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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7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4. 크리스마스의 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01 | 회차평점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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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난 1년 사이 타임필드 기술이 급상향된 데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요인으로는 블랙홀의 대량 확보가 있었다. 카이젤은 정복하는 은하마다 항성계, 행성, 성운의 개척 개조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상당수 권한을 이양했지만, 블랙홀만큼은 눈에 불을 켜고 집착적으로 남김없이 확보하였다. 본인이 직접 관찰하며 손수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들은 상당히 유용한 이차 보상들을 여럿 가져주었다.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을 거의 정복할 무렵에 블랙홀 샘플의 연구 덕에 100세대 워프 기술도 완성했다. 그 덕에 인근 다른 초은하단들까지도 마수를 금세 뻗칠 수 있었지.”

   “제가 형과 마지막에 봤던 것이 89세대 워프였던가? 맞죠?”

   “그래. 그때 비숍이 고생했었지.”

   ‘비숍, 아니 한즈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유달리 거칠고 투박했던 그 친구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이후 10개의 초은하단을 정복하면서 백만여 개의 은하가 확충되었다. 타임필드와 원거리 타임머신, 최신식 워프와 IDD 게이트, 이 중 하나라도 박자가 맞지 않았다면 이 같은 속도는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삐걱댔겠지.” 

   그 비상식적인 규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으으, 백만 개…….”

   일반인의 상상력으로는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 확보한 블랙홀 개수는 얼마나 되죠?”

   “백억 개 정도? 다 세보지는 않았어. 지금도 계속 확보하는 중이고.”

   여기서 카이젤이 말하는 블랙홀이란 항성이 죽음으로써 남겨진 중급 규모의 블랙홀만 포함이었다. 은하 중심부에 놓인 초대질량 블랙홀은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기에 제자리에 둘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급 블랙홀은 상대적으로 질량이 작았기에 IDD를 통해서 쉽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나포된 블랙홀들은 연구용으로 쓰일 때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한다. 카이젤은 이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상위 차원 영역을 인간의 의지로 제어하기 위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상당량 확충하였다.

   “그 블랙홀들로 무슨 실험을 할 수 있죠?”

   “보통은 외곽을 특수한 캡슐로 둘러싼 후에 ‘블랙홀 특이점(블랙홀의 질량이 압축된 중심)’ 부근의 물리법칙을 인위적으로 관측하거나 조작하지.”

   “그런 게 가능한 일이긴 하나요?”

   “상상하기 어렵겠지. 특이점 부근에서는 알다시피 물리학 법칙 자체가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해.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물리학 발전을 더 혁신적인 단계로 이끌기 위해서는 특이점 부근을 최대한 자세히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지. 파면 팔수록 무궁한 지식이 흘러나오는 샘물이니까.”

   물론 나포된 블랙홀들이 반드시 연구용으로만 소진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특수 구조물의 건설 과정에서 핵심부로 이용되었다. 이렇게 심장부에 블랙홀을 장착한 거대 인공천체들은 전투, 건설, 에너지 생산, 게이트 형성, 물질 생성, 물질 복제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역에 응용되었다.

   블랙홀 연구와 그 산물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윤혁의 눈은 점점 짙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도 공학도 출신인 만큼 이런 분야에 본능적으로 관심이 반응하였다. 특별히 형이 직접 전해주는 지식은 책이나 논문 따위로는 결코 접해볼 수 없는 고차원적인 영역에 달한 만큼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한 설명도 일색이었다.

   ‘티아라 씨의 교육 능력마저 흡수했다더니, 가르치는 것도 잘하시네.’

   과학에 대해서는 형에게 직접 배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동생더러 자기 밑에서 배워볼 생각 없느냐고 제안을 했었다. 그때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지만, 유대감이 형성된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실력이라면 누구보다도 믿을만하고 마침 심리적 거리감도 줄었으니 이런 기회를 놓치긴 아쉬웠다.

   ‘지독하리만큼 무겁고 불편한 운명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남들처럼 편하고 평범한 형제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이따금 만나 수다도 떨고 고민 상담도 하고, 함께 놀거나 다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형제 관계.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안일한 기대는 카이젤 라흐블뤼크와 강윤혁이라는 두 운명의 주역에게는 좀처럼 허락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는 편한 감정으로 서로 마주 대하고는 있으나 나중에는 언제든 적으로서 마주할지도 모를 사이였다. 어쩌면 평범함이야말로 이 형제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또 잡념에 빠지셨군.”

   카이젤은 고뇌하는 윤혁의 어깨에 팔을 얹고 가볍게 몸을 기댔다. 금강석과 강철을 연상케 하는 근육의 단단함이 압력을 통해 여실히 전달되었다. 살짝만 힘을 줘도 윤혁의 목 정도는 손쉽게 꺾을 수 있겠지만, 친절한 형은 세심하게 힘을 조절하여 동생이 아프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아, 죄송해요.”

   “나를 두고 다른 생각에 빠지다니, 서운하군.”

   힐난하는 어조라기보다는 정말로 아쉬움을 표하는 투였다.

   “그나저나 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

   그 말을 들은 윤혁은 한동안 잊고 살던 날짜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래.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이런 날은 잊기 곤란하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감상에 젖도록 허락된 특별한 의미의 날 아니겠는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죠.”

   “이번에는 친구들과 예배드리러 안 가나?”

   “당분간 친구들과도 접촉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다. 이제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와는 상황이 달라. 초인들의 시선에 죄다 네게 쏠려있거든. 이왕이면 그들을 방심하게 만드는 편이 낫겠지.”

