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8. 납치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08 | 회차평점 0 |
Chapter 28. 납치
이것은 1차 선교 여행이 갑작스레 종료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네 번의 여행 내내 제각기 다른 하늘도시를 돌아다니며 식민지 구석구석 복음과 사랑과 진리를 전파했던 선교사들조차도 열다섯 번째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은 속수무책의 불가항력이었고 그로 인해 잠시 강행군을 중단하게 되었다.
열다섯 번째 방문은 진입 단계부터 파열음이 발생했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사태가 벌어졌다. 외부 세력에 의한 발각 탓이었다. 진은 생각하기를 언젠가는 칼리드나 식민지를 관리하는 인류연합 간부 중 누군가는 선교사들의 꼬리를 밟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다행히 진이 교묘하게 머리를 굴린 덕에 지금까지는 교묘히 추적을 피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운이 나빴다.
하늘도시 내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윤혁은 심상치 않은 불길함을 감지했다. 누군가의 눈의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감각. 기우에 불과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엔 그의 뜻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일행이 땅에 착륙하자마자 뒤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반가워.”
“……!”
선교사들은 일제히 화들짝 놀랐다. 전신 로브를 둘러쓴 채 가면을 쓴 수상한 사람이 허공에 둥둥 뜬 채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더 당황스러운 점은 그의 손에 붙잡혀 있는 윤혁의 뒷덜미였다. 침입자는 처음부터 그들의 돌입을 예상한 채 자기 손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판이 황급하게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자는 순식간에 일행의 손이 닿지 않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윽고 세 명과 수상한 자 사이에 보호막 비슷한 반투명한 결계가 형성되었다. 리온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돌려줘!”
“그렇게는 안 돼. 난 이 친구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분해 하는 리온을 향해 괴한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며 농락했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좀 더 놀아도 돼. 마침 여흥 거리도 될 겸 딱이군.”
대화를 마치자마자 수상한 자 주위의 공간이 뒤틀리며 기이한 패턴으로 개변하였다. 이제껏 보아온 워프나 게이트, 단거리 텔레포트나 포탈과는 기술 유형이 달라 보였다. 적어도 차원 기술이나 시공간 기술과는 확연히 달랐다.
“안녕.”
그는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면서 왜곡된 현실과 환상의 틈새로 제 몸을 감추었다. 이상 현상은 순식간에 중단되었고 틈새는 닫혔다. 윤혁과 수상한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료를 눈앞에서 허무하게 빼앗긴 충격으로 선교사들은 한동안 방황하며 패닉 상태에 잠겼다. 앞으로 나아갈 기운마저 잃은 그들은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하고 토의하였다. 어떻게 해야 친구를 구할 수 있을지를. 그러나 정체불명의 괴한이 어디로 이동했는지조차도 모르는 마당에 윤혁을 구출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일행 중 이런 이변이 벌어졌을 때 조금이라도 해결할 단서를 끌어낼 만한 사전지식을 갖춘 건 윤혁뿐인데 되려 그런 그가 납치를 당했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리온은 잠시 인형 몸을 떠나 본체로 돌아간 뒤 지구에 남은 동료들에게 선교팀이 처한 위기의 소식을 전달하였다. 윤혁이 납치당했다는 비보를 들은 그들은 크게 술렁였다.
물론 지금까지 우주 선교팀에게 위기가 아예 닥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지구에 머무르던 자들은 적절한 대책을 논의하는 동시에 성실하고 꾸준한 중보 기도를 병행함으로써 도왔었다.
더 나아가 본부에 대기하던 이들은 지구 여러 지역에 흩어진 올곧은 교회들에도 기도를 청했고 그들도 기꺼이 윤혁 일행을 위해 기도했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의미 없고 무익해 보이는 도움이었지만, 그 은택을 체험해본 자들과 동참해본 자들은 알았다. 기도라는 작은 노력들이 최전선 일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극적인 신적 보호와 도움을 받도록 길을 열어준 원동력이었음을. 선교팀도, 기도하는 자들도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 적 없었다.
하지만 그런 체험적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 이르렀다. 우주 선교팀의 핵심인 윤혁이 경각에 처한 것은 이제까지의 시련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소식을 들은 시점부터 지구에 남은 동료들은 하던 일과 일상을 잠시 전면 중단하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물론 현실적인 해결 노력을 게을리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장 몸도 떨어져 있고 납치한 범인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기도뿐이었다.
“제가 대표로 나서서 윤혁의 후원자에게 알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에는 그자 책임도 어느 정도 있을 테니 분명 도움을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분주하게 대응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일부터 결단을 내린 리온은 지난번에 했었던 것처럼 진이라는 자에게 비상 연락망을 통해 위기 경보를 신속히 전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진 쪽의 응답이 잠잠했다. 아마 무언가 대단히 바쁜 일로 골머리를 썩이는 것 같았다.
한참 후 돌아온 메시지는 이것뿐이었다.
