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3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5. 산 위에서의 대결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2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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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승리입니다.”
“글쎄요. 나 또한 임무 수행은 완료니, 무승부로군요.”
티아라는 반만 건진 것이 아쉬운지 씁쓸히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요?”
윤혁의 의문스러운 말에 티아라는 뭔가가 어긋났음을 느끼고는 황급히 텔레파시로 하이테로 전역을 살폈다. 과연 곳곳에서 소란과 요동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평화의 메시지로 기껏 만인을 하나로 모아놨더니 뭔가가 그 화평에 재를 뿌렸는지 이유 모를 분열이 스멀스멀 번져나가는 중이었다.
‘저 아이의 분탕 때문인가?’
정황을 추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가 예수님께서 맡기신 일을 저들에게 수행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유감스러운 일이 나타났네요. 본래 순수한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진다면 지역이건 가정이건 공동체건 필연적으로 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라서요.”
승리를 선언하는 윤혁 본인도 티아라 이상으로 씁쓸한 기분이었다.
“당장 믿지 않는 가정 가운데 한 명의 구성원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 그 가족 내에서는 그날부터 즉각 반목과 분열이 일어나죠. 티아라 씨는 겪지 않아서 모르시겠지만 그게 바로 현실이죠.”
사실 그런 말을 하는 본인도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된 가정에서 자랐기에 복음으로 인한 불화라는 슬픈 현실은 체험해보지 못했다. 아마 뼈저리게 아픈 무게감이겠지. 그러한 아픔을 인내해낸 신앙의 위인들에게 절로 겸허한 마음과 존경심이 들었다.
“원래 참된 진리가 전해지면 이래요. 인간의 본성은 그 진리를 격렬히 미워하거든요.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죠.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게 되어 유감입니다. 본의 아니게 부작용을 통해 당신의 임무도 좌절시켰지만, 전혀 기쁘지는 않네요.”
어쨌건 그 덕분에 티아라가 구축해놓은 가짜 평화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 대륙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심하게 될 인간이 과연 몇이나 나올지는 모르나 앞으로 분명 믿는 자들을 향한 맹렬한 핍박이 불게 될 것이다. 본인들은 싸움을 원치 않더라도 피하지 못하리라.
‘미안합니다. 장차 나타날 성도들이여. 하지만 이게 최선이에요.’
핍박의 일어남을 감수하더라도 모두가 다 같이 영원한 멸망에 던져지는 편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저 부디 복음이 핍박을 꿋꿋이 이겨내고 하이테로 전역을 잠식하기를 바라는 바였다. 물론 이제 그 일은 윤혁이나 동료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 신적 섭리 아래에 놓였다.
“그래요. 제가 방심했네요.”
의외로 티아라는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였다.
“제 패배를 인정합니다. 축하드려요.”
과연 비록 적이었지만 범상치 않은 대인배라는 감상이 들었다.
“아뇨, 우리의 승리가 아닙니다. 솔직히 능력으로 따지면 우리는 당신에게 전혀 상대도 안 됩니다. 이건 우리 세계의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손수 미혹의 권세를 상대로 승리를 취하신 것입니다.”
윤혁은 의기양양한 태도를 버리고 진중하게 그녀를 향해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거둔 것도 아닌 승리를 두고 자랑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증언되도록 하는 편이 낫겠지.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영혼이 허락건대 이제 마음을 돌이켜 진리를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당신도 사실 무의식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겠죠. 세상 만방의 종교와 철학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성경에 계시된 절대자 하나님은 절대로 세상의 가르침들과 하나가 될 수 없어요.”
적에게마저 사랑과 관용을 베푸는 태도.
“그러니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정직히 그분께 순복하시길 바라요.”
윤혁은 이렇게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제법 골치 아픈 상대였네. 리온 이상으로 흥미로워.’
티아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약속을 이행하죠. 리온은 방해 없이 당신들과 계속 여행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강윤혁 씨에게도 역시 두 번 다시 정신 간섭을 행하지 않을게요. 아니, 할 수 없게 되었죠. 우리가 나눈 계약의 힘 때문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녀는 마지막으로 텔레파시 채널로 설교를 전할 짧은 기회를 주었다.
