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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6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3. 해후 (7)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12.2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 연속됨)

 

 

 

 

 

 

 

   그렇게 한창 따스한 자연의 혜택을 온 몸으로 만끽하던 중.

   “음?” 

   문득 카이젤은 자신 쪽을 향해 한두 번씩 살짝 살짝 시선을 던지는, 힐긋거리는 동생의 눈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형은 다소 곤란감에 찬 표정으로 이마에 살짝 주름을 만들었다. 강하고 건강한 남자 어른을 동경하는 소년의 자연스러운 시선이라는 것은 이해되었다. 문제는 자신쪽이었다. 은근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그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조금 걸리적거렸다.

   “흠흠, 구경당하는 입장이 되니 곤란하군.”

   “아, 죄, 죄송합니다, 형.”

   윤혁은 번뜩 놀라 시선을 재빨리 돌리며 몸을 움츠렸다.

   “미안해요. 불편하셨죠?”

   그는 형이 불편해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몸 은밀한 부위에 남은 흉측한 흉터들이 여전히 복구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게 윤혁의 눈에도 선히 밟혔다. 육체 전체를 분자 단위로 재구성하는 일마저 가능한 과학 기술까지 갖춰진 오늘날이니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로 놔둔 것은 아닐 터이다.

   역시 전에 그가 말했던 인격 융합 현상 탓일까?

   믿기 어려웠는데 정말로 실존하는 현상이 맞긴 한 모양이다.

   “혹시 아직도 그 이상한 기현상, 계속되는 중인가요?”

   솔직히 윤혁으로서는 그 현상이 진짜인지 아닌지 직접 체험해보지 못했으니 증명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지식과 과학의 정점에 도달한 저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두 손과 두 발을 들 정도면 단순한 착각이나 망상으로 인한 가짜는 아닌 것이라고 판단해야 옳겠지.

   “그래.”

   “괜찮으세요.”

   “버틸만해. 물론 자아를 잃지 않고 자의식을 유지하려면 안간힘을 써야지. 버틸 힘을 얻기 위해 정신적 역량을 최대한 성장시키고자 노력 중이야. 초인으로서의 능력도 계속 성장시키는 중이고.”

   아직은 그런대로 그릇이 버텨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혹 훗날 우주 인류 가운데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그 여파로 인격 데이터 융합 현상이 폭증하겠지. 이 세계 내에서 사람이 죽을 때면 항상 융화가 일어나니까. 그 양이 엄청나다면 나로서도 위험해지겠지.”

   순간 섬뜩한 상상이 윤혁의 뇌리에 스쳤다. 카이젤의 증언대로라면 한 인간이 사망할 때마다 그에게는 해당 망자의 살아생전 모든 인격, 정신, 영혼 정보가 덧대어지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지만, 우주 시대가 된 지금이라면? 역사 전체를 통틀어 존재했던 인간의 총 숫자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인구가 존재하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이런 때에 사람들이 대량으로 사망하기 시작한다면? 카이젤에게는 어떤 재난이 닥칠까?

   “일부러 우주 인류가 아무도 죽지 않도록 동면시켜 보존해두신 것도?”

   “뭐, 그것도 이유 중 한 가지였지.”

   굉장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유인지라 순식간에 납득이 되었다.

   사실 윤혁은 형이 우주 인류의 생명을 강제로 보존해둔 건에 대해서는 딱히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불신자들의 죽음 이후 닥칠 영원한 멸망을 유예시켜 준 셈이니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형에게 선량한 동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 덕택이겠지만.

 

   어쨌건 지금 동생으로서 해줄 일은 위로와 공감 뿐이었다.

   “고문 당하셨을 때 많이 힘드셨죠?”

   “몸보다는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몹시 컸지.”

   “감히 저 주제에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긴 불가능하겠지만, 유감이에요.”

   “하기야 이젠 너도 조금은 공감할 자격이 되겠군.”

   “……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윤혁도 험한 꼴을 많이 보았다. 특히 헬리웃에게 고문을 당한 바람에 역설적이게도 그는 형의 수모와 아픔에 대해 작게나마 공감하게 될 기회를 얻었다. 만약 그 납치자의 악행이 아니었다면 끝끝내 형의 괴로움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고난에는 소중한 가르침이 뒤따른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넌 잘못이 없으니까.”

   카이젤은 자조적으로 쓰디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아무래도 수치스럽긴 하군. 위로해주는 네 앞에서 이런 꼴로 서니 주눅도 들고 위축되기도 한단 말이지. 위로를 받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더 눈물 나는 현실이니가.”