   그러고 보니 리온은 일전에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면서 “크리스마스는 인류연합이 유일하게 자축하며 방심하는 날이다.”라는 식의 뉘앙스로 말했었다. 정작 리온은 그 이유를 몰랐으나 윤혁은 알았다. 그럴 수밖에. 인류연합 최고 수장의 탄신을 기념하는 날이니까.

‘그나저나 주목이라니, 하긴 그간 우리가 잔뜩 일을 벌여놨으니 초인들도 슬슬 주목할 수밖에 없겠지.’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으나 여전히 가볍지 않은 긴장감이 들었다.

   “그러면 내일은 여기 남을 생각인가?”

   “아마도 그렇겠죠.”

   형의 질문에 담긴 의도가 대충 윤혁도 짐작되었다.

   “잘 됐군. 작년과 재작년에는 아쉽게도 일 때문에 우리 둘이 함께할 수 없었지. 이번에는 가능하겠어. 마침 올해에는 나도 부하들을 불러 모으는 무익한 연회 따위는 안 할 생각이다.”

   “진짜요? 예물이라도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벼룩들한테서 뜯어낼 게 뭐가 있다고.”

   “하긴 그렇네요.”

   카이젤은 내일까지 이 섬에 눌러앉아 머물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일 하루 동안은 동생하고만 시간을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할지 부담스럽게 여겨야 할지, 윤혁으로서는 낯선 기분이었다.

   “괜찮겠나?” 

   “저야 좋죠.”

   “신께 예배드리기를 바랄 줄 알았는데?”

   “크리스마스나 주일만 예배의 날인가요? 숨이 붙어있는 한 인생 전체가 예배의 순간이에요. 주님은 매 순간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여기서도 얼마든지 예배는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하나님과 달리 사람은 덧없다. 특히 형은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결별의 가능성이 전제된 인연. 여기서 윤혁이 무관심하게 손을 놔버리면 다시 붙잡아줄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야말로 내 마지막 미션 필드.’

   윤혁에게 맡겨진 두 가지 부담. 하나는 우주 인류의 복음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형이 타락하지 않도록 회개의 길로 인도하는 일. 당분간 몇 년은 선교 여행에만 집중해야 하는 처지이니 두 번째 일을 신경 쓸 여유는 적다. 그렇기에 어렵게 만난 지금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아무튼, 고맙다.”

   동생의 심오한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은 쿨하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저도 나름 만족스럽긴 했는지 긍정적인 정서가 말투에 묻어났다. 그는 호감의 표현으로 동생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

 

 

 

 

   두 사람은 잠시 더위를 식히고자 시원한 물 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마침 배가 고파지려던 마당이라 곁에 준비해둔 과일도 주워 베어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포만감으로 회복된 둘은 다시 열중하여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유익한 내용이 많았기에 윤혁으로서는 한 마디라도 흘려듣거나 놓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은하와 은하를 묶어둘 수 있죠? 허블 공간 팽창이라는 물리적인 장애물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제가 워낙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흠, 예전에는 마냥 무관심하게 여기더니, 이젠 우주로의 확장 정복에도 조금 관심이 생긴 모양이군.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 모양이지? 고무적이야.”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이죠.”

   윤혁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여전히 그리 좋게 보지는 않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지구 시절에는 공간 포화를 막기 위한 ‘인구 감축’이 세계정부 정책의 주축이었던 반면, 우주 시대에 들어서자 정권의 목표는 ‘인구의 폭발적 증량’으로 패러다임이 뒤바뀌었다. 드러난 형태는 달라도 두 목표 모두 인간적 욕심과 야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사실 윤혁은 선교 여행 떠나기 전까지는 인류연합의 과도한 우주 정복과 인구 증가 정책을 매우 좋지 않은 눈으로 보았었다. 물론 지금도 썩 찬성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조금 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그 어떤 장황한 계획을 펼쳐도 결국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와 뜻은 그 알량한 계획들을 모두 초월한다는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나도 네 스승을 자처해도 되는 건가?”

   “편하신 대로 생각하세요.”

   “녀석도 참.”

   카이젤은 맹랑하게 구는 동생의 이마를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톡 짚었다.

   “손해 보는 셈 치고 속아주지.” 

   그는 본격적으로 장황한 서사를 시작했다.

   “상식 중의 상식이지만, 우리 은하를 포함해서 모든 은하계의 중심부에는 기본적으로 초대질량 블랙홀이 하나씩 존재하지.”

   “네.”

   “흥미로운 것은 누구도 그것의 형성 과정을 잘 몰라. 아마도 그 모습 그대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봐야 맞겠지. 별의 사멸 과정만으로는 도무지 그런 질량이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

   그 엄청난 질량과 중력으로 인한 시공간 왜곡 때문인지 초대질량 블랙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물리현상과 물리법칙은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미지의 영역이었다. 더욱이 그곳은 상위 차원의 세계인 ‘벌크’와 맞닿은 곳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본질적 특성의 상당한 부분이 장막 속에 감춰져 있었다.

   “이번에 역대 최고급 혁명에 해당하는 특이점을 이룩했다고 했었지?”

   “그렇게 말씀하셨죠.”

   슬슬 윤혁도 도대체 그게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테서렉트 아키텍쳐(Tesseract architecture).”

   카이젤은 낯선 단어를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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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공상과학적인 부분은 사실 대충봐도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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