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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9. 미혹하는 환상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20 | 회차평점 0 0

 

 

 

 

 

 

 

 

*

 

 

 

 

 

   “별로 상황이 안 좋아 보이네.”

   외출 후 다시 환상과 현실의 틈으로 돌아온 헬리웃은 처량해 보이는 윤혁의 표정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눈길을 무수한 S-unvs들의 연속체 쪽으로 돌렸다. 경이로움과 뿌듯함을 한껏 담은 눈빛으로.

   “반면 우리 쪽 계획은 훌륭하게 진행 중이고 말이지.”

   헬리웃과 윤혁 일행이 현재 정박 중인 하늘도시와 연결된 S-unvs들, 여기에 더하여 다른 하늘도시의 주민들과 연결되어있는 S-unvs들 역시도 시공간적 장벽을 넘어 서로서로 엮여 있었다. 점차 이 접촉에 합류하는 S-unvs들이 늘어나면서 거대한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중이었다.

   아울러 하늘도시 주민들의 S-unvs뿐 아니라 인류연합 소속 초인들이 별도로 관리하는 S-unvs들, 그리고 무인 운용되는 인류 공용 S-unvs들도 보였다. 차원 개념이 다른 영역이어서인지 이 모든 세계들이 아무 보조 장비 없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긴밀히 연접하였다.

   “그러게 적당히 까불지 그랬어.”

   기가 죽어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윤혁의 눈에는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성녀를 이겼다고 거만했던 모양이네. 너무 실망할 것은 없어. 너 개인의 힘으로 시스템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성경 이야기를 회상하였다. 훌륭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이끌던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 그들도 견고하고 악명 높은 여리고 성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고서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왜소한 아이 성 앞에서 패배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지금 윤혁의 처지가 딱 그 모양이었다.

   “반박을 안 해서 그런지 조금 아쉽네. 바득바득 대들던 게 귀여웠는데 말이지.”

   “…….”

   너무도 오래 갇혀있어서 그런지 윤혁의 정신력은 전부 소모되었다. 이미 의지력은 바닥을 드러났다. 이제 그는 헬리웃의 조롱 섞인 조소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땅만 쳐다보았다.

   ‘여기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지?’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일종의 특수 영역인지라 밤낮 구분이 없어서 직접 일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상 최소 40일 이상은 지난 듯했다. 그 기간 내내 무력히 벗겨진 채로 결박되어 있었으니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절망적인 부분은 바깥의 소식이었다.

   “어째 이렇게 시간을 많이 줬는데도 반응이 없을까, 응?”

   “…….”

   “심지어 내가 특별한 방해 공작을 벌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이곳 시스템을 아주 조금 활용했을 뿐인데. 혹시 너희의 전략에 치명적인 하자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네, 그것참 잘 나셨네요.”

   헬리웃의 노골적인 조롱에 윤혁은 싸늘하게 말대답하였다. 다시 극심한 통증이 아랫도리를 강타했다. 참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우였다. 조금만 기분을 거슬러도 고문으로 응답한다니

   ‘왜 형의 성격이 차갑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윤혁은 구역질 올라오는 내장 통증을 겨우 참아냈다.

   “나 같으면 입을 조심하겠어. 실수로 힘 조절을 잘 못 하면 큰일 나잖아.”

   “으윽, 잘도 그런 협박을, 크윽!”

   거듭 가해지는 강타에 윤혁은 신음하며 벌벌 몸을 떨었다. 남자를 절망케 하는 격렬한 고통. 희생양이 죽어가는 벌레처럼 허리를 뒤틀며 꿈틀거리는 꼴을 보이자 헬리웃은 통쾌함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지자 그는 맘껏 떠벌리기 시작했다.

   “서비스로 재미있는 것 하나 보여줄까.”

