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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5. 산 위에서의 대결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17 | 회차평점 0 0

 

 

 

 

 

 

 

*

 

 

 

   그 옛날 마귀가 영력을 통해 산 위에서 그리스도께 세상 왕국들의 영광과 위세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티아라는 산 위에서 텔레파시라는 수단을 통해 하이테로의 인구를 이루는 1만 종족들의 상황을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실제 상황이 선교팀의 눈앞에 펼쳐졌다. 경이로웠다. 전쟁이 사라진 현실,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는 모습,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장면, 오랜 분쟁을 정식적으로 종결하고자 하는 공동 선언의 연쇄, 종교 축제를 통해서 화합의 장을 이룬 군중이 춤추고 뛰노는 모습. 정말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만 같았다.

   ‘끝내 이뤄낸 건가?’

   사흘 전에는 분명 극도로 분열되어 있던 종족들의 샐러드 같은 세계였거늘, 어느새 각기 다른 질료가 용광로 안에서 녹아 하나의 합금을 이루듯 종족들은 하나가 연합되어 버렸다. 그들이 연일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텔레파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었다.

   -{“We are the World.”} -

   그 음성의 주체가 인공생명체인지 인간인지 기계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무언가인지, 그 부분은 전혀 분간되지 않았다. 어차피 구분하는 의미도 없었다. 여러 개체의 마음의 소리가 죄다 혼합되어서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체들의 감정과 의지와 지식이 용광로 속에서 하나로 연접되어 끈적끈적한 혼합물이 된 상태였다.

   “이쯤 패배를 인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제게 도전하려는 그 용감한 기상은 갸륵하고 귀엽게 생각하지만, 무모한 남자는 저의 취향이 아니거든요.”

   달콤한 텔레파시가 윤혁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속삭였다. 티아라의 농락은 달콤하면서 고통스러웠다. 윤혁은 텔레파시 과부하로 인한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자 대답을 포기한 채 의식 집중에만 묵묵히 애썼다.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왜인지 그녀의 음성에 늙은 뱀의 쉿쉿거리는 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리는 오직 유일한 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라는 신념을 포기하라. 그리하면 세계를 제어하는 이 막강한 평화의 힘을 너에게도 주리라. 마치 티아라의 음성 이면에 이 음성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통을 덜어드릴 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그녀는 힘겨워하는 윤혁을 농락하며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종교하고는 다소 동떨어진 느닷없는 주제로, 텔레파시를 비롯한 통신 기술의 발전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류의 통신은 21세기까지만 해도 고작해야 전자 기반에 머물러있었죠. 전자 기술의 한계는 시공간을 넘어서 먼 우주까지 닿지 못한다는 점이었죠. 1세대 초인들의 왕인 칼튼 유스토는 이 한계를 넘어서기를 원했어요. 그는 자기 살아생전 대우주 도약의 시대를 보기를 원했거든요. 하지만 그러려면 시공간을 초월한 광범위 초정밀 통신 기술의 개발이 불가피했어요.”

   형인 에드레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칼튼은 새로운 개념의 신유형 통신 기술의 개발을 독자적으로 강행했다. 아쉽게도 현실적 여건의 한계로 인해 그의 시대에는 결실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후세에 전승되었고 그 덕에 인류의 통신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척되었다.

   이후 2세대 초인들은 최초로 ‘양자적 얽힘’ 현상을 기반으로 ‘양자 통신’ 기술을 개발하였고 이를 기존의 전자 통신과 적절히 융합하였다. 비록 당시로서는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어쨌건 그 기술 덕에 머나먼 우주로 파송한 기계 및 무인 시스템과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양자 통신 기술의 발전은 비약적으로 빨랐다. 그 기술은 여러 차례 특이점을 넘어 상향되었고 새로운 특성을 얻어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화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천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유형의 신식 양자 통신 기술이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3세대 초인의 시대가 도래하자, 전례 없는 초고도 문명의 구축과 더불어 온갖 초월적인 통신 기술이 우후죽순처럼 세상에 데뷔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으며 이미 이면에서는 그 모든 기술이 십분 활용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칼라비-야우 차원을 매질로 사용하는 통신, 상위 차원에서의 중력파를 이용한 통신, 벌크 차원에서의 특수 입자를 활용하는 통신, 확률 파동을 실시간으로 예측해서 재구축하는 통신까지, 그 이외에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다양한 유형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워낙 테크놀로지가 고도화되다 보니 이러한 통신 기술 중 많은 것들이 자연계의 가장 복잡한 전자 장치인 인간의 뇌에까지 접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소형 이식 장치를 통해서 뇌와 뇌를 연결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별도의 장치 이식도 없이 뇌파만을 사용해서 소통하는 일마저 가능케 되었다. 22세기 들어 새로 등장한 몇몇 초월적 통신 기술들은 뇌와의 직접 연결에마저도 적용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새로운 지평이 확장되었고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통신계’와 ‘뇌’의 접합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개체 간 정신 파동 공명 현상이 관측되었답니다. 우매한 유물론자들이 깨닫지 못한 ‘비물질적인 정신’의 본체, 그 실체가 공명의 매질이었던 셈이죠.”

   티아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속 읊었다.

   “그로 인해 정신파(精神波), 즉 ‘사이오닉 웨이브’라는 실체가 발견되어 연구되었고 이내 통신에까지 응용되었죠. 한때 나와 당신의 형님도 그것의 초기 단계 연구를 주도했던 적이 있어요.”

   윤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정신파를 실용하는 단계에서 한계에 봉착했지만, 카이는 정신파 간의 표면적 파동 간섭에서 더 나아가 양자적 얽힘의 원리를 모방해 정신파를 자아내는 파동원(波動原)에 접목했죠. 그로서 그는 정신파를 매개로 정신 그 자체가 원거리에서 실시간 상호작용하도록 제어하는 인위적인 방법을 기어코 알아내고야 말았죠.”

