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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3. 자연재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3.16 | 회차평점 0 0

 

 

 

 

 

 

Chapter 43. 자연재해

 

 

 

 

 

 

   어느 첨단화된 공간. 자동문이 열리면서 검은 피부의 두 남자가 넓은 실내에 들어왔다. 한명은 레게머리, 한명은 심한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오페라 홀처럼 광활한 공간에는 수많은 신식 컴퓨터와 홀로그램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실내 중앙의 의자에 좌정한채 눈빛으로 컴퓨터들을 조종하는 잿빛머리 사내 앞으로 나아가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잿빛머리 남자는 손님들을 가볍게 눈짓으로 흘겨보더니 하던 업무를 계속하며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맡은 일들은 어떻지?”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레게머리 남자가 대답했다.

   “그래?”

   잿빛머리 남자, 갈트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비서들은 상관의 저런 표정이 나타난 직후에는 반드시 골치아픈 일이 벌어진다는 패턴을 오랜 경험을 통해 이미 학습한 바였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답을 준비했다.

   “슬슬 철수하자. 지난 일주일간 시행한 3만6천 개의 프로젝트, 전부 중지다. 소규모이건 대규모이건 미련 갖지 말고 데이터만 전부 다 회수한 뒤 깔끔히 증거 인멸해라, 비스무스, 아르센.”

   기껏 A 클래스 초인인 비스무스와 아르센으로서는 트리플 스페셜 클래스인 상관에게 감히 말대답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얼굴에는 불만인 기색이 역력했다.

   “뭐, 개처럼 훈련 시켜서 불만인 것은 이해하겠는데……, 나도 어쩔 수 없잖아. 진이나 칼리드가 되돌아오기 전까지는 깨끗하게 정리해놔야지.”

   “솔직히 말해서 그분들에게 엄하게 질책당할까봐 저희도 염려됩니다. 특히 칼리드 님께서는 같은 초인들에게도 무자비하신 분인데 말이죠.”

   곱슬머리 남자, 아르센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 뒤치다거리에 힘쓰느라 고생인 점은 잘 알겠지만 말이야, 너희도 알듯 세계의 균형을 이루려면 내 역할은 꼭 필요해. 가뜩이나 권력분립도 전혀 안 이루어지는 인류연합인데 아랫사람들끼리라도 적절히 힘을 분립해야 하지 않겠어? 밥그릇 싸움 하자는 것도 아니고 견제 역할에 충실하자는 건데.”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악동의 입에서 나오니 그리 신뢰성은 안 느껴졌다.

   “마스터께서는 칼리드님이나 위버멘쉬께서 질책할 경우를 대비해서 변명거리라도 생각해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당신의 프로젝트들이 정말로 인류 공공선 발전에 유요한 이득이 됨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레게머리 남자, 비스무스가 말했다.

   “그런 일이야 내 전문이니까 걱정 마.”

   갈트론의 호언장담에도 비스무스와 아르센은 전혀 편치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저 사고뭉치. 그를 모시는 일은 참으로 극한직업이었다. 그런 처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트론은 열심히 컴퓨터 상에서 뭔가를 시뮬레이션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라했다. 언뜻 내용을 엿 보니 기후와 관련된 자료였다.

   “이번 프로젝트와 관계된 일입니까?”

   아르센이 그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아, 이거? 이번에 하늘도시에서 탈취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와 지질을 제어하는 기술을 내 나름대로 한번 구현해봤어.”

   “하늘도시 작동 메커니즘요? 그건 명백한 산업 스파이 행위 아닙니까? 인류연합의 허락도 없이 그래도 됩니까?”

   “요새 그런 걸 누가 따져. 특허권 개념도 없는 세상인데.”

   그의 말대로 현 시대는 특허권이라는 개념이 유명무실해진 때였다. 워낙 지식과 기술이 폭발적인 속도로 발전하다보니 기발한 기술을 개발해도 실질적 유효기간은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다. 문자그대로 어떤 임의의 기술에 대해서든 출시된지 하루만 지나면 훨씬 더 유용한 상위 기술들이 봇물 터지듯 쇄도하는 시대.

   특별히 항성 규모 이상의 큰 프로젝트들의 경우 인류연합의 승인없이는 시행이나 완성이 불가능하니 개인이 아이디어를 낸다고 해도 인류연합을 상대로 특허권을 주장해봤자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그 보상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인류연합도 역으로 개개인이 아이디어들을 공공으로부터 획득해오는 일을 사실상 눈감아주곤 했다.

