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7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5. 강재혁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13 | 회차평점 0 0

 

 

 

 

 

 

 

Chapter 35. 강재혁

 

 

 

 

 

 

 

   전능자의 옥좌 앞으로 참소자가 공포를 무릅쓴채 나아갔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계를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네 가증한 발을 이곳에 디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보좌에 앉은 자가 그를 위압감으로 심문하였다.

   [내가 너를 책망하노라(슥 3:2, i).]

   참소하는 비방자가 반문하였다.

   <<어찌하여 당신은 내 소유물을 거듭하여 빼앗으시나이까.>>

   [교만한 인간의 왕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제 최강의 검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단 9:27, i) 세워질 때가 아직은 이르지 아니하였다.]

   <<언제든 도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방해만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네가 무언가를 네 소유물이라 주장하느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은 모두 내 소유임을 잊었느냐?. 심지어 너와 네 운명과 네 목숨마저도 내 소유권 속에 종속되어 있느니라.]

   참소자는 좁혀지지 않는 무한대의 위압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담대함은 없었다. 한 영역에 존재하는 것조차도 용서받지 못할 불순물은 그저 자비에 기대 기다릴 뿐이었다. 절대자는 잠깐의 침묵을 깨트리고 다시 선언했다.

   [나는 네 행위대로 갚아주었을 뿐이니라.]

   <<설마 그때의 일, 열둘 중 하나를 취한 일 때문입니까?>>

   [그렇다. 네가 내가 세웠던 열두 명의 제자 중 하나를 넘어뜨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멸망에 이르게 했으니(요 13:27) 나 또한 네가 세우려는 자들을 내 손으로 빼앗으리라.]

   고발자는 현재 직면한 ‘위격’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움찔했다.

   <<잘못된 전제입니다. 가룟 유다는 애초부터 당신께 속하였던 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의 가라지 같은 거짓된 마음에 유혹을 부추겨 넣었을 뿐입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일부러 악역으로 택했던 것 아닙니까?>>

   그 항변에는 신을 향한 은근한 비방이 섞여있었다.

   [인간의 왕은 아직 네게 영혼을 팔지 않았고 내게는 너에게서 그것을 뺏을 권한이 있다. 그에게는 아직 육신의 생명이 남아있고 돌아올 기회가 충분하니라.]

   다시금 참소자는 비열한 두뇌를 애써 굴렸다.

   <<그런 이유로 전대 왕과 전전대 왕을 빼앗으신 겁니까? 언제까지고 그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당신께서는 직접 하계에 강림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전능한 아들이시여.>>

   물론 이것은 거짓의 아비다운 허풍. 참소자는 그 시점이 앞당겨지기를 원치 않았다. 오히려 예언을 망가뜨리거나 최소한 흠집을 내어 어떻게든 전능자의 계획이 일그러지기를 원했다. 지금의 도발도 그저 조금이라도 변수를 만들기 위해 도발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나 곧 내가 내 이름으로 맹세하여 반포하되, 나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나는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벧후 3:9).]

   보좌에서 시작된 거룩한 진동이 셋째 하늘 전체를 흔들었다.

   [또한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i) 피조물이여, 네가 뉘기에 감히 나를 힐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이렇게 하였느냐’ 라고 말하겠느냐?(롬 9:20, i)]

   <<하하하.>>

   어처구니없는 허탈함에 악마는 공포에 눌린 상태로 실소하였다. 뭔가 새로운 답변이라도 바랐거늘 한결같이 이런 응답뿐이란 말인가. 만물보다도 거대한 마음에서 나온 너무도 곧고 단순하고 교묘함 없는 정직한 고백 앞에 역설적인 허탈감이 들었다. 한 치 앞조차 모르는 것이 피조물의 마음이거늘, 만유를 벌거벗은 듯 꿰뚫는 존재의 마음은 어찌 이리도 쉬이 계시된단 말인가. 어린아이조차도 손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제 검에 사슬을 채우신 의도가 고작 그런 까닭입니까?>>

   [사슬이라. 네가 나의 종인 그 아이들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지금 지면에 남아있는 자 중 그들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i). 네가 까닭 없이 쳐서 여러 차례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으나(욥 2:3, i) 내가 그 행동을 허락지 아니하였다.]

