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1. 강제 귀환 명령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04 | 회차평점 0 0

 

 

 

 

 

 

 

 

 

*

 

 

 

 

 

   카이젤의 수려한 눈매가 불편함으로 얼음처럼 굳었다.

   “스튜아 그 아이가 또 과잉 충성을…….”

   친히 E 클래스 초인 나부랭이를 시뮬레이션 우주 안의 감옥에 박제하여 처벌하는 사이에 영악하게도 스튜아가 반지의 힘을 재빨리 탈취해갔다. 사실 그러한 과감한 행동력 때문에 그녀를 신뢰하고 애용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월권으로 간주해야 하려나?”

   스튜아는 칼리드와 마찬가지로 항상 카이젤을 돕는 방향으로 행동해왔다. 하지만 과잉 행동을 절제하는 칼리드와는 달리, 스튜아는 종종 도를 넘어 행동하는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녀가 과잉 충성을 벌여도 다른 최상위 초인이 적절히 견제해줘서 문제가 없었다지만, 이번만큼은 그게 안 되어 곤란하게 됐다.

   “귀찮지만 직접 저지해야겠군.”

   한편 이 순간 카이젤은 냉담한 그의 본래 성격답지 않게 마음 쓰림을 느끼는 중이었다. 헬리웃의 정신세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동생이 당한 험한 꼴들을 전부 본 탓에 설명하기 힘든 깊은 죄책감이 솟구쳤다.

   ‘쳇.’

   그는 동생을 당하도록 내버려 둔 자신을 질책했다. 예전에 자신이 당했던 일까지 겹쳐 보이니 더욱더 속이 더 미어졌다. 헬리웃의 기억을 감찰하던 중, 처량한 몰골의 동생이 힘겹게 고문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 스쳐 갔는데 그 일침은 헬리웃에게 하는 말임에도 왠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참된 진실을 외면하면서 허상으로 도망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그렇게 허상을 지배하면서 자신이 신이 된 마냥 만족감을 느끼면 뭐가 달라지냐고요! 정작 당신들을 지은 창조자의 뜻과 그분이 선물한 인간다움은 외면하고! 고작 그런 게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입니까?”

   ‘반지……, 내가 준 선물 때문에 안 당해도 될 험한 일들을 당했군.’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꾸지람들을 듣더니 조금 속이 뒤엉키듯 뭉클해지는 것이 느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양심, 동생이 각성케 해준 불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일부러 망각하려고 애써왔던 따뜻한 온기도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며 그의 혼을 화끈거리게끔 했다.

   ‘참 바보 같군.’

   그에게 남은 최후의 기묘한 양심의 끈. 자기 자신이 정한 정의대로 행동하게 이끄는 초인적 윤리 집행력으로서의 양심이 아닌,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의 흔적 기관으로서의, 어린 아이의 것과 같은 여린 양심. 철인이 되기 위해 절제해버렸다고 생각했건만, 알지 못할 원리로 그 양심의 편린이 되어 버린 강윤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카이젤의 심장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카이젤은 지체없이 행동 개시했다. 잠깐 인류의 우주 정복과 관련된 중요 임무를 수행하느라 오랫동안 우리 은하를 비워뒀지만, 이제는 좌시할 틈이 없다. 그는 손가락에 끼워진 자기 반지를 통해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능력을 발동하였다. 실체화 대상은 다름 아닌 궁극의 서버, ‘이데아(IDEA)’의 본체였다.

   “대략 0.002%만큼만 실체화시키면 충분하겠군.”

   순식간에 카이젤과 수십억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 은하, 곧 지구가 속한 galaxy-0 위에 뭔가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은하 전체를 뒤덮으며 희미한 광역 구조체가 실체화되었다.

   시뮬레이션 우주 사방을 전전하던 스튜아의 분신체들은 그 엄청난 구속력에 제압당해 털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기세등등하던 그녀는 이데아의 압도적인 위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력화되었다.

   “아, 아버지?”

   동시에 그녀가 벌이려던 계획, 곧 식민지 인류를 환상계에 예속시키는 프로젝트도 강제로 일시 정지되었다. 하지만 카이젤은 원거리에서의 이데아 소환만으로는 완벽한 수습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능력을 매개해줄 강력한 물리적 실체를 보내야만 했다.