   “너희는 혹시 그거 알아?”

   갈트론이 삐딱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거만하게 질문했다.

   “모릅니다. 그리 알고 싶지도 않고요.”

   “거참 재미없긴. 아무튼 지구에선 말이야, 제로원이라는 행성급 건축물을 통해서 지각 변동 현상, 대기권 운동, 대기 조성, 맨틀과 지각 구성까지 초미세 단위로 조작하는 일이 가능하다더라. 신기하지?”

   “제로원은 ‘그분’의 관할 구역이니 그리 신기하진 않군요.”  

   비스무스가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듣는 듯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럼 이건 어때? 지구를 둘러싼 케루빔의 바퀴, 너희도 본 적 있지? 그게 그렇게나 신기하고 괴랄한 물건이라 하더라고.”

   “케루빔의 바퀴와 비슷한 계열의 물건은 은하계 곳곳에 많이 설치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1억 개가 넘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아르센이 끼여들어 말을 끊었다.

   “어허, 지구의 것은 그런 짝퉁들이랑은 근본적으로 성능이 다르다니까 그러네. 지구의 케루빔의 바퀴는 외부 천체마저 통째로 막아낼 수 있는 절대방어의 병기 그 자체야. 한 마디로 우주급 천재지변을 제어하는 물건이지.”

   “그렇습니까? 그건 좀 기이하군요.”

   “그렇지? 그래서 제로원과 케루빔의 바퀴, 두 물건을 감상하며 한 번 상상해봤어. 아빠가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가 뭔지 말이야. 뭐,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지향점이겠지.”

   두 비서는 무미건조함 가득한 심정으로 갈트론의 말을 기다렸다.

   “천재지변의 제어,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연 그 자체를 제어하는 것. 아빠는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미래를 꿈꾸는 중이야. 틀림 없어.”

   “물리법칙의 정복이나 현실조작 계열 기술을 말씀하시는겁니까?”

   “거기까지 다다르기에는 현 수준에서는 이른감이 있지. 아빠라면 그런 거사도 언젠가는 이루려 들겠지만. 그런데 꼭 물리법칙 개변이나 현실조작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자연 조종을 현실화하는 게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거든.”

   실제로 그러한 발자취가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했다.

   “인간들은 이미 많은 항성과 행성들을 지구 유사 환경으로 개조해왔잖아?”

   “네, 뭐, 충분한 무인 시스템 인프라와 기계들의 노동력, 그리고 타임필드만 있다면 무제한의 테라포밍마저 허락되는 시대이긴 하죠.”

   두 부하는 왜 굳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을 거론하는지 의아해했다.

   “하하, 내 말은 그런게 아니야, 이 친구들아. 그런 번거로운 작업으로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것 말고! 아무런 물리적 장치 없이 자연현상을 원거리에서 미세조정하는 능력 말이야. 물론 부작용 없이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기술까지 포함해서.”

   갈트론은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두 사람에게도 인위로 주입하였다.

   “이를테면 현 위치에서 수십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외딴 행성에 내가 어ᄄᅠᆫ 마법같은 힘을 작동하여 그 행성의 대기, 땅, 대양을 송두리째 조작하거나 성분 변화를 일으키거나 환경을 바꾸어놓는다고 생각해봐.”

   비서들은 뭔 허황된 망상이냐는 눈초리로 보스를 쳐다보았다. 공상과학과 현실도 구분할 줄 모르냐는 힐난의 눈빛이었다. 그러나.

   “뭘 그리 멍청히 쳐다봐, 이것들아? 그냥 의견이잖아, 의견. 게다가 언제까지고 허황으로 남지는 않을 걸? 따지고보면 과거의 온갖 공상들도 전부 다 현실 속에 실체화되어 열매를 맺은 마당에 내 상상이라고 못할 건 없지.”

   비서들은 잠시 궁리하면서 사견을 보탰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만약에라도 현실화된다면…….”

   “통상 우주 공간 한정의 이야기겠지만, 운용자에게 실질적으로 ‘신’이나 다를바 없는 권위를 소유케해주겠군요.”

   무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비견. 그러나 3차원 공간에 종속된 인간들의 처지에서 보기에는 무한대의 절대자나 자연 환경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인간 통치 세력이나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리라. 무한대나 1억이나 1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이죠. 자연은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입니다. 설령 그걸 움직일 기술력이 완비된다고 해도, 글쎄요? 존재하는 모든 변수를 남김없이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것은 현 인류의 지식 역량으로는 무리입니다.”

