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7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5. 강재혁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2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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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했다. 저 꼬마는 초인이 아닌 일반인이라 그날의 비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텐데. 더욱이 우주 식민지 인류가 과거 그를 해쳤던 범죄자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극소수의 부관을 제외하면 간부들조차 모르는 비밀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어째 그 비밀을 아는 듯한 뉘앙스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을까.
‘비밀을 알 리는 없고, 누군가가 그의 정신을 이끄는 건가?’
리온의 내면에는 그를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권능이 움직이고 있었다. 재혁은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인간의 능력으로 인지하기에는 너무도 높은 차원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무후무한 천재답게 그는 어렴풋이나마 짙은 영적 위화감을 직감하였다.
“너를 너무 얕봤군. 인정하지. 넌 내가 봤던 상대 중에서 기이하기로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친구로군. 좀 더 시험해봐도 되겠어.”
지금껏 몸을 기울인 채 삐딱하게 앉아있던 재혁이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건장한 상체를 꼿꼿하게 일으켜 세웠다. 대번 리온을 압도하는 커다란 신장과 기골이 적나라하게 위세를 드러났다. 왜소한 체구의 리온과 대비되는 완전한 피지컬의 위엄. 순식간에 청년은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진정한 시험은 신체적 위압감이 아니었다.
쿠르르르릉.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좌불안석하며 대기하던 윤혁도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인공적인 기후 조작이었다. 별을 개조하고 지구를 통째로 제로원으로 개조한 사람이니 저런 정신 나간 일을 벌여도 이상하진 않겠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형! 그만둬요!”
그러나 윤혁이 외치는 소리는 천둥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곧 하늘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번개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자연적인 전기 현상이 아닌 순수한 인공적 위협이었다. 한줄기 한줄기가 보통 벼락의 수억 배 이상 위력인데 그런 번개가 빗줄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더 놀랍게도 번개가 의지라도 지닌 듯 땅은 내려치지 않고 그 위만 아슬아슬하게 웃돌았다. 번개는 땅과 인접한 공중에서 무한의 순환을 일으켰다. 마치 입자가속기가 작동하기라도 하듯.
“편하게 이야기해도 좋아.”
섬뜩한 섬광들의 향연 속에서 재혁은 근육질의 상체를 꼿꼿이 편 채 리온을 향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도발했다. 역광이 비취자 그의 강한 체격이 더욱 위협적인 실루엣으로 나타났다. 엄청난 공포에 휘말릴 법도 한데 의외로 리온은 꾹 참고 버텨내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그도 내심 두려웠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 자연을 지배하는 위세를 보여주며 위협하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나.
“겨우 이 정도로 무서워하면 곤란해. 내게는 은하를 넘어 별을 움직일 워프 시스템의 제어 권한도 있지. 항성을 지금 지구 상공에 던질 수도 있어. 물론 그 열기와 중력을 마음대로 차단하고 제어할 수도 있고.”
농담이나 허세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과 그분이 당신에게 허락한 지성을 응용한 기술력에 불과하죠.”
리온은 공포에 굴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용기로 견뎠다.
“아무리 당신 스스로를 높이려 해도 결국은 그분 손아귀에 있을 뿐입니다.”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재혁에게 전해야 할 말들을 조목조목 선포했다.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인본주의의 모순점, 인류연합이 합리성이라는 명목하에 저지른 수많은 잘못, 식민지 주민에게 미신과 미혹을 심어 넣은 교활함, 처벌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범법자들을 풀어놓고 활용했던 행태까지. 번개는 점점 더 거세졌으나 변함없는 강직함에 흥미라도 느낀 것인지 재혁의 물리적 위협은 리온의 몸에 직접 닿지 않았다.
“저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전했을 뿐입니다. 강재혁 대표님께서 저의 목숨을 치시건 말건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 목숨을 거둔다면 당신은 자신이 제창한 정의마저 제 손으로 모순으로 만들고 말겠죠.”
점점 더 당당해지는 리온의 얼굴에는 폭풍 가운데도 불변하는 굳건한 평안함이 깃들었다. 그의 평온한 아우라가 갈수록 짙어지자 이번에는 거꾸로 재혁 쪽이 당황했다. 그는 미묘한 오류를 감지했다.
