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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4. 세뇌당하는 세계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1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결국, 티아라가 세례 내려 세운 사제들로 구성된 사제단은 지역별로 교황에 준하는 존재로 인정받고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녀 자신은 여신처럼 떠받들어졌다.

   물론 그녀 자신은 어차피 이 대륙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권력을 손에 넣을 생각도 없었다. 아무 기대도 미련도 없었다. 설령 미련이 있었더라도 식민지의 소유권에마저 눈독을 들였다면 인류연합이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그저 인류를 포함한 지성체들이 자신의 사상으로 물들어가는 모습과 평화가 구축되는 모습을 보며 자극감을 느낄 뿐이었다. 사상적 승리에서 나오는 정신적 쾌락과 카타르시스. 그것에 대한 애착이 곧 그녀의 변태성이었다.

   “호호, 보고 계시죠?”

   이 내기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티아라가 경쟁자로 의식한 대상은 새파랗게 어린 네 선교사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기계와 이종족, 인공지능과 인공 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무수한 스펙트럼의 종족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인류연합에 일종의 경종을 울려줄 생각이었다. 더 정확히는 이종족 실험을 지휘하는 에녹에게 말이다.

“인간 우월주의에 취해 이성과 인격을 지닌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 그 행위로 말미암아 신이 된 듯한 우월감을 만끽하려는 당신들에게 드리는 적법한 선물이랍니다. 이번 일로 깨닫고 배워서 경계심을 갖도록 하세요. 인공 인격체의 제작에는 ‘예측 불허의 결과’라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랍니다.”

   그녀의 사상 체계 속에서 인간 순혈주의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기원이 무엇이건 인격체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신 곧 창조주가 오로지 만물 가운데 인간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대명제를 믿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는 가능한 많은 다양한 존재들이 섞이고 섞여서 그녀가 재정의한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믿었다.

   “아아~! 화합의 세계! 너무도 황홀하지 아니한가!”

   그녀는 달을, 하이테로의 인조 위성을 향해 손을 펼쳤다. 그녀의 광기 어린 텔레파시가 하늘도시 전역에 사념파 형태로 은은히 퍼져나갔다. 과도한 도덕심과 뒤틀린 정의관. 그녀에게서 드러났듯 성녀의 길과 마녀의 길은 이렇듯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내일이면 제자를 뵙게 되겠군요.”

   그녀는 오랫동안 꺾이기를 거부했던 작은 제자, 리온을 떠올렸다.

   “그의 반응이 기대되는군요.”

   지금껏 많은 초인 제자들이 그녀에게 비슷한 신고식을 겪으며 수모를 체험했다. 그녀는 힘이 아닌 가치관을 통해 그들을 패배시켰다. 그렇게 꺾인 초인들은 정신적 수모를 갚고자 티아라보다 더 위대한 유일한 존재인 카이젤에게 자발적으로 충성심을 더욱 높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야말로 카이젤이 그녀를 초인들의 교육자로 허용한 이유였다.

   그런데 리온과 마라크는 그녀가 제자로 택한 이들 중 유일하게 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거늘 놀랍게도 그 둘은 지금껏 가치관의 대결로 사부에게 꺾이기는커녕 더욱 굳건한 자신들의 신념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마라크는 이미 죽었기에 다시 대결하거나 시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기에 티아라는 리온의 꺾임에 집착해왔다.

   “내일 내게 줄 당신의 답이 참으로 기대되네요.”

   이제 그 간질거리던 골칫거리가 상쾌하게 풀릴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

 

 

 

   둘째 날 밤, 일행은 숙소에 모여 차분히 자료와 정보를 정리했다. 비록 아무 진척도 없고 해답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 나름대로 머리를 맞대 열심히 토론해보았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기분은 침울해도 소망은 잃지 않으려 애써보았다. 그럼에도 가라앉는 분위기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더 고민해보자.”

   윤혁이 힘을 주어 말했다.

   “지금은 비록 앞길이 막막해 보이겠지. 그래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보자.”

   대범한 기백을 유지하려 애쓰는 윤혁의 의지력을 확인한 리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내일 자신이 티아라에게 패하더라도 저 친구라면 끝까지 일을 해낼 수 있겠지. 그토록 자신만만하였던 주제에 결국 스스로의 나약함만 잔뜩 직면한 자신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미안해.”

   리온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세 친구는 그를 주목했다. 그는 푹 고개를 숙인 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정말 자신이 동료들을 신뢰한다면, 그들을 친애한다면 더는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말해야겠지.

   “사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그녀를 이길 방도가 있어서가 아니야. 다소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패배를 직감했어. 아니, 확신했다고 해야 옳겠지.”

   순간 세 친구는 가슴에 무거운 것이 얹히며 철렁이는 감을 느꼈다. 윤혁은 스쳐 간 불길한 직감을 무의식적으로 부인해보려 노력했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저 친구가 중대한 결정을 믿음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말문이 막힌 그를 대신해 루디아가 위로해보려 입을 열었다.

   “어려운 일인 줄은 우리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그녀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덫에 걸렸어. 이게 바로 그녀의 방식이야. 그녀는 자신을 거쳐 간 모든 제자를 이런 식으로 꺾어 놓아. 말하자면 일종의 관습, 그녀로부터의 졸업식이지. 한 번 그녀에게 배우면 이 과정을 못 피해. 무시무시한 신고식이지.”

