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7. 히어로즈 III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01 | 회차평점 0 |
Chapter 27. 히어로즈 Ⅲ
1년간 엎치락뒤치락 치열했던 냉전도 결국은 종료되었다. 원래 1년씩 휴지기와 냉전기를 번갈아 겪는 것이 인류연합이 설정한 규칙이었기에 정해진 시간이 도래하자 일절의 미련도 없이 모든 다툼의 프로세스가 즉시 종료되었다.
종합적으로 평가해보자면 냉전은 처음 계획된 그대로 흘러갔다. 싸움의 주역인 섹터장 중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늘 그랬듯 그들은 적당히 규정 아래에서 경기를 즐긴 것으로 만족했다. 굳이 승자를 들자면 인류연합 대표인 카이젤 라흐블뤼크뿐이었는데 정작 그는 그 사소한 싸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냉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우주로 출장을 다녀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의 거시적 계획들에 비하면 그런 소소한 이벤트의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왕의 비정상적으로 큰 그릇에 비췄을 때 사소하다 뿐이지, 일전의 두 번의 냉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냉전도 다양한 측면에서 인류 발전에 적잖이 기여하였다. 특히 전쟁, 통신, 교통 분야의 과학 기술을 다방면으로 향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평화 시보다는 전쟁 시에 위대한 기술이 발견되는 법인데 초인들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쟁은 그들의 창조적 지성을 자극했다. 초인들도 결국 여타 인간과 마찬가지로 남을 짓누르고 일어서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로스트엠페러들은 치열한 경쟁을 마중물 삼아 여러 첨단 발명품을 직접 발명하였다. 또한 그들은 외은하 쪽에서 활동하는 우주 측 초인들과도 거래하였는데 경쟁적으로 교류의 양을 늘림으로써 평상시에는 접해보지 못한 다수의 획기적인 기술들을 새로이 학습했다. 이 수확들이 냉전 도중 급격히 섞여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지구의 문명은 더욱 풍성해졌다.
더욱이 인류연합이 우리 은하 외 다른 은하들을 새로 정복하면서 노획한 막대한 우주적 부가 간접적으로 흘러들었고 그것은 냉전과 맞물려 발생한 역설적 번영의 흐름에 부채질을 하였다. 민간보다는 주로 정부 측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렸지만, 떨어지는 부스러기조차도 엄청났기에 민간 세계도 비약적인 번영과 전례 없는 풍요를 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낙수 효과가 실현된 셈이었다. 장래에 후손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초인들 개개인의 지력과 실력도 장족의 성장을 이룩했다. 경쟁이란 그들에게 있어서 두뇌 발달을 촉진하는 훈련과도 같았다.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대체품이 평상시에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현실에서 직접 경쟁을 체험하는 편이 실재감도 짙고 카타르시스도 더 강렬하게 주었기에 효력의 깊이가 뛰어났다.
물론 앞으로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 기술이 더 상용화되어 현실과의 경계마저도 무너진다면 그러한 우위마저도 무의미해지겠지만. 당장 이번 냉전에만 해도 상당량의 필드가 시뮬레이션 우주들로 대체된 것을 보면 그렇게 될 날도 머지 않았음은 분명해보였다.
종합적으로 초인들의 획득 점수를 계산했을 때 개인별 경쟁으로 MVP에 근접한 존재는 유성운 동부 섹터장이었다. 그가 새로 설립한 초거대기업 여러 개, 지구에서 운용 중인 Another World, 그리고 우주에서 활동 중인 본인 명의의 백여 개 기업은 하나같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내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윤보다 훨씬 더 큰 소득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보스에게서 받는 신뢰가 두터워진 점이었다.
그의 성공과 더불어 히어로즈 플랜도 성공적으로 지구 위에 자리 잡았다. 당위성은 충분했다. 비록 비영리단체이자 영웅을 표방한 자경 단체이긴 해도 영웅단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류연합 측에 커다란 유익을 주었다. 성운의 계산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그새 영웅을 향한 대중의 열광은 과거에 연예인들에게 쏟아 부어졌던 환호를 뛰어넘었다. 영화배우가 스크린을 장악하던 시절은 저물었으니 이제는 곳곳의 거리마다 영웅들의 이미지가 즐비하는 때가 되었다. 비록 영웅들 대부분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활동했기에 신변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개성과 신비주의적 이미지는 더욱 증대되었다. 그들은 영웅, 히어로, 헌터 등 다양한 칭호로 불리며 대중의 인기를 차지했다. 그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미디어를 타고 돌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지구 너머의 세계에서는 지상에서의 냉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냉전이 잔뜩 전개되었다. 그곳은 대부분 무인 지대였기에 실제 모의 전쟁까지 가능했고 자연스레 전쟁 스케일이 상한선도 없이 확대될 수 있었다.
우주적인 경쟁은 우주적인 생산으로 환원되었다.
온갖 이종족, 인공생명체, 기계가 새로이 창조되었다. 장기간의 생존 경쟁, 인위적인 진화 개조, 여러 초인의 발명품 수입, 이 세 요건의 삼박자가 맞물리면서 인위적인 피조물들의 수와 다양성과 체계성의 증대는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인류의 소중한 가축이 되어 여러 항성계를 개척하고 물자를 생산하고 자원을 확보하는 일을 감당하였다.
노동력의 향상은 인프라의 증가로도 이어졌다. 자원 채굴, 에너지원 생성, 공산품 및 유기체 자원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더욱 많은 기반들을 건설하고 더욱 많은 정복을 성취할 여건이 갖춰졌다. 우주 개척의 증량으로 인해 인류는 소비하는 자원의 곱절배로 끊임없이 새 자원을 축적하였다.
