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8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7. 히어로즈 IV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07 | 회차평점 0 0

 

 

 

 

 

 

 

*

 

 

 

 

 

 

 

   마침 그달은 다시금 새로운 냉전이 개시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로스트엠페러들과 지구의 섹터 수장들, 그리고 여러 초인이 숨죽인 채 카이젤의 냉전 개시 허가령을 기다렸다. 성운은 이번 냉전이 히어로즈를 중심축으로 전개되리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와 크리슈나는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그렇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안고 기다리던 중, 본격적인 선전포고가 개시되었다.

   ‘올 것이 왔군.’

   성운은 텔레파시로 온 상대방의 호출을 받자마자 미리 약속된 S-unvs 좌표에 접속했다. 과연 위험한 맞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럿이 아닌 한 명뿐이었다. 금과 은을 녹여 섞어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머릿결의 사내가 성운을 맞았다.

   “반가워, 유성운.”

   “일라이저 씨.”

   일라이저는 평소처럼 특유의 귀족적이고 근엄한 매력을 물신 흘리는 중이었다. 장신의 근사한 체격과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핏빛 눈동자, 뱀파이어처럼 흰 피부가 흑청색 제복과 어우러져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서로의 탁월한 실력을 똑똑히 아는 둘은 경계심을 일절 늦추지 않았다.

   “지난번에 몰아붙인 것은 미안하네. 히어로즈를 창설하려는 그대의 계획, 독창적이고 훌륭했어. 인류 전체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략이었지. 객관적으로 인정하네.”

   싱글벙글하면서도 싸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일라이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성운은 상대의 진정한 속셈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살짝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거두절미하시고, 용건이 무엇입니까?”

   “이런, 너무 성급하게 굴진 마. 이제 말하려던 참이었어.”

   일라이저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성운 네가 부러워. 우리 중 너처럼 놀라우리만큼 주군의 비위를 맞춰주는 자는 없었지. 그래서 비슷한 급의 실력임에도 네가 유독 눈에도 잘 띄고 주군의 신임도 두터운 것일 테지.”

   “썩 좋은 표현은 아니나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비위를 맞춘다’라는 표현을 쓰긴 했으나 딱히 알랑거리기를 잘한다거나 아첨을 일삼는다는 비방의 표현은 아니었다. 비록 오만하나 부정부패를 극도로 싫어하고 공정한 원리원칙주의자이며 인류 공공의 발전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카이젤이기에, 그런 자에게 비위를 맞춘다는 의미는 순전히 ‘공공의 발전에 유익한 방향으로 창의적인 이바지를 한다’라는 뜻이었다.

   “그 또한 능력이 받쳐줘야만 가능하니까요.”

   이미 초인마저 그 필요성이 희미해져 가는 시대. 인공지능 스스로 기술 개발을 감당하며 광대한 식민지 은하계들을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 그런 시대에 능력만으로 존재의의를 증명한다는 것은 여간 창조적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톡톡 튀는 발상력으로 놀라운 일들을 벌여대는 유성운은 보스의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주는 충신이었다.

   “그래. 히어로즈 플랜만 해도 그렇지. 실제로 네 덕분에 주군께서도 휴먼 솔져와 바이오닉 솔져들의 전반적인 전력 강화를 획책하실 수 있었지. 내 기꺼이 칭찬해드리지.”

   “…….”

   “게다가 지금 시대에 너처럼 기업체 형태의 조직을 잘 운영하는 존재도 드물지. 이미 무한 자원의 시대가 도래하여 이윤 추구를 열심히 하는 조직의 필요성이 사라진 점을 고려하면 참 신기해.”

   경제에 대한 개념은 이미 한참 전에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소비자에게 물건이나 자재를 팔아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은 무의미해진 지 오래였다. 주 생산자는 무인 시스템이며 사실상 그것을 지배하는 카이젤이 생산의 독점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제 주체는 물건을 거래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왕의 눈에 합격점에 들 만큼 ‘인류 발전 기여’를 이룩해야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그 신용이야말로 진정한 경제적 영향력이었다. 이런 류의 ‘신용으로서의 자산’을 성운만큼 잘 운용하는 인물도 드물었다.

   “칭찬이 목적은 아니실 테고……, 본론을 말씀하시죠.”

   “후후, 창조성 넘치는 계획을 더욱 정제하려면 피드백이 필요한 법이지.”

   도발적인 선언에 성운의 이마에 미약하게 주름이 생겼다.

   “네가 창설한 히어로즈, 그 조직을 냉정한 시험대 위에 올려놓을 생각이야. 주군께 직접 제안했지. 올해 냉전은 우리의 진검승부로 대체해달라고 건의드렸더니 그분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시더군.”

   일라이저의 선언은 성운의 예상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당신의 군대로 영웅들을 공격하겠다는 말입니까? 비록 명색뿐이라지만 공공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그들을 해하고도 당신의 사병이 존재 명분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오해야.”

   일라이저의 잘난 얼굴에 느긋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어깨를 한번 가볍게 으쓱거렸다. 잠시 후 그는 그들이 현재 거하는 시뮬레이션 우주에 조작을 가하여 접속 제한을 풀었다. 이내 반쯤 공손했던 말투가 예의의 가면을 내던지고 거칠어졌다.

