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9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8. 불구덩이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12 | 회차평점 0 0

 

 

 

 

 

 

 

*

 

 

 

 

 

 

   사실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중력의 음압이 고속으로 함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여기에 항성 내부 시설에서 인공적으로 형성된 자연계의 11번째 기본 힘이 중력가속도 위에 첨가되어 추락을 더욱 부추겼다. 항성 자체에서 형성된 타임필드 덕분에 외부 시간축과의 시간 어긋남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기에 이곳 안에서 귀한 세월을 낭비할 염려는 없었다. 다만 목숨 부지가 관건이었다.

   물론 쉽사리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함에도 방어 시스템과 실드과 특수 장갑이 있었고 이것들이 반사적으로 발동되어 항성 엔진의 고열과 에너지 피격, 무저갱을 연상케하는 거대 구멍에서 나오는 입자가속기 충격파, 그리고 변형 구조물의 물리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이런 물리력 상쇄도 서서히 한계에 달했고 이제는 상쇄되지 못한 관성 충격파가 슬슬 함 내부로 스며들었다.

   한편 함선 최종 단계 활성화를 위한 생체 코드 인식까지 수행한 케리와 무디는 조종석에서 모든 확률의 갈림길, 곧 유리하거나 불리한 모든 시나리오와 각각에 대한 타개 전략을 구상한 뒤 이를 실제적으로 반영하는 프로그래밍을 수행해보았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 의거한 결과 성공 확률은 0.00001% 미만으로 계산될 뿐이었다.

   “젠장.”

   “틀렸어.”

   휴먼 솔져들은 본래 가능성이 적은 임무에는 뛰어들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그들의 일은 불확실한 인간의 정신력을 무기 삼아 안 될 일을 되게 하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 싸움만을 찾아서 수행하는 것. 케리와 무디도 그렇게 훈련받았었다. 그러므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타파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해보자.”

   그때 신해가 둘 뒤에 선 채 의연한 자태로 말했다.

   “어이, 이봐!”

   “소용없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이런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최악의 상황을 이미 예견한 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만류했다. 하지만 신해는 진지한 각오를 머금은 얼굴로 그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케리와 무디는 잠깐 멈칫거리며 말문을 닫았다. 그들은 죽음이 확실시되기 직전에 이렇게 담담함을 유지하며 전선에 뛰어드는 영웅을 본 일이 없었다.

   “이미 시뮬레이션 결과는 전부 나왔다. 탈출 확률은 극히 낮아.”

   “알고 있어.”

   의문을 표하는 케리에게 신해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등을 맡긴 시민들이 있어. 그들을 구하는 일이 우리의 책임이고.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온 힘을 다해서 싸워서 가능성을 뚫어봐야 하지 않겠어?”

   성공률이 아닌, 책임감과 희생이라는 변수를 대입한 방정식. 솔져가 아닌, 영웅으로서의 신해이기에 내릴 수 있는 답변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부탁할게. 지휘는 내가 책임질 테니 너희는 힘을 보태줘.”

   신해의 영혼 깊숙이 새겨진 고귀한 가치를 은연 중 엿본 무디는 말없이 적잖이 놀랐다. 굳건한 믿음. 대체 무엇을 신뢰하고 있기에 저럴 수 있을까?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싸움의 압박감마저 극복하는 정신력, 그 근원이 궁금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글쎄. 예전 같았으면 내 능력, 나의 무장, 내 환경적 조건, 이런 것들을 잘 연산해서 수학적으로 도출한 가능성을 믿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되네. 너희에게는 아직 와닿지 않겠지만.”

   신해의 홀가분한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동료들에게는 안심시키는 독려의 손길처럼 다가왔다. 물론 이유가 공감될 턱은 없었다. 혹시 남다른 정신적 훈련 기법이라도 소유한 것인가? 두 사람으로서는 그 이상의 추측의 나래를 펼치기 힘들었다.

   “불확실한 감정과 직감에 의지하라는 말인가?”

   “틀려. 오히려 우리의 이성보다 더 확실한 존재를 믿어달라는 뜻이야.”

   신해는 잠시 동료 둘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난데없는 그 행동에 당황했으나 저도 모르게 밀려오는 차분함에 잠시 굴복하였다. 먼저 신해는 눈을 감고 혼자 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그 뒤에는 두 사람에게 기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얼떨결에 케리와 무디는 신해가 소리내어 읊조리는 담대한 기도를 묵묵히 감상하며 묵념하였다. 긴장감과 두려움 때문인지 내용을 인식할 정신도 없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심장 속의 폭풍우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다시 눈을 뜬 신해는 평온한 패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던 중 내게 엄중히 명령하셨어. 우리 뒤에 놓여있는 세 친구, 그리고 너희 둘까지……, 전부 다 안전하게 살려내라고 하시네. 마땅히 가야 할 곳까지 데려다 놓으라고 말이야.”

