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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1. 강제 귀환 명령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06 | 회차평점 0 0

 

 

 

 

 

 

 

 

 

 

*

 

 

 

 

   기함 뤼키온델수스 – XXVIII의 거대한 몸체가 우리 은하에 당도하자마자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스튜아가 퍼뜨린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분신들은 소각되었다. 제압당한 그녀는 기함을 매개체로 시뮬레이션 우주 안으로 직접 진입해온 카이젤의 의지 구현형 아바타와 그의 이데아 앞에 얌전히 무릎 꿇었다.

   어지러지고 지워진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다시 원 상태로 복구되었다. 환상 제어자들이 범한 소란은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또한 스튜아의 원대한 계략으로 인해 영원히 복속될뻔했던 인간들도 원래 위치로 귀환했다. 큰 후유증이 남기야 하겠지만 그들로서는 절박한 위기로부터 한숨을 돌린 셈이었다.

   카이젤은 드래곤 앞의 개미 신세가 된 철인왕을 재판하듯 내려다보았다.

   “아버지.”

   “이번에는 네가 과했구나, 스튜아.”

   실망감 어린 눈초리로 하인을 내려다보는 카이젤의 섬뜩한 금안(金眼). 애처롭게 왕을 올려다보며 인정을 갈구하는 스튜아. 그녀는 감정에 호소하여 구차하게 설득했다. 이 계획이 전부 그분을 위한 일이었거늘. 하지만 아버지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는 전부 아버지를 위해서 이 일을 벌였을 뿐이에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저들은 온전한 시민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저런 자들은 그저 당신의 권능을 완성하는 세포로서의 역할만 수행하면 그만이에요. 그들에겐 그런 비천한 처지가 어울려요.”

   확신에 찬 음성으로 스튜아가 울부짖었다.

   “그러려면, 그 합당한 심판을 내려 그들의 위치를 알게 해주려면, 인간들을 시뮬레이션 우주에 복속시키는 방식만큼 확실한 수단은 없어요!”

   “아니, 네 판단에는 오류가 있다.”

   카이젤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스튜아의 분노에는 일정 부분 공감했다. 애초에 자신에게서 시작된 분노였으니까. 하지만 인류라는 존재를 환상을 통해 영원히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그런 방법으로 궁극체가 되는 무의미한 방식은 그의 철학과는 어긋났다.

   그가 인류의 대표로서 불변의 정상에 오르길 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인류라는 종족 전체의 완전한 성장을 통해서 이뤄져야지, 개개인의 존엄성을 말살함으로써 이뤄져서는 안 된다. 그가 다스리고 대표할 종족은 존엄성에 있어서도 완전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이 그의 욕심이었다.

   “네 계획은 내 가치관, 나의 미학과 철학에 어긋난다. 난 현실 속에서 그들과 상호작용하길 원해. 그리고 그들의 자유의지로 경외를 받기를 원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자발적으로 꺾게끔 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이자 성취이다.”

   말로는 냉담하게 심판의 선언을 했으나 스튜아는 아버지의 태도가 과거와 달리 대단히 느슨해졌음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그녀는 차마 대꾸하지는 못한 채 억울함을 삭이며 반문했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칼리드의 우려가 옳았단 말인가?

   “그런 심경 변화는 역시……, 당신의 아우, 그자 때문입니까?”

   “글쎄.”

   카이젤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묵비권은 절대적이다. 일개 권속에게 자신의 심리를 정직히 털어놓을 의무는 없었다. 그는 시뮬레이션 우주 전체를 원상복구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네 말이 맞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희에겐 내게 의문 표할 권리가 없다.’

   아울러 그는 진에게 약속한 대로 스튜아의 뇌리에서 각종 위험 소지가 있는 정보를 모조리 지웠다. 특별히 반지에 대한 부분은 흔적이나 단서도 없이 일관성 있게 삭제했다.