“당신들의 여력이 닿는 만큼만 허락할게요. 날 이긴 보상이에요.”
이에 윤혁은 리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친구.”
“윤혁……, 하지만 나는 너와 달리 넘어져 있었…….”
“난 이미 탈진했어. 그리고 나보다는 네 설교가 나아. 난 그저 요약해서 전했을 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일은 네가 맡아야 해. 사람들에게 더욱 풍성한 보물을 전수해줘야지.”
윤혁의 마음의 뜻을 이해한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에게서 위로받은 그는 힘겹게나마 자책의 수렁을 극복해냈다. 티아라라는 넘을 수 없던 큰 장벽이 극복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한 줄기 소망을 얻었다.
“자, 어서 가자!”
“고맙다.”
인형의 인공 뇌, 윤혁의 생체 뇌, 그리고 티아라의 텔레파시 채널이 일렬로 연결되었다. 리온은 성경 66권의 본문을 해설 주석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 윤혁의 기행과 같은 강제 접속이 아닌 티아라의 계약대로 자유로운 접속을 허락받은 접속이었기에 훨씬 더 전달이 수월했다.
더욱이 단순히 텍스트만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리온이 지난 삶을 통해 말씀을 체득한 체험적 지식이 복음과 더불어 흘러 들어갔고 그 덕에 훨씬 더 유기적인 지식이 사람들에게 공급되었다.
‘됐다!’
작업을 완수하자마자 윤혁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낸 여파인지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스테판이 재빨리 그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때마침 동역자들과의 중보 기도 일정이 다 끝났는지 루디아의 인형 몸체도 정신 접속이 재개되었다. 하늘도시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로봇을 타고 포탈을 건너 현장에 도착했다. 리온은 산 위에서 펼쳐졌던 긴박한 상황을 루디아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눈물의 감사 찬양을 드렸다.
“강윤혁 씨, 감히 이 나를 꺾다니. 기꺼이 칭찬해드리죠.”
티아라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앞길을 축복해드릴게요. 과연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축복의 선언에서 미묘한 뒤끝이 전해졌다. 지쳐 헐떡이는 와중에도 윤혁은 섬뜩한 위화감을 희미하게 느꼈다. 뒷날 영 심상치 않은 운명이 그와 그의 집안을 덮치리라는 불확실한 예감이 스쳤다.
한편 티아라는 애제자, 아니 애증의 제자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어요, 리온.”
처음으로 의지를 꺾는 데 실패한 제자. 계약이 계약인 만큼 그녀는 일단 리온에게서 물러나 마음을 접기로 했다. 마침 새로운 흥밋거리가 발견되었으니 잠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도 나쁘진 않겠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도 강녕하시죠.”
마지못해서 리온은 답례했다. 무미건조했지만 조금은 진심이 담겨있었다. 어쨌건 좋건 싫건 그녀와의 인연에는 인간으로서의 정이 묻어 있었으니까. 비록 그 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긴 해도 아직은 애써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리온 마흐무드라는 영혼은 아직은 세월의 풍파에 충분히 마모되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냉정해지지는 못했다.
“그건 그렇고……. 다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를 방해하는 데 성공해서 지금 당장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지만, 그것도 한시적이랍니다. 나와의 대결의 여파로 여러분은 더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거든요.”
티아라의 얼굴에 소소하고 소박한 복수심을 머금은 교활한 웃음이 걸렸다. 일행은 일제히 멍해진 상태로 얼굴이 굳었다. 이내 티아라의 등 뒤쪽으로 특이한 패턴의 공간의 갈라짐이 생성되며 포탈이 형성되었다. 여태껏 하이테로 내부를 교통하던 포탈과는 모양이 달랐다. 아마도 다른 하늘도시로 이어지는 관문이겠지. 이제 그녀는 다른 세계로 떠날 작정인 듯했다. 그녀는 일용직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친히 성스러운 치하를 내렸다.
“당신들도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떠날 시간이네요. 당신들을 기억해줄게요, 가브리엘 스님, 미카엘 법사님, 알라딘 신부님, 달라이라마 수녀님, 반헬싱 대사님.”
그녀는 그 뒤로도 기괴한 이름들을 나열하며 성의껏 작별 인사를 했다.