   통증이 좀 가시자마자 윤혁은 눈을 뜨고 적이 보여주려는 광경에 주의를 기울였다. S-unvs들이 나열된 시뮬레이션 우주 차원, 그리고 현실 세계, 그 두 영역사이의 어느 중간 영역에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기이한 속성의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내가 이루려는 계획의 청사진, 아니 기본 토대라고 해야 할까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유사 세계가 층층이 겹쳐져 만들어진 상아탑이었다. 3차원이 아닌 ‘벌크’ 상위 차원에 속한 구조물처럼 보였다. 4차원 이상의 기하학이 어째서 맨눈으로 관찰이 가능한지는 의문이었지만, 이곳이 현실과 환상이 겹쳐진 곳임을 감안할 때 영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윤혁은 헬리웃이 모종의 원리로 시뮬레이션 우주와 벌크 상위 차원을 동기화했으려니 하고 이해했다.

   “사령탑 중 하나야. ‘La Divina Commedia’라고 하지.”

   “설마 단테의 ‘신곡’입니까?”

   참으로 슬픈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지구 인류는 사후 세계에 대해서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기를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나도 한 번 사후 세계라는 아이디어를 응용해봤어. 단테가 쓴 신곡은 아홉 층의 지옥을 묘사했지만, 이곳에는 9,999층이 존재해. 훌륭하지?”

   La Divina Commedia는 층마다 많은 부속 세계를 거느리고 있었고 이들은 자체적으로 긴밀히 엮여서 뇌 신경망보다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그런데 자세히 감찰해보니 그 상아탑 내에 사람과 비슷한 존재들이 여럿 묶여있었다. 이들은 묶인 상태로 상아탑의 위층으로 견인되었는데 놀랍게도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생김새가 점점 특이하게 변해갔다. 마치 한 도형이 높은 차원의 좌표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보이는 형태가 달라지는 것처럼.

   “저 존재들은 설마?”

   “맞아, 진짜 사람들이야.”

   “정신체 상태? 아니면 우리처럼 육체 그대로?”

   “두 부류의 포로가 다 존재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환생, 윤회, 승천과 같은 사후세계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응용해서 모방해 만들었지. 목적은 장기간에 걸쳐 시뮬레이션 우주 속의 숙주들을 훈련시키는 것. 훨씬 효율성이 높은 노동력 자원으로 개조하기 위해서 말이지.”

   ‘사람의 본체를 시뮬레이션 우주에 가둘 수 있다니.’

   윤혁으로서는 도무지 원리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실체화 기술이 존재한다면 역(易)실체화라는 것도 가능하겠지.”

   헬리웃이 힌트를 가르쳐주었다.

   “지금 우리 둘이 현실과 허상의 틈새에서 멀쩡히 물리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야. 참고로 저기 보이는 저들은 시뮬레이션 우주에 중독된 나머지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갇혀버린 자들이야. 저들이 쓸만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인조 사후 세계 시스템에서 빙빙 돌게 설계했지.”

   윤혁은 깊이 탄식했다. 로마 가톨릭 시스템이 ‘연옥(Purgatory)’이라는 이름의 가짜 사후 세계를 만들어냈다면, 시뮬레이션 우주 시스템은 살아 숨 쉬는 거짓 사후 세계를 건설했다. 저곳에 갇혀 진정한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허무하게 소모되는 사람들이 너무도 측은했다.

   “너무 원망하지는 마. 어차피 저건 내가 만든 건 아니거든. 난 그럴만한 능력도 안 되고. 난 그저 보조 관리자야. 자, 이번엔 저기를 좀 볼래?”

   헬리웃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양파 뿌리처럼 생긴 거대 구조물이 있었다. 블랙홀의 특이점처럼 생긴 기묘한 중심점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아래쪽으로는 흰색의 가지가 뻗쳐있었고 위쪽으로는 붉은색의 가지가 뻗쳐있었다. 어찌나 세미하고 무수하게 분지되는지 수학적으로 연산하거나 가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면밀히 살펴보니 가지의 끝자락마다 뭔가 매달린 물체들이 있었다. 흡사 사람의 모양 같았다.

   “저것도 사람 맞아.”

   “뭐라고요?”

   “시뮬레이션 우주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자기 의지로 여기에 들어와 버린 자들이야.”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왔다.