이렇게 기반이 마련되자 자연히 인류는 한 개 이상의 문명을, 그것도 여러 카테고리의 문명을 동시다발적으로 경영할 여력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 은하가 속해있는 광활한 초은하단의 정복도 거의 다 완성되었으며 그 너머의 다른 초은하단까지 여럿 정복되었다. 상위 차원의 개척과 개발도 능수능란하게 진행 중이었다. 인공지능, 하드웨어, 엔진, 공간 조작, 차원 관련 기술은 하루하루 급속히 발전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을 갈아엎었다.
에녹이 새로 업데이트한 ‘불경의 삼각형’으로 인해 진화된 이종족, 카이젤이 성운의 프로젝트를 차용해 더욱 발전시킨 양산형 영웅 휴먼 솔져, 두 군대의 우주적 경쟁은 양쪽 진영 모두의 발전을 한꺼번에 촉진했다.
여기에 더해 기계들의 발전 속도도 두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기계 신의 현신’으로 인하여 파생된 새 지배 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기계들이 자율적으로 증식하고 개조하고 진화하는 능력을 획득하였고, 이는 인간 군대와 이종족 군단 모두를 긴장하게끔 했다.
이로써 인류의 군사 시스템을 이루는 세 축은 견고히 세워져 상향 조정되었고 이는 튼튼한 삼각형의 구도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냉전 구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 범위 내에서 작동하여 인류연합이 처음 기획했던 구상을 성취해내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
냉전 종결 직후, 성운은 크리슈나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슬슬 영웅들을 한 차원 더 진화시킬 계획을 검토해볼 타이밍입니다.”
“음.”
히어로즈라는 체제를 지탱하는 두 후원자가 있었으니, 성운은 기술력을, 크리스는 인적 자원들의 경험과 역량을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영웅 시스템에는 여전히 하나의 취약한 구멍이 남아 있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영웅이라 해봤자 일개 이종족 사병과 다를 바 없는 저급한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영웅들의 도덕심 형성 문제가 역시나 관건이려나?”
“네. 크리슈나 씨도 알겠지만, 우리 여건으로는 이걸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세뇌 교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억지로 주입한 사상이나 가치관은 사실 히어로즈의 처음 취지에 맞지도 않고, 장기적으로 별 의미도 없습니다.”
만일 그런 방식을 원했더라면 처음부터 인간을 선발할 이유도 없었다. 히어로즈의 존재 목적 중 하나는 ‘인류가 참된 영웅을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고 증명하는 것. 무력이나 세력 다툼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성운은 처음 목적을 달성해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길 원했다.
“각 개인의 마음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확고한 도덕심과 정의감이 필요합니다. 전직 휴먼 솔져들은 이런 측면에서 다소 약합니다. 평생 기계나 이종족을 제압하고 죽이는 일만 해왔으니까요.”
“정확한 지적이야. 그들의 본질은 전쟁꾼들이지.”
성운이 구상하는 히어로즈의 이상적 형태는 영웅다운 영웅. 지금처럼 지적 능력, 창의력, 개성, 적응력, 탁월한 무력만 지녀서는 곤란했다. 하나하나가 진정으로 영웅 정신을 갖추어야만 했다. 영웅과는 거리가 먼 성향의 위인인 성운으로서는 그 부족함을 보충해줄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영웅적 품성을 가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 이거로군.”
“그렇습니다. 혹은 그런 영웅을 양육할 요람이 필요하죠.”
사실 성운도 생각해놓은 후보는 몇몇 있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이를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의사나 법관 등 나름 영웅적인 이미지와 어울렸던 직종조차도 현재는 인공지능에 역할을 빼앗긴 탓에 영웅의 본질과 상당히 멀어졌다. 그렇다고 정계에서 찾자니 권력은 초인들의 수중에 있는데 그들은 영웅보다는 뒤틀린 반(反)영웅에 가까웠다.
“그런데 의외로 적합한 인물이 하나 있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같냐?”
크리슈나가 단박에 대답했다.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사실상의 정답이 쉽게 도출되었다. 한때 영웅의 역할을 맡았던 자. 한순간의 치기와 그릇된 공명심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걸었다가 일생의 고비를 통해서 다시금 새롭게 거듭난 자. 젊고 강한 육체와 세월을 통해 얻은 경륜. 지혜로우나 초인과는 달리 반영웅이 아닌 자. 끝으로 히어로즈 계획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위치, 곧 인류연합 수장과의 연결점을 소유한 자.
“강성한 씨.”
“성한 형씨.”
이심전심 마냥 둘이 동시다발적으로 대답했다.
“큭, 대놓고 왕의 부친을 이용하겠다? 속이 다 보이는구먼. 네 보스를 어떻게든 조종해보려는 거냐? 그게 그 괴물한테 먹힐 것 같으냐, 애송아?”
크리스는 몹시 흥미롭다는 듯 조소하였다.
“제가 당신처럼 무례한 줄로 알면 곤란합니다.”
성운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보스의 부친에게 그에 합당한 명예를 부여하는 것뿐입니다.”
“얼씨구.”
마침 얼마 전 성운은 성한에게 연락하여 해당 제의를 전달한 참이었다. 영웅들을 영웅답게 만드는 업무를 그에게 맡겨보고 싶다며 부탁 아닌 부탁을 던졌다. 성한은 마지못해서 그 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거창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굳이 성한을 정식으로 멘탈 트레이너로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 괜히 본인도 부담스러워할 테고. 그저 영웅들보고 그와 친하게 지내도록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했다. 말하자면 아버지 내지는 보듬어주는 자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면 그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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