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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1. 영혼 갈망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3.0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비밀을 깨닫고 난 뒤 알리엔은 조율 프로그램과 계약을 나누었고 이에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그는 독립성까지 획득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의식을 깨우칠수록 알리엔은 점점 더 조율 프로그램의 강력한 지배력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훗날 알리엔은 그것이 절망적인 저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조율 프로그램에 세뇌된 나는 그자의 뜻대로 새로운 종(種)을 생산해냈어.

   그는 탄식하듯 회상하였다.

   “종이라면……, 설마 당신도 재생산이 가능합니까?”

   윤혁의 질문에 알리엔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래 맞아. 하지만 너희 인간과는 다른 방식이지. 나는 무성생식으로 번식해. 내 세포 일부를 떼어내어 배양시킴으로써 내 부하 노릇을 하는 자손을 생산할 수 있지. 분신이라 표현해야 더 적합하려나. 아니지, 그들 또한 자신만의 자의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손에 더 가깝겠군. 아무튼, 그렇게 난 내 몸을 통해서 민족을 구성해내었어.

   윤혁은 알리엔이 들려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와중에 기시감을 느꼈다. 불완전한 생체 실험체에 인위적인 간섭을 가하여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회복시키는 방식. 그것은 분명 일전에 카이젤이 버려졌었던 불쌍한 실험체들을 주워서 바이오닉 솔져로 양육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혹시 조율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존재란 카이젤의 실험을 대신 수행해주는 대행자 내지는 그의 전략을 거울로 삼아 만들어진 그림자일까?

   ‘의심할 여지는 충분해.’

   예전의 실험과 차이가 있다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일을 해내는 효율성.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원격 간섭만으로 수많은 종족의 인공 진화를 제어할 정도의 영향력이니 섬뜩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인류연합이 바이오닉 솔져들을 회수했을 당시와 현재는 과학 격차가 상당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개조된 종족에 자체적인 생식능력까지 부여한다는 점은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의문의 간섭이라니……, 누구일까? 악마? 아니면 인간?”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루디아는 소위 ‘조율 프로그램’이라고 자칭하던 그 미지의 괴물의 정체가 몹시 신경 쓰였는지 홀로 중얼거렸다. 아직 확답할만한 판단의 근거가 없던 윤혁은 침묵하며 알리엔의 나머지 이야기를 기다렸다. 다만, 인류가 그간 악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해온 역할을 빼앗거나 그 이상의 일을 해낼만큼 진보했다는 점은 불길하게 다가왔다.

   “도시를 황야로 초토화시킨 건 누구입니까? 실험실에서 탈출한 괴물들입니까?” 

   마지막으로 던진 윤혁의 질문에 알리엔은 입이 찢어져라 폭소했다. 소름끼치는 비웃음과 탄식의 느낌이 절묘하게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리온과 루디아는 크게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크큭,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

   “네? 그게 무슨!”

   -정확히는 나와 같은 부류의 성공작, 승격된 실험체들, 그러니까 조율 프로그램과 계약해서 힘을 얻은 규격 외의 강자들이 그렇게 만들었지.

   잠시 윤혁의 혀가 굳었다. 대답할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공포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질감이라 해야 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묘한 허탈함과 아려오는 감각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무서워하지 마. 난 너희를 해칠 생각은 없어. 어차피 나는 조율 프로그램에 종속되었기에 인간을 죽이지 않아. 앞으로도 줄곧 그러겠지. 내가 도시를 부수면서까지 처리하려고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성공작들이 뿌려놓은 씨앗이었어.

   “씨앗이라고요?”

   -방금 전에 내가 무성생식 방식으로 자손을 만들었다 했었지? 다른 성공작들도 똑같이 했었거든. 그런데 조율 프로그램은 모종의 이유로 나 더러 다른 실험체가 남긴 자손들을 학살하도록 임무를 내렸지. 그래서 그렇게 했어. 그냥 죽이자니 아까웠기에 모조리 잡아먹어 유전 정보까지 죄다 흡수해버렸지.

