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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7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5. 강재혁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1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뜻하지 않은 대면의 순간.

   “응?”

   카이젤은 낯선 손님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 윤혁아?”

   타인의 존재를 알아차린 리온과 카이젤은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리온은 긴장감으로 얼어붙었고 카이젤의 호기심 어린 눈에는 이채가 어렸다. 체격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토끼가 호랑이 앞에 선 격이었다. 윤혁은 곤란한 심정이 되어 머리를 짚었다. 하필이면 해명하기 곤란하게 왜 지금이란 말인가. 이왕이면 좀 더 준비된 자리에서 만났으면 했거늘.

   ‘아, 오히려 그쪽이 더 안 좋으려나?’

   차라리 지금처럼 허술한 상태의 형이 위압감이 덜할지도 모르지.

   “리온,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이분이 바로 전에 말했던…….”

   “넌 누구지?”

   윤혁의 말을 끊으며 카이젤이 리온에게 대뜸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동네 아저씨만큼이나 헐렁한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몸 자체가 위엄과 위압감으로 응축된 극한의 집결체인지라 리온은 공포감과 외경심에 몸이 뻣뻣해졌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두려움을 겨우 억누르고 상대에게 용기 내 대답했다.

   “저는……, 윤혁의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말하는 와중에도 입술은 미묘하게 떨려왔다.

   “이름은 리온 마흐무드, 국적은 사하라 연합, 구 이집트 출신입니다.”

   “아, 네가 그 선교사였던가? 동생을 부추겼다던. 그래, 그랬군.”

   자신을 이미 훤히 아는듯한 태도에 리온은 더 긴장했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굴까? 상대에게 소개를 강요하되 자신은 소개하지 않는 당당함. 그만큼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밴 존재라는 뜻이리라. 여러 가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그나저나 이 와중에도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밟혔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화려한 외모를 갖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눈앞의 남자는 심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잘생긴 미남이었다. 의식을 안 하려 노력해도 그 사실이 지나칠 정도로 그를 신경 쓰이게 했다. 지금껏 리온이 만나온 사람 중 가장 탁월한 외모의 소유자는 티아라였다. 성녀의 외적 아름다움은 현실감을 잃게 할 정도였기에 리온은 늘 그녀를 인외의 존재처럼 취급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사내는 그녀보다도 더 탁월했다. 더욱이 그녀와는 다른 종류의 짙은 남성미가 압도적이었다. 수영복에 가까운 차림 탓에 훤히 드러난 근육질 육체는 가히 신화 속 위대한 남신을 연상케 했다.

   ‘윤혁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대략 그의 천 배쯤 되는 외모네.’

   비교 대상을 굳이 윤혁으로 잡은 이유는 그와 가까운 사람 중 대표적인 훈남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리온의 외양은 지극히 보통 수준이었다. 다른 선교팀 동료들도 대부분 외적인 미모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이들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동료 중 잘생긴 사람이라면 윤혁 정도였다. 확실히 그는 선교팀 가운데서는 눈에 잘 띄는 편이었다. 실제로 그 때문에 그에게 무의식적인 호감을 느끼던 자매들도 꽤 있었던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윤혁이 비교 대상으로 떠오른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사람은 뭐길래 윤혁을 닮았지?’

   미묘하게 닮았다. 외양의 탁월함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라 전반적인 베이스에서 공통분모가 느껴졌다. 정작 사내가 내뿜는 아우라는 윤혁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느낌인데도 그러했다.

   “뭐, 아무튼 반갑군.”

   카이젤이 느긋한 표정으로 리온에게 인사했다.

   “저기, 리온, 이분이 누구냐면…….”

   “난 여기 이 강윤혁 군과 한 피를 나눈 형제다.”

   사내가 윤혁의 변명을 가로채 선언하자 순간 리온과 윤혁은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밝히다니. 인류연합 지도자를 일반인이 만나서 좋을 일이 없을 텐데. 윤혁은 당황하여 우물쭈물 친구의 눈치를 보았고 리온은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러니까……, 이분은 내 형님이신데 성함이…….”