   상대가 무려 최상위 초인이긴 했으나 카이젤의 현자의 눈에 담긴 효력은 철인왕들의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궁극이었기에 저항이나 복원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이렇게 스튜아의 장황한 계획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물론 처벌은 여기까지만 진행되었다.

   “제법이군, 스튜아. 그 우매한 E 클래스 초인과는 달리 머리가 영악해서 그런지 그 기행을 벌이고도 컨스티튜션 셋(Constitution Set)의 예속력을 벗어났군. 아슬아슬하게 중요한 선을 넘지 않은 채 비껴갔어.”

   그는 제 부하의 영리함을 손수 칭찬해주었다.

   “그러니 처벌은 내 손으로 하지 않겠다. 한동안은 근신하도록.”

   “……알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시뮬레이션 우주를 떠나 육체로 되돌아갔다.

 

 

 

 

 

 

 

 

*

 

 

 

 

   한 순간에 일어난 역전의 바람이 휘몰아친 후, 이제 ‘환상과 현실의 틈’은 소멸 직전의 위기에 놓였다. 헬리웃이 봉인 당했으며 카이젤이 이데아를 통해 원상복구 작업을 시행하는 바람에 헬리웃의 아지트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윤혁은 무너지는 영역으로부터 달아나고자 애썼다. 비틀거리며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정신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겹쳐 만들어진 그 공간의 급격한 재배열과 붕괴가 윤혁의 망가진 몸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크윽.”

   한 걸음을 미처 떼기도 전에 그는 무기력하게 푹 넘어졌다. 사지의 근육이 전율하듯 떨리며 온몸에서 비오듯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적인 소모와 충격이 몸의 쇠약으로 이어진 탓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추락하는 그를 절묘한 타이밍에 낚아채 끌어안았다.

   “윤혁아!”

   “……룻?”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루디아는 그를 안자마자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울었다. 윤혁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눈꺼풀을 지탱할 기운조차 없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가 얼마나 그를 걱정해왔는지 그 고심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녀 특유의 상냥함과 따뜻함이 친밀히 전달되는 느낌이 반가웠다. 그간 단절된 상태로 구금되었던 동안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미안해. 걱정시켜서. 그런데…….”

   말을 마치다 말고 멈칫한 윤혁. 문득 그의 흐릿해진 시야에 뿌옇게 들어온 루디아의 인형 몸체의 실루엣이 위화감을 주었다. 환상과 현실의 균열의 영향인지 껍질이 죄다 벗겨져 거의 생체와 기계의 중간 형태만 남은 상태였다. 윤혁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초라한 몰골이라 할 말은 없었으나 루디아의 형체는 더욱더 가관이었다.

   “도대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루디아는 머뭇거리더니 말을 돌렸다.

   “과정을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 일단 벗어나는 게 급선무야.”

   참고로 정황은 다음과 같았다. 카이젤이 우주 저편에서 극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환상제어자들과 스튜아의 계략은 하늘도시들과 시뮬레이션 우주들 전반에 걸쳐서 무너져내렸고 그 정화 과정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는 거대한 여파가 휘몰아쳤다.

   그 틈새를 포착한 진은 재빠르게 급변 사태를 기회로 잡았다. 그는 우선 리온과 루디아의 인형 몸체에 대한 강제 조종권을 회수했다. 스튜아가 일으켜놓은 사태의 여파가 아직은 희미하게 남아있었기에 때문에 진으로서는 하늘도시 내에 직접 병기를 직접 투입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궁여지책으로 대체용 장기말이 필요했다.

   진은 두 인형의 몸을 장기말 겸 행동 매개체로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지구에 거하는 본체로 곧 돌아갈 예정이고 인형 몸은 버려질 셈이니 한 번이라도 더 재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잠시 조종당하는 불쾌한 기분이 들 겁니다.”

   아직 의식이 인형 쪽에 붙어있던 루디아는 스며드는 조종력에 불쾌감을 느꼈으나 이내 저항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몸을 맡겼다. 이내 인형 CPU에 진의 해킹 프로그램이 침입해오더니 기계 율법과 공명하였다. 루디아는 순간적으로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뇌리로 다운로드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래, 친구를 구조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일단은 기꺼이 이용당해주겠어.’

