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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4. 세뇌당하는 세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07 | 회차평점 0 0

 

 

 

 

 

 

Chapter 24. 세뇌당하는 세계

 

 

 

 

 

 

   “제1 철인왕, 당신에게 요청이 있습니다.”

   칼리드는 정적 속에서 고요히 업무를 하던 중 문득 직접 뇌리로 들어온 텔레파시 신호를 감지하고는 멈칫했다. 이렇게 허락조차 없이 그에게 직접 닿을 수 있는 존재는 그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뿐.

   “부대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의외군.’

   “실례지만 잠깐 대화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에녹의 홀로그램이 칼리드의 앞에 실체화되었다. 칼리드는 자신 소유의 현자의 눈으로만 관측할 수 있도록 영상 위에 보안을 덮었다. 푸른 눈과 적염(赤炎)의 눈동자가 교차했다.

   “제1 철인왕이여, 잠시 우라노폴리스 제2,847,029호의 내부 공간쪽으로 시공간 공명 방식 텔레파시 네트워크를 연결해주시죠.”

   “무슨 연유로 그러십니까?”

   “불가피하게도 묵비권이 필요한 일입니다.”

   칼리드는 잠시 머뭇거렸다. 상대의 태도가 조금은 미심쩍었지만,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자이기에 따로 반론을 제기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조금 기다리시죠.”

   “감사합니다.”

   즉각 칼리드는 몇 번의 관리 시스템 조작을 가하여 해당 하늘도시의 채널을 개방하였다. 워낙 보안 해제가 까다롭고 번거로워서 평소라면 아비의 지시 없이는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부대표의 정중한 부탁이 아니었으면 시행해주지 않았을 일이었다.

   칼리드는 왜 느닷없이 부대표가 자신의 관할 구역을 넘어선 지역에까지 볼일이 생겼는가 고민했다. 의심 많은 그는 채널을 개방해주는 와중에 몰래 자신도 그곳의 내부 정보를 감시할 수 있도록 모종의 안배를 두었다. 동시에 해당 식민지의 최근 출입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편 산 정상에 앉아 조용히 손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던 티아라는 외부에서 온 신호를 감지하고 미소와 함께 눈을 번쩍 떴다. 평소에 취하던 그녀 특유의 청순해 보이는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에 고혹한 여성적 매력이 넘치는 마스크가 떠올랐다.

   “어머나, 높으신 분께서 어인 일이시죠?”

   “티아라!”

   “반가워, 에녹. 아니, 이제는 부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에녹 쪽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상위 초인인 SSS 클래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뛰어난 그였다. 하지만 상대가 무려 그 티아라라면 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머나, 대표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수행 중인 이 아리따운 티아라에게 어떤 볼일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급하게 찾으시는지요?”

   “당신, 지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중입니까?”

   에녹의 차가운 추궁에도 티아라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무슨 일이라뇨? 세계 평화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는 중인데요?”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반역자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카이젤에게 공식적인 활동 허가를 받고 중립을 표방한 채 이곳저곳 다니는 티아라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대단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적당히 대하자니 워낙 교활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고, 완강하게 상대하자니 인류연합에 유익한 존재인데다 사람들의 칭송까지 받는 위인이라 괜히 찜찜했다.

   “지금 당신이 머무는 하늘도시 안에는 제가 가동한 ‘조율 프로그램’이 베타테스트를 시행 중인 국소 실험실 중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어머, 대륙을 실험실이라고 부르다니, 포부도 크셔라.”

   “무슨 꿍꿍이입니까?”

   “호호, 꿍꿍이라뇨.”

   능청스러운 반응에 고지식한 초인은 잔잔히 분노를 흘려보냈다.

   “왜 이종족과 인간들을 강제로 화합시키는 겁니까? 혹시라도 지금 단계에서 저들끼리 섞이기라도 하면 어떤 불확정 요인이 발병할지 모른단 말입니다!”

   “섞임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 과연 인류를 향한 병적인 충성심은 여전하시네요, 부대표님. 카이의 사상에 당신도 동화된 모양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와는 가치관이 다르답니다. 본의 아니게 당신이 힘들게 가꾼 화초를 어지럽히게 되어서 조금 미안하네요.”