   바로 그때 카이젤이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가로챘다.

   “강재혁.”

   그러자 다시금 윤혁은 움찔하였다.

   “내 이름은 강재혁이다.”

   윤혁조차도 처음 듣는, 그러나 친근한 이름이었다,

   “만나서 영광이군, 리온 마흐무드 군.”

   영원에 가까운 느낌의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형과 친구 사이에 끼인 윤혁은 곤란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시의 부적절한 장소와 시간에 운명적인 만남이 기습적으로 엄습했단 말인가.

 

 

 

 

 

 

 

 

*

 

 

 

 

   재혁, 아니 카이젤이 잠깐 취침 중 흘린 땀을 씻기 위해 근처 계곡으로 목욕하러 내려간 사이에 윤혁과 리온은 수습의 시간을 가졌다. 둘은 간단히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하여 해명의 시간을 나누었다.

   “형님이 오셨다고는 못 들었는데.”

   “어제 갑자기 불쑥 찾아오셨어. 오늘이 형 생일이라서.”

   “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막연히 너랑은 몹시 나쁜 사이일 거라고만 예상했는데, 전혀 다르네. 생각보다 다정하잖아? 인생관의 충돌과 가족으로서의 개인적 친분은 다른 문제인가 보네.”

   “그야 그렇지.”

   이것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으로 애매했다.

   “윤혁, 혹시 너한테 다른 형제는 없는 거지? 한 명뿐인 것 맞지?”

   리온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코자 확증의 질문을 던졌다.

   “……응.”

   망설이던 윤혁은 취조자 앞에서 솔직하게 실토했다.

   “그 말은 역시 저 사람, 아니 저분이 문제의 그 인류연합 수장이라는 뜻이네.”

   “그, 그게……, 그래, 부정하지는 않을게.”

   하필 최악의 상대끼리 마주치게 한 꼴이 되었다. 리온은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윤혁은 몹시 송구한 심정이 되었다. 고위직의 인간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거늘 동료에게 무슨 막대한 짐을 얹어줬단 말인가.

   “내 실수야. 미안하다.”

   “아냐, 미안할 게 뭐 있어. 네가 네 형과 같이 지내는 건데, 당연히 네 자유지.”

   그래도 괜한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첫인상은 어때 보여?”

   조심스레 윤혁이 질문했다.

   “형님 분, 강재혁 대표님 말이야?”

   리온도 그 사내가 스스로 소개한 이름이 본명은 아님은 짐작하고는 있었다. 애초에 강재혁이란 남자는 윤혁과는 달리 동양인과 서양인을 비롯해 여러 민족이 총체적으로 혼합된 혼혈인 게 이목구비에 훤히 드러나있었다. 저번에 뵌 윤혁의 아버지인 성한과 제법 닮긴 했으나 전반적인 느낌은 상이했고 결정적으로 눈동자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심히 이질적이었다. 괴이하다기보다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방향으로. 아마 진정한 이름과 정체성은 따로 있겠지.

   “첫 인상만 봐서는 모르겠어. 인품이나 됨됨이는……, 도저히 가늠이나 짐작이 안 되네.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당장은 과도하게 잘생긴 미남이라는 사실만 알겠어.”

   “하하,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긴 하지.”

   “어렴풋이 느낀 바로는 발톱을 억누른 맹수가 웅크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

   역시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 리온다웠다.

   “네 형, 만만치 않은 사람이겠지?”

   “위험한 분이야. 되도록 너와 마주치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가면갈수록 윤혁은 은근한 후회감이 들었다. 만약 리온이 형의 위험성을 알아차린다면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대적할까 아니면 설득하려 할까. 공의에 무게를 둘지 사랑에 무게를 둘지 가늠이 안 되었다.

   그때 세신을 막 마친 재혁이 돌아왔다.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군.”

   반바지를 입긴 했는데 여전히 웃통은 시원하게 벗은 차림이었다. 낯선 이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당당함이 참으로 대단했다. 육체가 지나치게 탁월하면 저렇게 당당해지는 건가? 재혁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거리낌없이 동생들 옆에 당당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를 지목하셨습니까?”

