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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1. 강제 귀환 명령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02 | 회차평점 0 0

 

 

 

 

 

 

 

Chapter 31. 강제 귀환 명령

 

 

 

 

 

 

 

   끝없이 펼쳐진 백색 공간. 헬리웃의 눈앞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삼차원 기하학의 개념을 벗어난 영역인지라 뚜렷하게 인식되는 건 아니었으나 인상은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흑색 제복을 착용한 채 가면을 쓴 것 같은 실루엣. 장신의 건장한 남성의 형상. 여기에 섬뜩하게 빛을 발하는 금빛 눈동자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눈동자에 덧씌워진 붉은 고리와 푸른 고리,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한 단어로 규정할 수가 없었다.

   ‘이질감? 위압감? 고귀함?’

   인간을 벗어난 정체불명의 존재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데아가 사람의 모습을 인격을 입었다고?’

   헬리웃의 입술이 본능적으로 바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설마 당신의 본체는!”

   “네 입은 내 이름을 담을 자격이 없다.”

   가면 쓴 사내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헬리웃은 격렬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보이지 않는 수조 개의 손이 전신 세포 하나하나를 쥐어짜는 듯한 감각이 엄습했다. 엄청난 압박감과 환각에 정신조차 차릴 수 없었다.

   “네 범행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을 생각은 없겠지?”

   남성 형상을 입은 존재가 이번에는 강제로 헬리웃의 정신을 해부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의해 해킹을 당하듯 헬리웃이 탑재한 기억, 감정, 지식이 순식간에 벌거벗겨져 한 권의 책처럼 펼쳐졌다. 생각이 강제로 빨려 나가는 느낌이란 참으로 끔찍했다.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사내는 헬리웃의 정체와 계획, 그리고 행해온 일들을 낱낱이 알아차렸다.

   “크헉.”

   희생양의 몸을 비틀던 염동력이 스르르 느슨해졌다. 잠깐의 유예 기간. 헬리웃은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고통은 사라졌으나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아까의 몇천 배 이상으로 짙고 선명해졌다. 

   “고개를 들어라.”

   명령어의 발동. 시뮬레이션 우주들이 겹친 영역에서 이데아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정신 지배에 걸린 헬리웃은 즉각 고개를 들어 올렸다. 보이지 않는 힘이 몸과 의지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남자의 분노가 보였다. 착시 효과 때문인지 한없이 거대해 보였다. 용 앞의 토끼처럼 헬리웃은 엄청난 공포감에 전율하였다. 움직이려 해도 마비라도 된 듯 몸이 꿈쩍도 안 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네가 우리의 법도를 넘어 행동했군.”

   “제, 제발…….”

   “난 감정적인 분풀이는 별로 안 좋아하지. 하지만 네가 벌인 일에 대해서 공정하고 공적인 책임도 묻겠다. 게다가 E 클래스의 신분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으니 더불어 사적인 심판도 같이 겸해주지.”

   헬리웃은 더는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내의 손짓 한 번에 순식간에 헬리웃의 안구가 기체가 되어서 증발해버렸다. 환상계 안에서의 현상이긴 했으나 괴로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는 소스라치게 절규했다.

   “끄아아아악!”

   “아직이야.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세계에 봉인해주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냥꾼이었던 자는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그는 몸이 걸레처럼 뒤틀리는 감각을 맨정신으로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대로 기절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환상계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고통의 상한선이 없었고 시간 역시 무제한으로 공급되었기에 고통의 상승 곡선은 꺾임 없이 치솟았다.

 

 

 

 

 

 

 

*

 

 

 

 

   윤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조금 전까지 이 세계를 제 마음대로 주무를 기세였던 헬리웃이 갑자기 환영을 본 것마냥 공포에 질리더니 온몸을 부여잡고 절규하는 게 아닌가. 그가 당하는 광경이 어찌나 끔찍한지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반지가 그의 몸을 구속하는 건가? 그때 그 원숭이 녀석처럼?’

   헬리웃의 육체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내부 해부학이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인형? 이종족? 무엇이 되었건 지금 윤혁과 대면한 헬리웃은 원래부터 헬리웃 본체가 아닌 아바타인 듯했다.

   ‘어?!’

   그제야 자신을 붙잡아두던 보이지 않는 구속력이 사라진 것이 확인되었다. 팔다리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거의 두 달 만에 자유의 몸이 되니 감이 어색했다. 결박에서 풀린 건 다행이었으나 여전히 어떻게 해야 현실 세계로 돌아갈지는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육체적, 정신적 힘도 소모된 상태이고 무력하게 벗겨진 처지인지라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꿈틀.