   “관계자를 불러.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기에는 아쉽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자명했다. 성운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마지못해 당사자를 불렀다. 곧 한 사람의 형상이 시뮬레이션 우주 내부로 소환되었다. 반항적인 인상의 피부가 짙은 인도인, 크리슈나 칼라만트라였다.

   크리슈나는 브리타이나 연방의 수장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감정이 좋은 턱 없었다. 일단 인도는 현 브리타니아 연방의 속국이자 과거의 식민지였으며 민족 내부에 함축된 집단무의식이 최초 각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 출신 상위 초인의 특성상 둘은 악연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구의 민족 구분이 완벽하게 해체되기 전까지는.

   “일라이저를 상대로는 무리입니다. 진정하세요.”

   조금 불안했는지 성운이 크리슈나를 만류했다.

   “무슨 일로 소환했는가, 제국주의자?”

   크리스가 험악한 어조로 으르렁거렸다.

   “네 귀여운 사냥개들을 폐기할지 말지를 평가 중이었지, 달리트.”

   일라이저가 차가운 목소리로 도발하자 크리슈나는 대번 성운의 지시를 무시하고 신수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뮬레이션 우주 내부였기에 전투력으로는 경험 특성상 크리슈나가 우위였다. 그러나 그의 무례한 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흑발 녹안의 청년, 적발 벽안의 미녀가 S-unvs에 출현하더니 크리슈나를 단번에 막아내었다.

   “형님, 괜찮아?”

   “그러게 야만인은 부르지 말랬잖아, 오빠.”

   두 사람은 일라이저가 아끼는 의형제들이었다. 여자 쪽은 여동생인 라비에라, 그리고 사내 쪽은 막내 남동생 키스. 두 사람 다 더블 스페셜 클래스의 초인으로 일라이저와 혈맹이 아닌 자유의지로 맺어진 동포들이었다.

   “신수왕(神獸王) 삼 형제!”

   “진정하시지요. 제가 협상하겠습니다.”

   으르렁거리는 크리슈나를 성운이 말 한마디로 달랬다.

   “주군의 전언을 전하지.”

   일라이저가 입을 열었다.

   “보스께서?”

   “이번 냉전의 테마는 히어로즈와 신수 족의 진검승부를 주축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참고로 정면 무력 대결은 아니야. 아무리 히어로즈 개개인이 강하다고 해도 수로는 터무니없이 밀리니 신수와의 세력 승부로는 상대가 안 되겠지.”

   굳이 상기시켜줄 필요 없는 사실을 들먹인 이유는 기선제압이 목적이었다. 물론 고작 그 정도에 위축될 성운은 아니었다. 그는 차분히 다음에 나올 선언을 예상하였다. 보스는 두 세력을 모르모트로 삼아 무엇을 보려는 것인가?

   “대결 방식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 겪은 것과 마찬가지로 ‘영웅으로서의 자질을 시험하는 시련’으로 이루어질 예정. 신수들은 미리 설정된 일련의 고난을 제공하고 영웅들이 그것을 헤쳐 나가는 방식을 테스트한다. 우리 둘은 그것들을 체스 말로 삼아 즐기면 된다.”

   도의적으로 심히 거슬리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이 나오는데도 양측 모두 동요함이 전혀 없었다. 이미 인간의 도덕관을 초월해버린 초인들인지라 상식을 벗어난 계략들에도 아무런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격을 시험한다……. 무력에 대한 테스트는 아닐 테죠.”

   “물론. 시험할 평가 항목은 그들이 온전한 영웅을 자칭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야. 도덕성, 고결함, 희생정신, 냉정함, 판단력과 같은 진정한 내면적 자질을 평가할 생각이다. 혹독한 도덕적 딜레마를 요구받게 될 거다.”

   일라이저가 이런 방면에서 얼마나 악질적이리만큼 치밀한지 잘 아는 성운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차라리 정식 무력 대결이면 모를까, 이건 너무 리스크가 높지 않은가. 물론 성운이 염려하는 부분은 영웅들이 겪을 뼈저림과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다른 쪽에 있었다.

   “설마 일반인들의 희생을 허용할 생각인가, 일라이?” 

   그도 이제 존댓말을 내버리고 차가운 어투로 하대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도 그 정도까지 막 나가진 않아. 나 역시 엄연히 주군과 계약을 맺은 인류 공공의 수호자, 인간이라는 종족을 해칠 생각은 결코 없어.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시뮬레이션 우주가 있잖아? 더욱이 그것을 실체화시킬 기술까지도 주군에 의해 보편화되었지.”

   “설마 현실과 가상을 흐트러뜨림으로써 영웅들을 현혹하겠다?”

   “순수한 환각으로 시련을 주겠다는 건 아니야.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 세계의 운명도 일부분 같이 도박에 휘말리겠지. 아마 해당 시점에 시험받는 영웅의 자질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그 여부가 달라지려나?”