   “기함 뤼키온델수스 – XXVIII 한 기를 galaxy-0로 즉각 파견한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카이젤이 거느린 대함대에 속해있던 흉흉한 부피의 뤼키온델수스 – XXVIII가 무리 소속에서 독립 기동 상태로 전환하였다. 행성과 맞먹는 크기, 빛을 압도하는 기동력, 단독으로 초은하단을 뛰어넘는 이동 능력, 항성계를 숨결만으로 흔적도 없이 소멸시킬 가공할 화력, 그리고 영구 동력원에 근접한 엔진, 이 모든 것을 지닌 전천후 전략 병기가 블랙홀을 뛰어넘어 공간을 도약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일이 더 남았다. 책임자의 질책. 카이젤은 정신파 사념을 발산하여 특수 장치에 공명시켰다. 이윽고 그는 광활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강력한 텔레파시를 발산하였다.

   “진 라흐블뤼크.”

   지체없이 즉각 응답이 되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네가 내 동생을 뒤에서 사주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진의 홀로그램이 즉각 카이젤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금발 벽안의 미남은 긴장감과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다. 카이젤은 냉담한 목소리로 차분히 그에게 명령하였다.

   “자세한 변명은 나중에 듣도록 하지. 네가 부추긴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책임져라. 칼리드와의 대립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이라면 내가 그를 따로 불러서 잘 타이르겠다. 지금은 네 일부터 해결해라.”

   “……알겠습니다.”

   드디어 카이젤이 강제적 송환 명령을 선언했다.

   “즉각 강윤혁을 털끝 하나 손상 없이 회수해서 지구로 보내라.”

   “네.”

   진이 퇴장하려는 순간, 카이젤은 한 가지 지시를 더 전했다.

   “이레귤러의 존재, 다른 철인왕들은 모르고 있나?”

   ‘역시 알고 계셨구나.’

   진은 뻣뻣이 굳은 자세로 쭈뼛거렸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같이 회수해라. 물론 반지도 함께 챙겨라.”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확보 후 처리는…….””

   “일단은 네가 따로 보관해두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 숨겨둬라. 스튜에의 처리는 내가 하지. 따로 최면을 걸어서 내가 반지를 회수했다고 불분명하게 믿도록 해두마. 나머지 철인왕들이나 초인들에게는 금언령을 잘 엄수해라.”

   “네.”

   진은 아버지치고는 자비로운 처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스테판은 어두운 심해에 잠겨 있었다. 관측이 허락되지 않는 깊은 환상계 영역까지 그는 맨몸으로 내려왔다. 사방에서 희미한 음성과 잡음이 섞여서 들려 왔다. 기하학적인 개념이 다른 영역이기에 ‘사방’보다는 ‘모든 축 방향’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여하튼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 갇힌 사람들의 영혼이 울부짖는 아우성이 아카펠라의 화음처럼 혼합되어 기이한 하모니를 자아내는 중이었다.

   “공허함에 고통받는 영혼들.”

   보이지 않아도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선명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오. 하지만 리온과 루디아, 당신들이라면 해낼 수 있소. 당신들은 저 불쌍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시오. 직접 현실 세계에서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서.”

   어쩌면 리온이 평한 대로 허상 세계란 복음의 좋은 매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허상 속에 잠든 불쌍한 이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복음을 들을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스테판이 할 일은 저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강한 자극을 주는 것. 상상과 거짓과 우상으로 인해 허망해진 영혼들에 일침을 가해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그 뒤에는 선교사들의 헌신을 믿어보자.

   “사람의 마음속에 두 촛불이 있다고 하셨소?”

   리온이 스테판에게 넌지시 가르쳐 준 힌트, 곧 사람들의 무의식에 주입할 핵심 진리 코드란 두 촛불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아무리 복음이나 성경, 심지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신의 형상을 머금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두 증거가 반드시 존재한다.

   ‘우선 창조의 증거.’

   사람은 창조된 우주 만물을 통해 창조주를 발견하며 본능적으로 그분을 찬미한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자를 바라보도록 제공된 첫 번째 증거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세기 무신론적 과학은 사람들을 세뇌해 대다수 사람의 마음속에서 첫 번째 촛대를 꺼트려 버렸고 이 악재의 후유증은 무신론이 주류 학계에서 부정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양심의 증거.’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도덕심과 양심은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 역시 본능적으로 절대자를 알도록 심어진 두 번째 증거이나 애석하게도 죄에 중독되는 바람에 양심은 무뎌지고 닳아졌다. 이 촛불도 대다수의 마음에서 꺼져버렸다.