‘녀석에게 마인드리딩이 통하지 않는다?’
뭔가가 리온의 마음을 읽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초자연계의 힘?’
재혁은 의혹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배후에서 상대를 돕는 듯한 무형의 힘이 거슬렸다. 제법 자격이 충만한, 큰 그릇이었다 이건가? 분하지만 상대에 대해 좀 더 정중히 평가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는 다시 손짓을 하여 인위적인 기후 조작 병기의 가동을 멈췄다.
“실례했군. 네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꺼내도록.”
그러자 이에 화답하여 리온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러나 동시에 강직하고 올바르게 재혁을 꾸짖었다. 이런 낯선 경험이 부재해 면역력이 없었던 재혁은 쓰라린 심정으로 상대의 징계를 맨몸으로 얻어맞아야 했다. 표정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심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혹시 무례가 있었다면 다시 용서를 구합니다.”
임무를 일단락한 리온은 속으로 안도하며 마무리를 했다.
“하지만 저는 꼭 전해야 할 말들을 전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당신이 올바른 길로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당장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전능자께 항복할 마음이 없더라도 최소한 그분에 대한 경외감은 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온은 상대가 두려움만이라도 이해하길 바라며 조심스레 경고했다.
“인류의 지도자로서 악을 내어버리고 선을 행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리온은 상대에게 예를 갖춰 묵례하고 잠잠히 처분을 기다렸다. 다행히 재혁은 상대를 치지 않았다. 뒤늦게 윤혁이 뛰어 들어왔다. 그는 리온이 사지 멀쩡하게 무사한 것을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가능하면 둘을 안 마주치게 할 생각이었거늘.
“제법 괜찮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형이 동생에게 말했다. 어딘가 모르게 쓴맛 담긴 웃음이었다.
“제 친구를 해치시면 안 돼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 없었다.”
“하지만 형은…….”
“너도 내 부하들을 만났었으니 나도 네 친구를 볼 권리가 있지.”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리온은 가까스로 숨을 골랐다. 몇 분 전의 자신은 저런 무서운 인간 앞에서 어떻게 용기를 냈던 걸까? 이 역시도 주님의 보호였을까? 저 사람을 만나도록 한 것도 그분의 계획이었을까?
‘무서웠어. 사부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강재혁 대표님은 아직 진정한 능력의 일부분도 보여주지 않았거늘……. 윤혁은 저런 사람을 무슨 수로 감당했지?’
부르르 떨며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는 리온. 재혁은 오늘 그를 잘 감당해준 기특한 책망자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허탄히 머금었다. 그는 리온의 머리 위에 커다란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더니 칭찬의 의미로 쓰다듬었다.
“쓰리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네 말은 돌아가서 고민해보지.”
과거 납치 때 고문으로 얻은 평생의 수치심보다도 의외로 오늘 이 녀석 하나에 당한 수치감이 더 컸다. 성격은 조금 다른 수치심이긴 했지만. 참 이상하게도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음주해본 경험은 없지만, 술에 취해 정신 못 차리던 중 머리를 얻어맞을 때 느끼는 시원 얼얼한 감각이 이런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잘 살펴 돌아가십시오.”
리온의 인사에 카이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혁 너는 다시 우주로 돌아갈 생각이겠지?”
재혁은 동생을 돌아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야 물론이죠. 형은요?”
“나 역시 조만간 계획해뒀던 일을 진행할 생각이다.”
그렇게 형제는 짧고도 길었던 재회의 시간을 정리한 뒤 작별 인사를 했다. 떠나가면서 재혁은 왠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모든 것이 허망하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꾸지람 덕이었을까? 뜻하지 않게 이번 생일에는 동생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선물을 하나 받게 되었다. 선지자라는 이름의 선물을. 과연 그렇게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적격자였다.
‘모르긴 해도 자주 얽히게 되겠군.’
한편, 리온은 멀어지는 재혁의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강재혁 대표님.’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비단 어마어마한 규모의 위엄, 지혜, 미, 능력, 재능, 권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다른 부류였다. 또한 사부 티아라와는 다른 의미로 위화감과 경각심을 동시에 주는 인물이었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하늘도시들은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이었지.’