   풀려난 기쁨도 잠시, 불길한 기분이 재차 엄습했다. 뒤쪽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윤혁은 천천히 헬리웃이 쓰러진 자리, 정확히는 헬리웃의 분신체가 처참히 파괴된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섬뜩한 광경에 눈이 이끌렸다.

   “허억!”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종류의 생체조직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세포 덩어리가 암세포처럼 마구잡이로 증식하더니 집채만큼 거대해졌다. 이윽고 덩어리는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응축되어 조금씩 스스로의 형태를 빚어갔다. 잠시 후 산산이 부서지더니 뱀이 허물을 벗듯 덩어리 안쪽에서 반투명한 물체가 튀어나온다.

   “무, 무슨 저게…….”

   반투명한 푸른 물체는 젤리처럼 꿀렁거리더니 온전한 기하학적 질서를 갖춰나갔다. 그것은 삽시간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화했다. 부드러운 머릿결의 미녀, 흡사 바다의 요정, 세이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그 고혹한 이질감에 정신을 놓을 뻔했다.

   “어머, 이런 엄청난 기회를 취했을 줄이야. 제대로 활용도 못 하고 당해버리다니, 참 어리석네. 뭐, 덕분에 내가 어부지리로 기회를 차지했으니 고맙지만.”

   반투명한 여인 형상이 의기양양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윤혁이 얼이 빠져 중얼거렸다. 하늘색 요정같이 생긴 여인은 그의 초라한 몰골을 힐끗 쳐다보더니 싱긋 웃었다.

   “반갑네, 삼촌.”

   “삼촌이라고? 설마 당신도 철인왕?”

   “맞아, 제3 철인왕 스튜아 라흐블뤼크. 문화의 창조자라고 불러줘.”

   아, 헬리웃이 언급했던 그 환상 제어자들을 보낸 장본인이구나. 윤혁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범죄의 수괴를 마주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저 사람 탓에 이 끔찍한 사단들이 전 우주에 범람했다니.

   “이런, 꼴이 많이 안 좋네. 헬리웃 때문에 삼촌이 욕 좀 봤구나.”

   굴욕적이긴 해도 좋지 못한 몰골인 건 사실이었다. 초췌한 얼굴에 기운도 없고 초라하게 벗겨진 신세. 수치스럽 위축되긴 했으나 마냥 주저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윤혁은 매섭게 눈을 뜨고 상대를 응대했다.

   “그러는 당신은 무슨 짓을 꾸미시는 거죠?”

   “호호, 그새 정치에 관심이라도 생긴 거야? 안심하셔. 나는 당신을 직접 방해할 생각이 없으니까. 아, 결과적으로는 자연히 그렇게 되려나. 뭐, 그래도 난 헬리웃 녀석과는 지향하는 목표 자체가 달라.”

   그녀는 잔뜩 기대감에 고양되어 보였다.

   “그나저나 녀석이 반지를 훔치더니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일 줄이야. 만약 성공했으면 나조차도 골치 아팠겠지. 아버지는 이미 눈치챈 모양이네. 헬리웃은 이제 차라리 죽기를 소원할 만큼 처벌받겠지.”

   그리고 멍청한 헬리웃이 만든 밥상을 가로챈 덕에 스튜아는 반지를 아주 잠시나마 빌려 쓸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그 와중에 죽도록 고생한 삼촌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불쌍한 것과는 별개로 기회란 제때 활용해야 하는 법이니 망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너무 날 원망하진 마, 삼촌. 헬리웃이 당신을 납치해서 고문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놈이 그냥 제멋대로 미쳐 날뛴 돌발행동이었지. 그러니 자비롭게 넘어가 달라고. 이만 편히 쉬어.”

   “그건 알 바 아니고, 당신이야말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겁니까?”

   “지켜봐. 이제 곧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거야.”

   저 여자도 헬리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지. 분노한 나머지 그녀를 쏘아보는 윤혁의 눈매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그러나 무력하게 무장 해제된 지친 일반인 따위를 최상위 초인이 두려워할 리는 없었다.

   “어머나, 깜짝이야. 너무 열 내지 말라고~!”

   그녀의 웃음은 헬리웃의 조롱과는 또 다른 느낌의 불쾌감을 주었다.

   “내 계획이 궁금해?”

   윤혁은 대답 없이 이를 꽉 악물었다.

   “난 식민지 인류 전체를 인류연합의 영속 노예로 만들 생각이야. 헬리웃은 그들에게 유토피아를 만끽할 기회를 주려 했지만, 난 그 반대야. 그들을 역으로 환상 속에 집어넣어 노예 신세로 전락시킬 거야. 그 안에서 번식도 하고 세뇌 교육도 받고 인공적인 사후세계와 환상을 무한정 경험하도록 설정해서 종국에는 범용성 자원으로 종족 전체를 재구성할 거야.”

