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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6. 인터미션 III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2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곤란하게 되었군.’

   거듭 후회감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신중히 티아라의 활보를 감시하지 않은 채 눈길을 소홀히 한 것이 치명적인 화근이었다. 물론 변명거리야 있었다. 워낙 신경 써야 할 담당 항성계가 많았기에 계속 집중할 여력은 없긴 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놓친 건 놓친 것이고 실책의 사유는 변명의 명분이 되기 힘들었다.

   무려 그 티아라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다른 하늘도시로 떠났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파악한 칼리드는 즉각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는 무리할 정도로 철저히 해당 하늘도시의 기록을 집중 검색하였다.

   하지만 외부에서의 원격 검색에는 엄연히 제한이 있었다. 그가 직접 하늘도시 근처에 접근하지 않는 한 정보를 공급받는 데는 제약이 상당했다. 그런데 막상 하늘도시를 추적하려 시도했을 때는 설상가상으로 이미 해당 하늘도시 본체가 머나먼 좌표로 워프해버린 상태였다. 삽시간에 철인왕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더욱이 때마침 티아라가 떠나간 시점은 고농도 타임필드가 막 가동되려는 휴면 기간의 시작 시점과 정확히 맞물렸다. 휴면 기간이 이르면 카이젤이 손수 제작한 보안망이 발동된다. 칼리드에게조차 그것을 뚫기란 지극히 어렵다. 하필이면 매우 좋지 않은 타이밍에 절호의 기회를 놓친 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금치 못한 칼리드는 서둘러 하늘도시 안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든 대강이나마 확인하고자 극단적인 대응책을 꺼냈다. 직접 함대를 이끌고 추적에 나선 것이다. 기함 크제타킬리우스-XIII, 그 거대한 괴물 함선의 지휘 아래 수만 기 이상의 함선이 공간을 횡단했다. 함대는 워프 추적 기능을 발동하여 하늘도시의 위치를 가까스로 재추적하였다.

   그러나 크제타킬리우스-XIII가 가까스로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한 사이클의 휴면 기간이 다 지나간 뒤였다. 우주 표준 시간 기준으로는 꼬박 하루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하루라……, 이미 안쪽에서는 천년의 시간이 지났겠군.”

   이미 문제의 사건은 천 년 이상의 시간에 묻힌 상태. 늦었지만 뒷수습이라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선 칼리드는 문제의 그 하늘도시 기준으로 약 천 년 전에 벌어졌던 사건들을 철저히 검색하였다. 한참의 역사 추적의 결과, 그는 운명적 대결이 산 위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날의 정황을 알아냈다.

   칼리드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나아갔다. 그는 최첨단 귀납 논리 회로의 힘을 빌려 모든 퍼즐을 재조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설의 티아라 로페즈와 대결했다던 그 맹랑한 작자에 대한 정보를 추적했다.

   원래라면 하늘도시의 보안 특성상 탐색하기 힘든 문제였겠지만 범인이 워낙 조심성 없이 자신의 단서를 많이 흘려준 덕에 추적할만한 경로는 충분했다. 꼬리가 길면 어떻게든 잡히는 법.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유의미한 증거가 포착되었으니.

   “이, 이건 무슨…….”

   마침내 칼리드는 상대의 정체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무려 특별감시 대상이라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머릿속에서 맹렬히 회전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생물학적 형제라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지구 쪽 정보를 소홀히 여기다 이런 식의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대상의 특이 사항도 문제지만, 당최 어떤 경로로 지구의 인간이 하늘도시들의 깊은 비밀에 다가갔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가뜩이나 주시해야 할 혈통의 인물에게 누가 그런 막대한 정보를 주었단 말인가. 당장 떠오르는 가설은 하나였다.

   ‘진 녀석이 지금까지 숨겨왔던 일이 이거였나?’

   칼리드는 잠잠히 회상했다.

   불과 얼마 전에 DESCARTES를 필두로 일련의 프로그램 군단이 자신의 명령을 받아 ‘아카식 레코드’로부터 몰래 메모리 데이터를 추출해낸 일이 있었다. 그 데이터는 심하게 손상되어 있던지라 복원 과정에 시간이 꽤 걸렸었다. 그러나 힘들게 복원해낼 만한 가치와 보람은 있었다.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분명 그 내용은.

   “특정한 형태의 신앙 체계를 이전에 한 번도 노출된 적 없는 인구 집단에 퍼뜨렸을 때, ‘집단정신 간섭’이나 ‘사상제어의 표식’의 작동 패턴에 모종의 변화가 생길 가능성, 그리고 그 구체적 양상에 관해 시뮬레이션한 데이터였지.”

   막 해독에 성공한 직후 그 내용을 보았을 때는 그저 진이 자신의 갓-딜루젼과 비슷한 맥락의 ‘유사 신앙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사람들의 뇌에 이식하는 책략을 연구하는 중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는 안일한 착각이었다. 지금 새로 발견한 사실과 그때 얻은 단서를 조합해 추리해보니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되었다. 왜 진이 그들과 손을 잡았는지 감이 잡혔다.

   “지구의 그 ‘낡은 종교’를 식민지에 퍼뜨린다고?”

   얼얼한 분노에 머리 구석구석이 조금씩 지끈거렸다. 진이 다른 철인왕들이 모르게 이런 일을 몰래 기획한 것만 해도 뒤통수가 아프거늘 더 경악스러운 점은 그가 이 종교의 놀라운 파급력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그의 이용 수단이 된 종교 전파자, 소위 선교사 혹은 복음주의자라고 불리는 집단도 신경이 쓰였다. 단순 범부들일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그 가운데 위버멘쉬의 동생이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아무리 초인이 아니라 해도 그의 존재는 결코 무시해도 좋을 상수가 아니었다.

