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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8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7. 히어로즈 IV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성운은 휴먼 솔져 출신이 아닌, 평범한 지구인 출신 영웅 후보들의 프로파일을 하나씩 점검했다. 전투력 자체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약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솔져 출신 영웅에게는 본보기를 보일 잠재력이 있었다. 약한 힘에도 불구하고 자기희생 정신을 여실히 발휘하는 모본을 보면 자연히 강한 자들도 자극받게 되리라. 다만.

   “솔져 출신이 그렇지 않은 이를 차별하거나 깔보도록 놔둬선 안 되겠지.”

   시민 출신 영웅 중에도 일정 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이가 필요했다. 김찬영은 아주 좋은 예시였다. 분자 단위 재구성 치료를 시행하는 와중에 성운은 찬영의 육체에 ‘열과 빔 에너지를 상쇄할 수 있는 특수 속성’을 분자 하나하나마다 심어 넣었다. 신체에 해를 주지 않는 수준의 에너지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강제 상쇄시키는 특수 물리작용, 성운의 확률 관련 고유 재능이 접목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그 능력은 무장과의 연계성도 좋았다. 특수 슈트에 전이시키면 몇 배 이상 효력을 증폭해 대부분의 통상 무장 에너지 공격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며 여기에서 좀 더 응용력을 놓인다면 역으로 적의 공격에서 비롯된 에너지를 흡수 후 증폭해서 자신의 화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히든카드는 많을수록 좋은 법.

   “초능력을 지닌 시민 영웅을 하나 더 투입할 타이밍이군. 최강의 카드로.”

   성운은 비밀 실험실로 내려갔다. 묵혀둔 카드를 세상 밖으로 꺼낼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유리관 캡슐 앞에 멈추어 섰다. 그 안에는 한 나체의 남성이 잠들어있었다. 의식불명의 상태라 해야 정확하리라. 짙은 반곱슬의 밤색 머리, 훈훈한 분위기의 제법 괜찮은 미남 상의 얼굴, 근사하게 잡힌 근육과 훌륭한 피지컬, 그리고 따뜻하고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 돋보였다.

   “조만간 당신이 일어날 차례야.”

   성운은 캡슐 앞에서 중얼거렸다.

   “간만에 바깥 구경도 좀 해야지?”

   캡슐 속 남자의 이름은 천재현. 나이는 올해로 39세였다.

   천재현은 12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할 뻔했던 사람이었다. 그때 운 좋게 성운은 죽기 직전의 재현을 발견하였고 지체 없이 재현의 신체 전체를 ‘양자 정보 복제 전송’으로 옮겼다. 그것은 통상 인간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텔레포트 방식으로 인간에게는 잘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옮긴 대상이 영혼을 온존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사실상의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의 재현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라 신속히 시행할 다른 대안이 없었고 성운은 도박을 시도했다.

   당시 성운은 양자 정보 복제 전송 장비를 원격으로 발동시킴으로써 재현의 죽어가는 몸을 좌표째로 옮겼다. 정확히는 신체 구성 입자 정보를 하나하나 그대로 복제해내어 완전히 같은 육체를 구성했다고 해야 옳으리라. 즉각 시행할 수 있는 전술이라는 장점은 있었으나 실상 사물을 옮기거나 복제할 때나 쓰는 방법인지라 성운으로서도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재현의 영혼이 원본 육체가 아닌 텔레포트 된 육체 쪽에 붙은 것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재현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거늘.

   “그때는 꽤 충격받았지.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닌데.”

   본래 인체란 물질 덩어리는 흐르고 흐르는 자연의 물결 속의 일부인 법. 한 달 정도만 지나도 인간의 몸은 완전히 새로운 입자들로 싹 교체된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먹고 배출하고 숨을 쉬는 신진대사의 과정이 지속되니 신체의 부품이 되는 입자들도 자연스레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인체의 정체성이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보니 사람의 육체를 입자 배열 그대로 복제했을 때 그것이 과연 동일 인물일까 아닐까에 대한 문제는 늘 철학적인 논란을 일으켜왔다.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두 물질 덩어리는 정확히 똑같은 사람으로 정의되겠지만, 만약 영(靈)과 혼(魂)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해진다.

   천재현의 소생은 영혼의 실재를 증명해준 좋은 과학적 예시였다. 입자복제를 시행함으로써 생긴 재현의 복제본 육체와 원래의 원본 육체는 쿼크부터 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입자 배열과 속성과 스핀 값이 똑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 쪽은 즉시 죽어버렸고 복제본은 살아남았다. 영혼 속에 새겨진 생존 본능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재현의 영혼은 성운의 손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복제본 쪽을 선택해버린 것이다.

   이후 성운의 치료로 재현의 육신은 이전과 똑같은 자의식을 되찾았지만, 트라우마가 워낙에 큰 탓에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동면과 각성을 반복하면서 쭉 회복을 거치는 중이었다. 재현은 이 일련의 치료 과정에서 특이한 양자역학적 특수능력을 획득했다. 정확히는 텔레포트 과정에서 그의 육체에 발현된 특수 속성을 성운이 오랜 시간 가공해서 이능력으로 빚었다고 해야 옳겠지만.

   “가족 관계가 흥미롭군.”

   재현의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5살 연하의 남동생인 천수현이 있었다. 그들의 부모님은 과거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이끌었는데, 최근 수현이 직접 설립한 기업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물러난 상태였다. 재현과 수현은 어렸을 적부터 우애가 각별한 것으로 워낙 유명했다. 마음이 부드럽고 착하고 따뜻한 재현, 쿨하고 강인한 성품의 수현. 둘은 욕심 한 점 없이 서로를 배려하는 바람직한 형제였다.