“성녀님, 대체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그들은 애타는 목소리로 티아라의 이름을 불렀다. 절박해 보인다. 그 간절함만 보면 마지막 만찬 때 예수님의 제자들과 겹쳐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칭 성녀는 진정으로 거룩하신 그분과는 달리 냉정했다. 부드럽고 친절한 건 겉모습뿐, 그녀에게는 거둬들인 일용 노동자들을 향한 애착이 없었다. 하다못해 옛 제자를 향해 품었던 고약한 애증조차 그들에게는 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호호, 한 가지 말을 안 한 게 있어요. 곧 당신들의 일을 뒷수습하려고 곧 하늘도시 시스템과 외부의 관리자들이 대거 개입될 예정이랍니다. 알아서 잘 감당하시리라 믿어요.”
사제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교사들은 단박에 이해했다. 다시금 그녀의 교활함과 무자비함에 혀를 내찼다. 성녀는 무슨 성녀. 거룩할 성(聖)이라는 접두어가 이렇게까지 역설적일 수 있음을 누가 알았으랴.
“당신들도 어서 달아나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티아라는 윤혁 일행에도 상큼하게 윙크하며 경고했다.
“슬슬 당신도 주목받을걸요. 참 좋겠어요.”
이 말과 함께 그녀는 윤혁 쪽을 주시했다.
“벌써 초인들 사이에서 인기 스타가 되게 생겼으니 말이죠.”
불길한 예감이 윤혁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를 주목하는 시선이 원체 많아야 말이죠. 이제는 ‘그들’도 당신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거예요. 편한 시절은 이제 다 끝났답니다.”
과연 그녀가 말을 끝내자마자 일행 쪽으로도 포탈이 열린다. 이번에는 우주선으로 귀환하게끔 이어주는 포탈이었다. 과연 진이 텔레파시를 통해 윤혁에게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우주선으로 귀환하시죠.”
윤혁의 표정과 티아라의 행보를 본 스테판은 상황이 다급하게 진행되는 눈치 빠르게 파악했다. 그는 몸과 정신이 탈진하여 꼼짝도 못 하는 윤혁을 둘러업고 달렸다. 인형 몸체의 리온과 루디아도 함께 포탈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퇴각하는 뒷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며 티아라 역시 자신이 연 포탈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그녀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론 선교사들의 사역도.
‘또 만나요.’
먼 훗날의 일이지만, 선교사들의 방문 이후, 휴면 기간에 돌입해 고농도 타임필드에 둘러싸인 다이버스트 내에서는 격변이 벌어졌다. 산 정상에서의 종교 대결이 벌어진 시점으로부터 하늘도시 기준으로는 2백 년, 바깥의 우주 표준 시간으로는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 흐른 후 마침내 큰 부흥이 하이테로 대륙 전역을 휩쓸었다. 그 물결은 반대편 대륙이 알즈바툴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 현상은 갑작스러운 기적이 아닌, 소소한 삶들의 역사가 꾸준히 축적되어 빚어진 결과였다. 결전의 하룻밤 동안 윤혁이 텔레파시를 매개로 전해준 광역 설교를 듣고서 마음이 움직인 자들이 몇 나타났는데, 그들은 얼마간 심사숙고의 여정을 통과한 후 회개에 이르렀다. 이러한 남은 자들이 지하 교회들과 가정 교회들을 세웠고 이후로도 그들은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꾸준히 자녀들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필연적으로 슬픈 일 또한 동반되었다. 진리를 택한 자들은 핍박을 받았다. 선교사들에 의해 성경이 배포되긴 했으나 그에 맞서 성경을 왜곡한 거짓 교리도 스멀스멀 등장했다. 복음은 대륙 전역에 대립과 핍박을 야기했고 진리를 수호하려는 자들은 원치 않는 전란과 고통에 휘말려야만 했다.
결국에는 종교로 말미암은 분쟁을 제어하기 위해서 인류연합 소속 시스템의 직접적인 개입이 개시되었다. 그 제어에 힘입어 분열과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복음은 살아남았고 빠른 속도로 구석구석 퍼져 세대를 건너 전승되었다. 바야흐로 생명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시발점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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