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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6. 인터미션 III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28 | 회차평점 0 0

 

 

 

 

 

 

 

 

*

 

 

 

   정교한 외모와 냉철함을 머금은 푸른 눈의 소유자인 한 젊은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의 단련에 열중하였다. 전문 군인조차 버거울법한 훈련 강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육체는 어찌나 강한지 흔들림이나 떨림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고된 수련 와중에도 그의 눈은 다른 것을 쫓고 있었다. 몸이 혹사당하는 중에도 지혜는 격렬히 회전하였다. 초인의 뇌, 초인 특유의 정신력, 초인의 영혼, 그리고 초지능체까지 하나의 혼연일체가 되어 온전히 탐구에 집중하였다.

  그 남자는 잡념을 몰아내려 할 때마다 몸을 운동으로 괴롭히는 성향이었다. 보통 그렇게 강제로 혹사한 뒤 잠깐 달콤한 휴식을 취하면 깊은 상념에 푹 잠길 수 있었다. 그의 지혜와 창조력은 늘 체계적인 훈련 후 노곤해진 순간에 최고로 극대화되곤 했다.

   “흐음.”

   남자는 거센 턱걸이를 멈추고 허리띠에 연결된 무거운 질량 추를 떼어낸 후, 자리에 걸터앉았다. 팽팽하게 조여진 탄탄한 근육 위로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맨몸의 탄탄한 상체를 닦은 뒤 어깨 위에 수건을 한 장 얹고 차분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티아라.’

 

   흑발벽안의 미남, 에녹은 며칠 전 성녀가 벌인 일을 떠올렸다. 사실 성녀가 종종 식민지에 쳐들어가 평화의 사도 행세를 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이번에는 하필 에녹 자신의 실험장에 마수를 뻗쳤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의 관할 구역은 대체로 무인 지대였기에 그녀와 마주하거나 충돌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의 레이더에 걸린 실험장은 인간이 포함된 곳. 운이 나빴다. ‘성녀’와 ‘불경의 삼각형’의 만남이라니, 불쾌한 결합임은 틀림없었다.

   ‘경건한 척하는 훼방자 같으니.’

 

   에녹은 추억에 잠겼다. 그는 어린 시절 티아라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때도 그는 카이젤 바로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엘, 발란듀르비치는 그런 에녹을 두고 카이젤의 뒤처리 담당이라며 수군거렸었다. 티아라나 레리엔도 노골적으로 비방하지는 않더라도 은연중에 그렇게 여기며 눈빛을 보냈었지.

   “2대째의 아들과 초대째의 외손자라니, 귀족들의 모임이군요.”

   특별히 티아라는 둘을 혈통주의자라면서 판단했었는데 공개적인 모욕이나 비방보다 오히려 그런 위선적인 비꼼이 더욱 불쾌했다. 훗날 실력으로 카이젤에게 패배당한 뒤로는 티아라도 그 가벼운 입을 닫아버렸지만. 어쨌건 에녹에게는 티아라라는 존재와 관련해서 썩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필 중요한 이때 거슬리는 것들이 많군.’

   냉전의 공식 종결도 이제 두 달여 남짓 남았다. 전례 없는 종족 전쟁, 패권 다툼, 거기다가 유성운의 입김이 닿은 히어로즈까지 출현해 등판했다. 지구에서 흥미진진한 난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확대 버전인 우주 쪽 냉전도 예기치 못한 국면을 맞이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인류연합의 시스템이 더욱 든든해지고 부강해졌으며 인류의 피조물인 인공생명체와 기계들의 발전도 경이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어해야 할 유닛들의 지나친 스펙트럼 확장은 부작용이기도 했다.

   ‘새로운 제어 시스템도 머잖아 한계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피조물은 인공생명체(이종족), 기계(인공지능), 단 두 종류로 유닛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분류 체계마저 무의미해질 기미가 보이는 중이었다. 인간의 발명품들이 지나치게 체계화되고 확대되고 발전해버린 나머지, 하드웨어의 종류가 과도할 정도로 다양하고 정교하고 우수해졌다.

   오늘날은 탄소 기반의 유기체뿐 아니라 전혀 다른 분자구조의 유기체들도 개발되었다. 탄소 생명체 카테고리 안에도 바이러스나 프리온(Prion)을 개조하여 기존 부류에 전혀 속하지 않는 신(新)생명체들도 생성되었다. 나노머신이나 피코머신의 발전에 힘입어 기계 분자의 조립으로 구축된 생명체까지 실현되었다.