   미약한 가정법으로 가능성을 열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스무스는 여전히 갈트론의 상상을 망상으로 치부하며 일축했다.

   “하긴 내가 돌아봐도 그렇게 보이긴 해.”

   갈트론도 자신의 상상력이 주제에 넘치도록 과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혹시 알아? 어떤 미친 괴물이 그걸 성공시킬지. 세상에는 말이야, 의외로 말도 안 될 정도의 정신나간 재능을 지닌 사람도 존재하거든. 다른 인간에게는 망상에 불과한 허황된 공상도 그 사람의 능력 앞에서는 진지한 현실이 되지.”

   가상의 인물을 가정한다기보다는 현실의 특정 존재를 가리키면서 말하는 것 같은 어투였다.

   “아니, 우리 같은 존재는 차라리 망상으로라도 그런 발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지. 진짜 천재가 떠올리는 위대한 생각들은 대부분 우리 같은 범재들의 인지 능력으로는 아예 상상조차도 불가능하거든.”

   비스무스와 아르센은 뭔가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이나 우리조차도 일반인과 도매급으로 묶어 한 취급당할 정도라.’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한편 바로 그 동일한 시각, 은하 반대편에서는 간교하고 영악한 갈트론마저 한낱 범재로 전락케 할 위대한 천재가 부지런히 자신의 계략을 머금은 청사진을 그려내는 중이었다. 문자그대로 자연 자체를 갈아엎을만큼 거대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한 프로젝트. 그는 흡족스레 도면을 바라보았다.

   “슬슬 QUASAR-II의 설계도도 막바지인가.”

   그는 두려운 계략을 현실로 쏘아올릴 박차를 가하였다.

 

 

 

 

 

 

 

 

*

 

 

 

 

 

   선교사들이 다음으로 접속한 제5구역은 지지난번의 제3구역과 마찬가지로 인프라가 낙후된 편이었다. 다만, 생체병기 재난 사태로 인해 도심 중간 중간에 황무지가 존재했던 제3구역과는 달리, 제5구역은 대지의 질 자체는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었고 단지 큰 규모의 도시만 발달하지 못했다. 지구로 비유하자면 20세기 후반 무렵의 인구 밀도가 적은 평야 지대 국가 정도에 가까웠다.

   이러한 인구 분포 패턴에 맞춰 선교팀은 포교 전략의 개요를 전환했다. 대도시 위주의 공중 설교를 통한 다소 공략 대신 소규모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일행은 인형의 빠른 기동력을 활용해 마을과 마을, 가옥과 가옥 사이를 옮겨다니며 사람들을 방문했다.

   다행히 각종 컬트와 사이비의 범람으로 인해 신물이 나 전도자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던 지구에서와는 달리, 제5구역은 포교 활동 자체가 지난 수백년 동안 없었기에 포교자에 대한 내성에 가까운 거부감은 없었다. 그 덕에 낯선 자가 방문했다는 이유로 일행이 마냥 내쳐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운 좋게 세 친구는 작은 농장을 소유한 한 가정의 가택에 초대되어 식사 대접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는 젊은 부부가 노부부를 모시며 살고 있었는데 모두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일행은 탁자에 함께 모여앉아 노부부에게 이 지역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왜 이곳에는 주민들이 이토록 드문드문 살고 있나요?”

   현지를 여행하며 궁금했던 점을 루디아가 여쭤보았다.

   “주기적으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서 그렇수.”

   할머니는 짧고 간결하게 답을 주었다.

   “자연재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윤혁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오, 젊은이?”

   할아버지가 윤혁에게 다시 되물었다.

   “아니, 그게 말이죠.” 

   윤혁은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로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우물 안 개구리인 저들의 입장에서는 윤혁의 말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이해를 도우려면 먼저 하늘도시라는 식민지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줘야 할텐데, 그건 곤란했다. 이미 지난 번 선교 여행으로 검증하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이곳 주민에게는 표식이 심겨져 있고 그것이 기억이나 사상에 모종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외부 시스템의 존재와 같은 인류연합 측에 치명적인 정보가 주민들에게 노출되면 그들은 전혀 믿지 못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강제력 때문에.

   ‘이걸 어떻게 전달해줄 수도 없고, 난처하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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