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8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6. 인터미션 IV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1.28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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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자 동시에 희망이 태동하는 시기.
봄이 오기까지 몇 달간의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는 놀라운 흐름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많은 일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표면에 남아있던 신실하고 정직한 교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겠다며 용감히 발 걷어붙이고 나섰다. 세상 사람들은 그 행태에 티끌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천계에서는 이들의 솔선수범함을 보고 성도들과 천군이 크게 기뻐하였다. 동시에 흑암의 세계도 바짝 긴장을 기울였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썩어짐으로써 새 곡식들을 맺는 밀알의 역할을 자처하기란 결단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정든 지구와 작별하고 낯선 세계의 일원이 되어 평생을 그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어떤 희생과 핍박이 뒤따를지 전부 가늠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 국소적으로 부흥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냉대와 무관심만을 마주한 뒤 별다른 열매도 보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칠 가능성 또한 있었다. 최악에는 희생 또한 각오해야 하리라.
이토록 어려운 선택지였으나 놀랍게도 수천 명도 넘는 자들이 참여했다. 청장년은 물론, 나이 든 목회자와 전도자들까지 이 희생의 임무에 기꺼이 자원하였다. 위험성과 소외의 두려움, 그리고 본가 친척 집을 떠나야 하는 수고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상에서 인류 최후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신앙인들은 본인의 몸의 편안함보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쪽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마냥 지구에서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나머지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영영 사라지잖아요. 차라리 남은 평생을 바쳐 그분의 명령에 헌신할 기회를 얻는 편이 낫겠어요.”
“물론 우리 없이도 하나님께서는 돌들을 움직여서라도 복음이 편만이 전해지도록 만드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지만, 누가 알겠어요, 우리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서 그분의 예언을 이루실지.”
자원자들은 하나같이 담담한 태도로 고백했다. 그들이 용맹케 된 원동력에는 내적 신앙의 힘과 동료들과의 우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아나스타샤의 체계적인 청사진에 힘입은 바도 있었다. 타임필드라는 이름의 특수 기술, 비록 인간의 욕망으로 제작된 기술이지만, 이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해서 복음을 전할 시간을 벌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새 희망으로 들떴다. 이미 부담감과 미련을 내려놓은 이상 뒤돌아볼 이유는 없었다. 오지에서 삶을 온전히 희생하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을 각 터에 뿌리내려보자.
“목사님들까지 굳이 나서실 필요는 없는데…….”
이번 임무에 자원한 자들 중 은퇴한 목회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내심 리온은 그들의 건강을 염려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미 민중의 마음이 완악하게 굳어버린 지구에서 여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낯선 땅에서 남은 수명을 바쳐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를 원했다. 젊은 청년들보다 경험도 많고 교회 조직이나 예배 방식, 성경 해석 등에 대해서도 지식과 관록이 풍부한 이들인 만큼, 현지 땅에 체계적인 교회를 건설해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하여 아나스타샤가 애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큰 규모의 선교팀 구성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이 팀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실천적 행동에 나섰다. 리온을 중간매개로 하여 진이라는 초인과 협상을 시행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인맥을 간접적으로 동원하여 성운이나 다른 초인들과도 직접 거래하였다.
이로써 그녀는 선교팀 전부를 파견하고도 남을 교통수단과 자원을 확보했다. 동료들이 제자 훈련, 우주 적응을 위한 건강 관리, 성경 공부, 현지 대응 정보 교육에 힘쓰며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친구들이 정치적인 일에 염려할 필요가 없도록 위정자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뜯어내는 치밀한 전략에 착수했다. 상대의 가치관이나 목적을 간파하는 지혜를 소유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아나스타샤는 선교팀에게 또 다른 도움도 제공했다. 그녀는 1차 선교 여행 때 리온이 수집하고 기록해온 데이터와 그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세계들에 대한 표본 데이터 모식도를 작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조만간 2차 여행이 개시될 때 마주하게 될 예정인 ‘이색적인 문명들’의 예측도를 구축했다. 가상 여행 시나리오 교육을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미래는 미래인 만큼 완벽한 예측이라고는 감히 못 말하겠지만, 앞으로 인류연합 측에서 개방정책을 천천히 도입할 점을 고려하면 제 추측 도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마법, 거짓 신, 과학만능주의, 거짓 과학, 가상 세계 등 온갖 가능성 있는 위험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여러 시나리오를 구성한 뒤 각각에 대적하여 신앙의 용사들이 사용 가능한 성경의 진리와 그 실천적 적용 방안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분이 강윤혁 씨처럼 의외성 충만한 변수 덩어리는 아닙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평범하면서도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된 집단, 그러므로 기본적으로는 오직 진리라는 정공법을 통해 평범히 맞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윤혁처럼 ‘특이한 조건’을 가진 영웅이 동료들을 위해 여러 우주적 반전을 가져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헌신할 일꾼들의 노력도 승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확신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우주 전체를 구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의 몸이 닿는 곳에서 우리와 마주치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향해서는 저희 생명을 기꺼이 선물해줘야죠.”
