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6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2. 재충전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1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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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들은 사실상 리온을 다음 세대 지도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지구에 남아있는 신실한 자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진리의 보호자로. 나아가 더 넓게 복음의 씨앗을 퍼트리는 일을 감당할 책임자로.
“제가 감히 그런 위인들과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허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도구로 쓰시고자 한다면 그 개인의 강하고 약한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소.”
성실한 목회자들은 리온에게 본격적으로 목회자의 길로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리온은 자신이 아직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다며 만류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은 시시각각 급속도로 변화하는 중이며 영적 어둠은 지금도 짙어져만 가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한시바삐 리온 같은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저는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신학 지식으로는 자네만 한 이가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안다네. 아이러니하게도 자네를 가르친 분이 복음의 대척점에 선 자였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자네는 그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지. 더욱이 그녀를 극복했다는 사실부터가 온갖 거짓들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의미일세.”
그 말은 사실이었다. 리온은 티아라를 반면교사로 삼아 성장했고 이번 1차 선교 여행을 계기로 티아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그녀와 대치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친구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자네는 능력으로나 신실함으로나 적임자일세.”
목사들은 이 추세라면 오늘날 인류에게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형식주의에 얽매일 여유가 없었다. 외적인 자격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기독교 교육 체계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형편에 리온에게 형식적인 자격 획득을 무리하게 요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부족하겠지만…, 고려해보겠습니다. 앞으로 노력할 일이 많겠군요.”
결국은 리온도 고집부리지 않고 어른들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당장 목회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 길로도 쓰임 받게 되리라. 리온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목회에 대한 소명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고맙네, 자네가 어서 성장하여 지구의 그리스도인들을 이끄는 훌륭한 그릇이 되기를 바라네. 부디 그 옛날 종교개혁자들이 배교한 거짓 교회에 대항해 진리를 다시 발굴해내어 수호한 것처럼 큰일을 감당하기를 기도하네.”
그날부터 리온은 매일 자신의 자격과 상태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소명에 대해 질문하였다. 아직은 선교사로서 방방곡곡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더 좋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여행에서 대중 앞에서 진리를 담대하게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새로운 보람과 평강도 체험했다. 그에게는 분명 주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적절하게 전달하는 은사가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윤혁을 좀 더 섬기며 돕고 싶어.’
어느덧 윤혁의 꿈은 리온의 소망과 일체화되었다. 온 우주의 인류가 복음을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 전에는 불가능하리라 여겼지만, 이번에 목격한 수많은 기적적인 역사가 소망의 불꽃을 되살려주었다. 틀림없이 윤혁은 지금 성과에서 만족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할 작정이리라. 그렇다면 자신이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야 한다.
‘목회자로 성장하는 일이 만일 그 임무에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건 고초건 감내할 수 있어.’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자신이 온전히 교만을 다 내려놓고 순수한 하나님의 입술로만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제아무리 처음에는 성실한 초심을 품고 시작해도 성공을 반복하면서 자연히 교만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끝까지 겸손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지.’
실은 스스로의 본질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신실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런 면에서 리온이란 인간은 훌륭한 사역자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했다. 그것을 꽃 피우는 것은 은혜의 영역이요, 또한 그 자신의 책임의 영역이었다.
*
루디아의 선교팀 합류와 활약은 한동안 메시아닉 유대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그들은 민족과 고향이라는 틀을 넘어 세계 만민을 돌아보게 되었고 나아가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방인들의 구원 문은 거의 닫혔으며 이젠 유대인들의 영적 부흥이 이뤄져야 할 차례’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유대인의 영적 회복은 곧 이방의 새로운 폭발적 복음 전파의 시작으로 귀결된다.’라는 의견이 더 힘을 얻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 찾아왔어요. 아흔아홉 명의 의인이 있는 이곳에만 머물러 있으면 편안할지도 몰라요. 반면 한 명의 잃어버린 양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면 큰 고난을 감수해야 하겠죠. 하지만 우리 주인이신 예슈아께서 선택하신 좁은 길이 과연 어느 쪽인지는 한 번 다시 생각해보세요.”
용감해진 루디아는 어른들 앞에서 당당히 자기 의지를 피력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회복시키길 원하시지만 동시에 그 못지않게 세상 만민이 구원 얻기를 원하세요. 다시 말해 우리의 승리가 그들의 승리와 일치해야 해요. 이제는 우리가 복음 전파의 주역으로 거듭나야 할 차례에요.”
윤혁이 루디아에게 심겨준 영적 윈윈(Spiritual win-win)의 소망은 1차 선교 여행을 거쳐 확신으로 자라났고, 이제는 동족들에게까지 계승되었다. 그들은 지구 전역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경을 ‘원본의 맥락에 가깝게 정확히’ 전달할지를 놓고 고민하였다. 메시아닉 유대인의 민족적, 문화적 특성은 이 방면에 쓰임 받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무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의 성경을 저작했던 바로 그 민족의 후예였으니까.
