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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6. 인터미션 III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0.30 | 회차평점 0 0

 

 

 

 

 

 

 

*

 

 

 

 

  성녀와의 운명의 대결이 지난 후로도 윤혁 일행은 일곱 번의 하늘도시 여정을 더 거쳤다. 그날처럼 한 번에 큰 잭폿을 터뜨릴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하이테로 대륙에서의 선교 성공은 어디까지나 신께서 개입하셔서 특단의 기회를 열어주신 천운의 경우. 그분께서는 일행이 더 교만해지지 않도록 다스리실 생각이신지 이후로는 도리어 고난, 난처함, 풀리지 않는 일들을 주셨다. 힘들게 발로 뛰고 복음을 전해도 믿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열매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광야를 거닐도록 백성을 이끄셨던 신께서는 때에 따라 양식을 공급하여 적어도 백성이 굶어 죽지는 않도록 보호하셨다. 이러한 원리는 마음의 양식을 필요로 하는 선교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들이 거쳐가는 지역마다 최소한 한 명 정도는 간간이 회심자가 나타났다. 또한 성경책도 일행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최소 한 권 이상은 수용되었다.

   회심자의 출현 이외에도 중요한 성과가 있었으니 바로 선교사 개개인의 영적인 성장이었다. 초보였던 윤혁은 부족한 경험을 충분히 쌓아 어느덧 선교사로서의 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리온은 티아라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기점으로 과거를 옭아매던 마음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주님을 더욱 자랑스레 여기게 되었고 아울러 망설임 없이 당당히 사명을 시행할 용기를 얻었다.

   한편 루디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원하던 기존의 소망을 더 크고 넓은 원대한 꿈으로 개화시켰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을 통로로 삼아 우주 만방에 그리스도의 승리와 기쁨과 평강이 전달되어 은혜가 바다처럼 충만해지기를 소원했다. 이에 맞물려 그녀 특유의 상냥함과 넓은 마음도 날로 날로 아름답게 성장했다.

   스테판은 복음을 전하는 여정에 손수 참여함으로써 전보다 더욱 확고한 정신적 자유를 획득했다. 또한 그만의 강점, 곧 하늘도시들의 세계관에 관한 지식과 경험에 더해 용기와 힘과 재주와 정신력과 굳건한 믿음, 그리고 동일 입장 상 주민들의 찢어지고 상한 심령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점까지 겹쳐지면서 스테판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아직은 미숙했지만, 세 동료는 그가 장차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기간, 진은 윤혁과 별다른 소통은 나누지 않은 채 필요한 물자와 기술만 지원하였다. 내심 그가 조금 불편했던 윤혁은 진의 침묵에 개의치 않았다. 중간중간 진은 윤혁에게 ‘조만간 폭풍의 눈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때마다 윤혁의 잠들었던 염려는 다시 되살아났다.

   하지만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생각 외로 인류연합 측에서 직접 오는 핍박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지금껏 늘 받아왔던 현지 주민들의 복음에 대한 반발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긴 한데……, 어째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 드네.’

   윤혁이 이렇게 은연 중 근심을 품던 와중, 리온과 루디아에게는 또다른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동료인 윤혁의 건강이 생각보다 빠르게 쇠하고 있었다. 인형 몸체가 아닌 실제 몸으로 우주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심히 안쓰러웠다.

   루디아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삼켰다.

   ‘차라리 그의 고생을 대신 짊어지고 싶어.’

   한편 사역의 전개에 관한 보고는 리온과 루디아 둘의 본체를 통해서 지구에 머무른 신실한 이방인들과 메시아닉 유대인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밤낮으로 모여 성실한 주의 청년들을 위해 기도에 힘썼다. 아울러 언젠가는 자신들도 지구 밖 식민지들을 방문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 기도는 새로운 손님의 개입으로 현실화되긴 되지만, 이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훗날의 일이다.

   아무튼 기도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지원에 힘입어서 기력과 의지력을 되찾은 현지의 전사들을 오늘도 새로이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갔다.

   “가자, 모두들.”