그렇게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남은 삶을 하늘도시라는 이름의 미지의 세계에서 온전한 섬김으로 소모하기 위해,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훈련에만 전념했다. 진이 넌지시 흘린 정보에 의하면 예상 출발 타이밍은 이듬달인 4월. 그때를 놓치면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초인들의 감시를 피해 이동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4월까지 달력을 계산해본 결과 훈련 기회는 고작 한 달 남짓이 전부였다. 온전한 제자로 성장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나 현실적 여건에 맞추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리온도 본래는 다른 선교팀원들처럼 하늘도시 주민들을 섬기는데 일생을 바칠 작정이었다. 그러나 희생 임무에 뛰어든 모든 동료와 목회자들은 물론, 아나스타샤까지 나서서 만류했다. 믿음의 심령으로 리스크를 감수했다고는 하나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2차 선교 여행이 순탄히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최후의 카드 역할 중 하나를 맡은 리온은 반드시 지구로 귀환해야 한다. 게다가 그는 목회자들이 눈여겨본 다음 세대의 리더인 만큼 더더욱 몸을 온존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하지만 저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당신의 열망은 이해합니다만, 안 됩니다.”
목회자 어르신들이나 청년 동료들이 만류한 이유도 문제지만, 또 다른 중대한 명분이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몰래 리온 혼자에게 넌지시 그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리온 당신과 강윤혁 씨, 두 사람에게는 세계의 최후 종말이 다가오는 패턴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매우 근접한 근거리에서 말이죠.”
“세계 종말요?”
아나스타샤의 엄중한 경고에 리온은 당혹감을 느꼈다.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도 이미 어느 정도는 직감하고 계시잖습니까? 두 사람에게는 이 세대의 지도자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제어해야 할 중요한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경중을 따져서는 안 되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선교보다 그쪽이 장기적으로는 더 막중합니다.”
즉각 리온의 머릿속에서 강재혁의 실루엣이 번뜩 스쳤다. 어찌나 깊은 인상을 뇌리에 잔상으로 남겼는지 스쳐 간 것만으로도 두피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윤혁은 재혁이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피붙이, 그리고 리온은 재혁으로부터 예외적으로 직언을 허락받은 간언자 역할. 아나스타샤가 이런 부분까지 알았을 턱은 없을 텐데도 그녀의 말은 마치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듯했다. 계시라도 받은 걸까?
“일단 알겠습니다.”
이렇게 팀원의 구성 문제와 각자의 임무 배당은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선교사들과 복음 전도자, 신실한 청년과 은퇴한 사역자, 진리의 편에 선 목회자들까지 모조리 우주 사역에 동참하겠다고 나선다면 과연 그들이 떠나간 뒤의 지구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아무리 완악함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지만, 엄연히 하나님께서 인류의 터전으로 창조하신 행성이거늘, 그곳의 영적 소금을 모두 치워버려도 되는 걸까?
“아나스타샤 씨, 이곳을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되겠습니까?”
“그 부분은 너무 심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나스타샤는 안심해도 될 두 가지 근거를 일러주었다.
첫 번째 근거, 조만간 외계 행성들의 개척이 수월하게 진행되면서 자연히 인류가 다행성 종족으로 변모한다면, 지구 시민들은 어차피 뿔뿔이 우주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리라는 예측이었다.
“에이, 설마 그렇게 될까요?”
리온은 반신반의의 태도를 내비쳤다.
“아뇨, 확실합니다. 초인들은 이미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나 일부러 쉬쉬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인류의 인구가 얼마나 거대한지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그들에게까지 시민권이 부여된다면 지구가 어떻게 될까요?”
리온은 대충 지레짐작해보았다.
“그건……, 아무래도 인원 제한 때문에 아무나 지구에 오지는 못하겠네요.”
“지구는 인류의 ‘성지’이자 ‘수도’입니다. 선택받은 우수한 자들에게만 주거권이 허락될 것입니다. 초인들, 그리고 초인은 아니어도 일반인 중 우수한 능력을 지닌 승리자들만이 지구에 남도록 허락받을 것입니다. 곧 이 행성은 오만한 자들의 궁전이 될 테죠. 틀림없이 그들 대다수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것처럼, 초인들의 태생적인 오만함과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 자들의 후천적 교만함은 그들로 하여금 겸손한 심령을 갖도록 쉬이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태여 지구의 복음화 상태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곳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질 터니까요. 새로 들어올 자들도 아마 주기적으로 순환 당할 것입니다.”
“어차피 지구라는 문화권이 하나의 고유한 고립계로 남지도 않을 테니 복음 미개척지로 분류하는 의미도 없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나스타샤는 이번에는 희망적인 요점을 짚었다.
“최소한 한 종류의 민족만은 지구에서 쫓겨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대신해 지구 복음화의 소명을 맡을 것입니다. 전도 대상이 현 지구 주민이 아니라 장차 올 자들이긴 하겠지만요.”
이에 리온의 뇌리에 번쩍 번개가 울렸다.
“설마……, 유대인들, 아니 메시아닉 유대인들입니까?”
아나스타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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