선교팀이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복음도, 성경도, 여호와 신앙도 제공되지 않았던 폐쇄된 세계들인 하늘도시들. 그런 세계들이 무려 수십만, 수백만 년 이상을 존속해오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구를 불려왔다. 그 합산은 틀림없이 지구의 인류 역사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들 만큼의 거대한 역사였을 터. 그런 긴 역사 속에서 하늘도시의 민족들은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빛과 소금이 빠진 상태로 그러한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규모만 종양처럼 불어난다면 필연적으로 부패할 대로 부패했어야 마땅했으리라.
‘지구 같았더라면 진작에 악의 소굴이 되어 멸망했겠지.’
리온은 가정법을 떠올려보았다. 만일 복음과 성경이 인류 역사 속에 뿌려준 각종 선한 이차적 부산물들, 이를테면 인권이나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산물들이 전혀 존재치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얼마나 더 끔찍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몸서리칠 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하늘도시들은 그렇게 되지 않았어.’
기이하게도 성경적 가치관의 부재라는 악조건 속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도시들은 생각보다 부패 정도가 심각하지 않았다. 영적으로는 암울하고 공허하긴 했으나 물질문명이나 치안이나 질서는 의외로 건전한 편이었다. 풍요롭고 강대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지구 문명보다 더 낫고 우수한 측면들도 수두룩했다. 복음의 영향력을 받지 못한 세계들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런 발전 곡선은 고평가받아 마땅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위화감이 들 정도로 이상한 일이었군.’
여태껏 리온과 세 친구가 방문한 복음 미개척지들은 썩을 대로 썩은 소돔과 고모라, 혹은 도덕이 상실된 식인종 섬 따위의 오지가 아니었다. 영적 공허가 점철된 문화와 초인들의 비겁한 개입 정도만 빼고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이 살만한, 그런대로 고급스럽고 풍요로운 세상들이었다.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지극히 안정적이었다. 사실 여행 중에도 무의식중에 놀라워했는데, 오늘 왕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불신 세상의 수장을 높이 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해. 그의 치리 능력은 탁월함이라는 단어로는 가늠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강재혁이란 인간은 개인으로서도, 군주로서도 두려우리만큼 탁월한 난사람이었다. 단순히 막강한 권세와 권위와 권력을 뽐내는 시시한 폭군이 아닌, 진짜배기 중의 진짜배기인 위인이요 대군주였다. 하늘도시들을 그런대로 잘 운영하고 경영하여 안정적으로 지탱해낸 주역은 바로 저 사람이었겠지. 비록 세상적인 지혜라고는 해도 그가 경탄스러울 정도로 지혜롭게 다스리고 통제해준 덕에 하늘도시들의 물질적 복락은 잘 구축되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인간이 그런 결과를 낳다니.’
영적 생명의 결핍이라는 핸디캡을 막대한 능력과 지혜만으로 무마시킬 정도의 정치 재능이라면 대체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뛰어나야 한단 말인가. 리온의 두뇌로는 가늠이 안 섰다.
더욱이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인류 보편적 선(善)을 완벽히 이해하여 대의적 도덕 판단 능력을 온전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고서는 이 모든 업적이 불가능했으리라. 현 왕은 신앙심은 몰라도 세상적 기준의 도덕적 역량만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마저 아득히 뛰어넘는 거물임이 분명했다.
‘물론 표식이라는 도구의 덕택도 컸겠지.’
아마 인류연합이 복음의 영향력 없이도 하늘도시들의 정신적, 윤리적 상태가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도록 그런대로 잘 유지시켰던 결정적인 비결은 스테판이 언급했던 ‘표식들’ 덕분이었으리라.
뒤집어 말하면, 표식 자체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대단한 발명품임은 인정해야 했다. 영적 소금 없이도 소금의 효력을 흉내 낼 정도의 힘. 그러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하는 티는 내지 않는, 절묘하게 선을 잘 지키는 기술. 가히 ‘예술의 경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막강한 위력의 표식들을 완벽히 제어해내어 십분 활용하는 주체인 강재혁이란 인간은 인류 정치사(政治史)가 본 적 없던 ‘궁극의 정치 예술가’로 평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불신자라는 사실이 통탄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표식의 존재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도덕적 집행력을 폄훼할 수는 없다. 그런 엄청난 위력의 도구를 쓰고도 심각하게 타락하지는 않았으니까.’
