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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0. 경계 붕괴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2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비관적이기 짝이 없으나 그 해석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면 역시나……, 희망은 없다고 보아야 하오?”

   스테판은 실망감에 아파하는 표정으로 눈초리를 축 늘어뜨렸다. 그 광경이 곁에서 보기에도 어찌나 처량한지 기대를 깨트려버린 리온마저 미안함을 느꼈다. 사실 리온 자신이야말로 이 현실에 가장 슬픔을 느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리온은 그렇다고 해서 허무한 가짜 희망을 심어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만일 ‘실존하는 허상 세계’이란 게 현실 차원과의 교류까지 가능한, 일종의 특수 차원 같은 것이라면……, 과거의 단순한 전자파 기반의 대중 매체보다 더 위험하겠죠. 악한 영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인간계에 간섭하기에 배나 더 편리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악한 영들이라면,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리온은 영적인 세계와 현실의 접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묵상했다.

   “타락 천사들의 거주지인 ‘공중’이라는 곳, 비록 성경은 그곳을 분명하게 정의해주지 않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어느 정도 추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언젠가 윤혁이 단서가 될만한 말을 일러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탄이 권세를 잡은 공중은 상위 차원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과거에는 단순히 지구 표면 위를 운행하는 대기권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되었던 공중. 그러한 해석도 일견 진실과 통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 또한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초차원 시대와 우주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과거의 신학자들보다 영적 세계의 본체를 더 잘 이해할 지식적 기회가 있었다.

   “애초에 영적 세계, 혹은 초자연계라는 건 우리들의 물리적 세계보다 고차원에 속한 세계이니 일리 있는 해석이죠.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에 의해 창조된 영들도 물리계보다 더 근원에 가까운 영역에 거하겠죠. 물론 완전한 영원에 거하시는 주님보다는 낮은 차원에 서식하겠지만요.”

   불행히도 인류연합이 오늘날 이룩한 각종 초고도 문명의 산물들은 대부분 상위 물리계 차원과 긴밀히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악의 권세는 인간이 쌓은 최첨단 기술력을 역이용함으로써 인간계에 더 다가간 것일까?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인류의 시스템에 접속할 경로를 더 많이 확보했을까? 만일 그렇다면 얼마만큼이나?

구체적인 진실에 대해서는 투명히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영적 상태는 점점 더 어두워질 것이라는 전망뿐이었다. 인간은 미지의 탐험지를 연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하나둘 열어젖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인간들이 믿고 의지하는 그 ‘매체’, 아니 ‘실존하는 허상 세계’에 위기의 경보를 던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심어 넣는 것이 좋겠소?”

   스테판은 깊은 상념 후 의외의 대답을 던졌다.

   “경종을 울린다고요?”

   뭔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된 리온은 깜짝 놀라 번쩍 고개를 돌리더니 스테판의 결연한 두 눈을 응시했다. 스테판은 고민하던 계획을 말하려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지 한참을 망설이며 말을 돌렸다.

   “아, 아니오. 미안하오, 방금 말은 실언이었소. 잊어주시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리온은 스테판이 과거의 기억 중 중요한 단서를 떠올려냈음을 간파하였다. 더불어 그가 지금 어떤 행동을 계획하고자 고민 중이라는 사실도. 비록 그를 동료로서 신뢰하긴 하지만 혹시라도 무모한 일을 시도한다면 말려야 할 의무가 리온에게는 있었다.

   “스테판 씨는 안전하게 남아 있어야 해요. 윤혁도 없는 마당에 더는….”

   “알고 있소.”

   걱정이 된 리온은 조심스럽게 상대의 심중을 캐물었다.

   “설마 당신은 저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생각이신가요?”

   정확하게 정곡을 찔린 스테판은 태연한 척 굴었다.

   “비슷하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오.”

   “뛰어들고 난 다음은요? 구체적인 전략은 있으신가요?”

   “확실하게는 모르겠소. 그래도….”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큼을 분명히 해둘게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오!”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 깊이 메아리치는 급박함을 드러낸 스테판. 그러나 리온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이 환상 속에 집어삼켜지는 긴박함 속에서도 이성을 잃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지 고개를 저었다.

   “하나님께서 왜 천사더러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는지 아세요?”

   돌연 던져진 난감한 질문에 스테판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효율 자체는 인간 전도자보다 훨씬 더 좋을 텐데요?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도 않잖아요. 오지로 여행을 갈 때도 힘들게 탈 것을 준비할 필요도 없을 테고, 일일이 전도 대상을 찾아다닐 고생을 할 필요도 없죠.”

   “그건…….”

   “게다가 천사의 말은 분명 초현실적인 계시이니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놀람 때문이라도 반응하게 만들겠죠. 이성적이고 눈에 보이는 증거도 되니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기에도 더 쉬울 테고요.”

   과연 아리송해지는 질문이었다. 확실히 효능만 놓고 보면 천사가 아닌 사람들을 전도자로 삼는 전략은 미련해 보이기 짝이 없다. 가브리엘과 같은 강력한 대천사가 화려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만이 천국에 가며 그분을 거부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라고 세계 만방의 사람들 앞에서 대대적으로 선언한다면 모두가 두려움 때문에라도 손쉽게 믿게 될 텐데.

   “그러고 보니 그 이유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소.”

   리온은 연륜 깊은 전도자답게 간략하게 정답의 요지를 요약해주었다.