   “아, 저기 보이는 흰색의 가지들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쪽을 형상화한 부위야. 중심점에 가까운 가지에 매달려 있을수록 시뮬레이션 우주에 더 세게 유착된 사람들이지. 위쪽의 붉은 가지들에 매달린 자들은 이미 반쯤 요단강을 건너버린 사람들이야. 저들은 이제 점점 더 깊은 초 의식(Super-consciousness)에 빠져들게 될 거야.”

   그 구조물의 명칭은 ‘행복의 삼도천(三道川)’. 윤혁은 허탈한 심정으로 그 구조물에 묶여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구속은 강제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인 속박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시뮬레이션 우주 밖으로의 외출을 허락받았고 실제로도 자주 나갔으나 그러다가도 매번 중독의 맛을 잊지 못하여 삼도천에 몸을 맡기기를 거듭했다. 마약 중독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삼도천 같은 초의식의 세계에 진입하면 일반 인간도 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일시적이나마 초지능을 끌어낼 수 있어. 초인에 근접한 수준의 지력을 선보일 수도 있지.”

   헬리웃은 어딘가 모르게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정작 우리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저런 건 이용하지 않지. 과도하게 의존하면 잠재력을 성장시키는 데 방해가 되거든. 뭐, 저 사람들이 삼도천에서 열심히 헤엄치면 방대한 아이디어와 창조성이 생산되니 우리로서는 이득이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삼도천의 반대편에 거대한 기계 구조물이 있었다. 그것을 기계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표현할만한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그 초거대 구조물 내부에도 곳곳마다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육체만 묶여있는 사람도 있고 정신체의 형태로 속박된 인간도 있었으며 아예 그 두 부위가 따로따로 속박되어 매달린 경우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그 기계의 부품으로 기능하는 신세인 것은 동일했다.

   “저것은 초차원 열차(Super-dimensional train)라고 불러. 일종의 유사 게임 시스템을 통해서 사람들을 시뮬레이션 우주 차원으로 끌어모으는 사령탑이지. 사람이란 참 흥미로워. 게임에 너무 깊이 열중하다 보면 스스로 게임의 부속품 내지는 프로그램의 부속품이 돼버리잖아. 주객전도라고 했던가?”

   “결국……, 저 사람들도 자유의지로 저기에 묶여있다는 거죠?”

   “뭐, 반쯤은 그런 셈이지.”

   청년의 눈이 힘없이 축 처졌다. 주님께서도 죄의 세력 아래에서 종노릇 하는 인간 세계를 보시면서 이보다 훨씬 더한 슬픔을 느끼셨을까? 잠시나마 그분의 마음을 품어보니 그 애통의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새삼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나 더 남았어.”

   헬리웃은 또다른 쪽 공중에 떠 있는 초거대 다면체 수정을 가리켰다. 3차원 공간을 초월한 물체인 만큼 실제 기하학적 구조는 대단히 복잡했다. 프랙털처럼 반복되는 미세 구조가 반영되어 있어서인지 눈을 어지럽게 할 만큼 현란했다. 그 수정은 사방에서 비친 영상을 자신의 몸체 쪽으로 잡아당겨 반사한 뒤, 정체불명의 조작을 가하여 변형된 상(想)을 재생산해 사방에 다시 방사했다.

   “저건 ‘동굴 속의 그림자(Cave-Shadow)’야. 멋지지?”

   “동굴 속의 그림자? 설마 플라톤의 ‘이데아’인가?”

   과거에 윤혁은 실제로 ‘이데아(IDEA)’라는 이름을 붙인 서버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한 번은 보았었고 한 번은 접속했었다. 시뮬레이션 우주들의 핵이라고 했었던가? 혹시 저 수정체도 그 원리를 흉내 낸 물건일까? 원시적인 수준이나마 모방에 성공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날 터인데.

   “들어봤나 보네? 알려나 모르겠지만, 시뮬레이션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중심체의 이름도 ‘이데아(IDEA)’지. 사실 저게 더 먼저 만들어진 모형이야. 이데아는 저런 실패작들의 데이터를 수합하고 총망라해 완성해낸 궁극의 역작이지.”

   하기야 그러한 발명을 이룩하기까지 프로토타입이 없을 리가 없지.