   육성으로 들린 계시의 음성은 아니나 마음에 닿은 그 세미한 목소리는 분명 의심의 여지가 없이 그분의 가르침이었다. 신해의 꺾이지 않는 확신이 두 사람의 불안감마저도 일시적으로 억눌렀다.

   “그분께서는 사람이나 확률과는 달리 완전히 신실하신 분이거든. 내게 불가능한 일을 시키진 않으실 거야. 그러니 일단은 그분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싸워볼 생각이야.”

   평소 같았으면 신이니 말씀이니 하는 비이성적인 소리 따위는 믿지 않았을 두 동료도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저절로 마음이 겸허해졌다. 이번만큼만은 이상하리만큼 신해의 무모한 선언에 신뢰를 걸고 싶어졌다.

   세 사람은 다시 손을 맞잡고 짧게 기도하였다. 무디와 케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료의 기도에 진지하게 동참했다. 그가 믿는 분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자신들을 이 순간 돌아봐주시기를. 그 바람만은 진심이었다.

   ‘우리가 무사히 이 일을 마칠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어주시길.’

   ‘당신께서 우리의 절규를 듣고 계신지, 아니 살아계신지 아닌지도 솔직히 확신이 없지만, 비겁한 태도로나마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어봅니다.’

   물론 막상 그렇게 하고도 믿음은 쉬이 들지 않았다.

   “……이건 미친 일이야.”

   “그래. 하지만 어차피 이 마당에 손해 볼 것도 없겠군.”

   케리와 무디는 다 내려놓는 마음으로 신해의 지휘를 따르기로 동의했다.

   “나는 지금부터 함 자체가 될게.”

   신해는 이식된 오른팔, 곧 그의 개인 소유의 생체 병기를 변형시킨 뒤 함 전체의 메인 컴퓨터와 융화시켰다. 곧 신해의 정신은 함에서 아직 정상 가동 중이던 인공지능들과 연계되었다. 마치 실이 여러 구슬을 꿰듯, 인간의 마음이 여러 인공지능들을 엮는 중심축이 되었다. 이제 함은 신해의 몸과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세 영웅의 특수 생체 코드를 사용한 인증 절차까지 최종 완료되었다. 이제는 함에 내재된 잠재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인 승부를 걸 차례가 되었다.

   “케리는 나를 보조해줘. 네 소유의 보조 무장, 인터셉터, 드론들을 이용해서 우주선의 안과 밖에서 엄호해주고 유사시에는 우주선 특수 시설의 수동 제어를 부탁한다.”

   “오케이, 알겠다.”

   이번에는 무디가 신속한 어조로 자신의 역할을 물었다.

   “내가 도울 일은?”

   “네 슈트에 이식된 특수 이능력이 1천 종류라 했었지?”

   “그렇다만.”

   “좋아. 이 함선을 매개체로 삼아서 가능한 모든 이능력을 극대화해줘. 함에 설치된 모든 증폭용 시설들을 죄다 공명하게끔 하면 함대급 규모로 증폭될 거야.”

   휴먼 솔져들 중에는 슈트를 매개로 외부 이능력을 조종하는 데 특출한 재주를 지닌 이들이 몇몇 있었다. 이들은 바이오닉 솔져처럼 완벽하게 자기 몸과 이능력을 융합시키지는 못해도 적절한 수준의 보조 장구의 도움을 받으면 그와 거의 유사한 특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무디도 그러한 예였다.

   그리고 이렇게 슈트에 설치된 이능력 중에는 우주선과 같은 거대 시설을 통해 출력 증폭이 가능한 종류도 꽤 있었다. 보통 솔져 시절에 쓰던 우주선에는 자체적인 특수 기능이 많았기에 굳이 개인 슈트의 힘을 복제해서 빌릴 필요가 없었으나 지금과 같이 민간용 우주선을 억지로 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작은 도구 하나하나가 매우 아쉬웠다.

   전략 브리핑을 마친 세 영웅은 즉시 자신의 위치로 이동해 신속하게 준비를 마쳤다. 신해의 정신과 하나로 융합된 함은 일시적으로 전함 모드로 물리적 형태를 변형하였다. 오늘날은 일반 자동차마저 과거 인류 전체의 무력을 능가하는 전술병기로 변신할 수 있는 시대. 기술력과 경제력이 워낙 거대한 규모로 발전하다 보니 이러한 상상을 초월한 사치마저 일상사가 된 것이다. 다만.