   이에 태초의 거짓말쟁이는 이를 갈았다.

   <<그들은 단지 운이 좋아서 당신을 섬기게 되었을 뿐입니다.>>

   [운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느니라.]

   모든 것은 필연. 이곳 절대 차원에서 이 진리를 모르는 영은 없었다. 거짓말쟁이의 얼토당토 않는 주장은 모두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한 비겁한 변명이었다.

   [그들이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먼저 그들을 알고 그들을 택했기에 그들의 공로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들은 영원토록 나의 것이다. 너는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지 못하며 그들을 향한 내 계획을 꺾지도 못한다.]

   다시금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어서 나가서 속히 네 일을 하거라.]

   과거 만찬 때 그 명령에 지배당했던 악마는 움찔하였다.

   <<부디 그 잘난 종들을 잘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참소자는 크게 분을 터뜨리며 절대자의 면전에서 물러갔다. 그는 거대한 증오심을 마음속으로 삭혔다. 어떻게 해서든 그 빌어먹을 방해물들을 제거했어야 했거늘. 미리 제거하지 못한 게 그에게는 천추의 한이었다. 꾸물거리다 일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후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억제자와 그 동지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너뜨려 주마.>>

   그의 격진 담긴 적의가 무수한 둘째 하늘들로 방사되었다.

 

 

 

 

 

 

 

 

*

 

 

 

 

   오랜만에 친구의 안부를 확인할 겸 리온은 섬에 발을 디뎠다.

   “그 친구 혼자 지내느라 심심했겠지.”

   그간 이곳에 윤혁이 머무르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고 푹 쉬도록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재충전이 좋아도 너무 오랫동안 홀로 거하는 편은 도리어 정신 건강에 유익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리온은 친구를 방문하되 다른 사람들은 제쳐두고 일부러 혼자서만 나섰다. 그리고 날짜도 기쁨의 분위기가 고양된 좋은 날에 찾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택했다. 이런 시즌은 본래 순수한 축하와 예배의 때이니 윤혁도 일에 대한 부담을 회상치는 않겠지.

   “후끈거리네.”

   출발 시에는 눈 내리던 날씨였는데 섬에 도착하니 여름이었다. 몇 달 동안 북반구의 차가운 기후에 적응하고 있던 바람에 리온에게는 이 섬의 무더위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윤혁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섬의 경치는 매우 근사했다. 보통 같았으면 관광지나 휴양지로 쓰이기 적격인 곳인데 사유지로 지정되는 바람에 출입이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위치 추적을 막는 결계까지 쳐진 상태였다. 지금 리온도 어렵게 입장 허가를 받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나마도 섬 거주자인 윤혁을 만나려는 정식 목적이 아니었으면 아예 접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섬에는 전반적으로 인간 삶의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기껏해야 정자와 테라스, 정원, 오두막집, 별장 하나 정도였다. 섬의 면적도 좁았다. 지형도 그리 험준하지 않았고 낮은 산지 일부에 나머지는 평지가 대부분이었다. 전체를 다 둘러보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도상에서 가옥의 위치를 살펴본 뒤 리온은 금세 친구의 위치를 추정해냈다. 과연 찾아가 보니 근사한 별장 하나와 그 앞에는 펼쳐진 정자가 한 채 있었다.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구나.”

   윤혁을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음을 드러나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축복받은 섬은 그야말로 쉬면서 심신을 회복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리온은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마주할 생각에 들떴다.

   문을 두드려보았다. 그러나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저기 테라스에서 쉬고 있으려나.”

   아니나 다를까 야외형 정자 앞쪽에는 신발이 놓여있었다. 리온은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커다란 정자는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있었다. 구획의 경계마다 반투명한 커튼이 펼쳐져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시선 차단과 더불어 실내 환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윤혁? 안에 있어?”

   리온은 혹시 친구가 자고 있을까 하여 목소리를 작게 내었다. 그는 커튼을 살짝 들춰 기척을 확인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커튼에 가려진 탓에 테라스 안쪽은 살짝 어두웠다. 옷가지와 생활 물품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리온은 어두운 실내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윤혁을 발견했다. 과연 그는 편하기 그지없는 자태로 몸을 대자로 뻗은 채 잠들어있었다.