   “그게……, 텔레파시입니까?”

   “정답이에요.”

   사실 이 이야기는 성녀로서도 유쾌한 담화는 아니었다. 정신파라는 실체에 대한 탐구, 그리고 텔레파시 기술의 개발 연구가 한참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 그 시절을 주도했던 주역은 소년 시절의 3세대 초인들이었다. 추억하건대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카이젤이라는 독보적 존재가 나머지 네 친구를 압도적으로 누르며 격차를 벌리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인가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녀는 장차 위버멘쉬가 될 존재는 단연코 그 하나뿐임을 직감했고 원치 않게 무의식적으로 이를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타인의 재능에 특출나게 민감한 티아라였기에 비가역적인 실력의 격차를 느끼지 못할 수 없었다. 권력욕이 적은 그녀에게도 그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인정은 거대한 굴욕이었다.

   “그래서인지 텔레파시를 활용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저와 제 친구들이 처음으로 경쟁에서 밀려나 역사 무대의 뒤안길로 물러나기 시작했던 순간이 떠오르니까요.”

   그녀는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를 꺾고 월계관을 독차지한 그 친구의 어린 동생이 바로 지금 이 순간, 그가 완성했던 바로 그 기술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심정이네요.”

   지금까지의 위선적 모습과 다른, 약간의 비열함을 띤 미소.

   “착잡하고 안타까우면서도 희열이 느껴져요.”

   드디어 성녀가 본색을 드러내셨네.

   ‘진작 그렇게 나오실 것이지.’

   윤혁은 고통 중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큭.”

   “뭐가 그렇게 웃기시죠? 견디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데요?”

   티아라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조롱하듯 질문했다.

   “아니요, 웃겨서가 아니라……, 당신이 최초로 형에게 패배감을 느꼈던 바로 그 기술로……, 이번에는 그 동생에게 패배당할 것 같아서, 걱정되어서 말이죠.”

   재빨리 윤혁은 반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미약하게 에너지를 발하던 그것이 소유권에 반응하여 더욱 선명하게 광채를 발하였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윤혁은 온 신경을 티아라의 텔레파시 채널 쪽으로 집중시켰다. 메시지를 전할 유일한 기회, 확실히 잡자.

   “……뭐?”

   티아라는 윤혁의 행보에 순간 놀랐다. 잠깐이라지만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가다니. 그것도 놀라웠지만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에게 다잉메시지를 전하고도 쓰러지지 않는 정신력이 믿기지 않았다. 딱히 육체적으로 강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권세가 일시적으로 뭔가를 불어넣어 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였지?”

   아니나 다를까 일련의 임무를 마친 윤혁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윤혁!”

   “괜찮소?”

   리온과 스테판이 크게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들은 고꾸라지려는 윤혁을 넘어지기 직전 붙잡았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그때 리온은 윤혁이 힘겹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겼어.”

   “윤혁?”

   “우리가 이겼다고.”

   그 순간 리온의 눈에 티아라의 무표정한 얼굴이 들어왔다. 항상 밝고 화사하게 웃던, 말 그대로 ‘성녀’라 불리기에 합당했던 그녀의 얼굴. 그랬었던 그녀가 지금은 그 웃음을 멈췄다. 차갑고 냉정한 사부의 모습이 몹시 낯설었다. 무엇이 그녀의 평정을 깨트린 것일까?

   “계약 위반!”

   그녀는 얼음장처럼 혹독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당신들은 나와의 내기에서 승리하지 않고서는 당신들의 사상을 설파할 자격이 없어요.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죠? 진리를 말한다는 자들이 감히 이 나를 속이려 들다니! 그것도 그토록 당신이 적대하는 당신 형님의 힘을 빌려서.”

   윤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몇 가지 정정할게요. 첫째, 내가 빌린 건 형의 힘이 아닙니다. 애초에 형이 내게 선물로 준 것이기에 빌린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반지는 그저 내 육체가 붕괴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용도였고……, 내 정신력이 당신의 채널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주께서 힘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잘도 그런 입에 발린 헛소리를!”

   “그리고 둘째, 나는 형을 적대시하지 않아요. 그를 그 자신의 속박으로부터 구해주고 싶을 뿐. 마지막으로 셋째, 나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난 주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당신을 이겼고 그로 인해 합당한 보상을 취했을 뿐입니다. 텔레파시를 빌린 건 그저 확정된 승리의 상급을 선불로 받았을 뿐이에요.”

   영민한 티아라는 그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멈칫하였다. 각 종족과 그것들에 속한 모든 개체가 자아내는 정신파, 그 방대한 흐름이 겹쳐져서 빚어진 텔레파시 네트워크의 파동 패턴이 일제히 예측 불허의 변화에 휘말렸다. 성녀조차도 계산하지 못했던 시나리오. 티아라는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으나 속으로는 경악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어디에서부터 계산 실수를?

   “당신도 확연히 느껴지시죠?”

   안면 근육마저 지친 와중에도 윤혁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힘겹게 걸렸다.

   “하이테로의 집단 무의식이 자아내는 텔레파시 패턴이 미묘히 바뀐 것을 말입니다. 저 같은 둔감한 사람도 알 것 같습니다.”

   “설마…….”

   “오로지 ‘인간’에 속한 자들의 텔레파시 패턴만 선택적으로 변했죠. ‘비인간’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죠. 이것으로 인류연합이 만든 ‘얽힌 매듭’은 풀렸습니다.”

   티아라의 표정에 이제 조금씩 분노가 서렸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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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도대체 무슨 계략을 부렸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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