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7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4. 크리스마스의 별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08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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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직은 설익은 풋열매인 탓에 온전한 전력을 내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조율 부족. 아직은 인피니티 모드 가동 시 불안정성이 예견됩니다.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안정화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시뮬레이션으로 대체.}
곧장 시뮬레이션 우주들 속에서 Quasar-I의 최종 단계 운용이 가동되었다. 아무리 가상의 실험이라도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감당해내기 힘들었는지 실험장 전역이 휘청였다.
{최종 점검 완료.}
이제 거둬진 수확이 농부에게로 회수될 차례.
{Quasar–I의 최종 권한을 3대째 위버멘쉬께 전적으로 귀속.}
{보조 권한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데아’, ‘코스믹 옵틱스’, ‘인비저블 마인드’. 상기 4기의 메이저급 초지능체를 지배하는 주체로 설정.}
인수인계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남은 일은 하나.
{양산체 생산을 위해 Quasar-I을 테서렉트 아키텍쳐 내로 전송.}
퀘이사 엔진은 텔레포트를 통해 상위 차원으로 전송되었다. 가만히 썩여두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힘인 만큼 최대한 시간을 아껴 활용도를 높여야 했다. 영속적 힘들을 확대재생산하여 장기적인 수확률을 극대화하려는 계획. 이 모든 계략은 처음부터 주인에 의해 기획된 것들이었다.
한편 시스템은 미리 약속했던 대로 보조 책임자에게 데이터를 송신했다. 지금까지는 초인들 모두에게 숨겨두었으나 완제품까지 만들어져 인계까지 완료된 지금은 더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최종 보고?”
은하계 외곽에 파견 나가 대기 중이던 특수 비서관 레반 싱클레어는 갑자기 인공지능 시스템과 서버들이 전송한 데이터를 받고는 서둘러 신속히 해독을 시작했다. 퀘이사 프로젝트는 카이젤이 단독으로 시행하던 특수 프로젝트라서 최측근 비서인 레반마저도 세부 내용은 아는 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마도 카이젤 이외의 초인 중에서는 그가 최초의 확인자이리라.
“이건…….”
늘 담담했던 레반의 표정이 공포감과 경외감으로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진정한 우주적 공포를 마주하자 욕설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상식 밖의 일을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껏 그 많은 기적 같은 위업들을 보고도 오늘만큼 놀라지는 못했었다.
“퀘이사? 일개 인간이 그 힘을 다룬다고?”
순간 완전한 거짓말 내지는 사기극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모든 증거가 명료했다. 퀘이사 엔진은 실존했다. 그것도 가장 이상적인 이론적 형태 그 이상의 모습으로. 단순히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출력을 원본보다도 비약적으로 증폭시켰고, 더 나아가 원본 퀘이사마저도 소유하지 못했던 준-영속성까지 획득했다.
“대표님께서는……, 대체 무엇이 되실 작정이시지?”
위버멘쉬와 나머지 초인들의 격차가 그새 너무도 극명하게 벌어져 버렸음이 실감 났다. 전에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단순한 지력(智力)의 차원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물리적 능력에서도 왕과 신하들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 이상으로 벌어졌다. 어쩌면 그는 이제 다른 초인들을 개미만도 못한 존재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끝내기 무섭게 카이젤의 텔레파시가 레반의 뇌리를 강타했다.
“레반, 프로젝트의 점검 및 기록을 맡긴다.”
“대표님, 확인했습니다. 드디어 프로젝트가 성공했습니다.”
레반은 가까스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보고하였다.
“그렇군, 실패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네? 시작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야. Quasar–I의 원본을 주물 틀에 넣었다. 곧 복제 프로세스에 돌입할 예정이다. 원본을 써서 1차 복제형 퀘이사를 양산하고, 그 이후에는 1차를 다시금 복제해서 2차 복제형도 생산한다. 이미 생산 설비는 모두 준비되었으니 너는 제때 기록만 정리하면서 관찰을 하면 된다.”