   윤혁은 아픈 몸 상태는 숨긴 채 늘 그래왔듯 명랑하고 용감한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확신했다. 언제든지 주님과 동료들이 함께 한다면 어떤 종류의 난관이 닥쳐와도 능히 이길 수 있으리라고. 리온과 루디아와 스테판도 그런 그의 신념에 공감하였기에 윤혁더러 차마 이제는 그만 일하고 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자신 같았어도 그것을 원치 않았을 것임을 알기에.

   “그래.”

   “준비는 됐어.”

   “알겠소.”

   이렇게 열다섯 번째 하늘도시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수문장 프로그램이 신호를 알렸다.

   {제3 철인왕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수고했다. 그녀와 직접 독대하겠다.”

   칼리드는 손님의 당도를 알리는 메시지에 반갑게 답했다. 그는 외부와의 온·오프라인 연결을 죄다 차단한 후, 단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할 채비를 하였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특수 실에 들어왔다.

   그녀의 청색 머리카락은 은하수를 머금은 듯 찰랑거렸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을 재현한 듯한 부드러운 제복은 사치스럽지도 거추장스럽지도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품격을 여실히 흘렸다. 전체적으로 그녀는 자애로워 보였고 순결한 지혜가 넘쳐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세상 그 어느 거울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투명하여 모든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였는데 그 때문에 그녀의 눈을 직접 바라보는 자는 자기 모습을 티끌 하나까지 정밀히 비춰볼 수 있었다.

   칼리드의 불꽃 눈동자와 여인의 거울 빛 눈동자가 정면으로 마주했다.

   “오랜만이야, 대총통.”

   “오느라 수고 많았다, 제3 철인왕.”

   일곱 철인왕에게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었다. 칼리드의 경우에는 정치에 특화되었고, 진의 경우에는 과학, 에르샤의 경우에는 군 전략 전술, 그리고 지금 이곳을 방문한 스튜아의 경우에는 ‘문화’가 핵심 분야였다.

   “우리 잘생긴 대총통께서 어떤 일로 이 몸을 찾으셨을까?”

   그녀는 형제의 흰 뺨을 오른손으로 살며시 어루만졌다. 어린애 취급당한 칼리드는 조금 감정이 상했는지 왼쪽 눈을 찡그렸지만, 굳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거나 무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형제자매끼리의 스킨십인 것을 알고 있으니 구태여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께서 ‘지구의 유산’을 식민지에 퍼뜨리는 행위를 용인하셨다.”

   “어머, 그래? 그런데 왜 그리 울상이실까나. 당신 권위가 손상될까 봐?”

   “허튼소리. 지금껏 그 어떤 사상도 나와 아버지의 제어를 벗어난 수준까지 창궐한 적은 없었다. 인류의 사상은 더는 초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못해.”

   칼리드는 냉철하고 자신만만하게 딱 잘라 선언했다.

   “후후, 허세도 많기는. 당장 말과 행동이 안 맞잖아. 그렇게 자신 있다면 왜 초인들을 이끌어야 할 너부터가 겁먹은 채 움츠러든 것이니? 네 당혹감과 의구심이 내 눈에는 보여. 마음속이 비틀려 있는 게 눈에 훤해.”

   스튜아는 웃으며 상대의 모순을 지적했다. 심리전에 있어서는 그녀도 칼리드 못지않았다. 그러나 칼리드는 발끈하여 맞받아치기보다는 차분히 침묵을 유지하며 무표정하게 스튜아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이번 건은 아무래도 특별한 모양이지?”

   일부러 강한 척 자신의 흔들림을 은폐해도 스튜아의 안목을 우회하지는 못함을 직감한 칼리드. 되도록 심리적 우위에 선 채 거래를 이끌고 싶었으나 생각대로 편히 흐르지는 않았다.

   ‘숨겨봐야 소용없나?’

   확실히 그녀 말대로 숙부 일당이 현재 퍼뜨리는 교훈은 단순히 교리 그 이상의 위력이 있었다. 내버려 뒀으면 자칫 초인의 두뇌로 계산 가능한 한계 이상으로 골치 아픈 변수가 생겼을 정도로.

