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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6. 인터미션 III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23 | 회차평점 0 0

 

 

 

Chapter 26. 인터미션 Ⅲ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잠시 들어가도 될까?”

   실내에서 곧장 응답이 돌아왔다.

   “어서 들어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리온의 눈에 환자복을 입고 누운 윤혁이 들어왔다. 꽤 초췌해 보였다. 보통 사람의 몸과 두뇌로 대규모 텔레파시를 몇 시간씩이나 버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억지로 힘을 끌어올리고자 반지의 힘까지 빌렸고 그렇게 모은 정신력을 한순간에 쏟아붓는 바람에 기력도 소진했다.

   게다가 텔레파시 채널의 자체적인 무게가 그의 몸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우주선에 돌아온 직후 지체없이 응급치료를 받았음에도 의식을 잃은 채 사흘이나 사경을 헤매다가 지금 와서 겨우 깨어난 처지였다.

   “리온!”

   그런 몰골로도 뭐 그리 좋다고 웃고만 있는 윤혁. 동역자로서 괜히 미안함에 속이 쓰려왔다. 자신이 맡았어야 할 짐으로 친구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아려왔다. 그는 깊은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에이, 무슨 말이야, 그게.”

   손사래를 치는 윤혁에게 도리어 리온은 더욱 진지하게 굴었다.

   “내겐 리더를 맡을 자격이 없어. 내가 얼마나 미약하고 형편없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어. 오히려 네가 우리 팀을 이끄는 편이 나아.”

   친구의 기지가 아니었으면 평생 사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꼼짝없이 실패할 것이라고 믿었던 그 순간, 동료들이 극적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주었다. 똑같이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다면서 자신은 역전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너무나도 쉽게 나약해지고 말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녀가 네게 그만큼 큰 정신적 짐이었던 모양이지?”

   도리어 윤혁은 그 아픔을 체감해주었다.

   “그래. 내게 티아라 사부는 일종의 트라우마와도 같아. 엄연히 은인이지만 동시에 큰 장벽이기도 해. 그녀는 나를 가르치고 성장시키던 시절, 늘 그녀가 나를 시험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예고해왔어. 사고 때문에 유보되긴 했지만……. 언제든 그녀가 내게 값을 받아내러 찾아올 수 있다는 부담감에 두려웠지.”

   그 방식은 티아라의 불변 원칙이요 보편적 교육 방침이었다. 그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먼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재를 발굴해 제자로 삼은 후, 제자 속에 잠재된 특성과 철학 성향을 파악하여 그의 고유 특성과 개성을 충분히 성장시키도록 이끌어주고 역량을 키워준다. 그렇게 하나의 완성된 그릇을 빚어내면 졸업식의 날에 이르러 제자에게 최후의 시련을 선사한다.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믿어온 신념과 가치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나만 당한 건 아니고, 그녀를 거쳐 간 모두가 그런 경험을 졸업했지.”

   “참 악질적인 수법이네.”

   참고로 그렇게 사상적 무너짐을 체험한 제자들은 완전히 마음이 무너져내린 채로 이를 갈게 된다고 한다. 비록 재산상이나 육체상의 손실은 없으나 그 아픔 이상의 고통이 뒤따르며 물질적인 피해나 모욕의 피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굴욕을 평생 마음속에 새긴 채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티아라는 어린 시절의 리온에게 이 사실을 숨김이나 가감 없이 직접 증언해주었었다.

   “어쩐지 용맹한 너답지 않게 많이 힘들어하더라.”

   “내가 나약한 탓이야.”

   “아니야, 누구라도 같은 처지에서는 매한가지였을 거야.”

   윤혁은 조금의 심각함도 없이 호쾌히 답했다.

   “너는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난 여전히 네가 계속 우리의 팀을 이끌어줬으면 좋겠어. 내게도 안내자로서의 내 역할이 있듯, 너에게는 네 역할이 어울려. 너는 지구에서 오랜 시간 선교사들을 진두지휘하면서 복음을 전했잖아. 그에 비해 나는 이제 겨우 새내기에 불과한걸.”

   “하지만…….”

   문득 이런 위로와 격려를 들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칭찬 들을 자격 없는 자신에게 과도한 은혜가 부어진 기분이었다. 그가 다시 정중한 거절의 말을 꺼내려던 차에 윤혁이 말을 대신 이었다.

   “그리고 난 네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티아라 씨는 네게 있어 고통스러운 큰 장벽이었겠지.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막상 넘으려니 너무나도 막막한 존재? 솔직히 우리도 다 같이 힘을 합치지 않았으면 절대 못 이겼겠지. 물론 사실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시지만.”

   “하기야 그렇지.”

   이상하게도 윤혁의 해설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찌 저렇게 자신의 심정을 정확한 언어로 묘사한단 말인가. 꼭 자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윤혁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내게도 그런 장벽이 있어.”

   그는 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리온에게 사부가 있다면 자신에게는 형이 있었다. 연을 끊을 수도 없고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애물단지. 맞서 싸워야 할 대적인 동시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구해내야 할 소중한 가족. 그를 정의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과제였다.

   “이번에는 내가 널 도왔으니까 다음번에는 네가 나를 돕는 거다.”

   “윤혁, 너는 설마…….”

   리온은 티아라와의 대결 도중 윤혁이 스치듯 꺼냈던 ‘정정의 말’ 중 하나를 잠시 유념하며 회상하였다. 그때는 사태의 긴박함과 진중함 탓에 무심코 주의 없이 흘려들었었는데. 나름 진중한 고백이었던 걸까?

   “그러면 서로 빚을 청산한 셈이니 된 거지?”