   “하지만 정작 주목할 특이사항은 그게 아니지.”

   천수현. 34세.

   현재 성운이 경영하는 Another World 자회사 중 하나인 ‘Severe-Love’의 회장직을 맡은 인물. 자회사라고는 해도 사실상 독립적인 세력을 이끄는 자. 그자는 무려 U-society의 정식회원인 동시에 D 클래스 초인이었다. 지금 캡슐에 갇힌 신세인 형 쪽이 훈훈한 느낌을 주는 적절한 수준의 미모라면, 수현은 초인이라는 종족 특성대로 심히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미남이었다. 두뇌야 말할 것도 없었고 능력도 탁월했다.

   물론 그 이유가 성운이 집중하는 진짜 포인트는 아니었다. 수현과 같은 일개 D 클래스에게 SSS 클래스인 성운이 관심을 기울일 명분은 따로 있었다. 본래 수현은 5살 무렵에 F 클래스로 각성한 3세대 후천 초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인생의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D 클래스로 급속성장해버리고 말았다.

   분명 2차 각성도 아니면서 한 초인의 클래스가 승급된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현상이었다. 어쩌다 한 단계나 반 단계 정도의 도약은 드물게 있어도, 동시 두 단계 이상의 상승은 분명 기현상이었다. 수현의 클래스 상승 사례를 아는 초인이 드물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과도한 주목을 받을뻔한 일이었다.

   ‘하필 그 시기가 12년 전 있었던 형과의 사별과 맞물리는군.’

   현재 수현은 재현이 죽은 줄로 알고 있다. 양자복제 직후 재현의 원래 몸쪽은 시체가 되어버렸고 부검까지 거쳤으니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가 죽은 것으로 되어있겠지. 사랑하는 형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한 명의 초인의 진화를 유도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사항이 아니었다. 특별히 성운이나 카이젤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참조 사항이 되기에 더욱더 중요했다.

   ‘나와 지현이의 관계, 그것은 보스와 강윤혁 씨와의 관계의 축소판. 그렇다면 천재현과 천수현의 관계도 우리의 축소판이 될 수 있지. 보스께서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듯, 천 씨 형제를 점검해봐야겠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성운은 재현이 깨어나는 즉시, 히어로즈의 일원으로 삼으리라고 계획했다. 아울러 그는 또 하나의 안배를 두기 위해 성한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정신적인 강화와 개조도 좀 할 겸.

   “강성한 씨.”

   “유성운 회장님?”

   “다름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김찬영의 일로 은혜를 입었던지라 성한은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을 당신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처가 좀 많은 유악한 사람입니다. 연인 관계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배반도 당했죠. 얼마 전까지는 삶의 의지까지 잃었습니다. 그를 회복시켜 강인한 심령으로 재건시키고 싶습니다. 당신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침묵과 함께 성한의 당혹감이 전달되었다.

   “제가 그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최선만 다해주시면 됩니다. 꼭 뭔가를 당장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한은 마지못해 성운의 부탁을 승낙하였다.

   “알겠습니다.”

   어쩐지 신적인 위대한 섭리가 주를 믿지 않는 저 부자를 통해 자신에게까지 명령하는 것 같아 막대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영민한 성한은 부담스럽다고 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피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님을 깨달았다.

   ‘해봐야지 뭐.’

 

 

 

 

 

 

 

 

*

 

 

 

 

 

   4월 4일. 드디어 결전의 진격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나스타샤가 제법 훌륭하게 세상 권세자들과의 거래를 성사시킨 덕에 다수의 선교팀이 동시에 하늘도시로 나아갈 여건이 충족되었다. 구성된 소그룹 팀의 개수는 총 8,730개였다. 한팀당 네 명에서 스무 명 사이의 팀원으로 구성되었다. 사실상 이 숫자는 지구에 남아있는 참된 그리스도인 가운데 핵심 일꾼은 있는대로 거의 다 긁어모은 수에 해당하였다. 이들이 현지로 떠난 후로는 지구촌 선교의 역할이 이방인에게서 유대인에게로 완전히 전이되게 되리라.

   후원자들의 우두머리인 진이 굳이 출발일을 이날로 정한 데에는 다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4월쯤 진과 칼리드는 셀레스티언 족의 생산을 위해 에녹과 더불어서 기밀 프로젝트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외부와의 교류마저 폐쇄할 만큼 엄격한 프로젝트. 따라서 이 기간에는 선교사들의 잠정적 최대 위협이 될 칼리드가 제대로 지구를 감시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인공지능이나 수하들은 있다지만, 카이젤의 특별 소유인 지구에서는 일개 철인왕인 칼리드의 부하들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미미했다. 설사 일부의 감시책을 심어두었더라도 대부분은 진과 유성운이 미리 협조하면 상쇄하고도 남았다. 한마디로 선교사들로서는 감시 없이 몰래 빠져나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한편, 이 시기는 하늘도시들이 본격적으로 시험적 전면개방을 부분적으로 시도하는 때이기도 했다. 장차 있을 진짜 전면개방을 대비한 실험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 덕분인지 다수의 하늘도시가 통상 공간상에 위치 좌표를 노출당했고 진에게 추적당하기 알맞게 되었다.     비록 시스템의 제어가 남아있다지만, 하늘도시 간의 인력 교류 및 인구 교환도 활발해질 예정이었다. 자연히 진입 프로세스도 간소화될 것으로 추측되었다. 진은 미리 여러 개의 복제 출입 코드를 준비하여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이 기회를 활용하기로 계획했다.

 

 

   전원 이동시킬 인프라를 마련했습니다. 4월 9일이 D-day입니다.

 

 

   아나스타샤는 진의 메시지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굳게 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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