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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0. 경계 붕괴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1.27 | 회차평점 0 0

 

 

 

 

 

 

*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서는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네. 좀 초조하겠어.”

   어느 새 헬리웃이 약속한 시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 감금과 능욕, 고문과 협박 탓에 윤혁의 얼굴은 생기 없이 시들어버렸다. 악착같이 마지막까지 버티고자 필사적인 의지력을 발휘해 식사나 운동만큼은 꾸역꾸역 감당해 온 덕분에 몸은 크게 야위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포기했구나.”

   “…….”

   슬프지만 헬리웃의 조롱은 사실이었다. 이제 윤혁은 일말의 기대를 멈췄다. 이제 그는 자기의 안위는 반쯤 포기한 채 친구들만이라도 선교 임무를 완수하도록 기도하는 중이었다. 최소한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었으면 했다. 그는 지구에 남겨진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천천히 정리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너를 죽이진 않을 테니까.”

   “죽이지 못하는 것이겠죠.”

   “뭐, 네 뒷배에 대해서는 들었어. 사실 난 그분을 직접 뵌 적은 없어. 나 같은 열등한 존재 따위는 감히 얼굴 올려다보는 것조차 금지된 분이라서. 얼굴은 너랑 비슷하게 생겼을지 조금 궁금하네.”

   헬리웃이 윤혁의 얼굴 구석구석을 장난감 다루듯 만지작거렸다.

   “그래, 귀하신 몸이니 언젠가는 놓아드려야지.”

   “…….”

   “하지만 너를 놓아주었을 때는 이미 네 꿈이 완전히 좌절되고 난 뒤일 거야. 지금은 1%의 하늘도시들에만 ‘환상제어자’들이 주둔 중이지만, 나머지 식민지들에도 일괄 파견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거든. 이제 인류는 절대적 진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거야. 꿈 같은 세상이 찾아오는 거지.”

   사실 헬리웃도 처음에는 자신이 맡은 하늘도시에 우연히 쳐들어온 이 귀여운 침입자를 무턱대고 잡아둘 계획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윤혁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별로 계획에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에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네 일행이 하늘도시에 진입하는 것을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굉장한 수확을 발견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윤혁이 세계 내부로 들어오는 데 사용한 반지, 헬리웃은 보자마자 그것에 내재된 방대한 가치를 감지했다. 두 달 가까이 윤혁을 감금했던 이유는 반지를 빼앗아서 자신이 꿈꿔왔던 야망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거의 다 됐어. 네가 의지를 잃으니까 훨씬 더 쉽게 종속에서 벗어나는군.”

   원래는 납치 직후 곧바로 빼앗으려 했으나 반지는 모든 물리력을 상쇄시키며 강탈을 거부하였다. 면밀한 연구 끝에야 반지에 심겨진 소유권이 소유자의 정신 상태에 긴밀하게 얽혀있음을 알게 되었다. 윤혁을 정신적으로 꺾은 이유도, 내기를 걸어서 패배감을 심어준 것도 어디까지나 그에게 소유권이 종속된 반지를 강제로 빼앗기 위함이었다. 과연 수십 일간 꾸준히 괴롭힌 결과, 반지와 윤혁의 몸을 연결하던 공간 결계가 이제는 대부분 희석되었다.

 

 

 

   남은 하루 동안 괴롭고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윤혁은 야심과 욕심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최대한 자신의 아집을 깨트리고 겸손한 자세로 되돌아갔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 자신이 큰일을 해내거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고양감을 모조리 부쉈다. 근거 없는 끈질긴 자만심들을 속에서 끄집어내어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하다 보니 평소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나약함, 경견치 못함, 교만함, 게으름, 불완전함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커튼을 걷은 후 방안에 햇빛이 비칠 때 가려졌던 지저분한 먼지 알갱이들이 훤히 드러나는 것과 같았다. 그는 묵묵히 자신 속의 때들을 자백하고 회개하였다.

   그는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광경을 상상했다. 온 세상이 되돌아올 수 없는 스틱스강과 루비콘강과 요단강, 곧 파멸의 삼도천(三途川)을 건널 기세로 폭주하는 열차처럼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종교가 있건 없건 기근, 전쟁, 지진, 역병과 같은 재난적인 징조는 말세의 표지판으로 쉽게 인식한다. 하지만 하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는 그보다 더 은밀하면서도 중대한 징조를 포착하는 법. 배교와 이탈, 곧 사람의 마음이 온갖 불법에 세뇌당해 ‘진리를 향한 사랑’을 상실하는 보편적 타락 현상이야말로 진정한 종말의 징후임을 윤혁은 잘 알았다.

   ‘열차를 멈출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약한 개인의 힘으로 멈추기에는 열차의 질량과 관성이 너무도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웃의 계획대로 이쪽 하늘도시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다. 그 성과가 공개되어 초인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다른 식민지들에서도 우후죽순 벤치마킹이 일어날 것이다.

   식민지 주민들은 진리 대신에 거짓과 환상과 미혹을 사랑하게 되리라. 자신만의 소중한 허상 세계를 지어내면서 실체화된 허구에 만취된 채 살아갈 것이다. 심판받는 그 날까지도. 그날에는 진리를 알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게 되겠지.

   ‘설령 이 자리에서 헬리웃을 막더라도…….’

   누군가는 다시 비슷한 음모를 기획하겠지. 어쩌면 형이나 초인들도 저런 방법에서 일부 혹은 전부를 차용하여 인류를 효율적으로 발밑에 두고픈 유혹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는 얼마든지 그렇게 흘러갈 수 있으리라. 인간이란 자고로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취약하지 않은가. 강력한 힘을 지닌 초인들이라면 더욱더.