   에녹은 이마를 짚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제7 철인왕이 사고 쳐놓은 작품인 다중 성축(Multi-axial sexuality) 프로젝트의 부산물을 역이용하려고 일부러 실험실을 저곳에 심어뒀건만, 잠시 하늘도시 보안 시스템 때문에 감시의 끈을 놓친 사이에 티아라가 간섭했을 줄이야.’

   티아라는 지금껏 인류연합과 긴밀한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녀의 일은 주로 식민지 내부의 불화를 종식시키고 사회적 평화를 심어놓는 일이었다. 그 일 덕에 연합은 식민 사회 통제에 소요되는 힘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그런 유용성을 잘 아는 카이젤이기에 과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던 티아라에게도 기꺼이 특별 사면을 내려서 지금처럼 활보하도록 허락했었다.

   ‘하지만 블라스핌 트라이앵글은 아직 가동 초기 단계, 티아라 방식의 평화와는 대단히 상성이 좋지 않아. 자칫하면 이종족의 장점을 인류가 안전하게 포괄하기도 전에 다 같이 혼잡해져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에녹은 속으로 대비책을 궁리하였다. 티아라의 행동을 강제로 막을 만한 법적 명분은 없었다. 게다가 이제껏 대륙 규모 실험실을 펼쳐 DARWIN 프로그램을 통해 이종족에게 성(性)과 개화 능력을 부여하고, FREUD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에 근접하게 변화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에녹의 독단적 프로젝트이었다. 인류연합 차원에서 주도한 계획이 아닌 셈. 이런 상황에 티아라가 어떤 일을 벌여도 인류연합을 훼방했다는 증거로는 성립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종족은 인간을 더 도약시키기 위해 도구로써 존재하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돼. 티아라의 일은 방해물이다.”

   에녹은 불청객의 개입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불찰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짧은 휴식을 멈추고 힘겨운 노동을 다시금 개시했다.

 

 

 

 

 

 

*

 

 

 

   3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윤혁 일행은 티아라의 포탈을 빌려 드넓은 땅 곳곳을 돌아다녔다. 설교나 전도를 할 시간은 따로 없었다. 우선 급선무는 최대한 종족별 특징을 파악하여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할 근거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생 진화론을 배격하고 창조만을 믿어온 이들에게 ‘종족 분석’이란 크나큰 장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인공 인격체와 생체 기계에 대해 대강의 지식이 있는 윤혁조차 이번만큼은 누가 기계이고 누가 생명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원리는 몰라도 이건 외부의 시스템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현상 같아. 음모라도 꾸민 양 각기 다른 기원, 각기 다른 생산 라인에서 시작된 유닛들을 무서우리만큼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어.”

   만일 학자들이 하이테로를 순수히 관찰적으로만 분석했더라면 완전히 새로운 독특한 개념의 진화론이 탄생하고도 남으리라 여겨졌다. 전지적 관점에서 명명하자면 ‘인간의 기술 시스템에 의해서 야기된 인공진화’라고 불러야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큰 가망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자.”

   거대한 난관을 앞에 두고 침울함에 빠진 동료들을 루디아가 격려했다. 물론 그녀 자신도 뾰족한 수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갈릴리 호수에서 벌어진 풍파 가운데서 주님을 곁에 두고도 근심하던 사도들의 심정이 조금 공감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를 마냥 가라앉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티아라는 일행이 처음 내기를 승낙했을 때, 마치 적선이라도 하는 양 자비 베푸는 시늉을 하였다. 그녀는 대륙의 종족 전부가 아닌 일부 표본에 대해서만이라도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성사시킨다면 해당 표본 집단 한정으로라도 복음을 광역 텔레파시로 전할 기회를 주겠다고 선뜻 아량을 선보였다.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 제안에 혹했었다. 하지만 이젠 의심도 들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실패할 것을 알고 조롱했던 것일까?