   기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구조가 워낙 정밀해지다 보니 그간 생명체만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자가 복제, 생식, 감각, 사고 등의 기능을 거의 온전히 똑같은 수준으로 획득했다.

   아울러 기계와 생명체, 인공생명체, 유사 유기체 등이 섞이고 뒤섞이고 통합되면서 각종 하이브리드 종(種)들까지 무수히 출현한 형국이었다. 그것들의 종류까지 합산하면 카테고리 개수가 덧셈을 넘어 제곱 배로 부풀려질 판이었다.

   이는 움직이는 존재들만의 사정으로 국한되지는 않았다. 벌크 차원, 형제 홀로그래피(Sibling holography),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새로운 차원이 발견되고 그곳들을 파헤치는 탐험이 본격화되면서 인류의 물질 분류 체계도 확대되었다.

   탐험과 연구의 결과, 기존 물질에 속하지 않은 신물질이 만들어졌고 그 신물질을 기반으로 한 유닛들도 대거 개발되었다. 이미 유령과 흡사한 속성을 띤 인공 차원종(次元種) 생명체가 10만 종이 넘는 수준. 우리 우주 너머의 벌크 차원에서도 서식 가능한 상위 차원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제작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것들의 발명과 활용은 차원 및 시공간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하다못해 이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구분마저도 흐려지고 있는 실태였다.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가 상용화되면서 한 존재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구분된 두 요소가 아닌, 전환 가능한 혼합된 양면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소프트웨어가 독자적인 하드웨어로 실체화하기도 하고, 하드웨어가 역으로 소프트웨어로 화하기도 하는 때가 되었다.

   이러한 대격변의 때에 티아라의 등장은 부적절한 사인이었다.

   ‘만약 정말로 티아라가 작정하고 내 프로젝트를 훼방하려 했다면, 고작 현재의 불경의 삼각형 정도 수준의 TUNER만으로 해결이나 감당이 가능할까?’

   확답 불가. 그녀의 격은 여전히 엄연히 에녹보다 한 수 위다. 만약 그런 그녀가 인류만을 위하지 않고 모든 지성체를 대등하게 여긴다면 어떤 재앙이 벌어질까? 더욱이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Galaxy-class Biosphere)의 공식 출시가 가까워진 지금 이 시국이라면?

   ‘시급하게 대응책을 두어야 해.’

   꼭 비단 티아라 문제가 아니더라도 장차 이종족이 인류를 누르거나 추월할 가능성은 반드시 미리 원천 봉쇄해야만 한다. 이제 에녹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끌어안을 수 없음을 자각했다.

   “위버멘쉬께서는 왜 아직 연락이 없지?”

   그의 소꿉친구이자 그가 섬기는 상관인 카이젤은 현재 우리 은하를 떠나 출타 중이었다. 새로 정복한 다른 은하들을 살피러 출장을 나섰는데 아마 직접 손을 봐야만 하는 중차대한 문제들이 산적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대표조차 지속적으로 연락이 안 될 리는 없으니까.

   “우선은 급한 대로 내가 결정권을 쥐는 것은 불가피한가?”

   단련을 마친 에녹은 차가운 물줄기로 몸을 씻으며 차분히 묵상하였다.

   “그래, 이제는 망설일 의미가 없겠지.”

   그는 얼마 전 티아라와 벌였던 알력 다툼을 회상했다. 정작 놀라운 대목은 그녀가 벌인 일이 아니라 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가 티아라의 작업에 훼방을 놓았다. 더욱이 그자들은 ‘영적 특성’이라는 기발한 접근법으로 이종족과 인간을 완벽하게 구분했다. 알곡과 가라지를 정확하게 구분해내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어쩌면 티아라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인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한다면 온갖 이종족의 폭발적인 증식이 범람할 장래에도 인류의 존엄성과 권위의 아성을 굳게 지킬 해답을 얻으리라.

   “우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곱 철인왕들은 기독교적 가치관의 역사적 파급력을 전혀 몰라. 그것이 지구 역사를 얼마나 좌지우지했는지, 얼마나 큰 영적 영향을 행사했는지 전혀 실감하지 못할 테지. 그들의 세계는 완벽히 그 신앙 체계와 격리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녹은 그들과는 달랐다. 당장 그의 생물학적 친부인 젊은 일본인 의사만 해도 당대 최고 수준으로 독실하고 정직한 크리스천이었으니까. 에녹의 어머니이자 당대 최강자였던 2대째 위버멘쉬의 영혼마저도 그 선량함 앞에 흔들림을 피하지 못할 정도였다.

