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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9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0. 기계들의 통치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2.28 | 회차평점 0 0

 

 

 

 

 

 

 

*

 

 

 

 

 

 

   제2구역.

   그곳은 흡사 지구의 중국이나 시베리아처럼 하나의 커다란 벌판으로 구성된 평탄한 대륙 지역이었다. 지리적 장애물도 없었으며고 기후나 계절도 농작물을 수확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선교사들이 채취한 지역 주민들의 실제 증언 및 기록 사료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이 기억하는 한 지난 수백 년 동안 제2구역에는 전쟁다운 전쟁은커녕 시시콜콜한 다툼 한 번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그 말만 들으면 그야말로 평화와 번영의 땅이었던 셈이다.

   적어도 기계들이 개발되어 범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거 산업 개혁 초기 로봇과 기계가 처음 발명되었을 시절 사람들은 낙관적인 장밋빛의 미래를 예견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비록 외부인의 전지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현지 주민이 모르는 외부 세력의 개입이 영향을 끼친 결과였다. 어쨌건 이를 모르는 내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오롯이 그들의 지혜를 통해 이룩해낸 결실이었다.

   충분히 자부할만한 수준의 다섯 차례의 산업 혁명, 그 최후의 결실로써 탄생한 특이점이 바로 인공지능과 그 지배를 받는 기계들이었다. 이 발명의 성공에 힘입어 사람들 사이에는 마침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임하리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다. 구태여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로봇과 컴퓨터들이 일을 대신에 해주니 굳이 일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일대기를 여기까지만 들으면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네 명의 선교사들은 이것이 21세기 지구에서 벌어진 역사와 거의 비슷한 흐름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제2구역이 겪은 역사는 지구와는 아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들은 ‘자율성 상실’이 내포한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지구도 기계들에게 주권을 내줄뻔한 위기의 골짜기는 지나왔다. 하지만 적어도 지구에서는 일자리의 상실로 인한 사회 문제라는 실질적 부작용에 대한 염러 때문이라도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진화를 철저히 경계했었다. 자연히 이에 대비해서 인류는 인간 스스로 도구의 도움 없이 진보하고자 많은 실험과 도전을 병행하였고 그 열매를 거두었다. 그 열매는 위험 또한 예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지구 역사를 돌아보면 21세기 후반 무렵에 가서는 세계 각지에서 그토록 우려했던 소위 ‘기계들의 반란’ 및 유사 현상들이 벌어졌지만, 미리 착실히 대비한 덕인지 대부분의 참사는 예방되었고 기껏해야 국소적인 수준으로 피해 범위를 제한할 수 있었다. 최종 승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몫이었다. 모든 인간이 기계로부터의 자율성과 우위를 얻진 못했지만, 적어도 종족 전체가 속박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사한 역사를 거쳐 진보했던 제2구역의 결말은 불행히도 지구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기계에 과도하게 의지한 끝에 인간 고유의 존엄성과 주권을 탈취당하고야 말았다. 패착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기계의 잠재력을 간과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줄 초인 같은 인재가 부재한 탓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2구역은 참사에 준하는 비극을 겪었다.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계 세력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인간은 주권을 찬탈당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기계들은 모종의 이유에 의해서인지 인간의 생명과 육체만큼은 절대 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자비의 전부였다.

   군웅할거 시대를 연상시키는 일이 전개되었다.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킨 기계들로 인해 인간들의 나라는 공중분해되어 뿔뿔이 해산되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한순간에 기계들에 의해 길러지는 노예 내지는 가축 신세로 전락했다. 죽지는 않았으나 존엄성은 바닥으로 추락한 격이었다.

   이것이 선교사들이 파악한 제2구역의 비애 서린 역사의 전말이었다. 이런 전황을 본 마당에 최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했다. 몸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또 과거의 역사를 덮어두고 믿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자세하게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정말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펼쳐졌던 걸까?“

   이미 오래 전에 점령당하여 모든 정보를 통제당하는 처지인 인간들의 증언에만 의존하기에는 결론을 내리기 무리가 있었다. 일행은 직접적인 탐색을 통해 진실을 보고 들어야겠노라고 판단했다.

 

   주어진 기한은 한 달 남짓. 시간이 부족한 그들은 신속히 행동에 나섰다. 윤혁 일행은 본인들이 빌린 인형 몸체의 비행 모드를 활용해 여러 지역을 두루 날아다니며 재빠르게 제2구역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폈다. 오랜 관찰 후, 그들은 꽤 많은 유익한 정보를 건졌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편의상 제2구역이라고 지칭되는 이 대륙에는 무려 800개가 넘는 국가 체계가 여기저기에 공존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그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사람이 세운 정부가 아닌 인공지능들이 각기 다른 식으로 지배자 노릇을 하는 괴뢰 정부들이라는 점이었다.

   기계 정부들의 지배 방식은 제각기 매우 다양했다. 제정, 왕정, 공화정 등으로 분류되는 인류 역사의 정치 체계 분류는 지나치게 단순한 분류법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지배 주축이 되는 인공지능들이 서열 구성을 이룰 때 사용하는 수학적 패턴이 워낙 변화무쌍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통치적 이념은 아무리 다양해봐야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기계에게 있어 통치란 운영 체계와도 같기에 그 복잡성은 기술력의 다양성에 비례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보유한 하나의 컴퓨터가 집권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본체로서의 하드웨어조차 없는 소프트웨어가 지배자 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그친다면 양호했을터.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이두 정치, 삼두정치, 사두정치 등의 온갖 기괴한 아형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정치 철학과 기계론적인 수학 원리가 뒤범벅된, 해석 불가의 변주곡들이 각지에 난무했다. 일관되지 않은 원리의 복합적 지배 방식이 실현되는 곳들도 있었다.

