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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0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4. 인터미션 V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3.20 | 회차평점 0 0

 

 

 

 

 

Chapter 44. 인터미션 Ⅴ

 

 

 

 

 

 

 

   워프 충격파의 잔상이 모래처럼 부스러지며 공간 속으로 흩어졌다. 공간의 균열을 찢고 건물 안으로 성큼 쳐들어온 칼리드는 중력을 조종해 자기 몸을 지면에 부착시킨 채 발걸음을 당겼다. 커다란 흑표범 한 마리가 먹잇감의 목덜미를 찢기 위해 다가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자태. 감출 수 없이 분출되는 짙은 에너지, 상대를 압박하는 카리스마, 빙하보다 냉혹한 역설적인 불꽃의 눈. 그를 기다리던 상대방은 그 위세에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여어, 형님!”

   “해명할 기회는 주지.”

   “하하, 그게 말이지.”

   망나니 갈트론은 건들거리며 거들먹 거리는 자세로 변명을 시작했다. 일곱 철인왕 중에서 유일하게 골칫덩어리인 통제조차 어려운 사고뭉치, 그게 갈트론에게 붙은 오명이었다. 칼리드는 한심한 버러지를 내려다보는 눈초리로 그를 응시했다.

   “한심한 놈.”

   “쳇, 잘나신 형님과는 달리 이 몸은 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은 적성에 안 맞아서 말이지. 그래도 나름대로 형님들이랑 누님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잖아. 그건 인정해달라고.”

   여전히 갈트론에게서는 반성의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칼리드는 전혀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훈육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갈트론에게 이용가치가 남아 있다고 판단하시는 동안만 놈의 행위를 최대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역이용하면 그만이다.

   “당분간 근신해라.”

   “에이, 삐친 건 아니지? 형~.”

   불량스럽게 거짓 애교를 부리며 조롱하는 녀석의 비아냥거림에 칼리드의 눈매가 흉악한 모양새로 가늘어졌다. 경멸감이 잔뜩 어린 눈빛이 불처럼 쏘아져 나왔다. 언제까지 저런 녀석의 뒤나 봐줘야 하는가? 환멸감이 묻어나왔다.

   칼리드가 자리를 뜨자마자 갈트론은 자신이 회수해온 물품들을 쭉 점검해보았다. 그가 점령했었던 300개의 하늘도시 자체는 이미 진과 칼리드가 수습해놓았고 프로젝트의 부산물들도 저들이 활용하겠다면서 회수해갔다. 그래서 늘 그랬듯, 모략을 기획한 갈트론 자신에게는 정작 남는 수확은 얼마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나 도덕심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더러운 일, 그런 것들을 대신해주면서 손을 더럽히며 손익을 제공해주는 게 갈트론이 맡은 임무였다.

   “뭐,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지는 않군.”

   사이코패스들이 일을 벌이기 전에 으레 짓곤 하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갈트론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가까스로 프로젝트 현장으로부터 챙겨오는 데 성공한 소수의 노획물들을 살펴보았다. 부서진 물체, 훼파되고 남은 특수 아이템, 모아온 해킹 데이터, 추출해온 생체실험 자료 등 잡동사니들의 모음이었다. 그러나 부실해 보이는 모양새와는 달리 의외로 유용성은 풍부했다. 샅샅이 해부하면 생각 외로 온갖 정보와 기술을 추출 가능한, 꿩 대신 닭 격의 보물단지.

   ‘덕분에 다음번에는 좀 더 재미있는 일들을 벌일 수 있겠지.’

   그때 갈트론의 눈에 파괴된 인형 잔해 하나가 들어왔다.

   “음?”

   누가 미리 처리해두기라도 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심하게 손상된 지라 메모리 데이터를 회수하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지금으로써는 별 보탬이 되지 않는고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은 자꾸 눈길을 끌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기분인데?”

