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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4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8. 납치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1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윤혁은 불쾌감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이걸 왜……. 당신도 설마 여기 담긴 힘과 지식을 탐닉하는 겁니까?”

   원숭이 사건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그 반지에 깃든 힘과 매혹력이 사람이나 지성체의 마음을 강력하게 유혹하는 듯했다. 그리고 일정 이상의 실력자들은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어도 흘깃 감찰하는 것만으로도 반지 안에 담긴 큰 잠재력을 얼추 눈치채는 것 같았다.

   “뭐, 대충은 맞는 말이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놈들의 하수인 신세를 벗어나기 힘드니까, 치트키가 필요하지.”

   핑크 머리의 사내는 살짝 미묘한 웃음을 머금은 후 말을 이었다.

   “나는 은하계 소속의 초인이거든.”

   “네?”

   “비록 최하에 가까운 E 클래스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F 클래스 초인만 해도 모든 분야의 타고난 재능이 일반인이 소유할 수 있는 물리적 최대치를 넘어. 그것도 아무 노력이 더해지지 않은 초깃값만으로도. 노력까지 추가되면 재능 자체가 제한 없이 성장해.”

   일반인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역량은 성장할지언정 타고난 재능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성장력은 초인만의 특징이다. 그중 가장 극단적인 표본과 함께 생활했었던 윤혁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일반인과 F 클래스의 격차보다 E 클래스와 F 클래스의 격차 쪽이 훨씬 더 극심해. E 클래스와 D 클래스의 격차는 더 심하지. 등급이 올라갈수록 급수 차이의 폭은 지수함수적으로 확대돼.”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사냥꾼과 사냥감의 격의 차이를 뚜렷이 각인시키려고? 겁을 먹고 저항할 의지를 잃어버리도록?

   “궁금하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별 의미는 없어. 단지 네가 처한 무력한 현실을 좀 더 실감 나게 와닿게 해주려고. 아, 지력 차이를 차치하고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른 격차가 뭔지 알아?”

   윤혁은 입술을 깨물며 묵묵히 적의 조롱을 들었다.

   “극히 일부분이라도 하늘도시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은 초인은 하늘도시 내부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 그 어떤 종류의 하수인, 그러니까 만들어진 신 따위의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권능을 쓸 수 있지.”

   자연적인 세계와는 달리 하늘도시의 내부 공간은 인위적인 영역이자 시스템들의 지배를 받는 곳. 따라서 시스템 제어권의 일부만 빌려도 하늘도시 내부 한정으로 신적 존재를 연상케 하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 위력이 지난번에 봤던 카뮈네라의 신들을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일 것을 생각하니 섬뜩했다. 윤혁은 자신이 현재 힘으로나 지력으로나 속수무책인 상황임을 깨달았다.

   “소문에는 네가 운이 좋게 성녀를 골탕 먹였다고 하던데, 그때와 같은 식으로 전개되리라 생각하면 곤란해. 성녀는 인류연합 소속이 아니었기에 사용 수단에 제한이 많았거든. 우리는 달라.”

   부드러운 어조였으나 엄연한 위협이었다. 조금 겁이 난 윤혁은 납치범의 비위를 상하게 말고 최대한 얌전히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납치범이 말하는 모양새로 보아 그는 분명 인류연합 소속이 맞는 듯한데, 그렇다면 그는 윤혁의 몸을 해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최대한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 보자.’  

   그는 조심스레 다른 주제로 화두를 돌려보았다.

   “당신도 진과 비슷한 경우입니까?”

   “진 라흐블뤼크? 음, 그자는 나와는 급이 다른 천상계의 존재지.”

   의외로 납치범은 자신의 낮은 격을 순순히 인정하였다.

   “참고로 나는 그자와 조금 다른 카테고리에 속해.”

   “다른 카테고리라고요?”

   “응, 진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식민지 출신 초인들은 ‘초인 선발 정책’을 통해서 각성했거든. 인위적인 장기간 훈련을 통한 후천 각성 유발 말이야.”

   “그러면 다른 식으로 각성한 경우도 있습니까?”

   “우라노폴리스 운영 초기에는 드물게 선천적 초인도 등장하긴 했어.”

   “그럼 당신은요?”

   “나는 두 경우 어느 쪽에도 안 속해. 굳이 분류하면 후천적 초인이긴 해. 그런데 보편적인 초인 선발과는 무관한 방법으로 각성했지.”

   납치범은 집중을 돌리려는 윤혁의 의도에 일부러 응수해주었다.

   “우주 식민지 초기 세대 중 아주 강력한 SSS 클래스 초인 셋이 탄생했는데, 그 세 자매 중 하나가 나의 각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 우주 인류 조상 세대 인간으로부터 무의식을 추출하는 고유 재능을 소유한 여인이었어. 그녀가 그 추출한 무의식을 내게 이식하는 바람에 그 영향으로 각성했지.”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사전지식이 일절 없는 윤혁으로서는 전혀 이해 가지 않았다. 물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향한 상해나 위협을 피해 보려는 의도였을 뿐. 그는 잠자코 듣는 척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배층에 대한 충성심이 좀 약한 편이야.”

   집중을 내려놓던 중 무서운 한마디가 윤혁의 귓가를 때렸다. 순간 솜털이 곤두섰다.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질과 높으신 그분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앞뒤 안 가린 채 일을 벌일 위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던 중 아니나 다를까 핑크 머리 남자가 갑자기 포로의 몸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공간이 뒤흔들리며 보이지 않는 힘이 윤혁의 전신 세포에 닿았다.

   “이건!”