   이어서 그는 밝혔다. 만일 자신이 며칠 전 티아라의 내기를 승낙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행의 행로를 방해했을 것이라고. 아마 상상도 못 할 간교한 꾀로 도발해서 결국은 또다른 내기에 걸려들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윤혁을 향해서는 정신 간섭, 스테판을 향해서는 이레귤러라는 진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카드까지 있으니 그녀로서는 그들을 넘어뜨리기란 지극히 손쉬운 일. 언제든 이용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설령 그녀를 끝까지 멀리해도 소용없어. 그녀는 상황을 이용해서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어. 반강제적으로 판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지. 그때 가서 내기를 승낙하면 그녀는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임해. 그때는 무엇을 잃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지. 나는 그런 도박은 택할 수 없었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리온은 자신의 영적 충만감이 쇠하는 것을 체감했다. 목소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기운이 빠졌다. 패배가 이미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 동료들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일부러 은폐했으니 신뢰를 배신한 셈. 유구무언이었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

   윤혁이 억지로 심정을 갈무리하며 친구를 재촉했다. 그러나.

   “나를 질책해도 좋아.”

   리온은 씁쓸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 자리를 감당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너 대체!”

   윤혁의 얼굴이 매섭게 굳었다. 그는 생각했다. 왜 지금 자신의 속에서 울분이 솟구친 것일까. 만약 화가 났다면 누구를 향한 화인가. 친구에 대한 실망감? 꾀를 낸 성녀를 향한 분노? 아니면 동료의 맘고생과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설익은 열정에만 이끌렸던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

   “그래서? 우리가 패하면 그 대가로 네가 우주 선교를 그만둬야 하는데? 너 설마 그래도 괜찮다는 거야? 이 사명이야말로 네가 평생 무엇보다도 더 간절히 소원해왔던 위대한 도전이잖아! 이 일을 누구보다 소원했던 사람이 너 아니었어?”

   책망하는 목소리가 점차 거칠어지자 루디아가 걱정스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스테판도 동료들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느끼고 주저하였다. 윤혁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채 외쳤다.

   “뭐라도 말해봐! 변명이라도!”

   리온은 한참의 침묵 후 입술을 뗐다.

   “내가 완전히 꺾이기 전에는 그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너는 그녀가 그 숙원을 이뤄내기까지 인질이 되겠지. 사부는 너를 따라다니며 네 길과 사명감을 망가뜨리려 할 거야.”

   믿음 없는 판단이라 비판받아도 할 말은 없었다. 엄연히 경험으로 체득한 진실이었으니까. 성녀의 거대한 마수를 기적적으로 뛰어넘는다는 발상은 리온의 신앙으로도 쉬이 와닿지 않는 흐릿한 환상이었다.

   “내가 없더라도 너는 이 임무에 끝까지 남아야 해.”

   리온에게도 나름의 계산은 있었다.

   티아라는 자신이 ‘평화를 완성하는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의 벌칙으로 평생 윤혁을 건드리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사실 이는 리온의 심리를 파악한 뒤 그에 맞춰 제공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러한들 어떠하랴. 그녀는 교활하긴 해도 도덕적인 자존심이 강한 존재이니 약속을 쉬이 어기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최악의 시나리오로 그녀가 성공하고 선교팀은 실패하더라도, 리온이 팀에서 이탈해 지구로 돌아간다면 그녀의 선교팀을 향한 잠깐의 관심은 금세 식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집요하게 집착하는 대상은 오로지 제자, 그것도 아직 한 번도 신념이 꺾인 적 없는 제자뿐이니까.

   정중히 고백하고 사과하는 친구를 앞에 둔 윤혁은 차마 화를 내지도 위로하지도 못해 마음이 막막했다.

   ‘리온은 곁에 꼭 남아있어야 할 소중한 동역자야.’

   무엇보다 그는 팀의 영적 지도자 역할에 가까운 친구. 오랜 세월 부르심을 받고 준비되어 온 신념 굳은 믿음의 사람을 이대로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싶진 않았다. 제정신 아닌 여인에게 당해 친구를 빼앗기고 그의 소망이 좌절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한다면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날 밤 두 친구는 불편감에 서로의 얼굴을 피해 멀리 떨어졌다. 루디아는 리온을 독려하기 위해서 그의 옆에 남았고 스테판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갑갑해 하며 윤혁 곁에 머물렀다.

   “당신은 포기하지 않겠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끝까지 부딪혀봐야죠.”

   하지만 연약한 머리로 궁리한들 해답이 나올 턱은 없었다. 하나님께 애타게 기도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윤혁은 답답함에 몸을 수그렸다. 꽉 막힌 감에 괴로워 벽에 머리를 찧기도 해보았다. 아프기만 할 뿐 개운해지는 구석은 없었다. 지켜만 보던 스테판이 이마를 어루만져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안타깝소. 그나저나 텔레파시 기술은 참으로 강력한 비대칭 병기 같소. 한순간에 세계를 통째로 세뇌하다니. 물론 운용하는 여인의 역량이 워낙 출중해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렇긴 하죠.”

   “사실 내게는 텔레파시의 힘이 잘 닿지 않아서 그 감을 모르겠소. 이토록 지성체들이 쉽게 세뇌당할 정도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오.”

   순간 윤혁은 행동을 멈추었다. 방금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데? 맞춰지지 않던 퍼즐의 해답이 찰나의 순간 섬광처럼 비쳤다. 그는 곰곰이 단서들을 재조직하며 되짚었다. 이어서 그는 생각과 마음의 흐름을 온전히 성령의 인도에 맡긴 채 지혜를 간구하였다.

   “그녀의 텔레파시가 당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윤혁이 신중하고 진중하게 재확인의 질문을 던졌다.

   “그, 그렇소만…….”

   깨달음을 머금은 또렷한 눈빛과 기세에 스테판은 주춤하였다.

   “그것은 대체 왜 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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