방대한 인구와 장구한 역사를 지닌 우주 인류의 필연적인 ‘부패와 무질서 발생’을 표면적으로나마 제어할 정도로 막강한 도구인 표식. 그런 위력이라면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진작 절대 부패의 올무로써 재탄생했을 것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그런 무기를 얻는다면 전무후무한 폭군이 되었거나 어리석게 오남용하여 온 인류를 말아먹기 쉬웠으리라.
모든 정황을 보았을 때 재혁은 아직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억압의 수단을 사용하긴 했다지만, 표식의 힘을 얻고도 추락하기는커녕 나름 지혜로운 선정을 잘 펴고 있는 인류연합 대표가 경탄스러웠다. 분하지만 그런 인간이라면 인류에 대한 제어력뿐 아니라 자기 제어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물이니 더더욱 자기 자신의 의(義)에 대한 자부심이 컸겠지.’
하나님의 보편적 가치관과 창조 섭리에도 잘 순응하는 현명함과 선을 넘지 않는 절묘함 또한 소름이 돋았다. 하늘만큼 긴 다리를 가진 거인이 한 발로는 ‘자기 의’라는 길을, 다른 한 발로는 ‘하나님의 윤리’라는 길을 밟으며 아슬아슬하게 절묘한 양줄 줄타기를 해내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기묘한 노릇이었다. 어찌 보면 한없이 창조주의 영역에 도전하는 듯한 자인데, 다른 면에서는 창조주의 원리 앞에서 간교하게 비위 맞춰줄 줄도 아는 자라니.
‘당장 나를 간언자로 택해주겠다고 선뜻 말한 것만 해도 그렇지.’
보통의 불신자였으면, 특별히 높은 권력을 가진 자였다면 노발대발하며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붉혔으리라. 리온의 목숨도 진즉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재혁은 살짝 떠보듯 위협만 가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히 간언자의 영적 조언을 경청했다. 심지어 예의에 어긋나게 들리는 말들에 대해서까지도.
비록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진 않지만, 적어도 신의 실존을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신을 무서워할 줄은 아는 자였다. 그토록 자기 의에 충만한 그라면 듣기 싫은 간언을 저렇게까지 선뜻 양약으로 삼아 섭취하기란 어려울 텐데.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력이 그렇게까지 강력하단 말인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
힘과 지능과 권세만 막강하고 맘은 비좁은 소인배가 아닌, 오히려 세상의 모든 대인배들의 그릇을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비상식적인 대인배이기에 더 두려웠다. 리온은 재혁이 부린 인공 기상 변화의 압박에 짓눌렸을 때보다 도리어 편안히 풀려난 지금 더 소스라치게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성령님이 도우시지 않았으면 상대해볼 엄두도 못 냈겠지.’
마지막으로 리온은 강재혁이라는 사람에 대해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머릿속으로 사색해보았다. 사실 조금 전에도 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목숨을 걸고 재혁을 반쯤 떠보는 도박을 시도했었다. 우주 인류를 억압한 그를 질책함으로써 그의 도덕적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도박. 안타깝게도 효율적으로 먹혀들지는 못했다.
‘왜였을까?’
극한의 정치 예술가이자 도덕 집행력의 괴물이요 균형 유지의 천재인 그가 구태여 세계 질서를 위해 억압을 택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잠정적 분열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 국가적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아니다. 재혁과 같은 초유의 초인이라면 다른 옵션으로도 능히 해냈을 터. 굳이 이 길을 택한 데는 다른 이유가 얽혔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윤혁.”
깊은 고찰 끝에 리온이 입을 열어 친우를 불렀다.
“응? 왜?”
“너에게 지워진 짐……, 꽤나 무겁고 막중해 보이네.”
“…….”
“그래도 쉽게 내려놓거나 포기하지 말아줬으면 해.”
동료에게 버거운 마음의 부담을 더 얹자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윤혁이야말로 강재혁이라는 이름의 저 난해하고 두려운 수수께끼를 해결해줄 하나님의 해답이자 최선의 열쇠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는 이성적 추리나 논리적 판단에서 든 결론이라기보다는 계시에 가까운 비이성적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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