   사특하지만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한 그의 직감이 반응하였다.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면……, 먹힐까?”

   갈트론은 사이코메트리에 더해 양자 분석, 텔레포트 복제, 입자 기억 재구성과 같은 고차원적 기술을 첨가하여 인형의 잔해로부터 정보 분석 작업을 속행했다. 별다른 소득은 나오지 않았다. 미리 누가 철저한 보안 작동 프로토콜을 심어두기라도 한듯.

   “흠, 딱 봐도 이건 진의 방식인데?”

   구태여 많은 추리로 수고할 필요는 없었다. 갈트론이 아는 한 그만한 창의력을 갖춘 실력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진의 방식을 역으로 적용하면 끝없는 실타래도 조금은 풀 수 있으리라. 숱한 노동 끝에 중요한 메모리 데이터를 복원해내는 데 성공한 갈트론. 비록 딱 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했으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정체 불명의 사용자가 인형의 입을 빌려서 시행했던 연설, 그 본문이 갈트론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지구의 낡은 유산. 갈트론은 그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으면서 흥미진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곁에서 제삼자가 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불길한 웃음이 그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킥, 누군지 몰라도 재미있는 인간이잖아.”

   그것은 리온 마흐무드가 빌려 사용한 인형 몸체였다. 제2구역에 남겨져 있던 인형 잔해가 하필이면 갈트론에게 회수당하고 만 것이다. 본디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러나 하필 꼬리를 잡은 손이 영 좋지 못한 마수(魔手)인 점은 큰 불행이었다. 갈트론은 목소리의 주인이 사용하는 설교 방식이 제법 맘에 들었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가학성애적인 의미로.

   “말솜씨는 그저 그렇지만, 당당한 태도가 쓸 만해 보이는군.”

   갈트론은 이 목소리의 원주인의 프로파일을 상상속에서 그려내었다. 그의 사디스트적인 기질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요동하였다. 이런 발칙한 용기를 지닌 위인을 사정없이 짓밟아 망가뜨려 주고픈 욕망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답게 괴롭혀줄 수 있을까. 그자의 신념이 사정없이 꺾여 땅바닥에 내던져지는 광경을 상상하자니 저속한 희열감이 솟구쳐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길 바랄게.”

돌이켜보건대 분명 그것은 불운의 단초 중 하나였으리라.

 

 

 

 

 

 

 

*

 

 

 

 

   한편, 칼리드는 한동안 공동 프로젝트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장은 식민지를 제어하는 일보다 이쪽이 훨씬 더 급했다. 정치나 경영이야 인공지능들도 수행할 수 있지만, 공동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믿고 직접 맡긴 제일 중요한 과제니까. 이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조만간 우주 전역의 세력 균형이 달라지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바짝 긴장되었다. 그는 기존의 개인 업무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틈틈이 시간을 쪼개 셀레스티언의 현황을 확인했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군.”

   물론 여태껏 전함에 준하는 화력을 소유한 유닛들로 구성된 거대 이종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로 제작 중인 종족, 셀레스티언은 궤가 달랐다. 말 그대로 개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별과 동격.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소행성, 암석 행성, 가스행성, 백색왜성, 소형 블랙홀, 중성자별, 주계열성과 같은 자연계의 천체들을 모티브로 삼아서 제작된 몸체를 지녔다.

   여기에 더해 셀레스티언 개체들은 자체적 지능을 갖도록 설계되었는데 대류층에 특수한 형태의 ‘유사 신경 네트워크’를 이식함으로써 이 일이 가능케되었다. 일전에 진이 고안한 ‘태양의 영감’과 비슷한 계열의 기술의 연장선이지만, 다양성이나 복잡성 측면에서는 그때보다 수백 단계 이상 발전했다.

