 친구가 왜 이리도 무리하는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침착하게 생각해보니 그의 심정도 이해할 법했다.

   “아마 티아라 씨는 리온에게 있어서 가장 넘기 힘든 장벽인 동시에 반드시 넘어야만 할 산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난 조금 알 것 같기도 해.”

   사람에게는 저마다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가 있다. 때때로 그 존재는 자신과 가까운 이인 경우가 많다. 원수보다는 은인이, 타인보다는 가족 같은 사람이 더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윤혁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기에 친구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자신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오기를 내어서 그 상대에게 도전했던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막상 그런 상대가 내기를 걸어오면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알면서도 쉽게 물러나기는 힘든 법이다.

   ‘언젠가 꼭 극복해야 하니까. 도전하자니 몹시 겁은 나지만 그렇다고 겁쟁이처럼 물러서면 두 번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을 듯한 느낌, 대강 이해는 돼.’

   진실 게임.

   전에 윤혁의 형은 윤혁에게 ‘진실’이라는 노획물을 내건 위험한 내기를 제안했었다. 상대의 능력을 뻔히 알면서도 그때의 윤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런 무모한 도전이 가능하게끔 했을까? 지금 되돌아보니 어이가 없었다. 실제로도 게임이 진행되었을 때 윤혁은 속수무책으로 휘말렸었다. 초인의 왕과 두뇌 싸움을 벌여서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리온도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을 거야. 원래 사나이들한테는 질 걸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싸움이란 게 있거든.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더욱더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겠지.”

   “그렇지만 우리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글쎄?”

   루디아에게 희망스러운 답변을 주지 못한 윤혁은 아쉬웠다. 그는 일손을 거들면서 찬찬히 낮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과연 승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할까? 이 일을 하나님께 가져가 간구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주실까?

 

 

 

 

 

 

*

 

 

 

   그때 티아라가 던졌던 흥미로운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나와 한 번 내기를 해봐요. 여러분에게 하나의 과제를, 그리고 공평하게 내게도 하나의 과제를 부여하도록 하죠. 그 과제를 제한된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거예요.”

   넷 모두 이유를 모를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을 느꼈다. 티아라가 그들에게 마법을 부린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목소리가 신비로워서 그런지는 불분명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홀리는 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과제?”

   “그래요. 그대들이 당당하게 ‘진리의 유일성’을 선포할 자신이 있다면, 또 그러할 자격이 있다면 마땅히 어렵지 않게 해결해야만 할 과제랍니다.”

   마치 이것조차 해결 못 하면 진리의 복음을 당당히 전파할 자격 따위는 없다는 투의 뉘앙스였다. 평소 같았으면 헛소리라 생각하고 무시했을 발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의 최면 탓인지 그녀의 도발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다.

   “말해보시죠.”

   리온이 대표로 대답하자 티아라는 화사하게 웃었다.

   “하이테로라는 대륙은 참으로 신비한 세계죠. 이곳에는 만 종류가 넘는 종족들이 어우러져서 서식하고 있죠. 모두 자유의지와 감정, 그리고 놀라운 지식을 지닌 지적 생명체들이죠. 여러분이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다면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존엄성 넘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감상적인 성녀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 배척, 차별의식은 끝없이 다툼과 투쟁만을 만드는 법이랍니다. 왜 사람만 존엄한 존재로 여김을 받아야 할까요? 왜 사람과 비슷한 존재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까요? 사실 ‘신의 형상’이라는 허울 좋은 특권의식은 제멋대로 정해놓은 개념이요 선민의식이 아닐까요?”

   티아라는 은연중에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다.

   “만일 다른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정신을 갖게 된다면, 그런 선민의식에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 설령 만들어진 인조 인격체라 해도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그들이 차별받거나 멸시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녀는 모든 인격체를 평등하게 사랑해야 함을 주장했다. 사람만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생각은 잘못이다, ‘인간’의 카테고리를 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재고가 필요하다,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려고 애쓸 바에는 모든 종족을 동등한 존재로 여겨야 하며 온전하게 융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그녀가 부르짖는 제창이었다.

   “당신들의 그 옹졸함과 배타성은 저들에게 상처만 입힐 뿐이랍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 낡은 사상이에요. 자신을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종족 앞에서 ‘당신은 인간이 아니야’라고 규정할 자격이 당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옛날 같았으면 무시되었을 논제였으나 정말로 이종족의 인간화가 진행되어버린 지금은 가볍게 여길 도전이 아니었다. 철학적인 난제.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인가? 외모인가 아니면 정신인가? 혹은 생물학적인 인간 생산 가능성인가? 그렇다면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인격을 지녔으면서 모종의 재생산 능력도 확보한 존재라면 그것은 인간으로 정의될 수 있단 말인가?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바에는 선민의식을 깔끔히 내다 버리고 일만 종족을 모두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키우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당신!”

   대강 성녀의 의도를 눈치챈 리온이 이를 바득 갈았다. 그녀는 지금 창조주에 의해 따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을 그저 ‘자연의 부산물’ 중 하나로 전락시킬 작정이었다. 인간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비인간 종족들이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수렴한 세계인 하이테로, 종족의 기원을 구분할 수 없는 마굴. 성녀는 이 이질적 세계의 특징을 악용하여 인간이라는 종족의 근원적 뿌리를 흐릿하게 만들고 존재의 경계선을 허물어 혼란을 초래할 생각이었다.

   ‘이건 복음에 대한 근원적 도전이다.’

   만약 인간이 신에 의해 직접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무의미해진다. 원죄라는 개념조차 무의미해진다. 수많은 뿌리에서 나온 이들이 모두 인간과 대등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면, 아니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다면, 더는 기독교와 성경의 하나님에게서만 구원을 찾아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티아라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자, 그게 억울하다고 생각하신다면…….”

   티아라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하이테로의 일만이천 종족 중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가짜인지를 여러분의 힘으로 명확하게 구분해보세요. 이게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과제랍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미처 윤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티아라는 손가락을 튕겨 홀로그램 지도를 허공에 펼쳤다. 하이테로 전역을 그려낸 지도였다. 최소 지구의 아시아의 세 배에 달하는 면적이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넓게 뻗어 있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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