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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8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8. 불구덩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09 | 회차평점 0 0

 

 

 

 

 

Chapter 38. 불구덩이

 

 

 

 

 

 

 

   속으로 칼을 갈던 암흑의 목소리들은 이번 기회를 맹렬히 주시했다.

   <때마침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을 조종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계(下界)에 개입합시다.>

   <인간계 시점으로 지난번 공격으로부터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마침 그때보다 그들의 문명이 고도로 발전했으니 우리가 간섭할 폭도 늘어났습니다.>

   <좋은 기회군. 인간들을 좀 더 죽여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주의해야 해. 멋대로 뒤 생각 안 하고 과도하게 간섭하면 창조주가 섭리를 이용해 우리의 활동에 제약을 걸어버릴 수도 있어. 특별히 인간을 죽이는 일이라면 말이야.>

   <어차피 인간계의 문명은 최후 전쟁이 이르면 우리의 도구로 쓰여야 하니 괜히 낭비하거나 훼손시킬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인간 정부가 아니야. 우리가 대적할 진정한 적수는 언제나 단 한 종류뿐이지.>

   <그래.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 아들’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 i)!>

   <모조리 죽여 없애자. 더 활보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돼.>

   <맞아. 놈들을 방치한 탓에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보았는지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워. 기껏 만들어놓은 판을 놈들이 망가뜨려 버렸어. 놈들의 영생을 끊지 못한 채 신에게 내주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전략적으로 임하자. 우리가 물리계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의 분량에는 한계가 있어. 허튼 데 에너지를 낭비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그러면 누구를 없애야 하지?>

   <뻔한 질문 아닌가. 이번 체스 경기의 상대편 킹은 정해져 있어.>

   <억제자(Restrainer)?>

   <그놈도 있지만, 때마침 동행하는 둘도 꽤 위협적인 장기말이야. 절대자의 계명에 순종하는 신실한 자들의 차기 지도자가 억제자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혐오스러운 야곱 일족의 후손도 있지!>

   <큭, 전부 다 죽여 없애자! 한 번에 몰살해서 잭폿을 터뜨리자!>

   <놈들만 지상에서 활보하지 못하도록 없애면 마계의 주인께서 신이 예정한 예언보다 일찍, 그리고 더 강력한 방식으로 인간들의 왕을 ‘멸망의 아들’로 각성시킬 수 있어. 확정된 미래를 뒤흔들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

   사악함의 응집체들은 피차 바라보며 킥킥거리면서 흉측한 지옥의 향기를 내뿜었다. 그들은 광란의 메아리를 자아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한 악취의 향기가 공명하고 뒤섞여 둘째 하늘 전역에 죽음의 교향곡을 물들였다. 악의로 가득한 음모가 영계를 넘어 현실계에까지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

 

 

 

 

   우주 환경 적응을 위한 우주선 내에서의 하루 간의 짧은 훈련을 마치자 드디어 본격적인 출발일이 찾아왔다. 각 선교팀을 태운 우주선은 본체와 결합하여 태양계의 한복판으로 사출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은하 곳곳의 하늘도시에 흩어놓기 위한 준비가 어느 정도는 진행되었다고 판단한 우주선들은 차차 하늘도시 수색 작업에 돌입했다. 다행히 대다수의 하늘도시가 예전보다 은폐 강도와 진입 난이도가 감소한 상태였기에 발색은 손쉬웠다. 더욱이 과학 기술의 경이로운 발전에 힘입은 덕분에 탐색, 광년 단위의 순간이동, 그리고 하늘도시와의 도킹과 같은 절차들도 전반적으로 전보다 단순화될 예정이었다.

   윤혁과 두 동료는 본 함 내부에서 우주 적응 훈련에 더해 신형으로 개량된 인형을 조종하는 훈련을 간략히 수료한 뒤 인공지능 함장으로부터 앞으로의 여행 일정에 대한 공지를 전달받았다. 윤혁 일행과 달리 이번에 우주에 나가보는 경험이 처음인 다른 팀들은 일부러 추가 훈련을 받을 겸 천천히 목적지를 탐색하며 이동할 예정이었다. 반면 윤혁 팀은 이미 경험이 충분했기에 굳이 늦출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함은 곧바로 목적지를 정해 항해를 개시할 채비를 했다.

   “앞으로는 하늘도시들과 행성들 사이에서 일반인들도 마음대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겠지.”

   윤혁이 고양된 어조로 말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글쎄? 과연 그것이 좋은 흐름일지는 모르겠네.”

   리온은 씁쓸함과 냉소가 담긴 어투로 대답했다.

   “아나스타샤 씨의 예측대로 정말 지구 인류가 뿔뿔이 흩어질까?”

   개막 직전의 우주여행 시대를 바라보며 루디아의 고민은 문득 다른 부분에 닿았다. 그녀는 고향을 잃거나 민족 정체성을 위협당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스러운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기에 아나스타샤의 예고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윤혁은 근심하는 루디아를 다독이며 위로해주었다.

   “최소한 이스라엘 족속은 세상 권세자들의 계획에 휘말리지 않을 거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체성이 존속될 것을 약속하셨으니까.”

   이에 리온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구 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실존하셔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를 목도하게 되겠지. 물론 그래도 자기 마음을 열고 믿으려 들지는 않겠지만.”

   이천 년 전에는 유대인들이 자기 땅에 강림한 메시아를 거절한 대가로 지구 위 모든 국가로 뿔뿔이 흩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조만간 이방 민족이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인가? 장래는커녕 내일 일도 모르는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아직 섣불리 자신만만한 장담을 하기 어려웠다. 그저 말씀의 권위를 신뢰할 뿐.

 

 

 

 

 

 

 

 

*

 

 

 

 

 

   워프 가동 시각이 이르렀다. 