   곧 그녀의 인형 몸체는 진이 원격 전송한 프로그램에 힘입어 환상계 전용 특수 전투 모드로 전환되었다. 특수한 기술력들로 무장된 그 몸은 몇 번의 화려한 전산 묘기와 해킹을 거친 끝에 가까스로 ‘환상과 현실의 틈’ 내부로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리온은 괜찮아?”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윤혁은 억지로 눈을 붙들고 질문했다. 루디아는 대답 없이 그를 붙들고 환상계를 가로질러 이동했다. 새로 장착한 특수 기동력으로도 무너지는 차원 내부에서 이동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스테판 씨는? 그는 어디에 있어? 무사하지?”

   거듭된 질문에 루디아는 신중히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지금부터 너는 곧바로 지구로 송환될 거야.”

   “뭐라고?”

   “후원자가 전보를 보냈어. 나와 리온의 몸체를 매개체로 사용해서 자신의 특수 무장을 소환할 계획이야. 아마 리온의 인형은 이미 파괴되었을 거야. 지금쯤이면 리온도 지구에서 깨어났겠지.”

   진이 스테판을 구조한다고? 아니, 그전에 스테판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단 말인가? 게다가 리온의 인형이 파괴되었다고? 본체의 뇌리에 충격이 가는 건 아니겠지? 수많은 걱정이 흐릿한 윤혁의 의식을 찔러댔다. 무엇보다 무너져내리는 그녀의 몸체가 심히 신경 쓰였다.

   “그리고 나도 동일한 목적으로 이곳에 왔어.”

   “너 설마!”

   “안녕, 윤혁아!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

   루디아는 작별하듯 윤혁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던 인형 몸체가 가루처럼 부스러졌다. 짧은 인사말만 남긴 채로. 윤혁은 그녀 형상을 담은 형체가 부서지는 광경을 보며 굳었다. 머리로는 진짜 몸이 아님을 알았으나 심장은 그리 냉정하지 못했다.

   ‘룻.’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 잔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환상계 특수 병사, ‘네부카드네자르-203호’ 소환.}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윤혁은 루디아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자리만 멍하니 응시했다. 죽음을 방불한 위기를 헤치고 가까스로 재회했건만, 이별의 칼날은 잔인했다.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부서져 내리는 장면이 그의 무의식 속에 옅은 상처 자국으로 남았다.

   {임무 수행 개시.}

   루디아가 붕괴한 자리에서 화염을 입은 그림자 같은 것이 솟구쳤다. 그것은 형체가 불명확한 플라즈마 재질 같은 물체로 변화하였다. 환상계에 속해있으면서 동시에 물리계와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특수 물질로 구성된 병기로 진의 개인 발명품이었다.

   {표적 포착 완료.}

   그 불꽃 같은 물질은 거대한 환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환수는 윤혁의 몸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꼬리로는 조금 전 스튜아가 잠식해 이용하였다가 다시 붕괴하여버린 헬리웃의 아바타 몸체 잔해를 붙잡았다. 목표물은 그 속에 담긴 보물이었다. 이로써 두 목표물이 무사히 확보되었다.

   {회수 완료. 퇴각 프로세스 시행.}

   이후 환수는 다시 변신하여 그물 같은 형태로 탈바꿈하였다. 그물을 구성하는 실들이 하나하나 예리한 검처럼 다듬어지더니 사방의 공간을 사정없이 찔러 난도질했다. 토막 난 시공간은 퍼즐처럼 정교하게 해체되고 재배열되어 통로 형태로 재구축되었다. 환수 네부카드네자르-203호는 윤혁과 반지를 회수하여 강제로 벌린 길을 통해서 빠져나갔다.

   ‘이렇게 허무한 마무리라니.”

   마지막 한 방울의 기운이 소진된 윤혁은 스르르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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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제 얼마간 좀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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