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9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39. 역병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24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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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수고 끝에 마침내 윤혁은 네트워크 연결을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셋은 진척을 몹시 기뻐했다. 이제야 인형 머릿속에 내재된 컴퓨터를 이용해서 직접 영상, 음성, 문자 자료 따위를 제1구역 전자기기들에 옮겨 심는게 가능해졌다.
“눈앞에 직접 컴퓨터 화면이 떠오르네?”
“진짜 로봇이 된 기분이야.”
리온과 루디아는 인형 몸을 이용해 전자기기에 간섭하고 조작하는 작용에 금세 익숙해졌다. 인형 자체가 기계학적 기전에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작동하도록 설계된 물건이었기에 별도의 전자 공학 지식도 필요 없었다. 그저 사지를 다루듯 감각에 맡긴 채 자유자재로 조종하면 그만이었다.
“고맙다. 역시 넌 듬직하네.”
윤혁은 쑥스러워하며 리온의 칭찬을 받아쳤다.
“뭘, 이런 일이라도 맡아줘야 밥값이라도 하지.”
일행은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지역 사람들을 질책하거나 비난하는 것으로 오해받을만한 설교는 자제하기로 했다.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원래 조금만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분을 터뜨리기 쉬운 법. 오히려 그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허락된 고통 속에 숨겨진 사랑의 비밀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각자 성경 텍스트 파일을 접촉 가능한 포털 사이트마다 업로드하자.”
“라져.”
지구에서 사용하던 네트워크와는 디자인도 운용방식도 상이해서 처음에는 다루는데 애먹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 네트워크 디자인도 대강 눈에 익었다. 일행은 사람들이 언제든 출력해서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전송했다. 아울러 왜 이 성경에 진리가 담겨있으며, 이 책에서 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짤막한 복음의 메시지도 전도지 형식으로 첨부했다.
이어서 리온은 미리 준비해둔 자료, 과거에 지구에서 여러 선교 단체들이 사용했던 글과 서적들을 한데 모아서 배포했다. 성경에 관한 설교, 해석본, 주제별 성경 공부 자료 등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자극하는 자료들이었다. 21세기 초에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축적된 유용한 신앙의 글,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이 돌고 돌면서 사람들도 곧 주님에 대해서 듣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경청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루디아는 직접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과연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는 이들의 마음을 깊이 공감할 줄 알았다. 본인 역시 난민 생활을 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이 순간 현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희망. 물과 공기가 없어도 찰나는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일분일초도 살아갈 수 없다. 지옥에서의 실존이란 것도 결국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태로 후회 가운데 사는 것이 본질이 아닐까?
‘다행히 저들에게는 아직 소망의 끈이 남아있어.’
무한히 반복되는 육체의 고통.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괴로움. 더 기막힌 바는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절망감. 그러나 아직 그들은 살아있기에 기회가 있었다. 희미한 한 줄기 빛은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를 뿐.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일이 절실했다. 루디아는 자신이 삶을 통해 만난 하나님을 고백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고통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전해주었다.
“때로는 그분께서 혹시나 나를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지, 나 같은 것의 고통은 신경 쓰지 않거나 가볍게 여기시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참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분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하심을 보게 될 거에요.”
몇몇 이들은 그 막연하게 들리는 이야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기울였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세요. 그분은 아주 가까이에, 팔을 뻗치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계세요. 여러분을 만나길 원하셔요. 어떤 방해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분께 다가가고 계세요. 심지어 여러분이 그분을 싫어하는 순간에도 말이죠.”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을 만날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주었다.
“골고다의 언덕. 그 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버림을 통해 여러분을 구하려 하셨어요. 질병의 고통이나 육체의 고난보다 훨씬 더 두렵고 끔찍한 저주, 곧 죄악과 영혼의 죽음이라는 괴로움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요.”
그녀의 마음은 우주에서 가장 큰 고난을 묵묵히 견뎌주신 그 사람, 곧 사람들의 마음과 고통을 감당하고자 자신의 존재를 낮추신 신께 집중되었다. 그분의 겸손한 위업을 증거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언덕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나약한 인간이 되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담담히 짊어지셨어요. 그분은 여러분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모든 괴로움과 구속으로부터 여러분을 놓아주기 위해 가장 큰 사랑을 선물로 주셨어요.”
‘룻, 나는 네 그 따뜻한 사랑이 존경스러워.’