   ‘만일 그리 흘러간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절망적인 현실을 눈앞에 두고도 윤혁은 현실을 겸손하게 수용하며 자신의 책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세상이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을 완강히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모두가 불 가운데로 부나방처럼 뛰어든다면 남아 있는 자신은 무슨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어렵네.”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히 인정하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러나 동시에 막막한 세상의 실태를 직면하려 하니 눈물의 흐름을 멈출 길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차디찬 곳에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잠을 설쳤다.

 

 

 

 

 

 

 

 

*

 

 

 

 

   그렇게 혼미한 정신 상태로 반쯤 몽롱한 채로 묶여있던 중, 윤혁은 불편한 선잠에서 깨어나 낯선 기시감을 감지했다. 그를 둘러싼 공간의 기운이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질하는 중이었다. 불길한 직감이 몸을 강타했다.

   “여어, 때마침 잘 깨어났어.”

   위화감의 정체 중 하나가 드러났다. 반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몸과 반지를 희미하게 엮어두던 결계가 끊어졌다. 헬리웃이 드디어 그것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윤혁은 발버둥 치려 애썼으나, 그의 팔다리는 대(大)자로 벌려져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기에 조금도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이윽고 여태까지 둘러쌌던 시공간 배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잘 봐둬.”

   헬리웃은 가면과 로브를 벗어버렸다. 그 안은 흑색 제복 차림이었다. 제복의 코트 뒷자락이 펄럭거렸다. 제복 위에 새겨진 문양이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윤혁은 그것을 보고는 뭔가가 연상되어 화들짝 놀랐다.

   ‘형의 제복과 비슷하잖아.’

   엄밀히 말하면 몇 가지 디자인 측면에서만 공통점이 있었을 뿐 모양은 훨씬 단출하고 위엄도 부족했다. 하지만 재질과 기능 자체는 일전에 우주에 나갔을 때 카이젤이 입었던 옷과 거의 동등한 것이었다.

   ‘슈트의 개량 속도가 저렇게나 비약적이었나?’

   일 년 전에는 최강 성능에 해당하던 최상위 슈트가 이제는 하위 초인도 손쉽게 갖출 수 있는 양산형으로 전락했다. ‘제복을 양산화하겠다’라고 했던 형의 선언은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윤혁은 슈트를 착복한 헬리웃이 내뿜는 위압감에 몸을 움츠렸다. 정신적인 압박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위세와 압박. 일전에 보았던 첨단 기술들이 다시금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정신을 추스를 틈도 없이 시뮬레이션 우주 시공간 전체가 유리창처럼 깨져나가며 광활한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S-unvs들이 무수한 포도송이처럼 얽혀있는 시뮬레이션 광역 차원이 훤히 보였다. 시뮬레이션 우주들이 환상 레벨에서부터 현실 레벨에 닿기까지 겹겹이 층을 이루며 쌓여있었다. 경이로운 연속체의 형성. 만일 이곳이 정신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겹쳐진 교집합 영역이 아니었다면 맨눈으로 저 연속체를 관측할 수는 없었으리라.

   방대한 정보 관측 탓에 윤혁은 머리가 터질 듯 괴로웠다.

   “크윽.”

   “눈 똑바로 뜨고 잘 봐둬.”

   반면 헬리웃은 정보의 홍수에도 멀쩡했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 급변을 완벽히 제어하고 있었다. 만약에 이 장소가 시뮬레이션 우주임을 몰랐더라면 우주적 스케일의 마술사라도 나타난 줄로 착각했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그의 제복의 형태가 변형되었다. 소매 쪽부터 기이한 기하학체로 바뀌었는데 기계인지 마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어서 차원의 틈이 열리며 각종 다각형 형상의 보조 장치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소환되었다. 그것들은 하위 보조 장치들을 다시 소환했고 그것이 다시 소환을 유발하는 연쇄가 재개되었다. 소환된 특수 물체들은 색, 모양,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서로 융합되거나 여럿으로 분열되었고 이내 허공에 수많은 거체를 형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시뮬레이션 우주 연속체가 갈라지면서 네 구조물의 본체가 형상을 드러냈다. 신곡(La divina commedia), 행복의 삼도천(三道川), 동굴 속의 그림자, 초차원 열차(Super-dimensional train). 그런데 어째서인지 전에 본 것과는 미묘하게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왜 모양이?”

   “변한 게 아니야. 저게 진짜 본체거든. 전에 네게 잠시 보여준 것은 빙산의 일각, 그것도 하위 차원에 투영시킨 그림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꿈틀거리는 거체들과 구조물들을 보면서 윤혁은 식겁했다.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라서 그 어떤 언어로도 도통 묘사가 불가능했다. 정해진 형태조차 없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통에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슬슬 최종단계 시작이다.”

   헬리웃의 분홍색 눈동자가 핏빛 섬광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의 제복에서 수많은 가느다란 반투명의 실들이 생성되어 끝없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실들은 곧 수십 가닥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또 나누어지면서 질량 보존의 법칙을 깨트린 채 사방을 시커멓게 덮어버렸다.

   ‘물질이 아니다?’

   실에 닿자마자 네 개의 구조물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스스로 형태를 바꿨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는 듯한 광경. 현란한 변화의 향연이 난무하였다. 흉측하다면 흉측하고,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매우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괴현상이 시간의 흐름마저 기묘하게 뒤흔들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해.’

   차마 현실 차원 쪽 현황을 볼 용기를 잃은 윤혁은 눈을 질근 감았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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