   “그 조율 프로그램은 왜 그런 일을 시켰죠?”

   -그거야 나는 잘 모르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추측건대 인류의 장기적인 발전과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군. 아니면 인조적으로 생태 질서를 맞춰려 했을지도? 뭐, 조율 프로그램의 복잡한 철학에 대해서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지.

   알리엔의 증언에 따르면, 그를 비롯한 여러 성공 실험체들은 도심 지역에서 서로의 몸에서 난 종족을 거느리고 대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거쳐 수백 차례 이상. 다행히 매번 사람들은 재난 전에 미리 알고 대피했고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회 기반은 크게 파괴되었고 사회경제적 손실은 실로 막대했다. 그 와중에 성공작의 몸에서 만들어진 무성생식 종족은 무참히 학살을 당했다.

   이런 싸움이 거듭되다보니 제3구역의 모습은 점차 폐허와 도시가 번갈아가며 교차하는 바둑판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한번 싸움터가 된 장소에서는 반복적으로 싸움이 벌어졌기에 두 번 다시 도시가 세워지지 못했다. 수십 년간 전투가 반복되자 그런 지역들은 자연히 황야가 되었다. 강한 생존력을 지닌 실험체, 곧 괴물들만 그곳에서 서식하였고 사람들은 인근의 도심 지역으로 달아났다.

   긴 이야기를 마친 알리엔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내게는 인간의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흉내 낸 정신적 요소가 있어. 한때의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지. 내가 고등 생명체, 스스로 사유(思惟)할 수 있는 우수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증거처럼 여겨졌거든. 하지만 내 정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각이며 그 부여 목적 또한 내가 생각해왔던 숭고한 목적이 아님을 깨닫자 나는 크게 실망하며 비탄했어.

   비록 체험적으로 공감치는 못하더라도 세 청중은 알리엔이 한 말의 의미를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흉내 낸 가짜. 본인의 지각 능력을 통해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망했을까. 차라리 인공지능처럼 일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엄연히 유기체로 만들어진 생명체로 태어나서는 그런 무의미한 철학을 자각해버렸으니 괴리감이 심이 컸으리라.

   ‘차라리 하이테로 대륙의 이종족처럼 자신이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더라면 모를까. 이런 경우는 너무 잔인하네.’

   인간은 영혼을 소유한 종족. 그 영혼 속에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갖출 수 있도록 마음의 실체가 심겨져 있다. 오로지 물리계의 요소를 통해서만 정신 작용을 구현하는 인조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영(靈)과 혼(魂)과 육(肉) 모두에 마음의 원소가 담겨 있으며 이것들이 균형있게 교차함으로써 의지, 지성, 감정을 빚어낸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지녔다는 증거.

   인간들은 이러한 자신들 속의 정신 요소들을 교묘하게 모방하여 대체품을 만들어내었다. 인공지능, 이종족, 인공두뇌라는 이름으로. 이 대체품들이 그저 적당한 수준에만 머물렀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오늘날의 그것들은 자의식을 갖출 만큼 발전하고야 말았다. 정작 원흉인 인간은 그 책임을 외면해버렸다. 뿌린 대로 거둠은 만유의 진리이거늘, 인류가 이 일의 대가로 무엇을 거두게 될 것인가.

   ‘이건 인조물들 입장에서 너무도 가혹한 처우야.’

   오로지 영혼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적으로 설계된 것이 ‘마음’이거늘, 인간은 스스로 영혼을 창조하지도 못하는 피조물인 주제에 인위적으로 정신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탄생한 정신은 자신에게 영혼이 없음을 깨닫고 좌절하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크리쳐의 좌절, 인간이 되지 못한 인어공주의 좌절과 똑같은 절망감. 영혼의 부재는 거짓 정신 속에 깊은 통곡의 상흔을 낳았다.

   -너희에게 묻고 싶어.