훗날 더 명백히 밝혀지게 되지만 이 민족의 강점은 문화와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대 민족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말세를 가리키는 핵심 지표가 되었다.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증거 판이자 이정표였다. 인간 세계는 물론 초인들의 움직임마저 자신의 주관하에 완벽히 다스리시는 신께서는 그 모든 도구를 활용하여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시대의 메아리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예비하셨다. 다만 이 사실을 당사자들이 깨닫기까지는 좀 더 기다림이 필요했다.
‘윤혁아, 나도 이제는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할 거야. 너와 내가 함께 소망했던 그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너도 절대로 다치지 말고 건강을 유지해줘.’
그녀는 윤혁이 아파하는 모습을 더는 보기 어려웠다. 그는 의로움을 위해서라면 절대 멈추지 않을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매번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그 성품이 존경스러우면서도 가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 그의 아픔을 아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은 이 감정이 그저 ‘동역자로서의 사랑’이라고만 여겨졌다.
‘보고 싶어.’
벌써 그를 못 본 지도 몇 주나 지났는데 짧은 시간 동안 떨어진 것만으로도 그 공백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지난 몇 년간의 여행은 그녀 인생에서 변곡점이라 불릴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의 특별함이 윤혁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그의 존재가 그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을까?
‘기다릴게.’
아렌은 루디아를 위로하며 권고했다.
“얘야, 그간 정말 수고했다.”
“아렌 할아버지.”
“이제는 푹 쉬어라.”
그녀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지만 동시에 건강과 체력 관리에도 힘썼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기회만 허락하신다면 그녀도 인형이 아닌 실제 몸으로 우주에 나아갈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기계 율법’이라는 꺼림칙한 프로그램의 구속 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진실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강인한 정신과 육체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꾸준한 운동을 겸하여 육체노동에도 힘썼다. 식사도 거르지 않고 잠도 규칙적으로 잤으며 말씀과 기도 생활에도 전보다 깊이 전진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할 역량을 얻고자 스스로의 심령을 훈련하였으며 공동체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 복음 전파를 위한 준비와는 별개로 그녀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있었다. 그녀를 친자매처럼 대해준 소중한 은인, 아니 섬 주민 모두의 은인인 아가씨를 돕는 일이었다. 사실 여행 중 성녀라는 여인을 만났을 때도 루디아는 유독 아가씨가 떠올랐다.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기운 때문이었을까?
‘그 성녀라는 사람도 분명 한때는 리온의 은인이었을 텐데……. 지금의 둘의 사이는 너무도 심각하게 뒤틀려있었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인 우정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벽이란 게 있는걸까?’
루디아는 아가씨와 자신의 관계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했다. 은혜 입은 일이나 마음의 빚을 떠나 아가씨를 향한 순수한 호감 때문에라도 그러하였다.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로서의 삶을 약속받았던 것처럼 자신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아가씨가 복을, 특별히 영적인 축복을 받는 것을 보기를 바랐다.
*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리온을 만나고자 선교팀 본부를 방문했다. 그 여인은 얼굴 윗부분까지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체구는 조금 작은 편이었고 나이는 잘해야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검은색 단발머리의 소녀는 비록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두상과 외관만 보았을 때는 꽤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과묵한 성격인지 다른 이들과는 짤막한 말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리온 앞에 나아가 직접 독대하고서야 그녀는 비로소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리온 마흐무드씨 되십니까?”
“네, 제가 그 사람입니다만.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리온은 그녀에게서 나오는 은은하면서도 의미 깊은 존재감에 호기심과 더불어 긴장을 느꼈다. 인류연합 관계자들이 내뿜던 위험한 기운과 언뜻 겹치는 면도 있었으나 훨씬 단출하면서도 소박했다. 어딘가 모를 역설적인 느낌의 편안함까지 들었다.
‘대체 누구일까?’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감이 들었다. 그녀의 진지한 목소리에 뜻깊은 현명함과 신실함이 녹아있는 듯했다. 겉으로는 한없이 순결하고 성스러워 보여도 인위적인 느낌이 몹시 짙었던 자신의 옛 사부 티아라와는 사뭇 상반된 이미지의 소녀였다.
“처음 만난 저를 당장 믿기는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당신들을 돕고 섬기고자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저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네?”
뜻밖의 낯선 인물의 자기 소개에 당황한 리온.
‘저런 인물이 남아있다고 알려진 적이 있었던가?’
사실상 그 수가 너무도 적어져서 한 집단이 완전히 헤아릴 수 있을 지경이 된 게 지구상의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이거늘. 저런 심상찮은 느낌의 위인이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에게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단 말인가. 의문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온 마흐무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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