   내용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윤혁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이게 인간의 할 수 있는 생각이 맞긴 한 건가?’

   “하하, 뭘 그리 놀래?”

   “지금 제정신으로 늘여놓는 말입니까?”

   “물론 지극히 제정신이야. 너야말로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모양인데? 식민지의 거주자들이 과연 법적으로 시민과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 그들은 그저 아버지로부터 합당한 처벌을 받는 존재들에 불과해. 우리 철인왕들은 그 처벌을 적절히 조율해주는 역할이지.”

   스튜아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적반하장 식으로 윤혁을 몰아붙였다. 더는 조롱하는 어투가 아니었다. 도리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리석은 애송이를 계도하고 훈육하고 꾸짖는듯한, 고고하면서도 오만함에 찬 태도였다.

   “처벌? 합당하다고? 시민이 아니라고?”

   윤혁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당신들은 어떻게 되먹은 인간들이지? 그들의 삶을 쥐락펴락할 자격을 누가 당신들에게 주었지?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그러는 당신들이야말로 식민지 출신이 아니던가. 자신의 올챙잇적의 기억은 잊고 폭압자의 대열에 줄 서겠다는 건가?”

   “뭐, 그랬었지.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수하로 발탁되면서 그분의 계획에 맞게 인생이 재조정되었어. 나는 인류의 소프트웨어를 조종하고 제어하는 일을 위해 선택받았지. 문화라는 힘의 본질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니겠어?”

   스튜아는 이 말을 끝으로 합장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 혹으 그녀 아바타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더니 ‘환상과 현실의 틈’의 인과율을 무너뜨렸다. 곧 푸른 반투명 재질의 몸체가 수십 개로 분열되었다. 분열된 각각의 조각들은 일제히 기존의 본체보다 수천 배 이상 거대한 몸체로 바뀌었다. 이 같은 분열 과정은 이윽고 무한히 반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공간이 바다의 모래알보다 많고 산채보다 거대한 스튜아의 분신으로 가득 뒤덮였다.

   “이, 이런, 정신 나간!”

   순수한 우주적 공포감과 혐오로 인해 두 다리가 힘을 잃었다.

   “어머, 아마추어처럼 뭘 그리 놀라셔? 이미 당신도 이 반지의 힘을 빌려 이 장난을 해본 적 있잖아. 이 반지에는 당신이 이 능력을 사용했던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어.”

   “분신술을? 그게 무슨?”

   잠시 어리둥절함이 머리를 때렸다. 잠깐의 고민 뒤에 겨우 기억이 떠올랐다. 일전에 윤혁은 처음으로 형과 함께 우주에 나왔을 당시 우연히 이데아와 일시적으로 융합하는 사달을 맞은 바 있었다. 바로 그때 그는 이데아를 벗어나 물리적 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신체를 여러 개로 분열시키는 분신 능력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분신술은 정신체 단계에서만 사용 가능할 터?”

   “뭐, 지금의 기술력 수준으로는 그렇긴 하지.”

   스튜아는 한심한 촌뜨기를 상대하듯 비웃었다.

   “하지만 잊었어? 이곳은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어 있잖아. 당장 지금 당신만 해도 물리적인 몸체 그대로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 들어왔다고.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는 정신체니, 실제 육체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해.”

   그녀는 한바탕 박장대소를 터뜨린 뒤 끝없이 증식하는 분신을 시뮬레이션 우주 곳곳으로 파견했다. 과거의 윤혁은 고작 수천 개의 분신만으로도 죽을 뻔했었거늘 지금의 스튜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운용하면서도 지친 기색조차 전혀 안 보였다. 최상위 초인과 일반인의 격차가 여실히 느껴졌다.

   “아쉽네, 삼촌. 얼마 안 가 환상 제어자들이 파견된 하늘도시들은 죄다 내 분신들에 감염될 거야. 당신이 탈출할 때쯤 나머지 하늘도시도 영향을 받겠지. 이제 당신이 어디를 가서 설교해도 사람들은 절대 듣지 않을 거야.”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철인왕은 통이 작은 헬리웃과는 달리 손수 우주를 개혁할 작정이었다. 이제 단순히 이 하늘도시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오해하지 마. 그렇다고 당신과 당신 동료들을 싫어해서 훼방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건 아니야. 이건 내가 오래전부터 구상해둔 계획이거든. 아버지께서도 곧 내 계획을 인정해주실 거야.”

   윤혁의 마음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발악했으나 현실의 벽을 넘긴커녕 기운마저 죄다 소진된 탓에 몸을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그는 스튜아의 무수한 분신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만 보았다.

   ‘아, 안돼.’

   탈출의 가능성이 열린 반가움도 잠시, 더 처절한 절망이 현실을 삼켰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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