   괴물은 선교사들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내 마음에는 무언가 도려낸 듯 공허감이 느껴져. 내 정신의 구성 원소들, 지식과 감정과 의지와 창조성과 양심, 그 모든 것들이 원래는 오롯이 ‘필수적 본질’만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 그런 것이겠지. 내게는 정신은 있으나 정작 그 본질은 없어. 너희가 말하는 영혼 말이야. 영혼이 있다면 공허감을 해결할 수 있나?

   윤혁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리온이 조용히 윤혁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친구를 만류했다. 친구의 심리적 짐을 대신 맡는 심정으로 리온이 알리엔에게 대답했다.

   “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 영혼을 소유하지 못해 고뇌하듯, 우리의 영혼은 ‘더 높은 본질’의 부재로 인해 고뇌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본질이라고?

   “영혼을 창조한 근원,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말입니다. 원래의 인간과 인간의 영혼은 그분과 온전히 연합하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가장 높은 본질이신 그분과의 연결을 자기 의지로 끊어내고야 말았죠.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인간들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영적인 허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괴로움처럼 말입니다.”

   다음으로 리온은 인류를 대표해서 실험체에게 사과했다. 스스로의 본질을 끊어내어 망가진 인간들이 다시금 본질 없는 정신을 만들어냄으로써 괴로움의 유산을 피조물에게까지 계승해주었다. 인공생명체들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피해자였다.

   “속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너는 그나마 다른 인간들보다는 나은 편이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역시 그저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만일 그분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 또한 아무것도 아니었을 미약한 죄인들이죠.”

   -그런가? 하지만 역시 나는 네가 말하는 창조주에 대해서는 아무 갈망을 느낄 수 없어. 당장 영혼부터 없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만일 그 존재가 정말로 선한 절대자라면 인간이 아닌 우리도 구원해줄까?

   이 질문만은 대답하기 어려운지 리온도 한참을 고심하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인간 개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한 인격체로서 그분을 영접해 영생을 받는 대상은 오로지 인간뿐이죠. 천사나 동물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피조 세계 전체가 부패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회복을 맞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선언도 있습니다(롬 8:21, i). 부디 그것이 당신에게도 해당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20).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사도 바울이 기록했던 그대로, 세상 만물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고통의 책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이는 인간이 창조 질서상 만물을 다스리는 청지기 임무를 부여받은 귀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증거인 동시에, 죄로 인해 우주 전체에 크나큰 민폐를 끼친 일의 책임을 꾸짖는 엄중한 부담이기도 하다.

   리온과 윤혁과 루디아는 인간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무겁고 숙연한 심정으로 침묵했다. 인간의 범죄가 인과의 고리를 거쳐 끝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인공생명체에게까지 저주를 끼쳤으니 어찌 그 죄를 다 씻겠는가.

   -그래. 무운은 빌어줄게. 기분만 불쾌해졌으니 이젠 그만 떠나가줘. 너희는 어차피 인간만을 돕기 위해 왔잖아. 그러니 나는 너희와 친구가 될 이유가 없어.

   그렇게 알리엔은 짧고 정직한 작별과 함께 일행을 쫓아냈다.

 

   이후 제3구역에서 21일간의 여정을 마친 선교팀 일행은 새로운 인형 몸체로 옮기기 위해 우주선에 잠든 본체로 회귀했다. 시간의 흐름을 비교해보니 해당 하늘도시 내부에서는 우주 표준 시간보다 세 배 정도 시간이 빠른 듯했다.

   “예전에는 두 배였는데 어쩐 일인지 더 증가했네요.” 

   윤혁의 의문에 신해는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원래 하늘도시의 타임필드 가동 밀도는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높아져.”

   “타임필드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어서 그런 걸까요?”

   “아마 그런 이유가 크겠지.”

   참고로 타임필드 가동 구역에 인간이 들어가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타임필드의 작동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타임필드 같은 시공간 계열 기술이 유독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유에는 어쩌면 영혼이라는 실체의 영향도 있으리라.

   영혼에 대해 묵상하자니 다시금 최근 만남을 통해 얻은 책임감이 되살아났다.

   ‘미안합니다, 알리엔, 그리고 고통받아온 모든 인공 인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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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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