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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6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3. 해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1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

 

 

 

 

 

 

   그는 노골적으로 자랑하듯 물 위를 걷는 행위를 그만두고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발을 계곡물에 담갔다. 곧 그의 몸도 반 이상 물에 잠겼다. 그는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셔츠를 단번에 벗어 던졌다. 사복처럼 보였던 옷이 입자 단위로 해체되며 차원 이면으로 전송되어 사라졌는데 아마 평범해 보이는 건 모양뿐이었는 듯했다.

   “이러면 좀 대등한 입장이려나?”

   형제 모두 시원시원한 차림이 되니 조금은 눈높이가 맞춰졌다. 다만.

   ‘우와!’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이 커지며 속에서 순수하게 경탄이 흘러나왔다. 일부러 형이 우월한 눈높이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맞춰주었건만, 격차가 더 벌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떻게 몸이 더 좋아질 수가 있지? 이미 완성체가 아니었던가?’

   과거에 봤을 때도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강건했건만. 그새 얼마나 단련을 열심히 한 것인지 이전보다 훨씬 더 탄탄하고 강인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멋있다는 느낌을 넘어 인간 본연의 복종심을 자아내는 위세였다. 자신 또한 그러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은 윤혁은 자괴감과 더불어 미학적 즐거움을 체감했다.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면 부담스럽다.”

   카이젤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왠지……, 부러움이 드네요.”

   보통 성인 남성 한 명 반은 거뜬히 들어가도 남을 넓은 어깨와 가슴이 눈에 선히 들어왔다. 바다처럼 넓은 등 위에는 섬세한 근육들이 생동감 넘치게 꿈틀거리며 기하학적 존재감을 자아냈다. 열 조각으로 쪼개진 복근은 칼로 베어놓은 양 깊고 선명했다.

   “솔직히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것 아닌가요?”

   역설적이게도, 크고 장대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둔하다거나 과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어느 부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온전한 조화로움, 절정의 미학, 늠름한 맹수 같은 야생의 날렵함이 도드라졌다. 강함의 극한과 유려함의 극한이라는 두 대척점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화합할 수 있을 줄이야.

   “그러는 너는 좀 야위었군.”

   형이 걱정하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동생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위축되었다. 힐난이나 우습게 여기는 태도가 아닌,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육체적 우월함이 시각적으로 훤히 비교되니 괜히 움츠러들었다.

   “잘 먹고 잘 쉬어야겠어.”

   “이미 충분히 잘 쉬었어요. 덕분에요.”

   “타지에서 얼마나 못 먹고 고생했으면 이렇게나…….”

   누가 들으면 윤혁이 오지에서 굶어가며 고생한 줄로 오해할 말이었다. 형의 오해를 정정해줄 필요성이 느껴졌다. 과거 지구 시대 믿음의 위인들처럼 극한의 고생과 궁핍을 겪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솔직히 자신 정도면 보통 이상의 건강함은 충분히 되지 않던가.

   “그렇게까지 고생한 건 아니에요.”

   “다행이군.”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시네요.”

   윤혁은 형의 강철 같은 팔을 눌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단순 겉보기의 강함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극한의 연단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못할, 강철 같은 강력함이 농밀히 농축되어 있었다.

   “설마 형도 솔져들처럼 신체 개조라도 하시는 건 아니겠죠?”

   “어차피 현 개조 기술은 주로 피코머신 기반이라 입자 속성만 바뀌어. 외양이나 기본 해부학에는 변화가 없지. 오히려 개조 후에는 재생력과 힘이 증가해서 운동해도 근육의 추가 증량이 어렵다.”

   “어쨌건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셨다는 뜻이네요.”

   “나름 즐거운 일이니까.”

   일 중독인 줄로만 알았는데 운동 중독이기도 하구나.

   “녀석도 참 실없긴. 물이나 안 맞게 정신 차려라.”

   물벼락이 기습적으로 윤혁을 타격했다. 이번에는 염동력이 아니라 손으로 날린 수동식 물 공격이었다. 넋 놓다 물 세례를 맞은 동생은 즉각 반격을 개시했다.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평등한 입장에서 형을 괴롭혀보겠나.

   그렇게 형제는 한참 동안 시원하게 물을 튀겼다. 둘은 수심이 깊은 곳으로 입수해서 헤엄을 치거나 물싸움 놀이를 하면서 따사로운 햇볕의 열기를 식혔다. 실컷 즐기다 보니 잠깐이나마 둘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짙은 긴장감과 의심의 안개가 흩어졌다. 둘은 응어리를 실컷 해후하였다.

 

 

 

 

 

 

 

 

*

 

 

 

 

   지칠 때까지 물놀이를 마친 형제는 시원한 차림의 수영용 트렁크만 걸친 채 햇빛이 잘 비치는 매끈한 계곡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겼다. 둘은 근황에 관한 대화도 털어놓았다.

   “어쨌건 어엿한 선교사가 되었군.”

   “과연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좀 더 자부심 느껴도 돼. 교회사(敎會史)적으로 이렇게까지 대담한 일을 거시적으로 벌인 적은 없었으니까. 범위만으로 따지면 이번 일과 비교가 가능한 전례는 아예 없지.”

   세상을 통치하는 지배자의 입으로 그런 칭찬을 들으니 영 어색했다. 마치 적장에게 호의에 찬 찬사를 듣는 기분이랄까. 윤혁은 거짓 없는 겸손으로 대꾸했다.

   “꼭 넓은 활동 범위와 거둬지는 사람의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진정성과 마음이 중요하죠. 수많은 사람의 회심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는 그 이상으로 귀한 일이에요.”