   리온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 윤혁아, 넌 잠시 비켜다오.”

   윤혁은 마지못해 둘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심히 염려되었다. 부디 아무 일 없어야만 할 텐데. 동생이 밖으로 나가 자리를 비키자 재혁은 리온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앉았다. 영락없이 먹잇감을 어떻게 해야 맛있게 요리할지 느긋하게 고민하는 맹수의 자태였다.

   “저기……, 강재혁 대표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내 신분에 대해서는 이미 동생에게 들은 모양이군. 편한 대로 해.”

   “네.”

   마른 침이 목 뒤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목 부근에 상처가 있군.”

   일전에 북아프리카 선교지에서 핍박을 받아서 생긴 상처. 느닷없는 재혁의 지적에 리온은 자신의 왼쪽 뒷덜미를 살짝 더듬어보았다. 총에 화상 입은 기억이 떠오르자 불편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등까지 흉터가 길게 이어졌군.”

   옷 너머를 꿰뚫어 보다니. 투시라도 사용하는 건가? 리온은 주춤했다. 분명 무방비하게 헐벗은 차림인 자는 재혁이건만 자신이 그 앞에 훤히 벌거벗겨져 전시된 듯한 착각이 들어 옴싹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벨의 표식?”

   가뜩이나 깊었던 당혹감이 더더욱 짙어졌다.

   ‘독심술?’

   대체 저 사람의 정체가 뭐지?

   “너는 그 상처를 영광스럽게 여기는군.”

   “말씀하시고 싶으신 바가 무엇입니까?”

   “내게도 몸에 난 상처가 있어서 공감이 들었다. 너와는 달리 영광의 상처가 아닌 수치스러운 흉터이지만.”

   만일 리온의 비유 방식을 적용한다면 재혁의 흉터는 카인의 표식이 된다. 인간과 인간의 죄악된 관계들이 응축되어 점철된, 하나님 보시기에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처. 이러한 상세한 사정을 리온이 알 리는 없었으나 재혁은 이 청년의 사고방식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상해에 대해서는 이미 일곱 배로 갚아주었지.”

   성경에 기록된 실제 ‘카인의 표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과거 재혁에게 상처를 입혔던 자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일곱 배의 보상을 내주게 되었다. 정황을 모르던 리온은 그의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

   ‘상처라고? 지금 보이는 몸 위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짧은 반바지 한 장 외에는 아무것도 가리는 것이 없는지라 그의 신체 어딘가에 흉터가 있다면 당장 드러났을 터인데. 혹시 환각 같은 것으로 가린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오늘날의 생체 기술로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가 있다고?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건가? 의문이 맴돌았다.

   “서비스를 베풀어주지.”

   재혁은 손을 뻗어 리온의 흉터 쪽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그는 잠시 등 쪽에 난 상처도 확인해보겠다며 리온의 상의를 소립자 단위로 해체하였다. 나노 슈트가 아닌데도 옷은 염동력에라도 걸린 듯 자연스레 분해되었다. 이내 재혁의 손가락이 넓게 난 리온의 흉터와 맞닿았다. 곧 격렬한 통증과 열감이 발생했다.

   “크윽!”

   “조금만 참아라, 꼬마야.”

   재혁은 몇 초 후 손을 뗐다. 그 큰 손이 떨어지자마자 황급히 리온은 흉터 쪽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흉터는 흔적도 제거된 상태였다. 외관상만 고쳐진 것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온전한 완벽한 정상 피부로 덮여있다.

   “대체 뭘 어떻게 하셨길래?”

   “피코머신을 이용한 생체 조직 복구 기술일 뿐이야.”

   카이젤에게는 짓궂은 버릇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그들이 고귀하게 여기는 장면을 연출해 희롱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신적인 기적을 과학 기술력으로 모방 연출함으로써 말이다. 지금처럼 손을 안수함으로써 상한 부위를 고치는 일도 복음서의 신성한 치유 역사를 대놓고 본뜬 일이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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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젠 좀 더 친근한 이름으로 불러줄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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