   두 최상위 초인의 맹렬한 신경전은 흡사 불꽃을 튀기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잠잠히 대기하던 SS 클래스들은 짙은 긴장감에 휘말렸다. 조금 전까지 일라이저에게 맹렬히 달려들던 크리슈나조차도 두려움에 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 그렇게 하지.”

   성운은 일라이저의 내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럼 계약 성립이군.”

   “나머지 로스트엠페러들은? 이번 일에 어떻게 반응 중이지?” 

   “경마 형식으로 각자 우리 중 하나를 택해 팀을 후원하기로 작정했다. 직접 개입은 삼가는 선에서 말이야. 태양을 삼키는 늑대, 쿠에시, 마리아는 성운 너에게 걸기로 했고, 샤오 여사님과 지그문트는 나에게 걸었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이 커진 셈이지만, 이마저 끝이 아니었다.

   “지구에 주둔 중인 S 클래스와 SS 클래스들도 곧 후원할 쪽을 각자 선택하여 결정할 예정이다. 대충 지금 상황으로는 성운 그대에게 유리하지? 도전해볼 만하지 않겠어?”

   성운은 영 좋지 못한 직감을 받았다. 히어로들은 아직 불완전하다. 전투 실력이야 뛰어나다지만 정신적인 면에서까지 온전한 영웅으로 칭함 받기에는 완성도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지금 일라이저가 준 시련으로 시험당한다면 대다수가 넘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를 어쩐다.’

   하지만 이미 일라이저가 카이젤의 허락까지 받아냈으니 엎질러진 물이었다.

   ‘작은 싸움치고는 꽤 성가시게 되어버렸어.’

   성운은 히어로들이 겪을 도전을 ‘작은 일’로 치부했으나 사실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냉전은 머잖아 짧은 시차를 두고 우주 쪽 무대에 투영됨으로써 더 큰 대결 구도로 확장될 예정이었다.

   에녹은 일라이저와 성운이 시뮬레이션 우주상에서 벌이는 설전을 몰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단기 계획을 구상하며 거듭 재점검하였다. 그는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와 이번 냉전을 연계시킬 준비를 하느라 몹시 분주한 상태였다. 그는 다수의 우주 단위 슈퍼컴퓨터와 무형 서버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내는 복잡다단한 작업을 차분히 수행했다.

   “TUNER의 아바타를 995기 더 소환한다.”

   그의 모든 지시는 명령어로 변환되어 시스템들의 의지 위에 강제되었고 곧바로 체계적인 집행으로 이어졌다.

   {TUNER 아바타, 소환 시행.}

   {기존에 우주에 사출된 5기 컨트롤 회수}

   {추가 아바타 생성 995기.}

   {총 1천 기 확보.}

   {아바타 전 기 합체 프로세스 진행.}

   에녹이 텔레파시 기술과 양자통신 기법이 조합된 방법으로 명령어를 생성해 은하 전역에 확산시키자 그 반응으로 1천 기의 아바타들이 한 좌표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로봇들이 초전자 합체라도 하듯 일제히 융합하였다. 그 결과물로 행성 크기에 맞먹는 체구의 거대한 괴생명체가 만들어져 위용을 드러냈다.

   “시범 운영을 해봐도 괜찮은가?”

   에녹이 차분한 텔레파시로 읊조렸다.

   {물론입니다. 두 번째 서열의 지배자이시여.}

   융합된 거대 아바타가 섬뜩한 목소리의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개시해.”

   {3단계 모드: 불경의 육망성(Blaspheme Hexagram), 발동.}

   {확대 증폭 공명 프로세스 개시.}

   신속하게 활성화가 진행, 그 뒤로 전쟁 변환 알고리즘이 접목되었다.

   {신수왕의 군단을 ‘입력부’로, 셀레스티언(Celestian)을 ‘출력부’로 설정.}

블라스핌 헥사그램 모드를 온전히 발동시킨 아바타는 지구상의 모든 신수의 행동, 발전, 증식, 재생산 패턴 자료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셀레스티언의 종족 단위 행동 패턴으로 변환시키는 범우주적 프로세스를 가동하였다.

   “지금이다.”

   동시에 칼리드와 에르샤는 아버지 카이젤에게서 모종의 ‘임시 권한’을 인계받았다. 신수의 데이터를 셀레스티언의 데이터로 환산하는 프로세스가 있다면, 신수의 대응 군단인 히어로들의 데이터 역시 상위 데이터로 변환해 솔져들의 강화에 이용해야 마땅한 법. 이제까지는 휴먼 솔져 시스템이 그 수혜자가 되었으나 이번에는 바이오닉 솔져가 그 대상으로 책정되었다.

   {3대째 위버멘쉬께서 제1 철인왕과 제2 철인왕에게 12기의 Ex-랭크 바이오닉 솔져들의 보수, 진화, 강화 목적의 실험 권한을 임시로 대여하셨습니다.}

   두 철인왕은 기다렸다는 듯 합당한 권한을 취하였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28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7. 히어로즈 IV (3)
등록일 2024-02-05 | 조회수 93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28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8. 불구덩이 (1)
등록일 2024-02-09 | 조회수 93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