   윤혁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 선교지로 활동하신 지리적 영역이 불과 이스라엘 땅에 한정되었음을 기억했다. 선교의 위대함을 비단 확장 영역의 너비와 열매의 수로 책정하기란 불가능하리라.

   물론 그분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라고 선언하신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마 그분이 직접 다다르지 않으신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는 독려의 의미도 포함되었겠지. 단순히 선교지의 광대함이라는 관점에서는 제자들이 그분보다 더 큰 일을 행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자신 같은 보잘것없는 제자에게도 그분께서 그 약속을 이뤄주셨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물론 그러한 청출어람이 가능했던 건 어디까지나 당대의 제자들이나 후세의 제자들이나 본신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님은 분명했다. 저 하늘나라로 승천한 뒤에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주의 약속. 바로 그 성령을 통해 주께서 제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셨기에 ‘더 큰 사역’이 가능케 되었으리라. 직접 부딪히고 체험해보면서 윤혁은 이제 그 의미의 무게를 절실히 깨달았다.

   ‘나 같은 약한 자가 그런 위대한 일을 맡아도 되는 걸까?’

   감사하면서도 숭고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순작용일지 역작용일지는, 나로서도 지켜봐야 알겠군.”

   그때 카이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을 들은 윤혁은 긴장했다. 문득 그 보편 표식들, 특별히 스테판이 ‘사상제어의 표식’이라고 불렀던 그것이 떠올랐다. 형은, 세계의 지배자는 지배력의 약화를 썩 반기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회심이 표식의 효력을 정말로 무마시킬까?’

   스테판 같은 경우는 특수한 예이니 일반화시키기는 무리였다. 표식과 회심의 관계에 대한 가설은 윤혁의 예측 능력을 벗어난 영역이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면 반길 일이지만, 그것이 지배자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면 곤란하다. 표식의 힘은 보존되더라도 영혼만은 자유롭게 되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지배자의 탄압이 따르더라도 죄와 표식 모두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편이 나을까? 어떤 방향이 안전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회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복음의 진전이 선한 영향을 끼칠 텐데.’

   설령 표식의 지배력이 사라지거나 희석된다고 해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회에 반항하지 않고 권력자에게도 순종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신께 대적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건실한 시민들이 늘어난다면, 강제적인 지배력에 의거해서가 아닌 자유의지로 상급자를 섬기는 밀알들이 사회를 채운다면, 지도자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변화하지 않을까? 최소한 하나님에 대한 일말의 경외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건가?’

   한창 상념에 잠겨있던 차에.

   “윤혁.”

   “네?”

   “네가 겪어오면서 궁금했던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라.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라도 있으면 그것도 한 번 풀어보고. 이미 아는 것들이 많긴 하겠지만, 네 입으로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군.”

   의외로 카이젤은 동생의 모험담에 깊은 관심을 선보였다. 윤혁은 민망함 때문에 뒷덜미가 화끈거렸다.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없었어요.”

   “그래? 그러면 진 녀석을 심문해야겠군.”

   심문이란 단어에 화들짝 놀랐다. 하여간 적당히가 없다니까.

   “아, 알았어요. 들려드리면 되죠?”

   이참에 살살 형을 떠보며 식민지 배후에서 벌어진 진실을 알아보는 편도 괜찮겠지. 물론 많은 소득까지 기대치는 않았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윤혁은 조심스럽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형은 세계들의, 그러니까 하늘도시들의 기초 구성 원리나 그곳에서 이현상들이 벌어지는 이면의 기전을 전부 알고 계시죠?”

   “대강은. ‘기계 신(Deus Ex Machina)’과 ‘이데아(IDEA)’, 그 두 개의 초지능체가 모든 하늘도시에서 벌어진 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해서 실시간으로 내게 모든 것을 전달해준다.”

   긴장감에 목울대가 마른침을 넘겼다.

   “혹시……, 두 물체의 본체는 어디에 있나요?”

   너무 깊은 비밀에 닿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도 들었으나 호기심이 그보다 더 강하게 머리를 지배했다. 특별히 전에 한 번 접촉했었던 ‘이데아’라는 정체불명의 실체에 대해서는 윤혁도 몹시 궁금했다. 가뜩이나 헬리웃 사건을 계기로 궁금증이 더 붙기도 했고.

   완전히 기밀로 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대답은 쉽게 나왔다.

   “여기에.”

   카이젤은 자기 관자놀이 쪽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형의 머리요? 뇌인가요?”

   설마 그 거대한 실체를 자기 뇌와 융합시켰단 말인가.

   “엄밀히는 조금 다른데……, 대충 비슷하지. 정신이라고 생각하면 돼.”

   “혼(魂)이라고 보면 되나요?”

   “네가 이해하는 방식과는 살짝 물리적 의미가 다르지만, 그래, 맞다.”

   하여간 어지간히도 굉장하구나. 그 우주적 괴물의 본체가 저 사람 자신이었다니. 그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력한 지배력을 온 은하에 행사하는 것이 이제는 좀 이해가 되었다. 어쨌건 웬만한 하늘도시의 정보들은 그의 감시하에 있는 것이 현실인 듯했다.

   물론 그 대단하신 카이젤도 전지전능한 신은 아닌지라 예외적인 통제 사각지대가 아예 안 발생하지는 않는단다. 실제 그 증거로 윤혁은 이번 여행 때 형의 제어 범위를 잠시나마 벗어난 일을 체험했다.

   “아직은 내 권력도 완전하진 않아. 아직은 말이지.”

   카이젤은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투명한 색채의 반지를 다른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아마 헬리웃과 스튜아가 윤혁의 반지를 도둑질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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