   “일부 종족만이라도 살펴보는 게 어떻겠소? 일단 일부 표적을 정해서 추적하고 그 뒤 그 종족이 건설한 본 국가들을 둘러보면서 추가로 실마리를 찾는 편이 낫겠소. 그렇게 하다 보면 정보의 지평이 더 확장되지 않겠소?”

   스테판은 팀원들이 흩어져서 각자 단서들을 수집할 것을 권유했다. 일행은 그의 의견대로 각기 다른 포탈을 타고 분산하였다. 각 일원은 낯선 땅에 착륙하는 즉시 근방 고을들을 두루 다니며 그곳들에 섞여 사는 종족들의 정보를 조사했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되었기에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신분을 위장했다.

   물론 내기에 정신이 팔려 본업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기에 중간중간 성경 속 진리를 열심히 가르쳐보기도 했다. 혹 그 가르침이 단서가 되어 사람들에게서 단서를 유도해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런 전략만으로는 확연하게 눈에 띄는 해답을 찾기에 무리였다. 이미 인류의 기술력은 오래전에 인공지능이 사람을 모방하는 경지에 이른 지경. 하물며 더더욱 과학이 발전한 현재, 인공 인격체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분간하기란 어지간해선 불가능했다.

   더욱이 하이테로에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종족조차도 긴 세월을 거쳐 여러 특이한 특성과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다양성이 증대되어버린 예가 수두룩했다. 한 종족 안에 있었던 아종들도 분화된 뒤로는 과연 서로 같은 종류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판이해졌다. 이러한 특성에는 마법을 연상시키는 특수 이능력도 있었고 수인 부류처럼 동물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인간의 속에 녹여낸 특질도 존재했다.

   ‘역시 인간의 노력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나?’

   보잘것없는 솜씨로 가망 없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며 분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리온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심히 불편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 흐름을 예상하긴 했다. 그가 직접 대표로 나서서 티아라의 제안을 허락했던 것은 애초에 승산을 짐작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미안해. 알면서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

   그의 낯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믿음의 수준이란 게 이것밖에 안 된다는 방증이겠지.’

   하지만 제자였던지라 그는 티아라라는 인간을 잘 알았다. 그녀의 방해 공작은 잠시 유보될 수만 있을 뿐, 결국 맞닥트리는 건 시간 문제요 불가피한 일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녀의 목소리와 언변에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 사람을 최면에 빠트리는 탁월한 설득력도 그녀의 무기다. 설령 굳건한 신념과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녀가 작정하고서 덤빈다면 오래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리온 본인도 당해봤기에 더더욱 그 위험성을 체감했다.

   ‘만약 내가 내기 참여를 거절하려 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도발하고 흔들고 미혹하고 자극했을 거야. 우리 넷이 지닌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략해서 싸움에 걸려들도록 유도했겠지.’

   그랬다면 더욱 피곤하고 불리한 싸움이 되었을 것이 뻔했다. 그녀는 처음 한 번만에 자신에게 넘어가지 않는 괘씸한 자들은 반복해서 공략한다. 그렇게 뒤늦게 걸려든다면 더욱 악랄하고 교묘한 술책으로 곤경에 빠트려 보복한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윤혁이나 루디아나 스테판이 그런 일을 당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나 혼자 실패의 책임을 짊어지는 편이 나아.’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라고 해서 왜 이런 무리한 대결을 원했겠는가. 하지만 자신 한 명이 패배의 책임을 짊어짐으로써 그녀의 관심이 일행에게서 떠나갈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정을 잘 모르는 윤혁은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며 긍정적인 태도로 모두를 다독였다. ‘어쩌면 티아라도 임무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본전이라도 얻는 것 아니겠는가?’ 윤혁은 이런 식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비췄다.

   ‘아니야, 윤혁. 사부가 겉보기에 도무지 불가능한 무리한 일을 해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면, 그건 이미 해결을 위한 비장의 수를 수백 개 이상 감추고 있다는 뜻이야. 그 인간은 늘 그런 방식으로 움직여왔거든.’

   차마 비관적 전망을 꺼낼 수가 없는 리온은 몹시 미안해하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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