“일단 저도 파악 중입니다.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문제로 번졌습니다. 얽힌 자들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최선을 다해서 그를 구출해보겠지만 보장은 못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용의자가 대강 제가 예측한 범위 내에 있다면, 납치범은 적어도 인질의 귀한 몸에 해를 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진은 이 정도로만 간략히 답변을 마무리하고 질의에 더 자세히 응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영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도움을 청할 거의 유일한 출처였기에 리온은 따로 토를 달지 않고 기다렸다. 이제 그에게 맡겨진 남은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리온은 지구에서의 긴급 수습을 마치고 인형 몸체 쪽으로 의식 주도권을 전이해 하늘도시로 돌아왔다. 루디아는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조용히 흐느껴 울고 있었다. 루디아가 윤혁에게 품어온 정과 유대감이 얼마나 남달리 깊어졌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스테판은 서투르게나마 그녀를 위로하여 애쓰고 있었다. 리온도 몹시 답답한 심정이었다. 소중한 친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는 기분이란 몹시도 암담하고 가슴이 아팠다. 리온은 루디아가 울음을 그치고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린 뒤 조금 그녀가 진정되자 조심스럽게 상황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알렸다.
“후원자가 손을 써보겠다고 했어.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함부로 손을 대면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으니 얌전히 있으라고 하더군.”
그는 한 치의 꾸밈도 없이 정직히 말을 옮겼다.
“우리에게 지금 이곳에서 허락된 일은 맡은 본분을 계속 이어나가는 일뿐이야. 윤혁의 구조 문제는 나로서도 답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든 신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 해.”
그는 사역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부탁하고 촉구했다. 어찌 보면 냉담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지구와 우주에서의 여행을 통해 무수한 고난을 이겨내며 정신적으로 성장했던 리온이기에 그런 결론을 담담히 내릴 수 있었다.
“부탁할게. 힘을 내줘.”
“…….”
루디아는 여전히 윤혁이 마음 쓰이는지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도 리온의 말이 옳음을 직감했다. 지금 그들이 윤혁을 구하려 나서다가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동료가 없더라도 이 세계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선교 사역은 완성해야 한다. 슬프지만 그것이 의무였다.
“당신의 의견을 따르겠소.”
“고마워요.”
스테판도 리온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스테판은 조심스럽게 루디아에게 다른 한 손을 내밀어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했다. 그녀는 눈물을 닦은 뒤 용기를 내어 이에 응답했다. 셋은 동료의 문제를 신의 선한 뜻과 계획에 맡겼다.
*
고통스러운 단말마와 함께 윤혁은 눈을 떴다.
“크윽.”
“깨어났네.”
“너!”
가면을 쓴 괴한, 곧 납치자가 그의 옆에 앉아있었다. 아니, 공중에 둥둥 떠 있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그들이 놓여있는 공간은 애초에 삼차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기묘했다. 아주 특이한 재질과 위상과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폐쇄공간도 개방공간도 아닌 그 언저리의 중간 상태였다. 기묘하게 현실과 다른 물리법칙과 시공간 구조가 사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실체감은 느껴지지만,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또 애매했다.
“여긴 어디죠?”
“넷 중에서 그나마 경험 많은 너는 조금 알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해봤자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놈들이랑 이곳에 자주 와봤던 것 아니었어? 그새 잊어버렸나? 아, 이번에 업데이트된 ‘실체화와 역 실체화’는 안 겪어봤으려나. 하긴 기술의 발전 속도도 워낙 빠르니까 최신판은 모를 수도 있지.”
괴한은 계속 모를 소리만 떠들어대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두렵고 다급해진 윤혁은 상대에게 소리쳤다.
“나?”
그러자 괴한은 후드를 뒤로 넘긴 후 가면을 벗었다. 약간 곱슬곱슬한 머리의 연분홍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제법 미형 얼굴을 지닌 남성이었다. 얼굴색은 조금 붉은 편이었고 특이하게도 동공은 자주색과 분홍의 중간에 해당하는 색깔이었다. 그는 웃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분간 안 되는 미소를 입에 걸었다.
“누구일 것 같아?”
“…….”
인류연합의 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식민지 주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종족? 기계? 인간?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인류연합과 연관이 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당신도 인류연합 소속 수하입니까?”
“비슷해.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부리는 하찮은 하수인은 아니야. 나름대로 주인의식을 지니고 있지. 내가 그렇게 단순하고 낮은 존재였다면 저것을 네 몸에서 분리해내지는 못했겠지?”
“저것이라고?”
그제야 윤혁은 미묘한 허전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자신과 사내가 있는 좌표 사이에 반지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결계와 특수 에너지장이 서로 거미줄처럼 짜여 있었는데 반지는 그 무형의 그물과 얽힌 채로 허공에 묶여 있었다.
“원래라면 네 허락이 없으면 네 몸에서 떨어지지 못해. 특별히 비인간이 저것을 함부로 만지면 파괴 반응이 발생하게 되지. 경험해본 적 있으려나?”
순간 윤혁은 카뮈네라에서 만난 그 원숭이 호문쿨루스가 떠올랐다.
“그래서 떼어내느라 나도 꽤 고생했어. 여러 기술과 전략을 다양하게 동원해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지. 아직 탈취 과정이 미완성이라 네 몸으로부터 2m 반경 너머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강제로 저걸 얻어내려면 며칠 더 있어야겠지?”
상황 파악이 얼추 바로잡혔다. 이번에도 그가 납치자의 표적이 된 이유는 이 위험한 물건하고 관련이 있었다. 이쯤 되면 저것이 과연 선물인지 짐인지 혼동될 지경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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