윤혁도 있는 힘껏 루디아의 전도에 힘을 보탰다. 그는 질병의 실상에 대해서 밝힐 의향도 있었으나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섣부른 추측이라 증거도 없고 설령 말한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대신 한 가지 부분만은 명확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윤혁은 음성과 텍스트의 형태로 네트워크상에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은 하나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고통이 그분의 창조 섭리는 아니라는 점이에요. 우리 인간들이 그분의 뜻을 떠나 정면으로 반역을 저질렀어요. 그리고 그로 인해 세상에는 온갖 악한 것들이 부작용으로 나타났죠. 안타깝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공의로우세요. 그분께는 잘못이 전혀 없어요.”
그러자 혹자는 물었다. 왜 신께서 세상을 고통 속에 버려두시냐고.
“왜냐하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란 죄 곧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받는 고통이 가장 큰 것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만일 죗값을 씻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는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게 돼요. 영원한 형벌이죠. 슬프지만 그 형벌은 지극히 정당한 벌입니다.”
언뜻 듣기에 윤혁의 대답은 위로보다는 냉정에 가까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분을 발견하고 그분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세요. 아무도 영원의 형벌을 받길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그분은 일부러 죄의 부산물들인 고통이 세상에 존재토록 허하셨죠. 자세한 섭리에 대해서는 인간인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분의 뜻이 선하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유한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버거운,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상처의 치료는 사탕발린 달콤한 위로로의 도피가 아닌, 쓰디쓴 진리로의 회귀에서 임하는 법.
“지금의 고통은 그분의 우리를 향한 책망입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고난들은 그분의 애타는 촉구이지, 영원한 끊어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그분을 부르세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많은 인간이 삶이 괴로움의 절벽에 이르는 순간 “신이란 없어”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상 그 부르짖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어쩌면 ‘하나님 당신이 정말 계신다면 제발 절 찾아주세요’라는 외침의 반어적인 표현이 아닐까? 진정 신이 없다고 믿었더라면 신을 저주하지 않았으리라. 어차피 만물이 적자생존과 우연의 연속에 불과하다면 고통도 악도 환상에 불과하니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원망이란 결국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괴로움 가운데 표출된 역설일 뿐. 불평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엄연히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심겨져 있기에 본능적으로 신을 찾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윤혁은 토론과 더불어 진지한 권면과 묵상과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 과정은 사람들을 변증법적으로 설득하는 데보다는 도리어 본인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어느 덧 윤혁은 고난의 무게감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전보다 더욱 깊고 풍성해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 여행과는 달리 사람들의 회심 반응을 가시적으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려워하는 이웃들과 영적인 자아 성찰을 나누며 아픔을 덜어주는 일도 상당한 보람이 있었다.
한편, 리온은 온라인상에서 글과 음성으로 설교를 전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렇게 헌신하는 사이에 어느덧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목회자의 자질이 충분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1차 여행 때 겪었던 체험과 하나님께 배운 겸손함까지 더해지면서 비로소 숨겨진 은사가 흙 속의 진주처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시편 119편을 비롯해 고난 중에 거하는 자들에 의해 쓰여진 여러 시편을 설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 그리고 고난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합리적이고 쉽게 전해주었다. 그의 가르침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도 차차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당신과 좀 더 심도 깊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신앙상담까지 요청했다. 리온은 누구의 요청도 뿌리치지 않고 성실히 답했다.
비록 비대면이라는 제약 탓에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리온은 이번 기회를 통해 비약적인 영적 성장을 이룩했다. 온라인 사역을 하면서 진리를 가감없이 전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어졌으며 변증 능력도 체계적으로 다듬어졌다.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능력 또한 크게 향상되었다.
훗날 일행이 떠나간 후에도 적잖은 이들이 당시 잠시 스쳐갔던 그 이름 없는 의문의 지혜자를 추억하며 아쉬워했다. 자신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주면서 진리의 증언을 호흡하듯 내쉬어주었던 분. 물론 거슬리고 찔리는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들 그가 정직한 영의 소유자였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분명 그는 얼굴도 모르던 그들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었지만 결단코 아첨하지는 않았다. 잘못은 잘못대로, 실수는 실수대로 엄격하게 꾸짖었다. 진리와 거짓을 선명히 분간해주었다. 걸림돌이 되기 쉬운 조건이었으나 막상 리온이 떠나간 후에는 그러한 그의 정직함을 아쉬워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윤혁은 성장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내심 부러움을 느꼈다.
‘분명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목회자가 될 거야.’
세 사람의 제1구역에서의 선교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 사역으로만 이루어졌다. 하늘도시 내부 시간 기준으로 6일간의 준비 및 탐색 기간, 14일간의 본 활동까지 총 20일이 소요되었다. 그 동안 함은 여전히 정체불명의 필드에 갇힌 채 지속적인 통신 간섭을 받았다. 20일째가 되었을 때 제1구역에 파견된 세 선교사의 인형은 본체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교사들은 다른 인형 세트에 재접속해 여정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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