   “정말 죄송해요.”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윤혁은 곤란함에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내 동생은 이렇게나 건강한데, 내 꼴은 참 볼품없고 초라하고 흉측하고 무기력하니……,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긴 하군. 사내로서 비참한 몰골이라 영 체면이 세워지지 않는단 말이지.”

   결단코 의도치는 않았으나 어쩐지 형의 상처 위에 수치심이라는 소금까지 뿌린 격이 되었다. 미안함에 윤혁은 몹시 죄책감이 들었다. 형의 상실감을 달래줄 방법이 없을까? 허나 완전히 무너진 자신감을 무슨 수로 치유해준단 말인가.

   “우리 건강한 동생께서는 불구의 고충을 모르겠지.”

   그 자조가 아주 조금은 억울하게 들렸다.

   ‘글쎄요. 저도 저 나름대로 힘들었다고요, 형.’

   고백하기는 심히 부끄러우나 윤혁에게도 고충은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이상하리만큼 남성성이 강력하고 우월한 사내였다. 그러니까 보편적 면으로서가 아니라, 입에 담기 민망한 특정 방면에서. 그 덕분인지 그 때문인지 그는 학창 시절부터 기숙사 친구들의 부러움 가득 섞인 놀림에 시달려야 했다. 공용 세신실을 활용하는 기숙생의 처지는 이런 면에서 고역 아닌 고역이었다.

   ‘나도 놀림은 많이 당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과하게 왕성했다. 신체적 욕구에서도 보통 청년보다 몇십 배 이상으로 기능이 건강했는데 이는 청소년기 윤혁에게 험난한 고행길을 활짝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참아야 했으니까. 육신의 욕심대로 막 사용해서는 안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문란한 시대적 풍조에 물들지 않고자 애써왔다. 항상 정욕을 다스리고 음란함을 멀리해왔다. 그가 도덕적으로 혹은 의지력 측면에서 특별히 탁월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강윤혁이라는 인간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성정을 지닌 범부였다. 단지 그는 성경의 세계관과 가르침을, 특별히 음란과 거룩에 대한 주님의 기준을 확고히 믿었을 뿐이었다.

   비록 의지력은 연약했으나 쉽게 자기 영혼을 음란에 내어주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만일 남들보다 훨씬 성욕이 강한 자신이 한 번 타협을 시작하면 파멸적인 중독에 완전하게 집어삼켜져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했다. 그랬기에 윤혁은 필사적으로 음행에 발조차 담그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한 번도 행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한 번만 행하는 자는 없다지 않았는가.

   여하튼 이러한 복잡한 내면적 사정이 얽혀 있긴 했지만, 겉보기에는 엄청난 정신력의 금욕주의자처럼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 시절 친구들은 그런 윤혁을 기이한 천연기념물처럼 여겼다.

   어떤 친구들은 그를 지독하리만큼 고리타분한 종교 중독자로 여겼고 다른 친구들은 소위 ‘보수 꼴통’이라고 부르면서 약을 올렸다. 그러든 말든 윤혁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의지를 음욕에 내주기를 거부했다. 그는 결코 성욕을 음란과 혼동하지도 동일시하지도 않았다.

   ‘정말 힘들었다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아픔을 이해하기란 힘든 법. 이는 윤혁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형 쪽은 동생과는 정반대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남성성 자체를 부정당하고 박탈당했다는 자책감과 수치. 선천적으로 결핍된 상태도 가뜩이나 억울한데 거기에 더해 후천적인 훼손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늘 자랑스러움이 넘쳤던 사내는 오랫동안 앓아온 유일한 결점이 동생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 몰골이 수치스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으로 처절히 시달리는 내적 고통이 동생 눈에도 선히 보였다. 그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눈초리가 힘없이 축 늘어진 시무룩한 모습이 눈에 밟혔다.

   ‘어떡하면 좋지.’

   그 광경을 본 동생은 불편함이 너무 커진 나머지 조금 당혹스러웠다. 괜히 씻으러 데려왔을까? 그냥 같이 피로나 풀자고 제안한 것뿐이었는데. 당당했던 저 인간이 저렇게까지 축소되는 모습을 보자니 낯설고 안쓰러웠다.

   윤혁은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머리를 애써 굴렸다.

   “미안해요.”