   “동굴 속의 그림자도 이데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실패작 모델 중 하나인데 백만 개 정도 찍어낸 뒤에는 생산이 중단되었지. 위에서도 막상 폐기하기는 아까워서인지 나 같은 하수인들에게 재활용품으로 넘겨줬지.”

   동굴 속의 그림자라 불리는 그 수정이 흡수한 빛과 변형시켜서 방출한 빛은 실제 물리적인 빛이 아닌 S-unvs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광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S-unvs였다. 수정에서 방출된 광자 형태의 S-unvs는 현실 차원과 그 속의 사람들에게 내리쬐어졌고 그 즉시 사람들의 정신세계 위에 시뮬레이션 우주가 덮어 씌워졌다.

   “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친구. 지구의 시간 계산법 기준으로 이곳 하늘도시에서 정확히 16일 4시간 39분이 흐르면 내 계획이 발동돼.”

   의기양양해진 헬리웃은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윤혁의 어깨를 붙잡고 으스러뜨릴 양 힘을 꽉 쥐고 누르면서 흥얼거렸다. 이미 저항할 의지력이 소모되어서인지 윤혁의 팔은 맥도 없이 축 늘어졌다.

   “내가 관리자로서 책무를 맡은 이 하늘도시 구역, 이곳에 신곡과 행복의 삼도천과 초차원 열차와 동굴 속의 그림자를 결합했어. 이 네 가지에 더해서 네가 내게 선물할 이 반지에 담긴 능력, 즉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를 제어하는 기능까지 사용한다면 내가 바라는 이상이 실현될 거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왔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다.”

   사방이 꽉 막힌 사면초가의 상황. 하늘로부터 시작된 반전이라도 펼쳐졌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환상 속에 만취한 이 하늘도시에는 회개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궁극의 대중 매체인 S-unvs가 한 수 더 진화하여 현실과 환상의 장벽을 깨부수는 바람에 사람들은 참된 진리를 믿을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너무도 쉽게 짓밟아버렸어.’

   그 와중에도 리온과 루디아와 스테판이 온 힘을 다해 영혼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그들. 그러나 그 눈물겨운 노력은 너무도 허무하게 배반당했다. 이제 내기는 윤혁의 완패로 끝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였다.

   “이런, 이런.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 재미없잖아. 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서 지켜보는 일뿐이겠지만. 아, 기도라도 열심히 해봐. 혹시 모르잖아. 네가 사랑하는 신께서 네 말을 들어줄지도. 하하.”

   저질적인 도발에도 윤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조용히 감았다. 이제 그에게는 적의 훼방이 신경쓰이지 않았다. 잡념이 무너지자 오로지 한 가지 의문만 들었다. 주님께서는 정녕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응답하실 생각이신 걸까? 이 순간 그의 애타는 갈증은 이 질문 하나에만 집중되었다.

   “난 말이야, 친구.”

   헬리웃은 윤혁을 완전히 무너뜨릴 심산으로 한 마디를 더 얹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릴 생각이야. 사람들은 환상 속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지. 하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되지 않으면 너무 아쉽잖아. 아무래도 가짜라는 생각이 들어서 찜찜하고. 그래서 아예 현실과 환상이 본질 수준에서 섞인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드디어 그는 자신의 독버섯 같은 야심을 공공연히 전부 드러냈다. 이번 도발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생기를 잃은 포로의 눈동자가 두려움의 빛을 머금고 흔들렸다. 윤혁은 온몸의 털들이 죄다 뻣뻣하게 서는 기분을 느꼈다. 섬뜩하고 으스스한 공포감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부디 잘못 들은 말이었기를.’

   그러나 무리한 희망사항이었다.

   “하하, 잘 지켜봐, 꼬맹아.”

   헬리웃의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발가벗겨진 몸에 맞닿은 공기의 찬 냉기가 한층 더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사악한 계획을 눈앞에서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하는 무력감, 홀로 남겨진 외로움. 벌판에서 홀로 얼어 죽어가는 짐승의 신세가 된 윤혁은 소리 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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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금도 충분히 악질 같지만 앞으로 더 심한 악질들이 많이 등장할 예정이라서 별로 감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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