한 차원 증강된 공포로 인해 초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저 괴물 엔진을 양산한다고? 물리적으로, 아니 논리적으로 가능키나 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설비가 다 갖춰졌다니, 도대체 그런 걸 언제 제작했단 말인가. 상식을 깨부순 선언들에 현실감이 증발하였다.
‘우리는 이미 존재의의를 상실한 게 아닐까?’
그러나 레반은 비서답게 침착하게 자신의 상관이 그려내는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큰 그림에 관해 어렴풋이 추측했다. 정말로 퀘이사 엔진이 복제되어 양산형 퀘이사 엔진들이 만들어진다면 곧 인류는 그 거대한 힘을 바탕으로 우주 곳곳으로 진출해 정복 사업과 문명 건설을 전속 개시하리라.
‘영광스러운 미래인가?’
필연적으로 수효와 성장 속도가 제한적인 초인들이 그 확대된 제국에서 차지할 비중은 감소 곡선을 이룰 것이 자명했다.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위버멘쉬 한 명이 시스템 그 자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한 집단도 불가능하거늘 한 개인이 어찌 가능하겠느냐고 모순점을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레반은 잘 알았다. 카이젤이라는 인간과 나머지 인간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그 차이는 단순히 능력이나 지혜의 양적 격차에 있지 않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는 우주 속에 기계 계열 존재가 추가로 창조될 때마다 그에 발맞춰서 자체적으로 총 역량이 진화하는 속성이 있다. 즉 그것과 일체화된 보스의 정신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존재하는 모든 인공지능의 전체 합을 능가할 수 있다. 즉 그분 혼자서 모든 판단과 집행을 수행하고도 남아.’
더욱이 그에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뿐 아니라 이데아까지 있다. 게다가 다른 초인들과는 달리 그는 임의의 초지능체와 자기 자신의 정신을 100%의 호환으로 융합시킬 수도 있는 자. 실제로 이미 그는 스스로 기계 신과 이데아, 그 두 가지 중추와 혼연일체를 이룬 상태였다. 그런 존재라면 우주로 무한히 확장되는 인류의 문명을 독재적으로 경영하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크리스마스의 별, 퀘이사 엔진까지 그의 무기가 되었다. 과거 지구 시대에는 핵무기 하나만으로도 독재 정권이 유지된 사례가 있었거늘, 퀘이사를 초월한 물리력이라면 어떻겠는가.
“이것 참 난감하군.”
비서는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
그 시각, 퀘이사 프로젝트의 충격적 전말에 관해 공개한 전보를 전해 들은 초인은 레반 비서관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부대표인 에녹 아담즈 역시 소식을 받았으며 그것과 관련해 새로운 임무까지 전달받았다. 그는 서둘러 비밀 요새에 장소를 마련하여 극비 미팅을 잡았다. 몇 명의 초인들이 그 거처에 소집되었다.
“들어오시죠.”
에녹은 텔레포트를 통해 실내로 들어온 네 방문자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평상시에는 오프라인상에서 볼일이 그리 많지 않은 상대들이었다. 먼저 붉은 불꽃 눈을 지닌 제1 철인왕인 칼리드, 흑발의 차가운 미남이 앞장서서 걸어왔다. 그 뒤로 화사한 금발을 자랑하는 푸른 격자무늬 눈동자의 소유자인 제4 철인왕, 인류연합의 조커인 진이 따라왔다.
그들 뒤로는 금빛이 섞인 검붉은 머리칼과 붉은 소용돌이가 포함된 녹색 동공이 돋보이는 제2 철인왕이자 총사령관인 에르샤가 입장했다. 끝으로 보랏빛 포니테일 머리에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형상을 띤 눈을 지닌 제5 철인왕, 유리스까지 걸어들어왔다.
칼리드와 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살짝 흘겨보았다. 둘 사이에서는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선명했다. 유리스는 “쟤들은 왜 또 저러고 난리래”라며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혀를 찼지만, 에르샤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에녹 쪽만 바라보았다.