   정작 가장 두려운 강점은 생산력에 있었다. 별의 탄생 이론을 기반으로 기존 개체가 새 개체의 핵심부를 만들어내는 ‘유사 생식 시스템’이 내재된 종족이기에 자원만 공급되면 자가 재생산이 가능했다. 자원 소모가 크긴 하지만, IDD 덕분에 외계 은하에서 별들을 수입해올 수 있는 현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구나 셀레스티언은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율을 창출해내도록 설계된, 가성비 높은 종족이다보니 비록 생산 비용이 크다고 해도 일단 생산해놓으면 자원 소비 효율도 우수하고 한번 만들어진 개체는 준-영구 동력원처럼 작동하기에 장기적으로는 압도적인 이윤을 자랑하였다.

   “어디까지나 2차 복제형 퀘이사 엔진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일 그 무시무시한 괴물 동력원이 없었다면 셀레스티언이라는 비상식적 종족을 탄생시키려는 계획은 꿈조차 못 꾸었으리라. 셀레스티언의 재생산 효율과 자원 소모 효율, 그리고 동력 효율을 극대화해준 일등공신이 다름아닌 퀘이사 엔진이었다. 그것도 본체도 아닌 일개 ‘양산형’ 복제 엔진 하나. 본체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조차 안 섰다.

   현재도 은하계 바깥의 광활한 공허 영역에 펼쳐진 아공간을 양식장 삼아 꾸준히 증식 중인 미성년의 종족, 셀레스티언. 그들의 가공할 진화 과정을 목도하면서 칼리드는 우주적인 공포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과거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면서 느끼던 것과 같은 감회일까.

   “저 대단한 별들이 인간의 가축이 되다니, 새삼 놀랍군.”

   장차 저것들이 스스로 자원을 캐고 자신의 딸을 낳으며 증식한다면 어떨까? 완벽한 제어 하에 놓을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인류 문명이 필요로 하는 각종 거대 생산 플랜트나 요새를 만들 재료로써 자기들의 신체를 제때 알아서 바쳐준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분명 인류의 산업 체계는 극명히 새로워진 혁명적 국면을 맞이하리라.

   “고작 하나의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의 잠재력도 이 정도이거늘. 대체 몇 개까지나 더 운용하실 작정일까?”

   칼리드는 아버지가 그려내려는 큰 그림이 몹시 궁금해졌다. 분명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기막힌 방향으로 전개되겠지. 자신에게 그 그림의 전부를 내다볼 안목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

 

 

 

 

   스테판의 귀환 덕분에 간만에 일행은 웃음꽃을 피우며 기쁨과 감사로 넘쳐나는 시간을 만끽하였다. 그간 허전했던 자리가 채워지면서 마침내 잃어버린 한 조각의 드라크마를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스테판은 우연히 만난 덤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한 지체로서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아니, 그러면 그동안 계속 우주에서 지내신건가요?”

   리온이 안부를 물었다.

   “그날 일부터 설명드리겠소. 당신도 마지막에 보았다시피 나는 시뮬레이션 우주 깊숙이 들어가서 대중의 정신적 각성을 유도할 메시지를 던졌소. 그때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무렵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도 같소. 당시 각성 상태였는지 잠들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소.”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테판은 주님의 임재를 잠깐 경험한 듯했다. 다만, 환상을 통해 임하신 것인지 마음속에 속삭이셨는지는 불분명했다. 직접적인 육성의 계시를 체험한 것은 아니었으나 틀림없이 그분의 섭리와 개입임은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의식을 잃은 후 정신을 차려보니 의료용 캡슐에 들어있었소. 후원자가 내 신체를 회수했겠지. 아마 반지도 그 우주선에 같이 탑재되었을 거요. 그렇게 나를 태운 우주선은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요새에 정박하였소. 그곳에서 나는 몇 달간 실험실에서 외로이 지내며 하염없이 시간만 축냈소.”

   듣기만 해도 험난하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저희와 헤어지지 말아요.”

   “고맙소, 루디아 양. 내 능력이 닿는 한 그렇게 하겠소.”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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