   “뭐 흉측하니 저절로 시선이 가겠지. 이해는 해.”

   “그런 이유로 구경한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러면?”

   “그냥……, 할례된 상태를 직접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요.”

   그 순간 윤혁은 속으로 자신의 미련함과 부족함을 힐난했다. 난처함을 피하겠다고 생각해낸 대책이란 게 참으로 조잡했다. 내심 자신의 형편없는 대처 능력을 한탄했다.

   다행히 의외로 순탄히 먹혔는지 형의 시무룩한 표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흠, 정말로 처음 보는 건가?”

   “아, 아무래도 그렇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혁은 열심히 화제를 돌려 수습했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20세기 후반에는 거의 필수 관례처럼 시행했다고 하던데 저희 때는 완전히 낯선 개념이에요. 증조할아버지 세대부터는 아예 안 하게 됐다더라고요. 요새처럼 의학이 발전한 뒤로는 아무도 할 필요가 없겠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다 그럴걸요.”

   “종교적 이유가 아니면 시행할 필요가 없지.”

   “네, 맞아요.”

   종교적 이유? 사실 종교적 의미의 할례 대상자라고 해봐야 이슬람교 아니면 유대교뿐이다. 그중 이슬람은 초대째 위버멘쉬의 등장 이후로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고 지금은 소멸 직전이며 남은 자들도 전부 종교 통합 운동에 흡수되었다. 그래서 구 이슬람권의 할례는 실질적으로 폐지된 셈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은 오로지 한 민족만이 할례를 지킨다.

   “유대교에서는, 아니, 유대인들은 여전히 할례를 받는다죠?”

   “그래. 종교와 상관없이 혈통만 닿아있다면 남성은 누구나 받지.”

   문득 형의 혈통적 뿌리에 유대인들의 피가 맞닿아있다는 에드레이의 증언이 불현듯 떠올랐다. 윤혁 자신의 형뿐 아니라 에드레이 어르신과 그의 동생도 그렇다고 했던가.

   “라일라 씨, 형의 어머니 말이예요, 그분은 유대인이셨나요?”

   “따지자면. 내 외할아버지는 게르만계 유대인과 앵글로색슨계 유대인의 혼혈이었다. 그 외 다른 민족 계통도 섞이긴 했지만. 외할머니도 라틴계 백인종과 기타 민족이 섞인 유대인 혼혈이었지.”

   윤혁은 눈을 반짝이며 형의 가정사를 재밌게 들었다.

   “그러니 어머니도 혈통 상 옅게나마 유대 민족과 닿아있긴 하지. 물론 그녀는 유대교의 신을, 아니 어떤 신도 섬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전통은 의식했지. 그래서 내가 영아였을 때 그녀는 내게 할례를 시행했었다.”

   윤혁은 에드레이가 일러준 정보를 되새겨보았다. 역대 위버멘쉬들은 이상하게도 항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 출신이었다. 원래도 유대인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민족으로 자타의 인정받았던 점을 생각하면, 당대 최강의 초인을 그들이 배출하는 것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 앞에서 메시아 행세를 하려면 위버멘쉬는 마땅히 유대 혈통이어야 개연성이 있겠지. 그래야 종말로 이어지는 예언이 순탄하게 성취될 테니까. 역시나 선택받은 민족답게 선역이든 악역이든 주연을 놓치지 않는구나.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세세한 부분에까지 작동한 걸까?’

   여하튼 무사히 화제를 돌리는 데 성공한 동생은 침울해진 형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했다. 자신의 실수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형, 상처받지 마세요. 언젠가 반드시 치유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형은 잘생기고 능력 좋고 육체적으로도 훌륭하잖아요. 물론 두뇌도요. 이미 지금도 충분히 남자답고 멋있다고요.”

   “작위적인 위로지만 그래도 고맙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요.”

   멋쩍어하는 동생의 머리를 형이 쓰다듬으며 헝클었다.

   “그래도 너라도 건강하니 다행이군. 염려를 조금 덜었어. 우리 아버지의 혈통이 우리 대에서 끊어질 일은 없을테니까.”

   “아니, 그런 쑥스러운 이유로 칭찬하시면 너무 당혹스러운데.”

   윤혁은 형이 던진 가벼운 블랙 코미디 식 농담에 쾌활하게 웃었다.

   ‘나름 그래도 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주는 건가.’

   아주 조금은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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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Chapter 33. finished 다음 챕터는 크리스마스의 별 (아마 생각하셨던 그것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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