   “이 두 촛불을 다시 잠시나마 일깨울 수 있도록 그들의 무의식 속에 두려움을 심겠소. ‘절대자에 대한 깊은 경외’를 말이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묘한 세상 안에서라면 그런 충격 요법이 가능하겠지.”

   스테판은 자신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꺼내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내었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 할 기행으로 환상계와 겹쳐진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정확히는 이레귤러인 스테판이기에 시도가 허락된 과업이었다. 그는 이 추출물을 유사 증식 폭탄처럼 사용해 시뮬레이션 우주 차원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잠든 영혼들을 일깨우는 자극제로 쓸 작정이었다. 마치 심장이 멎은 몸을 응급 소생술로 깨우듯, 영혼들을 향해 일시적인 CPR을 시행하리라.

   ‘내가 의도치 않게 이레귤러로 빚어지게 된 건 어쩌면 이런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 그분이 계획하신 바일지도 모르겠소.’

   그런데 일은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다. 그가 참전을 준비하던 도중, 영역 경계를 가르며 온갖 방해자들이 출현했다. 시뮬레이션 우주 쪽에서는 정체불명의 반투명한 푸른 형체들이 대거 몰려왔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었다. 스테판의 정신체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존재감이었다.

   “크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상과 현실이 겹쳐진 부작용인지 모종의 영력(靈力) 간섭도 전보다 선명해졌다. 기다렸다는 듯 영적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검은 목소리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계에서 온 푸른 형체들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수도 훨씬 많고 권능도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짙고 강력했다.

   <그만 이곳으로 와.>

   <네 의지와 마음을 우리에게 줘.>

   <저항하려 애쓸 것 없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스테판은 안간힘을 썼다.

   “리온의 말이 맞았군. 실존하는 허상 세계는 자연 질서를 너무 왜곡해놓은 차원인 탓에 취약하오. 악한 영들이 간섭하기 너무 쉬운 공간이구려. 저 많은 악령이 나를 지금 적으로 인식하고 저주하고 있다니.”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저들은 네 안의 우리를 두려워하기에 날뛰는 것이란다.]

   순간, 따스한 손길을 연상케 하는 온기가 귀와 등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손이라는 구체적인 형체를 느낀 것도 아니고, 그 온기의 주인을 보지도 못했지만, 전에 느끼지 못한 깊은 평온이 밀려왔다. 나약해지려던 정신이 서서히 굳건해졌다. 손에 들려있는 ‘공의에 대한 경외’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까보다 뜨겁게 달궈졌다. 누군가가 숨결로 힘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라.]

   근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인지와 통찰이 불명확한 가운데서도 스테판은 신념에 이끌리듯 뭔가를 굳게 확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에 들린 두 개의 무기를 그대로 환상 공간으로 투영했다. 따뜻한 빛과 섬광의 폭발이 눈에 닿는 모든 영역을 집어삼켰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이었다.

   그 순간,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했던 식민지 주민, 인공지능, 서버, 시스템, 이종족, 자율운행 인공 캐릭터, 심지어 초인에 이르기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엄청난 진동을 일제히 느꼈다. 잠깐 존재감을 내뿜다 사라진 진동이었지만, 몹시도 짙고 선명했다.

   식민지 주민 중 취해있던 자들은 일제히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차원 속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정체 모를 감각이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무언가가 영혼의 취약점을 찔러 칼로 휘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슈우우웅.

   때마침 타이밍 좋게, 또다른 격변도 휩쓸었다. 처음부터 깊은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각본이기라도 한 것인지 스테판이 자신의 전부를 헌신적으로 투척한 순간에 딱 맞춰 현실로 확장되던 시뮬레이션 우주들도 그 제작이자 관리자인 존재의 개입에 함몰되었다. 그 여파에 묻힌 덕분에 스테판의 활약은 자연스레 들키지 않고 수면 아래로 은밀히 감춰질 수 있게 되었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처리는 한번에 깔끔하게
이전회

25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1. 강제 귀환 명령 (1)
등록일 2023-12-02 | 조회수 105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25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1. 강제 귀환 명령 (3)
등록일 2023-12-06 | 조회수 125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