   “첫 번째 이유, 오로지 구원받은 성도만이 미래를 잃어버린 영혼의 절박한 갈급함을 더 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저들처럼 한때는 잃어버린 양이었기에 그 깊은 아픔과 공허함을 잘 체감할 수 있죠. 그래서 그들이 멸망 받지 않도록 구해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과 구해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을 품을 수 있어요.”

   그 부분은 스테판은 즉각 이해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이오?”

   “초자연계의 미혹 때문이에요. 만일 선한 천사들이 계시를 내릴 수 있다면 반대로 악한 천사들도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거짓 계시를 내리려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양쪽이 일제히 화려한 쇼의 향연을 보여준다면 과연 인간의 부패한 마음은 어느 쪽을 따라갈까요?”

   “솔직히 말하면 악한 자들의 음성 쪽일 것 같소.”

   “네, 아담 이후로 타락해버린 인류의 본성상 달콤한 악마의 유혹 쪽을 따라가게 되겠죠. 일개 천사도 아니고 무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물리적으로 선포하셨을 때도 거역했던 것이 바로 인간들이에요. 아니, 타락하지 이전만 해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직접 나타나 말을 전했을 때 하나님을 택하지 않은 자들도 인간이죠.”

   아담과 하와가 아직 죄에 오염되기 이전에도 진리와 거짓 중 올바른 것을 분간하는 데 실패했다면, 하물며 타고나기를 본성부터 오염된 지금의 인간들이라면 얼마나 더 쉽게 속고 넘어지겠는가.

   실제로 성경은 말세 중의 말세가 이를 때 마귀가 자아낼 화려한 유혹과 기적이 범람하여 모든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인간은 그 미혹에 속게 될 운명. 오로지 은혜로써 보호된 자들만 그 엄청난 속임수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누가 감히 자신은 그 은혜 안에 당연히 들어가게 되리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이제 스테판은 왜 리온이 환상을 매개체로 사용한 전도에 부적절함 내지는 한계가 있다고 했는지 이해하였다. 애당초 환상과 진실을 가늠할 분별력을 상실한 현세대의 귀에는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납득될 리 없으리라.

   과거 대중 매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었고 그 대중매체의 궁극체 진화판인 ‘실존하는 환상 세계’는 인간에게 허락된 최후의 이성적 마지노선인 ‘현실성의 경계’마저 허물었다. 인류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미혹의 발산을 규제할 방도가 이제는 남지 않아 보였다.

   “개인적으로 저는 복음만큼은 반드시 현실 속에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수단은 대면이건 활자이건 영상이건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복음과 성경은 엄연한 역사, 그러므로 현실을 증언하는 태도로 전해야만 해요. 악의 세력은 비겁자들이니 은밀하게 픽션 속에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지만, 반대로 의의 세력은 당당히 진리를 드러내야만 하죠.”

   우주와 인류의 창조, 인간의 타락, 이스라엘의 탄생, 인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 이 모든 것은 소설이나 영상과 달리 허구 속에서 꾸며내어진 이야기가 아닌, 엄연히 현실 속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분별력이 깨어진 환경에서는 올바르게 증언될 수 없다. 먼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생시인지는 드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그러한 올곧은 태도가 부럽소.”

   스테판은 겸허하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

   그러나 이대로 행동을 포기하고 내려놓아도 되는 걸까? 리온도 희망을 마냥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경고는 경고이고 그에게도 타개책을 향한 열망과 갈구가 있었다. 스테판의 열정은 그런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믿고 싶긴 해요. 누군가가 선한 뜻으로 일어나 매체나 픽션을 선한 도구로 사용하려 든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품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명을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귀중하게 여기시지 않을까? 방법의 근원적 한계를 떠나서 그 순수한 의도만은 기뻐하시지 않을까? 모든 것이 영적으로 왜곡되어 신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문화 세계의 특성상 그 순수한 소망이 좌절되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리온은 절망적인 현실 장벽을 인정하는 가운데서도 역설적으로 한 선량한 영혼의 무모한 도전이 나타나기를 갈망했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메시지를 심는 일, 치밀한 전략이죠.”

   무심코 뜻밖의 말이 리온에게서 흘러나왔다. 스테판을 만류했던 좀 전과는 태도가 조금 달랐다. 그도 은연중 작은 가능성을 기대했던 것일까? 아니면 동료의 결의를 말릴 수 없음을 직감하고는 일부러 져주고 싶었던 것일까?

   “저는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우리의 대적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전략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도 사용의 가능성이 닫혀 있지는 않아요. 작은 가능성의 도박이지만, 만일 불가피하게 사용해야만 한다면.”

   한참의 갈등과 망설임 끝에 리온의 입에서 일련의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그는 인류의 무의식 속에 새겨넣어야 할 전언을 요약하였다. 무작위적으로 길게 표현된 신학적 변증이 아닌, 무의식이라는 프로그램 언어에 호환되기 적합하게 변환된 키워드들이었다.

   스테판은 신중히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기며 집중하였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스테판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혹은 어떤 기억을 생각해냈는지 크게 각성하여 번쩍 눈을 떴다.

   ‘드디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소.’

   전략의 청사진이 기적적으로 구축되었다. 여기에 더해 베테랑 복음전도자인 리온이 전달해준 퍼즐 조각들이 그 청사진 속에 맞춰졌다. 리온의 충고대로 지극히 가능성 낮은 도박이며 원래라면 주요 전략이 되지 못했겠지만, 긴급한 이때라면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길목을 터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남은 부분, 곧 행동할 책임은 그들의 몫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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