   나아가 그 동생이라는 자가 무려 그 엄청난 티아라 로페즈를 대결에서 꺾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칼리드의 심기를 괴롭혔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 이전에 장차 어떤 변수를 낳을지 모르는 그 저력이 그의 위기 의식을 고조시켰다.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문제의 낡은 종교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해당 하늘도시 전체를 감염시킨 상태였다. 이미 시스템의 능력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 마치 역병(疫病)처럼 말이다. 안타까우나 이미 초기 격리에는 실패했음을 담담히 인정해야 할 판이었다.

   이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추후의 문제 확산이었다.

   “격리해야 하나?”

   인류연합의 하늘도시 경영 방침 중에는 ‘셔플(Shuffle)’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존재한다. 그것은 휴면기간이 종료된 직후, 한 하늘도시의 주민들을 새로 제작된 식민지 및 기존의 다른 식민지로 뿔뿔이 이주시키는 제도였다.

   이는 과거 아시리아 제국의 방식과 흡사하기도 했는데 실행 목적은 토착 문명의 형성을 방지하고 민족이라는 이름의 인류 분단 단위가 영구적으로 고착화되는 경우를 막기 위함이었다. 식민지가 함부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힘을 못 키우게 할 방책이기도 했고 인류의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류 통합이 깨어지지 않게 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셔플은 실제로 대단히 높은 유용성을 입증받은 프로세스로 매우 합리적인 제도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종교라는 이름의 역병의 확산을 더욱 촉진하는 잠정적 매개물이 될 판이었다.

   ‘게다가 본디 역병이란 해당 병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더욱 빨리 확산하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영 좋지 못했다. 셔플 제도를 폐지하자니 엄연히 카이젤이 정해놓은 규칙인지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문제의 ‘우라노폴리스 2,847,029호’의 격리를 시행하려니 이미 때가 늦은 감이 있었다. 한 번 휴면기간 주기를 거친 뒤라 주민 상당수가 이미 셔플을 통해 다른 하늘도시로 이주한 상태였다. 그들을 일일이 추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추적한다고 해도 그 무형의 초자연적 바이러스가 통제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당장 급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지구의 낡은 유산, 예측불허의 그 초자연적 병원체가 수많은 하늘도시로 확산하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겠군.’

   솔직히 말해서 진정으로 그 일당에게 한 방 먹은 자들은 티아라가 아닌 칼리드를 비롯한 초인들이었다. 티아라야 잠시 자존심만 상하면 될 일이지만 철인왕들과 인류연합 출신의 지도자들은 이제 끝없이 펼쳐질 현실적인 차원의 관리 문제로 인해 밤낮 수고하면서 고심하고 고행해야 할 형국이었다. 티아라는 그 사실을 알고 기꺼이 자신을 굴욕당하게 한 일행을 방치해두었으리라. 그녀는 곧 초인들과 종교 전파자들이 충돌하게 될 것을 알았을테니까.

   “어째서, 왜 아버지는 숙부님을 막지 않은 것이지?”

   솔직히 저들을 막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도 확신이 안 섰다. 아버지가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들을 막지 못했을 리도 없다. 인류연합 수장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인간도 자기 멋대로 우주를 활보할 수 없으니까. 그의 허가가 암묵적으로나마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 마당에 자신에게 숙부 일행을 막을 정당성이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왜 왕은 제 동생에게 저런 기회를 대뜸 허락한 것일까? 공과 사의 원칙에는 죽기까지 철저한 그분이 단순히 혈육이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허락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허락한 정도가 아니라 날개를 달아준 격인가?’

   엄청난 불확실성 덩어리가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다니. 따로 뭔가를 계산하신 걸까? 혹시 숙부님의 행동이 아버지에게도 모종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계산된 것인가? 하지만 그 유익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구 인류의 영적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칼리드로서는 알 길이 전무했다.

   ‘지금으로써는 결론은 오리무중이군.’

   무수한 식민지의 역사를 떡 주무르듯 조종해왔던 전설적인 통치자 칼리드도 이번만큼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진의 대답은 아직인가?’

   교활하게도 진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어제부터인가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 티아라 로페즈는 이 사달을 벌여놓고는 아무런 책임도 안 진 채 훌훌 털고 다른 하늘도시로 떠나버렸다. 에녹은 이종족 문제 해결로 골머리를 썩이느라 칼리드를 도울 겨를이 없었다. 즉 이번 사안을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의무는 전적으로 칼리드 한 사람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과연 ‘지구의 낡은 유산’을 폐기해야 할지, 규제하고 억제해야 할지, 유익을 위해 방치해야 할지, 아니면 거꾸로 독려하거나 인류연합에 유용한 방향으로 변질하여 이용해야 할지, 선택의 방향을 쉬이 잡지 못했다. 설혹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전략을 정한다고 쳐도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어찌 설정할지는 완전한 미지수였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어쨌건 확실한 점들만 정리해보자면, 진이 비공식적으로나마 제 숙부와 협력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이제 여러 정황으로 보아 기정화되었다. 칼리드가 부릴 수 있는 72명의 부관은 잘해봐야 더블 스페셜 클래스의 초인이니 실력으로나 지혜로나 기치로나 진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다. 이 문제를 초기에 해결하려면 더 지혜로운 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깨달은 칼리드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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