   ‘이 모드는 오랫동안 사용하지는 못해.’

   거대한 무력을 아무나 일상적으로 다루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류연합측에서도 모든 생산 라인 위에 모종의 근본적 제약을 걸어두었다. 특수한 신분, 특수한 상황, 특수한 목적이라는 삼박자가 충족될 때만 잠재력 발동이 허락되도록 최근 생산된 모든 기기들과 유닛들과 기체들에 제약을 두었다. 더욱이 기계 율법이 이 규율을 강제했기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회가 불가능했다.

   다행히 현 상황은 그 삼박자에 충족되었다.

 

   특수 모드를 취해 물리적 형태를 변형한 함은 신해의 제어에 더해 무디의 슈트 장착형 이능력을 빌린 뒤 새로 얻은 그 기능을 통해 공간을 발디딤돌로 삼아 도약하였다. 중력을 거스른, 물리법칙마저 넘어선 기행. 그 질주를 방해하려는 듯이 진로 앞쪽에 수천 기의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항성 내에 탑재된 이물질 제거 장치, 곧 항성의 면역 세포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함은 상상을 초월한 극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모든 장애물들을 회피하였다. 공간을 휘저으며 변칙적인 궤적 곡선을 그리며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시현 불가능한 극한의 서커스를 선보였다. 칼라비-야우 디멘션들의 미세한 틈들을 활용하는 묘기 중의 묘기, 일반 모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기행이었다.

   {전방에 천 km 지름의 장애물 돌진 중. 회피 불가.}

   “그냥 박아.”

   신해와 융화된 함선은 단거리 공간 도약 전법을 변칙적으로 응용함으로써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부분적으로 찢어버렸다. 초정밀 단위 연산 기능이 없었더라면, 아니 그것이 있더라도 극소량의 오차만 났었더라면 함 쪽이 단번에 산산조각 났을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신해는 실패 확률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젓이 이를 성공시켰다.

   {항성 중심에서부터 고밀도의 플레어 방출.}

   또 한 번의 파도.

   {초 냉각 시스템 발동.}

   {함의 방어 기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스템이 도움을 청하자 신해는 즉각 외쳤다.

   “무디, 환상 차원형 공간 빙결 능력을 함에 공명시켜!”

   “알고 있다.”

   히어로의 고유 능력이 함의 본체와 동조되었다. 즉각 함의 몸통에서 기이한 양상의 냉기가 발동되었다. 신해는 그 냉기로 인해 생성된 얼음 구조물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함을 위쪽으로 도약시켰다. 질세라 무저갱 아래로부터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함은 신들린 듯한 동작으로 불길의 약한 틈새로 요리조리 회피하였다. 동시에 적절하게 타이밍을 계산하여 간헐적으로 냉각 모드를 발동하였다.

   “케리, 부탁할게.”

   “오케이, 모노폴(mono-pole, 자기홀극자)과 그래비티 캐논, 점검 완료.”

   케리는 함의 인공지능들과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보조 장비들을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악기들을 다스리듯 정밀하게 조종하였다. 곧 미리 연산되고 조율된 자기 홀극 소자가 포의 형태로 분사되어 솔로 타나토스의 인위적 자기장을 상쇄하였다. 그 틈에 보조 유닛들은 그래비티 캐논을 쏘아 장애물들을 부수었다. 동시에 함 본체는 캐논의 충격으로 인한 반작용을 가상의 발판으로 삼아 중력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배수진 앞에 놓인 세 영웅은 이후로도 이판사판으로 덤볐다. 그들은 자신들의 두뇌로 생각할 수 있는 도박 행위를 남김 없이 취했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였으나 하늘이 도운 것인지 매 순간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의 경우의 수가 현실이 되었다. 영웅들은 가까스로 허들을 통과하며 위기를 한겹 한겹 비켜나갔다. 맹세코 이전의 전투 경력을 다 계수해도 이번만큼 아슬아슬하게 살떨리는 임무는 없었다.

   어느 순간 그들은 깨달았다. 몸을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의 영향력이 이상하리만큼 약해졌다. 오히려 역설적인 생기가 넘쳐났다. 아드레날린보다 강렬하면서 에로스보다 달콤한 희열이 세 사람의 몸을 지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 속에서 셋은 진정한 한 연합체가 될 수 있었다. 뇌와 신경과 육체가 온전한 조화를 이루듯 신해와 케리와 무디와 함선은 물아일체가 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낙심하지 맙시다.
이전회

28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8. 불구덩이 (2)
등록일 2024-02-10 | 조회수 95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29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8. 불구덩이 (4)
등록일 2024-02-14 | 조회수 86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