   다행히 뒤늦게나마 문제의 그 하늘도시의 셔플을 억제하고 그 유산의 확산을 막는 방역 단계에 돌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백 퍼센트의 수습은 아니었다. 이미 손에서 벗어난 벌레들이 많이 생겼다.

   게다가 최근 부대표 에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티아라에게 데인 영향인지는 몰라도 그는 그 유산을 상대로 긍정적인 태도의 대응을 취할 작정으로 보였다. 인간을 직접 관할하는 건 에녹의 일이 아니니 상대적으로 칼리드가 이쪽 방면으로는 더 많은 칼날을 쥐긴 했지만 안도할 계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은하계 바깥을 정복하는 사업으로 한창 바쁘다.’

   당분간은 카이젤도 부하들의 행동에 개입할 의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이제는 늦기 전에 신속히 결단하여 조처해야 하리라. 아버지의 생각의 방향이 전혀 다른 쪽으로 확정되기 전에, 그리고 이 사태에 관해 칼리드와 다르게 접근하는 초인들이 경쟁 우위를 점하기 전에.

   “확실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형의 적을 상대할 때는 골치가 아파. 우호적으로 대할지 막을지 배척할지, 그 방향조차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 그럴 때는 무력보다는 문화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낫긴 하지.”

   스튜아가 부드러운 말투로 칼리드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그게 네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 맞지?”

   “부분적으로는 정답이다.”

   “흠, 그럼 또 뭐가 있는데?”

   “진이 저들 배후에 있어.”

   “진 그 아이가? 오호, 그러면 확실히 인공지능이나 더블 스페셜 클래스의 부하들로는 대응이 어렵겠네. 나 정도의 거물은 개입해줘야 한다 이건가?”

   스튜아는 싱긋 웃으며 자기 피알을 하였다.

   “그것도 있고 부대표 역시 저 정신적 바이러스를 관대하게 여길 것 같군. 존경할만한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이슈와 관련해서는 나와 심리적 박자가 잘 맞지 않을 듯해.”

   “이런, 하필이면 그런 걸출한 분이라니.”

   칼리드는 질문의 화살을 그녀에게로 되돌렸다.

   “네게 내 권한의 일부를 공유해준다면 너는 어떤 전략을 취할 작정이지?”

   확정적 단언은 아니지만 나름 그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칼리드는 스튜아의 마음을 떠보기로 했다. 그녀는 사상적으로 많은 면에서 그와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그녀를 충동함으로써 파생될 결과는 그로서도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뻔하지.”

   수단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가장 편리하고 좋은 수단.

   “확실히 칼리드 너와 내가 협력한다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하게 풀릴 거야.”

   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던 칼리드는 묵묵히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쓸 무기는 대중매체, 즉 미디어야. 사람의 사상을 조종하는 데는 이보다 더 적절한 게 없거든. 심지어 미디어는 만에 하나의 확률로 ‘사상제어의 표식’이 사라진다 해도 언제든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고전적인 수법이긴 한데, 고전적이란 말은 그만큼 범용성이 높다는 뜻이지.”

   “하지만 대중매체만으로는 사람들을 세뇌하기에 조금 부족하지 않나?”

   칼리드의 지적을 들은 즉시 스튜아는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칼리드는 빈정이 상했다. 그의 의자매는 예전부터 상대가 자신의 의중을 단번에 깨닫지 못할 때면 저렇게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림으로써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곤 했다.

   “설마 너 영상 매체나 인쇄 매체 같은 백만 년 전 뗀석기들을 상정한 건 아니겠지?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위대하신 칼리드답지 않게.”

   웃음기 섞인 책망에 칼리드의 미간에 피곤함이 깃들었다.

   “우리에게는 역대 최고, 역대 최악, 역대 최강의 매체가 있잖아.”

   “설마…….”

   “그래. 시뮬레이션 우주(S-unvs)라는 이름의 미디어 말이지.”

   거울 같은 동공이 사방의 빛을 산란시키며 섬뜩한 이채를 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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