   “염동력이야. 신기해? 중력과 관성도 기술력으로 조종하는 마당에 이 정도가 뭐 어때서. 게다가 여긴 하늘도시 안이라 쓸 만한 인조 자원이 꽤 풍부해. 인간들이 펼쳐놓은 무대라 인간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넓지. 무엇보다 이 공간은 현실 차원이 아니라서 내가 조작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

   “현실 차원이 아니라고요?”

   별안간 섬뜩한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솟는다.

   “현실과 시뮬레이션 우주가 맞물리는 틈새야. 정확히는 시뮬레이션 우주에 갇힌 사람들의 운명을 진두지휘하는 관제탑이야. ‘환상과 현실의 틈’이라고 불러.”

   “시뮬레이션 우주? 설마 정신체 상태로 들어온 겁니까?”

   “아니, 우리 둘 다 물리적인 몸으로 직접 진입했어.”

   납치범은 이죽거리며 윤혁의 몸을 가리켰다.

   “너도 온몸의 피부로 느껴질 텐데.”

   이질적인 위화감에 그제야 윤혁은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의 몸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수치심과 함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악질!’

   당혹스럽게도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결박되어 있었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의 팔다리를 대자로 넓게 벌린 채 묶어두고 있었다. 그 탓에 그는 허공에 둥둥 매달려 무력하게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운 처지였다. 핑크 머리 악당은 윤혁의 나신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빤히 바라보았다. 엄청난 수치감이 밀려왔다.

   납치범은 그러다 돌연 손을 꽉 쥐어 염동력을 발했다.

   “크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극렬한 격통에 윤혁이 비명을 질렀다.

   “야, 고문을 할 때는 말이지.”

   “끄어어억.”

   사내는 괴로워하는 희생양을 향해 냉담한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상대가 말 잘 듣도록 하는 데는 굳이 복잡한 방법이 필요 없어. 특히 ‘남자’라면 아주 쉽고 편리한 길이 하나 있잖아.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하고 곧은 심지와 신념을 지닌 고상한 인간이라도 순식간에 무너뜨릴 약점이 있거든. 왜 그런 편한 길을 두고 별의별 헛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하필이면 통증의 근원지가 좋지 못했다. 두려움과 통증으로 전신 근육이 파르르 떨려왔다. 적은 천천히 염동력을 미세 조정하여 문제의 약점의 근원을 섬세히 쥐어짰다. 고통만을 극대화하고 파열은 일으키지 않는 수준으로. 힘을 조금만 더 세게 쥐면 언제든 흔적도 없이 부스러뜨릴 기세로 미묘한 강약의 박자를 넣어 공포심을 한 층 더 극화하였다.

   “전문 용어로 거세 공포(Castration anxiety)라고 하던가?”

   더는 오락처럼 여길 상황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빠른 템포로 수십 차례의 고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처절한 비명이 저절로 입가에서 터져 나왔다.

   “이야, 부수기에는 많이 아깝네.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고도 남을 걸작이야. 엄청난 에너지의 결집체로군. 소년 시절에 끓어오르는 정욕을 억누르느라 대단히 고생했겠어.”

   상대는 조롱 없이 진지하게 감탄하였다. 고문당하는 윤혁의 육체는 극렬한 긴장감으로 인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수치심, 무서움, 고통. 온갖 감정들이 잡탕처럼 뒤섞이며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주룩주룩 흘렀다.

   “자, 그러면 이제 좀 얌전하게 굴 생각이 들려나 모르겠네.”

   “크아아아악.”

   이후로 고문이 얼마나 오래 진행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우주의 특성 때문인지, 단순한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마치 수십 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기간이었다.

   강한 척했던 윤혁도 결국은 꼼짝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마음은 무참히 꺾였다. 적이 완급 조절을 해서인지 실제 물리적 상해는 입지 않았으나 대신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어째서 성폭행 피해자 여성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영혼의 살해’라고 증언하며 평생 뼈저리게 고통스러워하는지 이해되었다.

   납치범은 끈질겼다. 윤혁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끝내 울고불고 애원할 때까지 괴롭혔다. 당장에라도 신체를 부술 기세로 수 시간 이상의 협박을 지속했다. 상대가 상해 없이 고통만 주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정말 거세당하는 건 아닌가 덜컥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한 지옥 같은 경험을 불규칙한 빈도로 반복하다 보니 정신병이 생길 지경에 이르렀다.

   적은 목적을 이루자 잠시 고문의 퍼레이드를 보류했다. 고환이 박살 날 위기로부터 놓이자마자 윤혁의 마음속에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격한 수치와 비참함이 뒤섞였다.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탈진한 그는 정신을 잃은 후 한참을 지나서야 깨어났다.

   ‘그저 위협만 당한 거로도 이 지경인데…….’

   형은 대체 어떻게 생살을 자르고 썰고 찌르고 토막 내고 태우는 수난을 며칠씩이나 견뎌낸 걸까? 초인이라서 의지력이 대단한 건가? 아니 몸이 강한 탓에 더욱 고문을 많이 당할 수 있었는지도. 자신 같았으면 견디기도 전에 기절하거나 쇼크로 죽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형에게 깊은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전에는 불쌍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애처로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만 하고 연민해주지 않았던 순간들이 무심코 후회되었다. 지구에 무사히 돌아간다면 그의 상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기 위해 정성을 다해 친절함으로 대해줘야겠다.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귀환할 수만 있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보장하기 힘들었다.

   ‘친구들이 걱정할 텐데……, 엄마 아빠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좀 더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친절히 대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깊어졌다. 누구든 죽기 직전에 이르러 생전 인간관계들을 돌아보면 자신이 여러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음을 깨닫는 법. 죽음을 방불하는 암담한 현실에 놓여보니 윤혁에게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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