   “녀석도 참.”

   섬의 아열대 기후가 워낙 더워서 그런지 그는 트렁크 한 장만 걸친 차림으로 누워있었다. 현장에서는 늘 용맹했던 친구가 허술한 모습을 보이며 무방비하게 쉬는 광경을 보니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고 감회도 새로웠다.

   그런데 문득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 리온의 눈에 들어왔다.

   “음?”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

   ‘뭐지?’

   커튼으로 가려져 그늘진 쪽의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 있는 터라 실루엣만 살짝 드러난 정도였으나 분명 누군가가 한 명 더 있었다. 척 보기에도 체격이 상당한 것이 건장한 성인 남성 같았다. 그자는 윤혁이 누운 곳 근처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로 잠들어있었다.

   섬칫.

   희미한 실루엣만으로도 맹수 같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선명히 전달되었다. 호랑이 앞에 선 행인처럼 순간적으로 당황한 리온은 반사적으로 커튼을 닫은 뒤 재빨리 정자 바깥으로 나왔다.

   ‘대체 누구지?’

   그렇게 리온이 잠시 침묵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그때, 손님의 기척을 느낀 윤혁이 눈을 비비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자다 막 일어나 햇살이 눈 부신지 눈을 찡그리던 그는 한참 후에야 손님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랐다.

   “어……, 네가 왜?”

   “반가워. 메리 크리스마스.”

   리온은 애써 방금 본 낯선 남자의 형상은 의식 위에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이곳에 찾아온 본 목적은 어디까지나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었으니까. 구태여 불편감을 직면하고 싶진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도피를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우와, 리온.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고작 두 달 갖고 뭘.”

   “그새 일은 잘되고 있고? 못 도와줘서 미안하네.”

   “혹시라도 당부하는데 당분간은 일할 생각하지 마라.”

   “칫.”

   리온은 엄중하고 단호하게 당장은 쉼에만 집중할 것을 강요했다. 윤혁은 아쉬운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참 후에야 윤혁은 어색함을 느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옷차림이 손님을 맞기에 몹시 부적절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야말로 바캉스를 즐기는 피서객의 수영복 차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 미안. 정말 미안하다. 너 올 줄 모르고 있어서.”

   “더운데 뭘. 그냥 편한 대로 있어. 여긴 휴양지잖아.”

   “여기 혼자 있다 보니 편하게 입는 게 습관이 돼 버렸네.”

   윤혁은 모처럼 손님으로 찾아온 절친을 후히 대접하기 위해 창고에 둔 열대 과일 몇 개를 꺼내서 깎기 시작했다. 리온도 친구에게 먹이려고 준비해온 간식들을 꺼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둘은 오래간만의 재회로 인한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해보고자 애썼다.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깊고 달콤하고 편안한 잠에서 깨어나서인지 아직 정신이 몽롱한 윤혁은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음에도 그 이유를 몰랐다. 리온도 무의식 속으로 종전의 잔상을 밀어내려고 애쓴 탓인지 미묘한 불편감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무언가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윤혁은 기억을 번쩍 떠올렸다.

   ‘아, 맞다. 지금 난 혼자 지내던 게 아니었지.’

   몇 주간 혼자만 지내다 보니 어제의 방문객을 잊고 있었다.

   그때.

   “너무 일찍 깬 거 아닌가. 좀 더 잘 것이지.”

   커다란 몸의 남자가 느릿느릿 커튼을 걷고 나왔다. 그는 짧게 하품하면서 입가를 가렸다. 드로즈 한 장만 걸친 채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을 푸는 자태는 참 허술하기 그지없었으나 정작 본신의 외모나 분위기는 허술함과는 정반대로 소름 끼칠 만큼 우아하고 완벽했다. 낮잠 자던 고양잇과 맹수가 느른한 몸을 일으켜 어슬렁거리는 모양새가 연상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땅에서 등따숩게 쉬는 동안 영계에서는 저런 무시무시한 일들이.....
이전회

27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4. 크리스마스의 별 (6)
등록일 2024-01-10 | 조회수 108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27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5. 강재혁 (2)
등록일 2024-01-15 | 조회수 104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