   한편 통치 체계를 이루는 구성 성분들도 대단히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무릇 통치란 적절한 균형 유지를 위해 분할되고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법. 기계들은 이 과제에 있어서도 별의별 아이디어를 고안해내어 현실화화였다.

   영과 혼과 육을 모방한 삼원론 방식의 양태를 소유한 인공지능이 있는가 하면, 영혼과 육을 모방한 듯한 이원론 양태의 인공지능도 존재했다. 여러 인공지능이 연합하여 공화정마냥 공정하게 견제와 토의를 행하여 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아예 수많은 정신체들이 하나의 신경망처럼 융합되어서 ‘하이브 브레인’을 형성한 뒤 실질적인 독재 양태로 변질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로 위의 정보들은 윤혁이 자기가 쓰는 인형 몸체에 내장된 CPU를 써서 해킹함으로써 겨우 얻어낸 자료들이었다. 윤혁은 좀 더 알아보고자 통치자 행세 하는 기계들의 핵심 서버에까지 간섭해보고자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인형의 기술적 우위를 활용해도 그 단계까지는 무리였다.

   ‘잘 안 풀리네.’

   아무래도 선교사들의 인형과 현지 기계들 사이에서는 밀접한 교류나 간섭을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방벽이 놓여 있는 듯했다. 보안 또는 안전 문제이겠지. 현재로서는 대강의 현상 정보 파악이 최선이었다.

   “모델 사양 자체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겠지? 너무 애쓰지 마.”

   거듭 해킹에 실패하여 근심하는 윤혁을 리온이 위로하듯 만류하였다. 아마추어긴 하지만 누가 공학자 아니랄까봐, 윤혁은 문제가 생각대로 잘 안 풀리면 쉽사리 고민과 집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좋은 면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괜히 지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냐, 원래대로라면 쉽게 풀려야 정상이야.”

   윤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 인류의 기계 시스템은 상위의 존재가 하위의 존재를 침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야. 여긴 인류연합 본진의 문명보다 몇천 세대 이상 뒤떨어진 곳이잖아. 그럼 우리가 쓰는 인형 모듈로 충분히 정복되어야 한단 말이지.”

   “하지만 이곳 기계들은 이곳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 아냐? 아예 발전 과정이 다르니 문명 기동의 메커니즘 또한 다를 텐데? 그런데도 강제 지배가 먹힌다고?”

   “기계 율법, 그 기묘한 통치 알고리즘은 원래 그런 속성을 지녔거든.”

   이미 일전에 공대 친구들과 교수들에게 배웠던 윤혁은 이런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공학도가 되지는 못하는 법. 윤혁은 기계들과 기계 율법의 계통 원리를 잘 모르는 두 친구에게 밑바탕부터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떤 사양의 하드웨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건 강제적으로 침식하여 점령하는 것이 가능한 기계 율법의 무시무시한 힘에 대해서.

   “율법이라는 용어, 그런 식으로 적용하다니, 뭔가 꺼림칙한걸.”  

   기계문명에 친숙치 않은 루디아도 적잖은 불길함을 느꼈다. 

   “뭐 윤혁 네가 이 분야는 잘 아니까 네 말이 옳겠지.”

   리온은 그러려니 하고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말야, 의문점이 하나 든단 말야.” 

   그는 윤혁은 설명을 들으면서 석연치 않은 한 가지 부분을 되짚었다.

   “어떤 게?”

   “네 말대로 기계 율법이란 것에 하드웨어나 통신 방식에 시공간적 구애를 받지 않는 범-지배 능력이 있고 그 덕분에 22세기 지구에서는 ‘기계들의 반란’이란 개념이 사실상 소멸하였다면……, 현 인류연합은 지금 이곳 제2구역에서 현지 주민들이 개발해낸 기계들 또한 완벽히 지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순간 윤혁은 말문이 막혔다. 아주 단순한 고찰로도 쉽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인데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다니.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웠다.

   “그렇군.”

   사실 이전에도 윤혁은 그런 상황을 본 기억이 있었다. 바로 형과 함께 떠났던 첫 우주여행. 그 원정은 분명 인류가 최초로 다른 은하들을 무력으로 정복해냈던 기념비적인 정복전이었다. 비록 일개 방관자요 관람자로서 동참했긴 했으나 그 장면을 윤혁도 똑똑히 기억했다.

   그때도 분명 그 다른 은하에는 인류연합 세력과는 별개로 생성된 기계문명이 존재했었다. 아마 인간의 기술이 기원이 되긴 했겠지만, 인류연합에서는 떨어져 나간, 최소한 우호적이지는 못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리는 불과 몇 분 만에 기계 율법에 침식당해 종으로 전락했었다.

   ‘무려 다른 은하 몇을 집어삼키고 생성된 기계 세력마저도 속수무책이었거늘 기껏해야 하늘도시 내부의 원주민들이 만들어낸 원시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의 기계들이라고 해서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을테지?’

   그렇다면 몹시 이상한 결론이 도출된다. 인류연합은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일부러 기계들의 반란을 내버려 둔 것일까? 주민들에게 모종의 고난을 겪게 하기 위해서?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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