   윤혁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리온도 마지못해 못 말린다는 듯 미소로 답했다. 이 친구의 이런 긍정적인 면모와 특유의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는 용기, 절대 끊기지 않는 곧은 심지, 신실함, 그리고 아픔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담대함까지.

   “기회가 된다면야 언제든지.”

   두 친우는 그렇게 환기된 분위기 속에서 중대한 약속을 맺었다. 역설적으로 지금 같은 편안하고 가벼운 심적 여유의 때가 아니면 감히 맺을 엄두를 내지 못할 내용의 맹약. 어쨌건 약속과 신의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둘은 우정과 신앙 속에서 서로의 짐을 기꺼이 공유하였다.

 

 

 

 

 

 

*

 

 

 

   “낭패로군! 너무 늦었어.”

   칼리드 특유의 냉정함과 침착함이 흔들리며 요동쳤다. 잠깐 방심한 찰나에 생각하지도 못한 커다란 일이 하나 터지다니. 그는 예상치 못한 흐름에 부담감을 느끼며 치열하게 타개책을 고민했다.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

   그 중요한 지점을 왜 좀 더 눈여겨보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평소의 자신답지 못한 실책을 책망하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사실 좀 더 그곳을 자세히 감찰하기로 판단할 기회는 충분했다. 인류연합 부대표 에녹이 며칠 전 그에게 부탁해서 특정 하늘도시, 곧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의 내부 감찰권을 요구했을 때, 칼리드 역시 그곳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었다. 그때 더 확실히 감시했어야 했거늘.

   물론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하늘도시의 전권은 본래 카이젤에게 소속되어 있기에 제아무리 신뢰받는 칼리드라 해도 아무 때나 하늘도시에 간섭해서 내부를 감찰하지는 못한다. 내부 감시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설령 그런 절차를 다 거쳐도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지는 못하고 제한적으로 허락된 부분까지만 열람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 제한 때문에 천하의 칼리드도 에녹이 연락해주기 전까지는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에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연락을 받은 직후에는 그래도 나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조사에 충실히 임했다. 자신 소유의 별도의 채널로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의 관측망에 접속하여 그곳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는 여러 눈여겨볼 점들이 발견되었다. 먼저 규모가 작은 구대륙 쪽에는 제7 철인왕이 불법 실험을 통해 제작한 ‘다중 성축’ 현상이 창궐하고 있었다. 실험은 도중에 실패하여 중단한 듯했는데 아예 흔적을 폐기하기는 아쉬웠는지 봉인 및 보존만 해둔 모양이었다. 자신 같았으면 증거인멸을 했을 터이거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작자였다.

   정작 더 기가 찬 쪽은 그 옆의 더 큰 대지인 신대륙 쪽이었다. 그곳은 대륙 전체가 에녹이 만들어놓은 대규모 실험장이었다. 물론 부대표에게는 수많은 실험장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행성과 항성 지역에서만 이종족 증식 및 운영을 해왔던 그가 하늘도시를 실험장으로 빌린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게다가 종족의 다양성을 증폭시키는 발산(Divergence) 프로젝트, 종족을 혼합시키는 병합(Merge) 프로젝트, 종족 순환을 유발하는 회전(Curl) 프로젝트가 아닌, 하필 ‘수렴(Convergence)’ 타입의 실험이었다. 나름대로 금기에 가까운 실험이 아니던가? 원칙주의자답지 않은 도박이었다.

   “그런 마당에 하필이면 티아라 님이 참견하셔서 사달을 냈으니 부대표도 몹시 곤란했을 법 싶군. 자신 나름대로 공공 유익과 공공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했던 차에 방향을 뒤트는 통제 밖의 변수가 개입했으니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겠어.”

   성녀의 개입과 초인들의 작품. 그 합산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방정식이었다. 구대륙에 만들어놓은 특수 성별 축의 인간 종족, 신대륙에 형성된 1만 종류가 넘는 종족과 그들을 한 가지 형태로 유도하는 ‘수렴 프로젝트’, 그리고 그들을 사상적으로 융합시키는 티아라의 가르침.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하나로 연합된다면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 발생할 수 있다. 위기일 수도 있고 반대로 도약할 기회일 수도 있겠지.

   ‘티아라 님의 행적을 더 일찍 추적하지 못한 건 내 실책이다.’

   개인적으로 칼리드는 에녹과는 달리 티아라를 다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었다. 비록 중립의 입장이라지만 지금껏 하늘도시들을 순회하면서 그녀가 행한 일들은 대체로 인류연합 측에 도움이 되거나 큰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지 해로움이 된 예는 없었다. 종종 곤란을 주기도 했지만, 그 역시 잘만 활용하면 인류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곤 했다.

   더불어 티아라는 한때 아버지와도 겨루었던 위대한 초인. 칼리드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실력과 인품을 깊이 존경했다. 사실 대다수 초인은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심지어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고 꺾임을 당한 이들조차도. 심지어 그녀야말로 카이젤과 혼인해 인류연합의 안주인 역할을 맡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간부들도 꽤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티아라가 에녹의 작품에 손을 댈 때까지만 해도 칼리드는 그녀의 행보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본래 습성대로 다른 초인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경종을 울리는 일환이라고만 여겼다. 늘 그랬듯 뒷수습만 잘하면 도리어 인류에 큰 유익이 되리라 확신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더 주목하여서 감시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실책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이상함이 없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변수가 발생한 게 문제였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티아라가 내기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선 것이다. 상대는 에녹 같은 천재도 아닌 아주 평범한,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미약한 존재들이었다. 너무 하찮은 탓에 변수로서 고려조차 않았던 자들이었거늘 그들이 판도를 뒤집어버렸다. 칼리드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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