“부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에르샤는 서론 없이 본론을 향해 직접 다가갔다. 다소 직설적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였으나 에녹도 냉철하게 받아쳤다.
“지금부터 나누는 이야기는 극비라고 판단하십시오. 위버멘쉬께서는 당분간 비밀 유지를 위해 여러분에게 제약을 걸 권한을 내게 빌려주었습니다.”
즉각 네 철인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하지만 에녹은 그들의 위세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에녹은 일단 상관이 명령을 하사하면 어떤 자의적인 가감이나 주관적인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여러분의 선택권은 없습니다. 당신들 아버지의 명령이니까요.”
“본론을 말씀해주시죠, 미스터 아담즈.”
진이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퀘이사.”
에녹의 심상치 않은 말에 정적이 흐르며 긴장감이 철인왕들을 잠식했다. 심지어 그 냉철하고 위세 등등했던 칼리드마저도 익숙하면서도 시의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압도감을 느꼈다.
“위버멘쉬의 우주 운영 계획이 본격적으로 다음 페이즈로 접어들었습니다. 바로 오늘, 퀘이사 엔진이 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버멘쉬께서는 그것을 복제해 1차 복제형 엔진을 생산하실 계획입니다. 이달 말부터는 2차 복제형 엔진도 생성되겠군요.”
에녹은 실질적인 증빙과 공지를 위해 자세한 데이터를 선보였다. 프로젝트의 위용에 철인왕들은 상당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자리에서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에녹 한 명뿐이었다.
“아버지께서 엄청난 기행을 벌이셨군.”
떨리는 목소리로 유리스가 말했다.
“진, 너는 모르던 일인가? 기술 쪽은 네 담당인데?”
“나도 모르던 일이야. 이런 게 가능할 줄도 몰랐고.”
칼리드의 추궁에 진이 나지막이 변명했다. 확실히 진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가 몰랐던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철인왕들의 아버지는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남과 비밀을 공유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처리하는 스타일이니까. 그 사실을 잘 알았던 그들이었으나 이번 일로 자신들의 존재의의가 희미해졌음을 어렴풋이 느낀 탓인지 적잖이 위축되었다.
“그런데 복제라니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에르샤가 다시금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 설계도와 이론대로라면 퀘이사 엔진은 자체적으로 임계 이상의 에너지 압축률을 유지해야만 존재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원형 퀘이사를 소모해서 만든 본체 엔진이나 되니까 그 조건이 유지되지, 복제형을 만든다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에너지 압축률 때문에 반-영구동력원이 되지 못한 채 폭발합니다.”
맹렬한 지적에 에녹은 설명이 곤란한지 말끝을 흐렸다.
“추가로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겠군요. 말씀 주신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이미 존재합니다. 사실 저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위버멘쉬는 초차원 구조물의 건설법을 이미 제법 오래전에 확립했습니다. 은하 중심 블랙홀 내부에 구조물들을 지으셨습니다.”
한 번 더 침묵의 파장이 일었다.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유리스가 허탄히 중얼거렸다. 사실 식민지 주민에게 과학 기술을 마법처럼 위장해 팔아먹었던 철인왕들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처지가 바뀌어 본인들이 자신들의 왕에게 농락당하는 상황이 되어보니 참으로 난감했다.
“여하튼 현실은 현실입니다. 위버멘쉬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그간 정복해놓은 은하들의 중심 블랙홀을 주축으로 상위 차원으로 뻗어나가는 건축물들을 세웠습니다. 그 덕에 기술력 수준을 단기간에 수천 년 이상 앞당기게 되었죠.”
맞춰지지 않던 퍼즐이 맞춰지자 비로소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그 산업 혁명의 첫 번째 열매가 바로…….”
“네, 이번 퀘이사 프로젝트입니다. 게다가 퀘이사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복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설립된 계획이었죠. 이미 위버멘쉬께서는 이중 삼중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여러 도박을 기획하고 계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분께는 도박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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