   선교팀들을 태운 우주선들은 태양계 최외곽을 둘러싸는 다이슨 구체를 차례차례 점프한 뒤 교역용 게이트가 있는 좌표로 워프했다. 유독 태양계만은 이토록 엄격한 출입국 절차를 세워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지구를 모종의 성지로써 삼기 위함이었을까? 여하튼 태양계를 가까스로 벗어난 수천 기의 우주선은 우주 정거장과 게이트의 도움을 받아 미리 수색한 자료대로 각각 다른 은하 내 좌표로 원거리 이동을 시행하였다.

   “헤어지는구나.”

   리온은 겸허히 무릎을 꿇고 지금껏 지구에서의 선교를 함께 맡아주었던 소중한 동역자들, 곧 형제자매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부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님이 정해주신 그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수고의 열매를 풍성히 맺기를. 리온 곁에 있던 윤혁과 루디아도 그 기도에 동참했다. 셋은 서로서로 손을 맞잡아 원을 만든 뒤 소리 내어 기도를 나누었다.

   이것은 축도인 동시에 묵념의 기도였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팀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아니 초인들의 변덕이라도 벌어지지 않으면 사실상의 확정이었다. 더욱이 식민지 주민들과 달리 외부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은 시스템에 의한 동면 처리도 해당 사항이 없을 테니 자연스럽게 늙어 자연사할 가능성이 컸다. 타임필드 내부에서의 시간 흐름을 고려하면, 윤혁 팀의 관점에서 수천의 동료들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승객들이 기도하는 동안 영웅들은 바삐 신경을 곤두세웠다. 신해와 케리와 무디는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보호 대상인 선교사들에게 신변이나 생체 징후의 이상이 생기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원격 모니터링했다. 동시에 워프 과정이나 게이트 통과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인공지능의 돌변이 발생하지 않을지, 그 외에도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거듭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곧 전직 솔져들의 지나칠 정도로 보일 노고가 결코 과한 낭비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슬픈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 반경을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한계는 불확실한 장래 앞에서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윤혁 일행을 태운 소형 함이 두 번째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심상치 않은 오류가 발생했다. 게이트가 형성해낸 인공 웜홀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함이 견디도록 제어해주는 장치가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키더니 연산 오차를 남발하였다. 함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혼란에 빠졌다. 왜냐하면, 함에 내재된 관측 장비로 얻은 데이터들에 의하면 게이트나 함선 자체에서는 오류를 일으킬만한 요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들이 함께 토론해보았으나 뾰족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제일 고차원적 성능을 지닌 인공지능이 나서서 아주 파격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관측되고 분석된 물리계의 현상으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

   그러자 갑자기 해당 의견을 제기한 인공지능이 찌지직거리면서 말문을 흐리더니 강제로 침묵을 당했다. 왜인지는 모르나 나머지 인공지능들이 합심하여 강제로 그것을 해킹하여 입을 닫도록 한 것이었다. 바야흐로 원인조차 전혀 진단하지 못한 채 상황은 난해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어서 함 내에 경보가 울렸다.

   {항법 오류 발생.}

   {웜홀 내부에서의 안정적인 비행 불가능.}

   {임시로 변환된 대체 좌표로 이동 개시.}

   세 영웅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이들 세 전사는 오류의 발생을 알리는 경보가 들려오자마자 본능적으로 불길한 미래를 직감했다. 그들은 황급히 함선 시스템에 접속해 상황을 파악하였다.

   “이건……, 대체 뭐지?”

   “수년간 온갖 사고를 겪었어도 이번 같은 예는 없었는데?”

   당황한 무디와 케리가 재빨리 자신들의 슈트 시스템으로 함의 인공지능 조수들을 강제 해킹하여 문제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신해는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함에 내재된 전투, 방어, 탈출 장비들을 빠르게 분석하며 점검을 개시했다.

   “초자연적 간섭이라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메인 인공지능이 묵살당하기 직전 남겨놓은 데이터의 잔흔을 발견한 케리가 분을 터뜨렸다. 당혹감이 점차 짙어졌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들이 미지의 위험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

   {통상 우주로 방출합니다.}

   {고열 및 고중력 환경 감지. 엔진 폭주 반응으로 예상.}

   {비상사태를 대비하여서 함의 자율 방어 레벨을 세 단계 상승.}

   굉음과 함께 함 전체가 뒤흔들렸다. 정상적으로 웜홀에서 방출될 때 나타나는 통상의 부작용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불안정 현상 때문에 본체가 웜홀 벽을 뚫고 이탈해 엉뚱한 차원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다고 판단한 함선 인공지능은 항로를 재해석해서 자의적으로 전혀 다른 좌표로 빠져나왔다. 인간 측에서 준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의 방출이었다.

   “크윽.”

   “뭐지?”

   느닷없는 충격파에 윤혁 일행까지도 당황했다. 다행히 안전장치가 빠르게 발동되었고 생명 보호 캡슐이 셋의 몸을 일차적으로 둘러쌌기에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그러나 정작 진정한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어이, 여기는 분명…….”

   관측용 모니터를 살펴본 무디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말도 안 돼. 왜 하필…….”

   케리도 눈앞에 무엇이 출현했는지 깨닫고 무력감에 말끝을 흐렸다. 신해도 몹시 당황했다. 전신에서 흐르는 땀이 두려움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열기로 인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바깥에는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 중력 반응. 안쪽으로 끌려갑니다.}

   {함 200중 코팅 시작. 열에너지 상쇄 소자를 활성화.}

   개조된 항성, ‘솔라 타나토스’ 알파(α) 타입.

   그 거대한 불덩어리가 불과 수천 km 앞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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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초인들의 세계 Chapter 8. 폭발 편 참조.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사악한 흑암의 권세가 실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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