   더욱이 친부의 가문은 대대로 의사로서의 선한 신념과 신을 사랑하는 경건한 기독교적 가치를 유산으로 여겼던 곳. 비록 친부 밑에서 자라지는 못했다지만, 엄연히 그 피를 이은 아들이었기에 에녹도 그 종교를 탄압의 대상이나 배격의 대상이 아닌 공존할 가치로 여겼다.

   ‘지구 인류 역사상 그것을 탄압한 집단이 번영한 예는 없었어. 하나 같이 몰락하거나 무너지거나 비참해졌지. 차라리 최대한 공생 체계를 이루어서 사회 안정화와 질서의 향상에 애용하는 편이 낫다.’

   물론 종교와의 상생이니 대결이니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인간 세계의 일. 아쉽게도 에녹에게는 식민지 소속 인간 주민들에게 손을 댈 권한이 공식적으로는 없었다. 다만 우주에 창궐한 인조 이종족에는, 특별히 그 군집으로부터 선발된 인류연합 비정규군을 향해서는 약간이나마 제어권이 있었다. 그는 그 허락된 힘을 적절하게 활용할 전략을 모색했다.

   ‘그분의 동생이 과연 성공할지 실패할지 여부는 불투명한 미래다. 하지만 그자가 만에 하나 성공하여 범 식민지적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전면확대할 시나리오를 미리 대비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군.’

   길을 닦아두는 편도 나쁘지 않으리. 자기 나름대로 미래의 계측을 마친 에녹은 정신파와 시뮬레이션 우주 기술력을 동원해 허공 위에 실체화된 도면을 그려나갔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실존성과 권위와 강제력을 내재한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먼저 그는 한 치의 비틀림도 없는, 기하학적으로 가장 완벽하고 정밀한 삼각형을 그려냈다. 작도기나 프로그램들의 도움도 없이 맨손으로. 분자 하나조차도 어긋나지 못하도록 메우는 반듯한 직선들의 교차가 에녹이라는 인간의 무시무시한 본질, 곧 숨 막히는 원칙성을 고스란히 투영하였다.

   “최초의 불경의 삼각형(Blaspheme triangle).”

   명령어에 반응한 도면이 근방 시공간과 함께 진동하였다.

   “우선은 이것이 현 모델, 여기에다가 한 세트를 더 얹어야겠군.”

   그는 삼각형의 청사진 위에 역삼각형을 덮어 육망성을 그려냈다. 그 역삼각형의 직선들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닌, 곧 실체화될 프로그램의 뼈대였다. 머지않아 도래할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의 시대를 대비해 모든 괴수들을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툴 셋, 그것들이 기존 대열에 추가로 합류하였다.

   - 양자통신 제어 프로그램, <F.E.Y.N.M.A.N.>

   - 자율적 설계 프로그램, <D.A.W.K.I.N.S.>

   - 우주 개척 프로그램, <H.A.W.K.I.N.G.>

   프로그램명은 하나 같이 초인들의 언어로 표현된 학술적 전문 고유 명사를 알파벳으로 전환하여 앞 글자들을 따서 배열한 축약어였다. 동시에 에녹 특유의 지독하리만큼 악의적인 작명 센스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래. 이름은 블라스핌 헥사그램이 적합하군.”

  불경의 육망성(Blaspheme Hexagram, 블라스핌 헥사그램).

과거 인류로 하여금 기독교를 배척하도록 했던 여섯 악명, 그것들은 이제 허울만 남은 이름의 형태로 재해석되어 이종족에게 적용되었다. 이로써 본래의 이름 값과는 달리 역으로 우주 인류의 복음화의 길을 닦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에녹은 컴퓨터의 도움도 없이 손쉽게 청사진을 그려낸 후 그 계획과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방안까지 하나하나 세세히 구상하였다. 티아라나 다른 초인의 섣부른 발상이 카이젤이 그려낼 미래에 훼방이 되지 않도록, 충신의 입장에서 모든 우려 사항을 반영해 완전무결한 대비책을 구성하였다.

   ‘약속한대로 당신이 이끌 미래는 흠 없이 찬란히 빛나야만 합니다. 확정 요인이든, 불확정성 요인이든, 그 어떤 것이든 그 예정된 미래와 조화로이 합치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해야 마땅합니다. 이를 뒤흔드는 흐름은 허락지 않을 겁니다.’

   이 신념이야말로 그가 의지하는 철칙이요 절대 기준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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